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34)
1134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8)
‘엄청나구나!’
후미에서 산개하는 은호마병을 본 금천기마단주 이광은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온갖 기마대를 이끌어 봤다. 경갑기병, 중갑기병은 물론 무림인들처럼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경갑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의 기병들도 이끌어 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기마대도 저 은호마병만큼 신들린 기마술을 보여 주진 못했다.
‘진정한 인마일체다.’
허리의 미세한 움직임, 두 다리의 조임과 상반신의 무게 중심 이동을 통해 방향을 자유자재로 전환한다. 어찌나 기민하게 반응하는지 고삐조차 필요가 없을 정도다.
능숙한 기마술을 지닌 기병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저놈들은 전장에서 저런 짓을 하고 있다. 심지어 한두 기도 아니고 전체가 그러했다.
더 큰 문제는 기마 자체에 있다.
‘괴물!’
한 마리, 한 마리의 크기가 금천기마단의 기마와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
철저한 교배로 몸체를 키우고 지구력과 완력 양면을 골고루 살렸으며, 나아가 창칼이 휘둘러져도 겁을 먹지 않는 천성의 기마들을 오랜 시간 훈련시킨 금천의 기마보다도 더 대단한 기마들.
게다가 전신에서 불길하기 그지없는 마기가 흘러나오는데, 그 기운이 어찌나 지독한지 용맹하기로 이름 높은 금천의 기마들도 한 번씩 움찔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마물이다. 마교(魔敎)의 무리가 만든 마물이야.’
그러나 상대가 제아무리 기괴한 집단이라 한들, 황궁 제일의 기마단이 물러설 수는 없는 법.
이광이 외쳤다.
“합도(合刀)!”
쩌저저저저정!
전방의 기병들이 창으로 마병들을 밀어 내자, 중군 일천 병력이 언월도를 치켜들었다.
창봉의 길이가 넉 자, 두꺼운 도신(刀身)의 길이가 석 자에 달하는 기병 전용 대도(大刀)였다. 참마도 계열의 칼날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두두두두.
팔방으로 흩어지며 재차 돌진해 금천기마단을 노리는 은호마병.
그에 맞춰 금천의 전군(前軍) 창병들 역시 넓게 퍼져 그들의 진입을 막았고, 언월도를 든 도병(刀兵)들이 사이사이로 튀어나왔다.
“모조리 베어라!”
쩌저정!
은호마병도 대단했지만, 금천기마단 역시 그들 못지않았다.
기마와 기병의 반응 속도에 있어선 은호마병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무게감과 일격의 위력만큼은 은호마병 이상이라 할 수 있었다.
중갑기병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금천기마단의 기병들 역시 하나같이 일류의 무공을 배운지라, 절정의 방호력을 자랑하는 갑옷을 입고 목숨을 돌보지 않은 채 전진하니 은호마병의 일군도 쉽사리 뚫지를 못했다.
은호마병 일 군장 부곡의 마안(魔眼)이 번뜩였다.
콰앙!
일순간 폭발적으로 전진하는 부곡의 창과 기마에 중장기병 두 기가 좌우로 튕겨 나가 쓰러졌다.
괴력의 전진이었다. 놀랍게도 금천의 기마들을 머리로 들이받은 부곡의 기마는 멀쩡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이광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 정도 내공력이라니?!’
자신은 물론 타고 있는 기마의 몸뚱이까지 내공으로 보호한 것이 분명했다.
‘저만한 고수들이 얼마나 있는 것인가!’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였다. 이광 역시 남부럽지 않은 무공을 익혔으며 황궁 제일의 기마단을 이끄는 사람답게 무종을 뛰어넘은 초절정고수였다.
하지만 일 군장 부곡처럼 기마에 내공을 둘러 돌격하는 미친 짓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상상을 못 한 이유는 단순했다. 애초에 저런 짓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수준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광은 재빨리 용안궁을 들어 부곡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퍼어어엉!
초절정고수가 쏘아 내는 거대한 화살.
말 그대로 공기를 폭발시키며 나아간다. 연사는 절대 불가능하지만, 일격의 위력이 압도적인 공격이었다.
