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39)
1139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14)
이광의 눈이 흔들렸다.
‘믿을 수가 없구나!’
황궁의 기마단을 이끌고 있지만, 그 역시 한 명의 무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무인으로서 무(武)의 끝을 보고 있었다.
‘저런 어검술이 있다니?!’
흑과 백, 회전하는 두 자루의 손도끼가 적의 기마와 기병들을 토막 내며 날아가는 모습.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도무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 같지가 않았다.
어검술 자체도 지금의 이광에게는 꿈과 같은 경지이거늘, 저 무서운 기병들을 필마단기로 돌파하면서 도끼 두 자루로 어검술을 쓴다.
대체 공력이 얼마나 깊은 것이며, 도달한 깨달음이 얼마나 높은 것인가.
‘가히 무신(武神)이라 할 만하구나!’
황궁 최강의 고수인 곡경조차 이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홀로 적장을 죽이고 별다른 피해도 없이 오천의 대군을 뚫고 이 자리에 왔다……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인가.’
그러고도 힘이 넘친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총군사이자 서부 전투의 총괄 사령관인 연호정의 기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고 있었다.
금천기마단의 사기가 사령관의 기파를 받아 끝 간 데 모르고 치솟았다. 조금 전까지 힘든 싸움을 벌였던 병사들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맹렬하게 적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피가 끓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이광 자신도 이 솟구치는 사기에 이성조차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그는 공포를 느꼈다.
‘말도 안 된다. 이건 비정상적이야.’
한순간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전투의 양상을 바꾸었으니 손뼉을 치며 대소를 터트려도 모자랄 상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광은 연호정의 존재에 이질감을 느꼈다.
‘전장을 홀로 휩쓸 수 있는 사람이라니? 하물며 일반 병사도 아니고 무공을 익히고 마물을 다루는 기병들을 상대로!’
지나치다.
그 자신도 사기가 올라 용기백배하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전쟁이란 더 많은 병력으로 짧은 시간에 적을 물리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것은 고금을 통하여, 나아가 미래에도 바뀌지 않을 전쟁의 진리였다.
한데 지금 이곳에 전쟁의 진리를 송두리째 부숴 버리는 괴물 하나가 있다.
강호의 전설이라는 권신 무허대사라도 이럴 수 있을까? 검 한 자루로 신선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탁무자는? 적의 수괴이자 곡경조차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한 저 신화교주라도 이와 같을 수 있는가?
익힌 무학의 차이라 해도 이건 심했다. 이광은 자신들의 사령관을 희대의 고수가 아닌, 현실에 존재해선 안 될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걸 알면서도,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연호정의 무용은 뛰어났다.
이광은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저 괴물 같은 무공은 오직 적만을 향할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라 들었다. 그토록 대단한 사람을 황제 폐하께서 잘못 보셨을 리가 없을 터, 폐하의 안목으로 이 자리에 선 사람이니 내 생각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거면 되었다.
적어도 지금은 사령관이 아닌 적을 생각해야 할 때였다.
이광이 버럭 외쳤다.
“도병과 궁수는 위치를 바꾸어라!”
이미 진형을 형성한 상태에서 몰아치는 와중이다. 이 명령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것인지는 군(軍)에 대한 상식이 조금만 있어도 알 것이다.
한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파라라라락!
연호정이 도달한 후미의 창병들이 단창을 던져 은호마병의 첨단부를 공격했다.
흑백쌍룡부의 어검술과 비창으로 인해 전열이 흐트러진 틈을 타, 중앙의 도병과 전방 위치로 서게 된 궁병들이 교묘하게 위치를 바꾸었다.
이광의 눈이 번뜩였다.
“천궁!”
피피피피피핑!
용안궁에서 발사된 거대한 화살들이 허공을 날았다.
놀랍게도 전방이 아닌 연호정 뒤, 후방이었다. 후미에서 쫓아오는 적의 기세를 꺼트리기 위한 공격이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지금 금천기마단의 돌진력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선 마주하는 적을 공격하는 것보다 후미를 쫓는 적을 공격하는 게 합당한 일이었다.
