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29)
1129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4)
연호정이 굳이 무허대사에게 직접 가서 병력을 데리고 오라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전쟁에서 사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정예 부대라도 사기가 떨어지면 잡병이 된다. 심지어 본인 실력의 십분지 일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르는 사람은 그게 말이 되냐며 혀를 차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몸을 던져 본 이들은 십분지 일이 아니라 백분지 일로 떨어졌대도 수긍할 만큼 군(軍)에게 사기는 중요하다.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하북 동쪽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하북 무림 연합을 이끄는 사람은 팽무강이었다.
그는 하북 무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고수였지만, 문제는 오랜 시간 황궁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을 정보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황궁 북부가 공격당하고 있으니 회군해서 도우라고 하면, 팽무강은 몰라도 휘하 병사들은 쓸데없이 긴장할 수 있다.
거기서 무허대사의 존재감이 중요해진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중원 무림의 일인자였다.
실제 실력이야 성천 모두가 붙어 봐야 안대도, 명성만 보면 천하제일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무허대사는 희대의 악인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는 성자 중의 성자였다. 오랜 시간 강호를 전전했음에도 그의 손에 죽은 사람은 손에 꼽힌다.
중원제일인, 강호에서 가장 존경받는 고수, 소림의 전대 방장.
그런 그가 적을 섬멸하겠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잔뜩 긴장한 채로 주둔해 있던 병사들의 사기는 무허대사의 말 한마디에 하늘을 뚫을 것처럼 치솟을 것이다.
나아가, 그들에게는 고향을 지킨다는 목적 이전에 너무나도 분명한 사명이 주어졌다.
대군과 상대하며 밀리는 아군을 돕고, 적을 기습하여 전장의 판도를 바꿔야 한다는 사명이.
하늘까지 치솟는 사기로, 명확한 사명을 안고 돌진하는 삼천의 병사들은 일만 대군의 전투력을 싣고 돌진할 수 있다.
무허대사와 팽무강은 연호정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했고, 전장까지 오는 동안 병사들의 사기를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을 만큼 증폭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개미 떼처럼 전진하는 적병과 마주할 수 있었다.
* * *
첫 공격은 누가 뭐라 해도 무허대사였다.
삼천 본진의 선두에서 오십여 장을 먼저 전진한 그는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쾅!
그 넓은 북부 평야가 통째로 흔들리는 듯했다.
증폭되는 불가의 황금기. 소림제일신공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이 초월적인 힘을 품고 주먹 하나에 모였다.
무허대사가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훅!
휘몰아치며 전진하는 거대한 권풍에 살기로 어지럽던 공기가 확 가라앉는 듯했다.
반투명한 금빛 권풍은 무려 칠십여 장의 거리를 돌파하며 신화교의 정예, 백화령의 측방을 공격했다.
콰아아앙!
대형 화포를 쏴도 이런 결과를 내긴 어려울 것이다.
무허대사의 권풍에 직격당한 백화령 교도 수십 명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실제로 죽은 자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권풍의 압력은 인간의 뼈마디로 버틸 수 없는 강도를 보여 주었다.
쓰러진 교도 대부분의 사지가 부러졌고, 개중엔 장골이나 갈비뼈, 빗장뼈가 으스러진 이들도 많았다.
정예라고는 하나 초절정의 영역에 들지 못한 이들이었다. 화정이라는 놀라운 비술로도 으스러진 뼈를 복구하려면 하루 이상이 걸릴 것이다.
파아아앙!
무허대사는 또 한 번 돌진했다.
이번 한 번의 권풍으로, 평생 죽였던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의 맑고 깊은 눈동자에 한없는 슬픔과 동정이 일었다.
‘기어이 살계를 열고야 말았구나.’
오천 자가 넘는 금강경의 구결을 습관처럼 외운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 위함일 뿐, 적의 입장에서 보면 위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무허대사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미 살계를 열고 사람을 죽이고 있다. 위선이면 어떠하고 위악이면 어떠하랴. 지금 이 순간, 그는 마(魔)에 휩쓸리지 않도록 정신과 마음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은 서글픈 마음과 달리 벼락처럼 움직였다.
