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55)
1155화. 백음귀(百淫鬼) (5)
퍼억!
손을 한 번 까딱한 것만으로도 오 장 밖 바위 중앙 부분에 손바닥보다 큰 동그란 자국이 났다. 그 깊이는 한 치나 됐다.
거리가 꽤 많이 떨어졌는데도 바위에 한 치 깊이의 도장을 찍는다. 그야말로 대단한 무공이었다.
지소현의 눈이 깊어졌다.
‘대성은 했다.’
하늘 같은 스승의 진신절기를 수련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기본에서 모든 게 출발한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분야든 그러하겠지만, 특히 스승의 무공은 더욱 그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음(音)은 자유로워 시작부터 끝까지 한계가 없지만, 음공(音功)은 시작부터 끝까지 단순하기 때문이다.
‘진동이다.’
과거 음공의 고수들은 노래를 부르고 북을 두드리며 수많은 사람을 살상했다고 한다.
그것이 높고 낮은 음으로 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음공의 시작과 끝은 진동의 강약이다. 깨달음의 무공이라 했지만, 내공을 이용해서 진동의 힘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어디까지 제어하는가가 세상 모든 음공의 핵심인 것이다.
잠시 최고 절기를 내려놓고 반년이 넘도록 암공파(暗空破)에만 매달린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지소현은 암공파를 대성했다. 음제 무공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공을.
‘대성했지만, 그렇다고 이게 끝은 아니야. 내 경지가 올라가면 내공 조절의 섬세함 역시 증가할 것이다. 그리되면 암공파의 위력도 훨씬 강해지겠지.’
중요한 건 하나의 무공을 대성했다는 것.
‘이제 알겠어.’
지소현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왜 스승님께서 이 무공을 깨달음의 무공이라 하신 건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문파가 있고 그중에는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곳도,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활동하는 곳도 있다.
그중 지소현은 일인 비전의 문파 선음문(仙音門)의 계승자였다. 그녀의 스승이 선음문의 십오 대 문주였으니, 차기 십육 대 문주가 그녀였다.
그리고 선음문의 무공은 가히 천하 정점을 논하는 신공(神功)이었다.
‘음화제무(音話制武).’
음을 이야기하며 무도(武道)를 제어한다.
선음문 최강의 무공이자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는 문장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음화제무신공은 일 성, 이 성 등의 성취랄 게 없었다. 애초에 이해를 못 하면 입문을 못 하고, 입문하는 순간 한없이 깊어질 일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우우우웅!
진기가 공명했다.
선음문의 기본 심법, 예악심법(藝樂心法)의 진기가 울부짖으며 자연스레 대자연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부르르르.
지소현의 몸 곳곳이 떨려 왔다.
학질에 걸린 사람의 떨림과는 달랐다. 그녀의 표정은 차분했고, 떨리는 몸은 공기와 자연스레 공명하는 것 같았다.
츠츠츠츠.
예악심법으로 모아 놓은 내공이 자연스레 외부로 빠져나갔다.
삼단전이 완전히 비는 그 순간, 대자연의 기와 섞이는 자신의 힘에게 지소현은 담담하게 명령했다.
‘오거라.’
훅!
한 번의 명령, 그것으로 족했다.
팔만 사천 모공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오는 새로운 진기는 기존의 내공보다 훨씬 더 정제되고 깨끗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아!’
충만함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형용할 수 없는 만족감에 눈앞이 아찔했다. 동시에 그녀의 마음 한편은 차분했다. 드디어 문파 최강의 무공을 익혔다는 생각에 기쁘고 들떴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는 또 하나의 인격을 발견했다.
스르르.
변화는 격렬하지도,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마치 당연한 수순인 듯 음화제무신공의 힘이 온몸을 채우자 근골부터 혈관, 신경 등 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미묘하게 바뀌는 듯했다.
고통은 없었다. 자연스럽고 또 자연스럽다.
그렇게 지소현은 너무나도 편안하게 무종을 넘어섰다.
젊고도 젊은 나이다. 이 연배에 무종을 뚫은 사람은 온 천하를 뒤져도 많지 않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희대의 천재로 불리며 암암리에 차기 무신(武神) 후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소현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었다. 그러고도 그녀는 누구보다 빨리 무종을 넘어섰다.
근골의 재능을 압도하는 깨달음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하나도 잊지 않고, 나아가 스승과 자신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낸 그녀의 지혜로움과 열정이 자연스레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후우.”
가벼운 한숨에 기쁨과 만족을 털어 냈다.
무종지벽을 뚫었지만, 그녀는 그 경지를 넘어선 것보다 문파의 비전 신공을 마침내 대성했다는 사실이 더욱 기뻤다.
그리고 그 기쁨을 압도하는 공허함과 서글픔을 느꼈다.
“스승님.”
지소현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지금 이 순간을 스승과 함께했다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일까.
스승은 자신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았다. 스승은 음(音)을 추구하라고 했지만 자신은 음보다 무(武)를 추구했고, 그런 자신을 스승은 곤란해했다.
하지만 헤어짐의 순간, 스승은 진심으로 제자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었다.
세상에 그런 스승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소현은 정말이지 스승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짝짝짝.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박수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아 낸 지소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축하하네.”
그곳에는 종남 장문인 순우가 있었다.
지소현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그런 예는 삼가도 좋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가? 배분만 보면 자네나 나나 거기서 거기야.”
