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38)
1138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13)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고도 후퇴하는 신화교 병력에, 연위는 서둘러 무허대사에게로 향했다.
무허대사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신의 경지에 이른 권법으로 철흠기를 압박했지만, 그 철흠기조차 오천의 병력과 함께 후퇴하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님!”
“무림장.”
팽무강과 하북 무림의 병력 역시 적군을 쫓는 것을 멈춘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감숙과 섬서를 공격했던 삼교의 잔존 병력이 황궁 서쪽 성문을 공격하러 왔습니다!”
무허대사는 말없이 반야대능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능력이라면 그저 정신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서쪽 성벽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반야대능력을 쓰는 건, 그만큼 치솟는 살기에 감각이 무뎌졌다는 뜻이었다.
잠시 후.
“맞군.”
무허대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저 기운은 아마도 총군사인 듯한데.”
“그렇습니다. 흑제성주가 금천기마단을 이끌고 적의 병력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건…….”
팽무강이 무허대사의 말을 받았다.
“신화교의 퇴각은 일시적으로 전력을 재정비하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고, 북부군을 유인하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제성주는 사전에 적의 공격을 예측하여 만반의 준비를 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신화교의 병력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음.”
“즉, 이것은 우리를 유인하는 것입니다. 서쪽이 공격당하는 것을 놔두고 쫓아오라는 뜻이지요.”
무허대사의 눈이 깊어졌다.
“하면, 지금 당장 병력을 돌려…….”
“불가합니다.”
연위는 딱 잘라 말했다.
“우리가 서쪽으로 향하면 퇴각했던 신화교 병력이 다시 북성을 공격할 겁니다. 전력의 공백이 생긴 곳을 노린다면 무극에 이른 적의 두 고수가 직접 선두에 서서 성벽을 허물어트리겠지요.”
“……!”
“그렇다고 놈들을 쫓아가기에는 아군의 병사들도 많이 지쳤습니다.”
무허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면 후퇴하는 신화교 병력도, 서쪽의 싸움도 그냥 내버려 두란 말이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들이 그곳에서 싸우고 있다. 원군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쉽게 나올 수가 없을 텐데도 연위는 단호했다.
“출격하기 전, 흑제성주가 말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고.”
“…….”
“흑제성주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는 뜻이며, 그는 총군사로서 명령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병력을 분산하거나 뺀다면, 그것은 항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팽무강이 조심스레 말했다.
“하북의 병력이라도 따로 떼어 도와주는 게 어떻겠소?”
“하북의 병력은 이번 북부전에 없어선 안 될 병력입니다. 만에 하나 대장전이 벌어지기라도 하면, 수적 우세를 점한 적의 병력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하북 병력의 존재는 필수입니다.”
팽무강의 눈이 흔들렸다.
흑백무제라 불리며 당금 강호 최고로 유명한 고수인 아들이지만, 아비로서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리 단호히 얘기한다는 건, 그만큼 연호정을 믿기도 하지만 사태를 최대한 냉정히 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연위가 애써 담담히 말했다.
“제가 저 작은 산을 날려 버린 것은 혹시 적이 후퇴해도 우회 기동 등의 수를 쓰는 게 아닌지 직접 보고자 함이요, 하북 병력의 기습을 통해 더 넓은 전장을 확보하여 적을 최대한 분산코자 함이며, 결정적인 순간 북부 성벽에서 적의 후미를 칠 수 있는 곳을 직접 볼 수 있게 시야를 확장코자 함입니다.”
“…….”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하면 됩니다. 놈들이 후퇴했으니 우리 역시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요.”
* * *
훅!
연호정의 살기가 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삼교를 상대로 발휘하던 특유의 불같은 살기가 아니었다.
위엄 있고 절제된, 그러나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장군의 살기.
히히히힝!!
흑혈신마의 괴악한 울음에 은호마병의 기마들 모두가 주춤거리며 투레질을 했다.
일 군장 부곡은 당황했다.
“뭐야? 갑자기 왜……?!”
콰쾅!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돌진력이었다.
신왕기로 인해 강제로 연호정의 명령을 듣고 있지만, 그것이 흑혈신마의 내구성을 떨어트리진 않았다.
오히려 황룡기까지 둘러 일시적으로 더 강력한 외피를 지니게 된 흑혈신마는 수많은 창격과 도격을 맞고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좋아.’
