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37)
1137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12)
‘조금 늦었군.’
흑룡부를 던져 은호마병의 적장 갈요의 몸뚱이를 박살 냈지만, 연호정은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이게 최선이긴 했지만.’
한눈에 알았다. 지마후의 마공이 그간 봐 왔던 광혈교의 마인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그리고 자신의 황룡신왕공이 그녀의 마공과 상극이라는 것 또한.
하지만 상극이라 하여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지마후는 마공, 병기술, 깨달음 그 모든 것을 출중하게 연마한 고수였다. 상극의 무공을 상대하면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반격하리란 건 예상했다.
평소처럼 힘 싸움으로 잡고 들어갔으면 지금도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강한 상대였다.
연호정은 최대한 빨리 그녀를 이길 방법을 찾았다. 동시에 자신의 내공과 체력을 최대한 아낄 방법도 찾았다.
그래서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한 채 상대를 도발해 모든 마력을 끌어낸 것이다.
덕분에 빠르게 지마후를 죽였고, 자신 역시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사이, 적의 기병과 지마후가 끌고 온 병력이 금천기마단을 완전히 에워쌌다.
‘더는 안 되지.’
훅! 파악!
어검술의 비기로 던진 흑룡부를 잡아챈 연호정은 휘파람을 불려 했다. 타고 온 전마(戰馬)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
연호정의 시선이 수십 장 거리를 뚫고 한 기의 기마에 꽂혔다.
히히히힝! 콰쾅!
대단한 파괴력이었다.
기병을 태우지 않은 기마 하나가 은호마병에 섞여 중갑기병인 금천기마단의 기마 둘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천하의 연호정이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인 없이 홀로 날뛰는 기마라니?
‘크다.’
몸체도 엄청났다. 적의 기마 중에서도 유독 체고가 높고 덩치가 컸다. 금천의 기마보다 배는 됨 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두 눈은 강렬한 마기로 붉게 물들었으며, 시커먼 몸체와 혼연일체를 이룬 검은 갈기는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유황불과 같았다.
연호정은 단번에 깨달았다. 저 기마가 은호 기마들의 왕이라는 걸.
주인을 잃은 왕. 필시 섬서 전투에서 죽은 마병의 진짜 주인이 타던 마물일 것이다.
삐이이이이익!
유독 길게 음률을 탄 연호정의 휘파람.
멀리서 달려오던 전마가 재빨리 방향을 전환하여 성벽으로 달렸다.
연호정과 합을 맞춰 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그의 휘파람에는 상단전의 공력이 풍부하게 깃들어 있었다. 주인의 의지를 명확히 전달하니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그 뜻을 깨닫고 후퇴한다.
연호정의 오른발이 땅을 박찼다.
화아아아악!
순간적으로 그의 신형이 사라지는 듯했다.
천종운행비가 아니었다. 곧추세운 허리에서 천종운행비 특유의 절제된 미학이 드러났지만, 그의 두 다리는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역동적인 움직임을 발했다.
되살아난 기억. 다급한 상황 때문에 잠시지간 한곳에 몰아 둔 기억.
주작공의 혈익휘천이 천종운행비와 섞여 들어 더 빠르고 날카로운 속도를 자아냈다.
파파파팡!
어찌나 빠른지 은호마병 후군 기병들은 무언가가 머리 위로 지나간 걸 알자마자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콰쾅!
귀청을 때리는 폭음이 터진다.
희대의 거병을 들고 음속을 돌파한다. 황금빛 불꽃으로 화해 허공을 질주하니, 폭발하는 충격파에 은호의 후군 기병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뭐야!”
죽은 삼 군장 무하숙을 대신해 삼 군을 이끌던 망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거대한 도끼를 든 금빛 사신이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사 군과 오 군의 머리 위를 질풍처럼 뚫고 달려온 사신이 거대한 도끼를 있는 대로 높이 치켜들었다.
“피해라!”
광룡부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콰르르릉!!
천둥을 불러일으키는 괴력의 종참.
산을 허물어트리겠다는 이름 그대로의 위력이었다. 붕산세 일격에 돌진하던 기병 이십여 기가 피를 토하며 팔방으로 날아갔다.
파박!
대지에 내려선 연호정이 빠르게 회전했다.
퍼버버버버벅!