부곡의 눈이 부릅떠졌다.
쩌어어어엉!
초절정고수가 날린 용안시(龍眼矢)는 막았지만, 부곡 역시 충격에 상반신이 활짝 열렸다.
뿐만 아니라 그가 탄 기마도 비틀거리며 서너 걸음 물러났다. 충격을 상쇄하기 위함이었다.
이광의 눈이 번뜩였다.
‘아무리 높이 쳐도 나보다 고수는 아니다.’
그런데도 기마에 내공을 둘러 돌격한다? 심지어 그 기마는 멀쩡하기까지 했다.
답은 하나다.
‘기마의 몸뚱이가 철의 강도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기마의 몸에 깃든 마기가 기병들이 익힌 마기와 동조되어 있다는 뜻.’
알면 알수록 기가 막힌다.
짐승에게 진기(眞氣)를 흘려 넣어 내공의 고수처럼 묶어 둔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황궁이 기를 쓰고 중갑기병을 만들 이유가 없잖은가.
‘상식을 파괴했다. 이 싸움, 자칫 잘못하다간 패배할 수도 있어.’
티티티티티팅!!
후군 일천 기병이 용안시를 발사했다.
사방으로 퍼진 은호마병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넓게 산개하여 날아가는 거대한 용안시는 실로 장관이었다.
쩌저저저정! 퍽! 퍼버벅!
화살을 막은 자, 화살에 몸이 뚫린 자가 극명히 나뉘었다.
놀라운 건, 용안시에 맞은 기마들의 몸은 멀쩡하다는 사실이었다. 개중엔 피를 흘리는 기마도 있었지만, 누가 봐도 뼈까지 닿지 못한 상처였다.
내공 발경이 실린 용안시에 맞고도 그 정도 피해에서 그친다.
‘이놈들의 파괴력은 기병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야. 기마다. 저 기마들이 불가능한 작전을 가능케 하는 결전 병기인 것이다.’
원래 기병이 그렇다. 하지만 무공을 연마한 고수가 이끄는 기마는 기병의 무공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저 기병들도 기마를 하나의 병장기처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계속 쏴라!”
용안시가 하늘을 날고, 햇빛을 받아 찬란해진 언월도가 위협적인 참격을 발산했다.
퍼어어엉!
와중에 금천의 기병들이 하나씩 하나씩 쓰러졌다.
이광의 눈이 흔들렸다.
‘빌어먹을.’
은호마병의 움직임이 너무 유연했다. 산개하여 잡스럽게 움직이는가 싶다가도 순간적으로 네다섯 기가 합쳐져 금천의 방벽을 뚫기 시작하는데, 그 돌진 한 방의 파괴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쩌저저저정! 푸화악!
은호의 기병들도 멀쩡하진 않았다.
인간 같지 않은 그들이지만, 황궁 최정예 기병들이 휘두르는 창격과 도격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화살이 아닌 창과 도에 죽은 기병의 숫자가 이백이 넘었다.
반면 금천기마단의 희생자는 삼백을 헤아렸다. 어떤 충격도 막아 낼 수 있다는 황궁 특제 중갑을 입었음에도 피해가 더 컸다.
우열이 확연히 갈렸다.
금천기마단보다 은호마병의 실력이 한 수 위다. 물론 이천의 기병이 성벽 안쪽에서 돌격을 준비하고 있으니 수적으로도 열세임이 분명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사상자가 너무 많았다.
이광이 외쳤다.
“도병 이 대주는 쌍익진으로!”
금천기마단 이 대주가 언월도를 쳐들었다.
“금천쌍익!”
히히히히힝!
중갑을 입은 기마들이 발맞춰 좌우로 퍼져 나갔다.
퍼지듯 이동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창과 도가 부딪쳤다. 사방으로 튀기는 불똥이 대낮에 뜬 별과 같았다. 절대 죽지 않으려는 자들, 반드시 이기려는 자들이 피워 올리는 욕망의 성운(星雲)이었다.
좌우로 펼쳐진 도병들이 위협적으로 참격을 발하고, 그들 뒤에 숨어 한 번씩 용안시를 날리는 궁병들의 살기가 거대한 비단처럼 전장을 틀어막았다.