금강(金剛), 그 무한의 강렬함을 담아.
콰르릉! 콰르르릉!
두 번 연속으로 주먹을 휘두르니, 무지막지한 금빛 광풍 두 줄기가 또 한 번 백화령을 강타했다.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작은 폭발이 일었다. 선혈을 뿌리며 몸통이 박살 나 죽는 이들, 화정이 폭주하여 그대로 폭사하는 이들, 머리통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전진하다가 쓰러지는 이들 모두 무허대사의 눈에는 선명히 보였다.
무허대사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심안을 열었다.
번쩍!
심안으로 본 세상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각자의 욕망을 위해 날뛰는 만 단위의 악귀들이 서로를 쳐 죽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자신은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가.
화르르륵!
무허대사는 자신의 몸이 불타오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타고난 마기(魔氣)로 괴물이 될 운명을 벗겨 낸 수만 송이의 연화(蓮花)가 하나씩, 하나씩 가루가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연화 한 송이가 사라질 때마다 그간 쌓은 불성(佛性)도 사라지는 듯했다. 끝없는 봉인으로 힘을 잃어 탁하게 굳어져 버린 마성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듯했다.
우우우우웅!
무상의 힘을 내려놓고 반야의 힘을 끌어올렸다.
지혜의 신공 반야대능력(般若大能力)으로 상단전을 보호하니, 그 기운이 자연스레 중단전까지 내려와 사라지는 연화들을 붙잡았다.
검은 연기가 사라지고, 마성은 다시 잠들었다.
평온함을 되찾은 무허대사는, 평온하게 악귀들을 공격했다.
쿠르르릉!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력이 쏟아져 나온다.
낮은 자세, 힘찬 진각, 회전 없이 곧게 나가는 주먹.
뿜어져 나오는 공력은 산사태와 같았고, 금빛 진기는 무상의 깨달음으로 가득했다.
맹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콰르르릉!
백화령의 측면을 또 한 번 휩쓸어 버리는 절대의 무공.
소림칠십이절예(少林七十二絶藝)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그 위력과 난해함이 첫손에 꼽힌다는 무적의 권공.
‘백보신권(百步神拳)!!’
맹곽은 황홀함을 느꼈다.
천하제일고수가 내치는 소림제일권의 위력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임에도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번쩍! 번쩍!
백보신권을 펼친 무허대사가 꼿꼿한 자세로 백화령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콰콰콰쾅!
양 떼 사이에 호랑이가 들이닥친 것과 같다.
심안으로 보는 세상, 악귀를 죽여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불성을 유지하고 마성을 봉인한 무허대사는 거침없이 소림무(少林武)를 풀어 냈다.
콰쾅! 퍼어어어엉!
사방 천지로 피 보라가 일어났다.
대군과 부딪친 게 아니다. 고작 한 명의 고수가 군대 안으로 난입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백화령은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압도적인 폭력에 지독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퍼퍼펑! 퍼펑!
휘두르는 두 주먹은 부드럽고 유연했다.
딱히 빠르다는 느낌이 없는데도, 피하거나 공격하려는 교도들의 몸통을 다 부수고 지나갔다.
소림절기,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과 용왕유권(龍王柔拳)의 합작이었다. 권풍에 스치기만 해도 몸통이 갈려 나갔으며, 권압 안에 있는 자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짜부라져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다.
무허대사는 백화령만 공격하지 않았다.
그의 우장(右掌)이 묵직하게 전진했다.
콰르르르릉!!
거대한 범위를 아우르는 금빛 장력에 백화령과 그 뒤를 받치는 은화령의 교도들 일부가 즉사했다.
백보신권과 함께 소림에서 가장 유명한 장공,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었다.
일격에 성벽이라도 허물어 버릴 것 같은 위력이었다. 무허대사의 광기 어린 소림무에 백화령과 은화령은 돌격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던 하북 무림 연합, 삼천 병력이 은화령의 측면을 노렸다.