광룡부와 함께 늘어난 교룡쇄가 멀리 떨어진 기마들의 다리를 박살 냈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순식간에 광룡부와 교룡쇄를 연결한 그가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콰쾅! 퍼어억! 쩌정!
무서운 속도였다.
적의 본진 한가운데로 들어와 감당키 어려운 무용을 뽐낸다.
마병들은 기겁하여 연호정을 향해 장창을 휘둘렀지만, 연호정의 광룡부는 그 모든 창을 수수깡처럼 부러트리며 적의 육신을 파괴했다.
‘이럴 수가!’
어떤 상황에도 냉정을 잃지 않는다는 은호마병이었지만, 뭘 어떻게 해도 대응할 수 없는 고수의 등장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 군장 망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휘휘 저었다.
‘어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대장님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것은 망초의 착각이었다.
물론 연호정의 경지는 죽은 소현종을 넘어섰지만, 지마후 때처럼 둘 사이의 무공 격차는 결코 크지 않았다.
이것은 연호정의 무공 특성 때문이었다.
황룡신왕공은 무(武)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공부였다. 연호정도 아직 대성하진 못했으나, 진리에 몸을 담은 연호정의 무공은 철저히 개인의 의지에 영향을 받는다.
상단전의 크기만큼은 거의 연위에 육박하는 저 당관조차도 연호정의 상단전 활용법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기(氣)를, 행동을 자아내는 인간의 진짜 힘.
두뇌의 용력, 하고자 하는 바를 실현케 하는 신왕기(神王氣)는 연호정의 성향에 맞게 파멸적인 위력과 상식을 초월하는 범위를 아우르고 있었다.
당장 사음교의 고위 사왕이 연호정과 싸운다면, 연호정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사왕이 와도 연호정만큼 수월하게 은호마병을 격파하진 못한다. 그것이 바로 연호정의 무(武)였다.
콰득! 콰득!
연달아 도끼를 휘둘러 기병들을 반으로 갈라 죽이는 연호정의 얼굴은 정적인 살기로 가득했다.
이전처럼 스스로를 불태우지 않는다. 그런데도 강했다. 필요하다면 공력을 쏟아부어 넓은 범위를 휩쓸었고, 틈이 보이면 최대한 힘을 아껴 가며 단순한 일격으로 기병들을 죽인다.
하지만.
‘모자라.’
이런 식의 싸움은 일인(一人)의 전설을 만들 수는 있어도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다.
‘그리고 나의 내공도 문제다.’
중단전과 하단전을 아우르는 황룡기, 그리고 상단전을 다스리는 신왕기.
두 가지 기운은 누가 뭐래도 달랐지만, 동시에 완전히 나뉠 수 없는 하나이기도 한 법.
의지를 불살라 무공 본연의 위력을 증폭하는 신왕기의 힘으로 적도들을 격파해 왔지만, 그만한 위력을 자아내기 위해서는 황룡기도 그만큼 소모되어야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력은 깊어졌지만, 그렇다고 무한한 내공을 지닌 건 아니다. 몇 번씩 호흡을 고를 때마다 풍부한 자연지기가 황룡신왕기로 치환되어 강력한 체력을 만들어 주지만, 소모되는 내력이 그보다 두 배는 더 많았다.
‘결국은 숫자다. 병사들의 분전이 필요해.’
푸화아악!
피범벅이 된 몸으로 질주하며 수많은 기병들을 물리친 지 반 각.
비로소 연호정의 눈에 이 군이 보였다.
그리고 삼 군을 이끄는 망향 앞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는 거대한 기마도.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화아악!
한 줄기 벼락이 되어 날아간 신왕기가 거대한 흑마(黑馬)의 기세를 순식간에 읽어 냈다.
‘고밀도의 마기구나.’
짧은 순간, 연호정은 크게 놀랐다.
다른 기마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저 커다란 흑마의 몸에는 절정고수, 아니 초절정고수에 육박하는 밀도 높은 마기가 깃들어 있었다.
‘놀라워. 저런 것이 가능했나?!’
그 마기를 무림인처럼 활용하지는 못한다. 애초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짐승이니 검기를 날리거나 장풍을 뿜거나 하진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마기를 신체 능력의 상향을 위해 쓰고 있다.
번쩍!
