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32)
1132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7)
처음 신화교 병력이 황궁 북부 기습을 감행할 것임을 깨달은 연호정은 놈들이 머리 한번 잘 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충분히 막아 낼 자신이 있었다. 개개인의 기량은 무림인에 비해 낮다 하더라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군대는 집단의 힘으로 적을 일거에 쓸어 버리는 데에 능하다.
그것은 무림인들이 가지지 못한 힘이었다. 무림인은 근본적으로 군대만큼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기 힘들다. 무림맹이니 흑제성이니 흑백의 연맹체들이 버젓이 버티고 있지만, 그들은 무림인의 특성대로 부대를 배치해 선별할 뿐 수천, 혹은 수만 단위의 집단전을 상정하진 않는다.
그래서 무림 조직 간의 전투는 첩보와 기습, 대리전, 생사 비무 등으로 제한되며 진짜로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좋다.
그것이 무림인과 군인의 차이다.
군대는 이기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쓴다.
당장 황궁 특제 화포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당가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괜찮은 독탄은 물론 필요하다면 화탄을 안고 자살 돌격까지 감행한다.
그것은 사기의 문제가 아닌 훈련의 문제였다. 오히려 무림인만큼 개인 수련에 힘을 쓰지 않기 때문에 집단의 힘이 늘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활용하는 극단적인 전술 형태로 발전했다.
황궁에 주둔한 군대 병력만 오만에 이른다.
전성기가 지나 국력이 쇠한 지금도 오만이다. 중원 전역에 퍼진 지역 군대를 징발하면 수십만 대군이 나온다.
물론 그들은 쓸 수 없는 병력이었다.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머릿수를 채워 인해 전술까지 감행할 상황이 아니면 징발은 불필요하다. 게다가 각 지역의 무림 문파가 치안까지 담당하고 있으니, 황궁은 자연스레 정예를 양성하는 데에 집중했다.
필요하다면 절반 이상의 병력을 투입해서라도 적들을 밀어 버리겠다. 연호정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정확히 그때부터 연호정은 현 상황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찝찝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이라고 그걸 모를까?
신화교는 수십 년 전부터 황궁을 노렸고, 무림맹에서 파견한 고수들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황궁 점거에 성공했을 것이다.
그렇게나 황궁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이, 황궁이 부리는 군대의 힘을 모르겠는가.
자신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북부 기습을 노린다는 것도 대담한 발상이었지만, 연호정은 그 이상을 보았다.
역지사지. 모름지기 장군이란 아군의 전력과 상태에 정통해야 하며, 나아가 적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법.
연호정은 한 번 더 적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심지어 북부 기습 부대는 보란 듯이 삼십 리 밖에 주둔하며 황궁의 눈을 붙들어 두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들의 행동은, 우리가 곧 공격할 테니 철저히 대비하라고 알려 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적은 바보가 아니다. 이득이 없다면 절대 그런 행동을 취할 리가 없다.
의심은 의심을 낳았고, 결국 그 집착적인 의심과 풍부한 상상력, 날카로운 전술안은 하나의 가능성을 끄집어냈다.
섬서와 감숙.
황궁 북부가 아닌, 중원 북부 전체를 들여다본다.
무림인 간의 집단전이 아니라면, 어떤 전쟁이든 패배하여 마지막 병사 한 명까지 죽는 경우는 없다.
병력의 삼 할만 잃어도, 독하게 봐서 절반만 잃어도 패배한 것이다. 패배한 군대는 당연히 퇴각하여 후일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삼교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치고 들어왔다고 하여 병참(兵站)도 놓지 않았을 리가 없다. 놈들은 중원 침투가 불가능할 시 퇴각하여 전열을 가다듬을 병참을 반드시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인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에는?
그다음 그들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나아가,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이 빠르다면? 사음교나 광혈교는 사마공을 연성한다.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한 위력을 자랑하는 신공(神功)보다 지구력이 떨어질지라도, 회복에 한해서는 중원의 여러 신공을 압도한다.
체력, 상처, 내공의 발 빠른 회복.
그 이후에는 어쩔 것인가? 다시 교로 돌아갈 것인가?
만약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면?