“죽여라!”
콰콰쾅! 번쩍!
은화령의 좌측면이 단번에 허물어졌다.
최전방에서 거도(巨刀)를 휘두르는 팽무강의 모습은 성난 호랑이를 연상케 했다.
번쩍!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도격은 폭발을 일으키며 서너 명의 교도들을 단숨에 쪼개 버렸다. 팽가도법,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였다.
퍼버버버벅!
벽력도로 기선을 제압한 후, 그 묵직한 중병을 쾌검처럼 휘두른다. 일도(一刀)가 지나가면 꼭 한 명이 죽었는데, 그처럼 빠르고 예리한 도격이 순식간에 열여덟 번이나 펼쳐졌다.
이 또한 팽가의 유명한 도법인 건곤연환탈백도(乾坤連環脫魄刀)였다. 혼원벽력도가 한없는 강격으로 적을 압도한다면, 건곤연환탈백도는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적을 유린하는 무공이었다.
중병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입문조차 못 할 만큼 고난도의 도법.
콰르르릉!
벽력도와 탈백도, 두 도법이 신들린 듯 펼쳐지며 은화령 교도들을 학살했다.
은화령으로선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제삼자가 보는 것과 달리, 천 단위의 병력이 회전하여 적을 맞이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무공의 강약과는 무관한 문제였다. 그저 군대 행렬의 특징이다. 측방에서 기습당할 때 곧장 반응할 수 없는 것은, 군대 자체가 즉각적인 변화에 맞추기가 힘든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특수 부대를 따로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소수를 훈련하여 기민한 반응으로 적을 유린하는 부대의 존재는 군대 전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를테면 하북 무림 연합은 단순히 기습을 한 게 아니라, 군대라는 조직 자체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초장부터 적에게 압도적인 타격을 준 것이다.
“죽여라! 죽여!”
“거리를 좁혀라! 기공이 날아온다!”
“무시하고 전진해! 하지만 급하면 안 된다!”
삼천 병력을 이끄는 수많은 문주들의 목소리엔 강력한 내공이 담겨 난전 중에도 아군의 행동을 수월하게 통제했다.
찰극평의 호위까지 담당했던 오천의 은화령은 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일천이나 되는 숫자를 잃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하북 무림 연합도 마찬가지였다.
“크아아악!”
“아아악!”
“미, 밀어붙여라!”
당황했다지만 은화령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정예였다.
선두에서 싸우던 무사들 삼백여 명이 전사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기는 은화령을 압도했다. 팔다리에 화상을 입고도, 누군가는 복부에 단창이 꽂히고도 이를 악문 채 전진했다.
‘빌어먹을.’
연신 거도를 휘두르면서도 팽무강은 초조함을 느꼈다.
‘치고 들어가면서 단숨에 압도해야 했다. 무허대사께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으니, 그 틈을 노린 우리가 놈들의 부대 하나는 깨 버려야 했어.’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천의 적을 죽인 것만으로도 대단한 전과였지만, 그 수가 천이든 이천이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적의 흐름을 끊고 전멸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쯤 부대 하나는 완전히 와해가 되어야만 했다.
‘온다.’
팽무강의 마음이 다급했던 이유.
후욱!
오천 귀병(鬼兵)을 이끌고 돌진하던 철흠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신법까지 펼치며 날아오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 무지막지한 기세였다. 거리가 그렇게 떨어졌는데도 뼈마디가 아려 왔다.
‘빌어먹을! 기습이 성공하기도 전에 죽는 건가?!’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이곳에는 심안으로 세상을 보는 자가 있었으며, 그의 심안에는 시퍼런 불을 뿜는 철흠기의 존재가 또렷이 보였다.
콰아아앙!
수십 명의 적들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내며 돌진하는 무허대사.
단숨에 은화령의 정중앙을 뚫고 지나간 그가 철흠기를 향해 대력금강장을 뿌렸다.
콰르릉!
중원제일인 무허대사, 신화교 오화왕 철흠기.
두 고수가 격전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