‘여기도, 저기도.’
유독 강력한 기운을 지닌 기마의 내력 순환을 읽어 내니, 그 즉시 다른 기마들이 품고 있는 마기도 읽어 낼 수 있었다.
‘내공심법과는 다르지만.’
기를 고정해 두었다.
연호정은 그것이 마기(魔氣)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기란 근본적으로 음(陰)의 성질을 띤다. 차갑고 습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여느 기운과 달리 고이는 특징을 지닌다. 고이고 또 고이다 보면, 점점 자연지기를 받아들이지 못해 신체를 망가트리거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보다 훨씬 더 튼튼한 신체를 가진 짐승들은 마기를 담고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은 마공(魔功)을 익혀야 하지만 짐승은 아닌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야. 단순히 짐승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기가 몸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특별한 술법을 썼다.’
서걱! 퍼어억!
짧은 순간 생각이 많았다. 어깨에 작은 창상을 입은 연호정이 반사적으로 광룡부를 휘둘러 기병을 날려 버렸다.
치이이익!
창상을 통해 침투하려는 마기를 그대로 증발시키려던 연호정은, 순간 드는 생각에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우우웅.
완전에 이른 육체라 침투하던 마기는 곧장 힘을 잃고 스러졌다.
하지만 연호정은 알 수 있었다. 침투하는 마기가 어디로 가지를 뻗으려 하는지.
‘심장.’
파바바바바박!!
또 한 번 기병들 위로 날아오른 연호정이 망향을 향해 교룡쇄를 뻗었다.
기겁한 망향이 창을 세웠다.
촤르르륵! 쩌어어어어엉!
“크악!”
창을 부러트린 교룡쇄가 망향의 우측 가슴을 뚫었다.
치링!
적의 가슴을 뚫은 교룡쇄는 순식간에 망향의 몸을 칭칭 감았다. 마치 생명이라도 지닌 듯 저 혼자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것이다.’
황룡기로 교룡쇄를 움직여 적을 포박하면서, 연호정은 기마의 체내에 깃든 마기의 운행 방법을 더 선명히 깨쳤다.
‘스스로 살아 움직이게 한다. 명령인 것이다. 놈들은 기상천외한 술법 따위로 그것을 가능케 하였지만, 무극을 넘은 고수라면 본인의 의지를 담아낸 상단신기의 공력으로도 가능케 할 수 있다.’
정확히는 신왕기처럼 상단신기의 운행과 가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수법이 존재해야 한다.
나아가 일반 기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여기 있는 모든 기마가 기(氣)에 민감하면서도 그것을 잘 받아들이는 종일 것이다.
‘그렇다면.’
치리리링! 퍼버벅!
교룡쇄를 휘둘러 망향을 기병들에게 날려 버렸다.
황룡기를 담아낸 망향이란 공성추는 기병 다섯 기와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당연히 망향은 살아남지 못했다.
콰앙!
망향이 탄 기마의 등골을 박살 내며 날아오른 연호정이 순식간에 소현종의 기마, 흑혈신마(黑血神馬)에 올라탔다.
흑혈신마의 눈이 부릅떠졌다.
히히히히힝!!
터져 나오는 울음이 마치 용음(龍吟)과도 같았다.
우우우우우웅!!
신왕기를 담은 연호정의 손이 흑마의 목덜미에 닿았다.
미친 듯이 날뛰던 흑혈신마가 순간 투레질을 하며 비틀거렸다.
무제의 강력한 의지. 날뛰지 말고 진정하라는 연호정의 명령은 흑혈신마의 체내에 고인 온갖 마기를 줄기줄기 파괴하며 마물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퍼버버버벅!
금천기마단을 공격하던 흑혈신마가 곧장 몸을 돌렸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했다. 피처럼 붉었던 흑혈신마의 두 눈이 은은한 금광을 발했다.
연호정이 다리를 조였다.
신왕기가 명령을 전달하고, 황룡기가 마기로 가득 찬 육신 위로 덧씌워져 강철의 갑옷을 만들었다.
콰아아앙!
짧게 질주하여 기병 셋을 날려 버린 흑혈신마의 몸에서 어두운 금빛 기운이 흘러나왔다.
연호정이 외쳤다.
“금천기마단은 후방의 기마들을 밀어붙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