놈들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면 굳이 병참까지 돌아갈 필요가 없다. 감숙이든 섬서든 그대로 치고 들어와 지역민들을 약탈하며 그 지역을 완전히 집어삼켰을 것이다.
즉, 병참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패배했거나 병력 부족으로 후속 공격에 부담을 느낀다는 뜻.
거기까지 생각하자, 연호정은 소름 끼치는 답 하나를 유추할 수 있었다.
합군(合軍).
각기 다른 군대가 하나로 합쳐진다.
감숙을 공격했던 부대, 섬서를 공격했던 부대가 신속하게 전열을 정비한 후 그대로 하북을 노린다면?
하북에는 황궁이 있다. 황궁이 적에게 넘어가면 중원의 사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떨어진다. 그걸 아니까 신화교도 황궁에 이리 집착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연호정은 황궁의 서쪽, 산서성의 정보를 집착적으로 받아 보기 시작했다.
그중에 비로소 연호정이 예측한 정보가 끼어 있었다.
미지의 병력들이 무서운 속도로 하북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는 정보.
답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 명확한 답 앞에서, 연호정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 * *
두두두두두!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는 전마는 유독 크고 근육질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연호정은 지금 광룡부를 들고 있었다. 그처럼 무거운 병기를 쥐고 휘두르는 사람을 평범한 전마가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에는 삼천 기병이 따라오고 있었다.
황궁 최정예 기마 부대 금천기마단(金天騎馬團).
총 오천 기마 부대 중 삼천이 진군했고, 열린 서쪽 성문 뒤에는 남은 이천의 기마 부대가 출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우우우웅!
황룡신왕공이 고요하게 불타올랐다.
연호정의 안광이 형형해졌다. 금빛으로 물든 한 쌍의 눈동자는 저 먼 평야에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돌진하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거리가 이렇게 멀리 떨어졌는데도 마기에 물든 공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듯했다.
흩날리는 공포의 기운. 단순히 기마병들만 흉흉한 마기를 뿜어내는 게 아니라, 그들이 타고 있는 전마들 역시 마물(魔物)인 듯했다.
‘저 정도였나.’
한참 멀리 떨어졌는데도 그 기세가 엄청났다.
무극수라고 방심할 수가 없다. 아니, 방심하다간 죽는다. 그만큼 하나가 되어 돌진하는 기마 부대의 군기는 무지막지했다.
후우우웅.
어느 한쪽에도 치우침 없는 황룡신왕기가 폐장으로 깃들었다.
마치 백호금기(白虎金氣)처럼 폐장 능력을 활성화한다. 답답했던 공기가 상쾌해지고, 폐 안으로 들어갔던 온갖 불순한 것들이 빠르게 증발했다.
‘그래, 저 정도가 되니까 그 난리를 쳤지.’
아버지와 함께 한창 싸우고 있을 신화교 부대가 삼십 리 밖에서 주둔했던 이유.
황궁의 모든 시선과 병력을 북부에 잡아 두기 위함이었다.
황궁은 엄청나게 넓었다. 북부 전선으로 모든 병력을 집중시키다가 측면을 공격당하면, 그곳까지 군대를 파견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까지 성벽에서 버틸 수 있느냐다.
‘저놈들이라면 가능해.’
돌진하는 적의 기마 부대라면, 성벽에 남은 수비대의 공격을 무시하고 성벽을 허물 수 있다.
어떤 공격 수단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군기만으로 알 수 있었다.
놈들은 정예다. 정예 부대 중에서도 최상위 부대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저 부대 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또 다른 마기(魔氣)를 발산하는 초고수의 존재도 느껴졌다.
‘무극수가 있다.’
섬서나 감숙에서 죽지 않은 적장 하나가 딸려 왔다.
그렇다면 볼 것도 없다.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면 서쪽 성벽이 뚫렸을 것이고, 적들은 그대로 황궁에 침투하여 아수라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난다. 황궁에 주둔하는 무극수들이 피해를 최소화할 순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황제가 인질로 잡힌다면 그걸로 전쟁은 끝날 것이다.
실로 대담하기 짝이 없는 유인책.
누가 이만 오천의 병력을 희생하여 적진을 점거하려 한단 말인가. 삼교 중 어디인지는 몰라도, 이 작전을 실행한 놈은 정신병자가 분명했다.