퍼어어엉!
흑혈신마와 함께 광룡부를 휘두르는 연호정의 기세 역시 이전보다 더 강하고 화려해졌다.
강제로나마 함께 싸우는 전우가 생겼다. 흠집도 나지 않고 공포도 모르는 무적의 기마다. 그 사실이 연호정의 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굳혀 주었고, 함께 싸운다는 마음가짐은 신왕기의 밀도를 더 깊어지게 했다.
사람의 의지에도 한계가 있는 법. 무적의 위용을 자랑하며 돌진하는 흑혈신마의 존재는 한계에 도달했던 연호정의 의지를 한층 더 강하게 불살라 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콰르르릉!
신들린 듯 휘두르는 광룡부와 교룡쇄에 마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뭘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진을 짜고 싶어도 본진 한가운데 있는 적에게 효과적인 진법은 없었고, 몰아붙여 공격하기에는 적이 지나치게 강했다.
거기에 하나 더.
움찔! 움찔!
기마를 독려하여 연호정을 막으려던 마병들은 당혹감을 느꼈다.
기마의 상태가 평소와 같지 않았다. 어떻게든 명령을 따르긴 하지만, 움직임 자체가 둔해졌다.
그것은 흑혈신마 때문이었다.
모든 기마의 왕이 이전과 다른 기질을 뿜으며 분노 가득한 외침을 발한다.
기질이 다르니 주인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체내에 맥동하고 있는 마기는 분명 주인의 그것이다.
그 사실이 기마들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고 있었다. 공격해야 하는 대상인지 아닌지 혼란을 느끼는 것이다.
연호정 입장에선 생각지도 못한 이득이었다.
콰르르릉!
폭풍처럼 쏟아지는 폭우강룡의 초식으로 길이 활짝 열렸다.
이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총군사님!!”
“후미를 공격해! 성벽으로 밀어붙여라!”
연호정의 외침은 전장 전체를 울렸다.
황룡의 내공이 섞인 대장군의 명령이다. 그 거대한 성벽이 일순 우르릉 울리며 돌가루를 쏟아 낼 정도로 강력한 음성이었다.
이광은 홀린 듯 명령을 내렸다.
“금천기마단은 후미를 공격해라! 적들을 성벽으로 몰아!”
“우와아아!!”
흑혈신마를 타고 돌진하는 연호정의 존재는 십만 대군을 돌파하는 옛 전설 속 어느 장군을 떠올리게 했다.
보기만 해도 피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거기에 전장을 휩쓸어 버리는 위엄 넘치는 음성까지 들리니, 금천기마단은 한순간 활기를 되찾고 후미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부곡이 외쳤다.
“쫓아가서 죽여라!”
안 그래도 전방과 후방에서 압박하던 와중이었다. 용기백배가 되어 후방을 공격한다 한들, 전방에서 밀어붙이는 적의 존재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전장에서 사기만큼 중요한 게 없다지만, 사기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 법.
부곡의 외침에 살기를 일으킨 은호 일 군이 금천기마단을 쫓아가며 창을 휘둘렀다.
퍼버버버벅!
수십 명의 금천창병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래도 달린다. 이광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커다란 목소리로 기병들을 독려했다.
“총군사가 적의 대장을 죽였다! 이미 우리가 이긴 싸움이다!!”
“우와아아아!!”
불타오르는 용기에 기름까지 끼얹는다.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금천기병들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주인의 용기가 전염된 기마들이 거품을 물며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연호정이 금천기마단을 쫓아갔다.
콰콰쾅!
이제는 폭음 외에 더 들리는 것도 없었다.
‘이것이다.’
광룡부와 교룡쇄, 두 병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면서 때에 따라 혈풍무를 구현해 다가오는 적들의 압박을 해소한다.
도끼와 쇠사슬, 두 병기를 달인처럼 다루는 그였지만 새삼스레 연호정은 깨달았다. 자신에게도 부족한 면이 있었다는 걸.
흑암제 시절, 기마를 타고 적을 상대했던 적도 많았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공격을 구사하며 넓은 범위를 아우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홀로 적군을 돌파하는 지금, 그는 광룡부와 교룡쇄 활용의 끝을 보고 있었다. 본능 수준으로 체화되는 섬세함이다. 병기의 위력은 여전했지만, 더 교묘하고 섬세하게 적을 노리니 후속타의 속도도 빨라지고 결과적으로 힘도 덜 들게 되었다.