공격 지점을 말해 주지 않아도 알아서 궁병의 대표가 목표물을 지정한다. 은호마병만큼이나 금천기마단 역시 잘 훈련된 군대라는 뜻이었다.
퍼버버버버벅!
쏟아지는 화살에 기마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이번 용안궁 공격은 은호마병에게 치명적이었다.
지금껏 화살에 당한 기마 수가 적었지만, 연호정의 무지막지한 돌파와 흑혈신마의 존재로 인해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인 마병들은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만 굵은 화살을 막아 내야 했다.
그러기엔 화살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그 위력 역시 막강했다.
순식간에 연호정의 뒤가 휑해졌다. 쓰러진 아군을 밟아 가며 돌진하는 기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마를 돌리거나 멈춰 서야만 했다.
이광의 눈이 전방으로 향했다.
‘저기다!’
밀고 밀다가 드디어 목표한 지점까지 왔다.
이제 저 지점으로 적들을 유인하면 된다. 난장판이 된 전장에서 유인책을 떠올리는 적은 없을 것이다.
이광이 소리를 지르려 할 때.
[멈춰!]연호정의 전음이 단숨에 이광의 귀로 날아와 꽂혔다.
[적은 기병만 있는 게 아니야! 좌우를 봐!]이광이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말을 타지 않은 보병들이 좌우 멀찍이서 성벽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성문이 아니라 성벽이다. 단단하고 틈이 없는 성벽이라도 무공의 고수들이 칼을 찍고 올라가면 점령될 가능성이 있다.
‘언제?!’
이것이 전쟁의 무서운 점이다.
탁 트인 곳이라도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다 보면 시야가 확 좁아진다. 그것은 백전의 용장인 이광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지마후가 데리고 온 지마신령 자체가 기병들 뒤에서 돌진했기 때문에, 맞상대하는 입장에선 기억에서 잊기가 쉬웠다.
[좌우로 나눠! 후미에서 따라오는 놈들은 내가 유인한다!]사령관의 명령이었다. 이광은 곧장 외쳤다.
“좌우군으로 나누어라! 보병들을 깔아뭉갠다!”
명령이 떨어진 즉시 이천도 남지 않은 금천기마단이 좌우로 퍼져 나갔다.
확실히 잘 훈련된 군대다. 이렇게 반응이 빠른 군대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병력이 좌우로 갈라지자 중앙이 활짝 열렸다. 어검과 기마 돌진으로 성벽 가까이에 남은 마병의 숫자는 고작 오십도 되지 않았다.
연호정의 눈이 불을 뿜었다.
“으아아압!!”
하늘도 놀라 자빠질 사자후(獅子吼)였다.
히히히힝!!
흑혈신마 역시 연호정의 사자후 못지않은 용음을 토해 내며 땅을 박찼다.
두두두두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흑혈신마의 속도는 놀라웠다. 사방에 적과 아군이 있어 제 속도를 내지 못했던 마물이, 열린 길을 향해 돌진하니 절정고수의 신법보다도 빠른 속도를 보여 주었다.
무섭게 가까워지는 적의 기마들.
티티팅!
얼마 안 되는 화살을 날려 보지만, 광룡부가 일으킨 폭풍에 모조리 휩쓸려 나갈 뿐이었다.
연호정이 힘차게 광룡부를 내리쳤다.
콰르르릉!
사선으로 내치는 붕산세에 열다섯 기병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순간 연호정은 명치와 아랫배가 꾹 눌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내공 소모가 극심했다. 오늘 하루, 광풍구룡살의 초식을 얼마나 많이 펼쳤는지 셀 수도 없었다. 거기에 흑혈신마에게 신왕기를 퍼붓고 황룡기로 신체의 강도를 올려 주기까지 했다.
기마전을 펼치며 사신무의 투로를 가져다 붙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지쳐서 광풍구룡의 초식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이다.’
연호정이 다시 광룡부를 휘둘렀다.
퍼어엉! 콰드드득!
좌우로 탄력적으로 움직이며 기마들을 박살 낸 연호정의 눈에 열린 성벽이 보였다.