누구도 서쪽 성벽으로 들이지 않겠다. 금천기마단의 의지는 명백했다.
하지만 그들의 방진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목숨을 돌보지 않고 돌격하는 은호마병의 파괴력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콰쾅! 콰콰쾅!
기마와 기마가 부딪치니 금천의 기병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 충돌이 얼마나 거셌는지 중갑을 입고도 하늘을 나는 기병이 속출했다. 강렬한 충격파에 내상으로 즉사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순간 달라진 전장의 그림.
금천은 무조건 막으려 했고, 이 군부터 오 군까지 깡그리 몰려온 은호는 무조건 뚫으려 했다.
이광은 이를 악물었다.
‘어쩔 수 없다지만.’
이와 같은 희생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사전에 이미 작전을 짰으며, 승리를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오 군과 함께 따라붙은 갈요가 외쳤다.
“놈들을 박살 내고 성벽을 뚫어라!”
콰르르릉!
폭음이 터지고 굉음이 솟구쳤다.
마물이 된 기마와 함께 압도적인 수적 우세를 이용하여 돌진하니, 금천의 방벽 곳곳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이광이 외쳤다.
“조여라!”
퍼버버벅!
창병과 도병의 연합, 후군 궁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백 기의 기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광은 흔들리지 않았다.
수하들의 죽음에 피눈물이 흐를지언정 이 모든 것은 승리를 위해서다. 내가 죽어도 내 전우가 흥분해서 적의 먹잇감이 되기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기어이 금천기마단의 방진을 뚫은 은호마병들이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무시무시한 돌진이었다. 시커먼 폭풍이 불어닥치는 듯했다.
‘가라.’
돌아보지 않아도 놈들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광이 이를 악물었다.
‘성벽 삼십 장 안쪽으로 들어가는 즉시, 너희 모두 죽은 목숨이다!’
그때였다.
훅!
성벽을 향해 돌진하던 은호마병들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금천기마단의 후미를 향해 돌진했다.
화아아악!
등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엄청난 살기.
이광은 등줄기를 훑는 충격을 느꼈다.
‘성벽으로 가지 않아?’
일부러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며 방진을 펼쳤다.
뚫리지 않으면 끝까지 막았을 것이며, 뚫리면 뚫리는 대로 진을 벌려 성벽으로 유인할 셈이었다.
‘역공!’
이광은 본능적으로 갈요를 바라보았다. 그가 은호마병의 수장임을 알아본 것이다.
갈요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어렸다.
“훈련이 잘되었군. 하지만 일부러 허점을 보이는 과정이 다소 어설펐어. 누가 봐도 성벽으로 유인할 생각임을 알겠더구나.”
그렇지 않다.
이것은 금천기마단이 어설펐던 게 아니라, 은호마병의 전술적 안목이 지극히 뛰어난 것이다. 숱한 경험과 훈련으로 적의 움직임을 간파, 함정 유무를 단박에 알아채는 그들의 저력은 충격적일 만큼 대단했다.
이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함정에 걸린 척하며 오히려 후미로 기병을 보내, 앞과 뒤를 포위하여 공격한다.
단순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전술이었다. 금천기마단의 함정을 꿰뚫어 보는 눈과 신들린 기마술, 말하지 않아도 즉각 알맞은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이놈들, 우리부터 몰살한 후 차근차근 성벽을 공략할 생각이다.’
눈앞이 아찔했다.
치명적인 함정으로 유인하기 위해 거의 일천에 가까운 수하가 목숨을 잃었다. 한데 이놈들이 함정에 걸린 척 돌진하다가 진을 에워싸 섬멸하려 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기(神技)의 기마 전술이었다. 이광은 죽음을 실감했고, 자신의 죽음보다 황제 폐하의 거처를 지키지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에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을 느꼈다.
‘폐하!’
그때였다.
우웅.
시끄러운 전장에서 어찌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작은 소음이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적장이 있었다.
저 멀리서 잔혹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갈요.
퍼어엉!
시커먼 손도끼 하나가 날아와 갈요의 상반신을 박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