거기에 광풍구룡살과 사신무.
‘두 무공은 달라. 하지만 하나이기도 하다.’
사신무를 잊었던 시절 깨달음으로 직접 창안한 무공이 광풍구룡살이다.
그러나 그의 깨달음은 무엇을 기반으로 하고 있나? 바로 사신무다. 사신무를 기반으로 창안한 광풍구룡살에 되찾은 사신무의 무공들을 적절히 섞어 가니, ‘의지’로만 위력을 조절하던 무공이 투로와 술식으로도 조절이 되기 시작한다.
이미 완전했던 무(武)가 또 다른 경지의 완전(完全)을 불러들인다. 무공 자체가 더 강해진 건 아니지만, 범용성이 커지고 체력과 내공 소모를 줄일 수 있게 변모했다.
‘기마술에 어울리는 광풍구룡살이 또 하나 있다.’
백호공의 호왕구벽세(虎王九霹勢), 청룡공의 용군삼형(龍群三形).
주작공의 홍염육살공(紅焰六殺功), 현무공의 북천십이벽(北天十二壁).
네 가지 전투술을 때에 따라 광풍구룡살에 녹여 쓰니, 홀로 쓸 때와는 또 다른 방식의 광풍구룡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똑같은 이름의, 그러나 진각 없이 상반신의 탄력과 기마의 힘을 받아 펼치는 또 하나의 광풍구룡살이다. 연호정만의 기마 무공(騎馬武功)은 연속된 돌파를 통해 조금씩 그 투로를 드러냈다.
드러냄과 동시에 체화한다. 무극에 이른 깨달음, 무도의 극치라 불리는 황룡신왕공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발전하는 연호정의 무공은 이미 성천삼제(聖天三帝)의 수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의지의 무공을 익혀 깨달음에 치중되었던 실전 수련이, 또다시 투로와 육체로 돌아와 기울어졌던 균형을 맞춰 갔다.
완전함 위에는 또 다른 완전함밖에 없는바.
의지 하나로 모든 걸 가능케 했던 이전의 완전함과는 다른, 의지와 육체 양면에서 균형을 이룬 완전함이 연호정의 경지를 한층 더 높이 끌어올렸다.
피피피피핑!
더는 못 당해 내겠다고 생각했는지, 은호마병들이 화살을 날려 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대상은 연호정 하나였다. 범위가 너무 넓어 아군까지 맞을 수 있지만, 화살을 날린 마병들은 그 희생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오직 전진하는 괴수를 잡으려 할 뿐.
연호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교룡쇄를 놓고 흑룡부를 뽑아 들었다.
두 자루 크고 작은 도끼가 전혀 다른 움직임을 발했다.
퍼버버버벅!
짧은 손도끼라 하여 피하지 않다간 죽음을 면치 못한다. 흑룡부가 그리는 투로 안에서 광풍구룡의 무참, 승공, 붕산의 삼연초가 연달아 폭발하며 적의 접근을 차단했다.
부우우우웅!
후방을 향해 휘둘러진 광룡부가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니, 돌풍은 곧 황금빛으로 물들어 거대한 팔각의 내공 방패를 형성했다.
쩌저저저저정!
황룡신왕공으로 펼치는 북천십이벽이 그 많은 화살을 몽땅 튕겨 냈다.
믿기지 않는 위업. 은호의 기병들은 입을 떡 벌린 채 재장전을 하지 못했다.
주르륵.
연호정의 입가로 피가 흘렀다.
흑혈신마, 이중의 광풍구룡살, 지마후와 싸우며 받았던 충격이 수많은 화살에 실린 발경 때문에 비로소 내상을 유발한 것이다.
화아아악!
내상을 입은 순간, 그의 전투 의지는 더더욱 상승했다.
쾅! 콰앙!
비로소 은호마병의 이 군을 넘어 일 군의 중앙을 돌파한 연호정이 금천기마단의 후미에 도달했다.
연호정이 외쳤다.
“머리 숙여!!”
천둥 같은 명령에 금천기병 모두가 상반신을 앞으로 숙였다.
번쩍! 콰아앙!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 두 자루의 흑백쌍룡부가 압박해 오는 은호마병의 첨병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