성벽 안에는 거대한 사각(四角) 방패를 든 이천의 기마가 대기 중이었다. 방패 중앙에는 생생한 용이 양각되어 있었다.
연호정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신왕기를 확장했다.
화아아아악!
돌진하는 은호마병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귀신의 형상이 보인다.
붉게 달아오른 그들의 군기 속에 공포는 없었다. 놀라움과 분노, 그리고 적을 향한 맹목적인 살기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좋아.’
후퇴도, 분산도 없다.
연호정은 흑혈신마의 속도를 조금 줄였다.
그러자 그를 쫓는 은호마병 삼천 병력이 기를 쓰며 달려왔다. 어떻게든 따라붙기 위함이었다.
‘더.’
목표 지점을 훌쩍 넘어, 이제 성문까지 오십 장도 남지 않았다.
‘더 따라와라.’
달리고 또 달려 어느새 이십 장 안쪽까지 들어왔을 때.
연호정이 외쳤다.
“지금이다!”
열린 성문 안쪽 바닥이 들썩였다.
파바바바바박!
굵은 밧줄과 가는 철사로 묶인 오십여 개의 줄이 땅 위로 솟구쳤다.
동시에 연호정의 바로 뒤쪽 땅이 솟아오르며 거대한 목제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만 일 장이 넘고 두께 역시 반 장에 달하는 목판이 횡으로 이십여 장이나 펼쳐졌다. 그 목판 뒤로는 얇은 철판과 이어진 쇠막대가 대여섯 개씩 박혀 있었다.
그리고 목판의 중앙에는 사람 팔뚝만 한 크기의 굵은 송곳이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일 군장 부곡과 이 군장 묘사하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멈춰라!!”
그들의 외침은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콰콰콰콰쾅!!
돌진력을 이기지 못한 은호마병들이 송곳 달린 거대한 목판, 용추대벽(龍錐大壁)에 충돌했다.
순식간에 수백의 마병이 피떡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 단단한 외피를 자랑하던 기마들 역시 뒤이어 충돌하는 아군 때문에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져 쓰러졌다.
콰콰쾅!
달리는 속도가 어찌나 빨랐는지 용추대벽에 부딪혀 허공으로 튕겨 나간 기마도 수십 기나 되었다.
“멈춰! 멈춰야 한다!”
쿠르르르릉!!
미친 듯이 말을 틀어 아군의 희생을 줄이는 은호마병.
남은 삼천 기병 중 전투 지속이 가능한 병력이 순식간에 이천 정도로 줄었다. 창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무려 일천 병력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퍽! 퍼버벅! 퍼버버벅!
용추대벽 곳곳에 달아 놓은 수십 개의 주머니들이 터지며 은은한 황색 연기를 토해 냈다.
땅에 숨겨 둔 대벽이 올라온 순간부터 터진 주머니도 있었고, 은호마병의 돌진에 충격을 받아 터진 주머니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다.
“컥!”
“크르르륵!”
“으아악!”
기어이 살아남은 기병들이 목을 부여잡고 토하거나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황궁에 비치된 독탄이었다. 신경독(神經毒), 혈액독(血液毒) 등 가짓수도 많았고, 피 보라를 일으키며 전파된 독분은 남은 이천 기병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운기해라! 독이다! 독을 몰아내라!”
은호마병이 우왕좌왕했다.
이 많은 독을 죄다 극독으로 준비할 순 없었다. 제아무리 황궁이라도 그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내공 고수라도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든 독 위주로 매달아 두었으니, 은호마병의 전투력은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개문!”
콰콰쾅!
용추대벽을 지탱하던 쇠막대와 밧줄이 힘을 잃고 땅으로 쓰러졌다. 유독 많은 사상자가 있는 중앙 땅에 떨어진 용추대벽은 시체들을 또 한 차례 땅에 묻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 너머.
무극의 힘으로 독에 내성을 지닌 연호정과 미리 해독약을 복용한 이천의 방패기병이 혼신의 힘을 다해 돌진했다.
연호정이 버럭 외쳤다.
“한 기도 남기지 말고 전부 땅에 묻어라!”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