‘그것만이 아니야. 놈들은 하나이자 셋이었다. 각자가 따로 놀고 있었어. 그런데도 즉석에서 합군 전술로 황궁을 초토화시킬 전략을 감행했다면, 이는 삼교 모두가 인정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적의 전략 전술을 보며, 얼굴을 모르는 미지의 적까지도 꿰뚫어 본다.
극한의 전투 경험과 초월적인 감각, 지혜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날카로운 군략가의 안목.
연호정은 비로소 지금, 잠시나마 전장을 지배했음을 깨달았다.
‘이제 남은 수법은 없을 것이다.’
머리를 쓸 만큼 썼고, 움직일 만큼 움직였다.
남은 것은 전투뿐.
연호정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우아아아악!”
터져 나오는 사자후에 황룡신왕기가 담겼다.
공기를 밀고 들어오는 마기와 군기를 분노 가득한 일갈로 날려 버린다. 허공에서 펑! 펑! 하는 굉음이 터졌다.
‘오백 장.’
마침내 적의 숫자가 예측되었다.
‘오천, 아니 육천이 넘는다.’
기마 부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기마 부대 후미에서 이질적인 마기를 풍기는 일천의 보병들이 기마 못지않은 신법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무극수가 있다.
‘삼백 장.’
서로가 서로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한다. 거리는 무섭게 가까워졌다.
‘백 장.’
우우우우웅!
광룡부의 두꺼운 도끼날에 황금빛 진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연호정과 금천기마단 사이의 거리는 삼십 장이었다. 그 거리가 좁혀지기 전에, 초전 일선 병력을 완전히 박살 내야만 했다.
오직 그 혼자만의 힘으로.
그렇게 적군과의 거리가 오십 장, 삼십 장 나아가 이십 장에 달했을 때.
피피피피피핑!
돌진하던 은호마병의 일천 궁병들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연호정이 아니라 금천기마단을 향해서였다.
연호정은 아군을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해도 의미가 없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걱정할 때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십 장 거리로 좁혀졌을 때.
장창을 겨누며 돌진하는 은호마병들을 향해, 연호정이 횡참의 일격을 발했다.
번쩍!
실로 오랜만에 펼쳐지는 광풍구룡살(狂風九龍殺)의 무참(舞斬).
단순한 동작이지만, 펄럭이는 소매와 흩날리는 전포 자락이 진정 춤을 추는 듯했다.
콰르르릉!
무지막지한 칼바람이 쏟아지며 은호마병의 첨병 십여 기를 어육으로 만들어 버렸다.
적을 찍어 죽이다 못해 갈아 버리는 무공.
화아아악!
상단을 거닐던 신왕기(神王氣)가 광룡부에 무한한 힘을 선사했다.
촤르르륵! 콰콰쾅!
오른손에 들린 광룡부가 신들린 듯 참격을 발하고, 어느새 왼손에서 튀어나온 교룡쇄가 적의 기마와 무사들을 피떡으로 만들었다.
뿜어져 나오는 공력은 해일과 같았으며, 치솟는 전투 의지는 일만 군사가 와도 꺾지 못한다.
연호정의 오른팔이 확 부풀었다.
퍼어어엉! 콰드드득!
광풍구룡살 이초, 승공세(昇空勢)에 파편이 된 기마와 무사들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연이어 펼친 삼초, 붕산세(崩山勢)에 반경 오 장이 넘는 구덩이가 파였다.
번쩍!
나아가 허리춤에 매여 있던 백룡부(白龍斧)가 이기어검의 묘(妙), 사초 광풍섬(狂風閃)으로 쏘아져 적 기마 다섯 기를 박살 내고 돌아왔다.
들고 있는 모든 병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지금껏 품고만 있던 막강한 무력을 한꺼번에 쏟아 내는 무제의 광기.
그 비현실적인 파괴력에, 공포를 모르고 돌진하던 은호마병의 기병들이 기겁하여 말머리를 돌렸다.
촤르르르륵!
비수처럼 쏘아진 교룡쇄가 기병 하나의 목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연호정의 몸이 순식간에 피로 젖었다.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