음제 하은교의 제자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공이나 명성을 떠나, 하은교의 나이는 육십이 넘었다. 서로 다른 지파라 항렬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순우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실로 대단하네. 하 선배님께서는 그 위대한 무공 못지않은 안목을 지니셨어. 당신의 제자가 이리 뛰어난 재목이라는 걸 진즉 알고 계셨던 게지.”
“부끄럽습니다. 아직 스승님의 가르침을 백분지 일도 따르지 못한 부족한 제자입니다.”
“자네가 그리 말하면 본 문의 아해들은 뭐가 되나?”
순우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지소현은 순우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종남 전쟁 이후 인적, 물적 피해가 엄청났던 종남의 세는 크게 약해졌다.
물론 구파로 불리는 만큼 그 자금력은 여전한지라 사람 한 명 거두는 것이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음제의 제자이니 이만저만 신경이 쓰였을 텐데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소현은 순우의 얼굴을 살폈다.
어딘지 모르게 다소 수척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예전과 달리 몸에서 이는 기도 역시 꽤 불안정했다.
물론 그녀는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라도 한 손 보탰어야 했는데…….”
중원에 전쟁이 터졌다. 마침내 삼교가 침공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섬서 전투에서 무림맹 병력과 화산, 종남이 연수해 엄청난 전력을 자랑하는 적의 기마대를 물리쳤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지소현은 정말이지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웠다.
순우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종남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네. 종남을 지키는 것은 섬서를 지키는 것이고, 섬서를 지키는 것은 곧 중원 전체를 지키는 일이야.”
“…….”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싸움이 있네. 그 싸움에 빈객이 나서지 않았다고 툴툴대는 소인배가 어디 있겠나?”
“그래도 죄송합니다.”
“허허,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정말 다급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자네에게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네.”
순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싸워야겠지만, 동시에 모두가 창칼을 뽑고 적과 대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네.”
“…….”
“자네는 뛰어난 인재야. 앞으로 자네의 무공이 많은 사람을 울고 웃게 할 걸세. 그것만큼은 꼭 자각하고 있게나.”
“명심하겠습니다.”
순우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 성천의 젊은 제자가 마음에 들었다. 재능이나 출신 때문이 아니라, 저 차분한 수행이 마치 도사들의 수행처럼 보여서 좋았다.
어쩌면 전쟁만을 생각하는 지금의 종남인들보다, 저 젊고 파릇파릇한 천재가 훨씬 더 깨달음에 다가섰는지도 모른다.
“상황이 썩 좋지 않네. 그래도 쉴 사람은 쉬어야지. 내, 자네 스승을 대신할 수는 없어도 축하는 해 줄 수 있으니 오늘 해가 넘어가기 전에 본궁으로 오게. 장로와 제자 몇을 불러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어 줌세.”
지소현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것이 순우의 순수한 호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깨달음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하겠지. 방금 얻은 그 힘, 잘 다듬어 놓게나.”
“알겠…….”
그때였다.
‘……?!’
지소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북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응? 왜 그러시는가?”
“…….”
“이보게.”
“장문인.”
“말씀하시게.”
“축하 자리는 나중에 가져도 되겠습니까?”
목소리에서 긴장과 놀라움, 불신과 강렬한 바람이 묻어난다.
순우의 얼굴 역시 굳어졌다. 지소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어찌 그러시는가?”
“뭔가…….”
지소현 역시 당혹스러웠다.
지잉. 지잉.
내공과 가슴 한편을 울리는 기묘한 감각.
그것은 그리움이자 경계심이었다. 도대체 이 감각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가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가 봐야 할 곳?”
“예.”
지소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겠습니다.”
연호정이 하북을 떠나 산서로 진입했을 때.
지소현은 하산하여 북쪽으로 향했다.
***
분양 지부를 떠난 연호정과 진양은 산서 문양을 지나 곧바로 섬서로 넘어갔다.
기분 탓일까? 산서와 인접해 있는데도 공기가 전혀 달랐다.
‘보인다.’
연호정의 눈에서 금빛 기운이 부드럽게 명멸했다.
‘느껴져. 탁한 바람이.’
동시에 연호정은 깨달았다. 황룡신왕공이 가일층 성장했음을.
정확히는, 무력의 근간인 황룡기는 예전과 다를 바가 없지만 신왕기가 발전했다.
‘정확한 거리는 모르겠다. 하지만 꽤 멀어. 몇백 리는 될 것이다.’
그 바람의 발원지에 적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무극수 중에서도 누구보다 날카로운 감각을 소유하게 된 그였다. 무극과 무극이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연호정의 상단전이 무섭게 발전한 것이다.
“가자.”
두두두두두.
대지를 두들기며 달려 나가는 흑혈신마가 순식간에 마을 몇 개를 지나쳤다.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 중 두세 군데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은호마병이 남하하며 박살 내 버린 마을에는 귀기(鬼氣)마저 서려 있었다.
연호정과 진양은 애써 분노를 삭이며 질주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절정고수 이상의 속도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지구력을 타고난 흑혈신마, 그리고 불의 깨달음을 얻어 극한의 신법을 구사하게 된 진양은 반나절 동안 쉬지 않고 달려 현(縣) 두 개를 지나쳤다.
그리고 마침내.
히히히히힝!!
앞발을 들며 용음을 토해 내는 흑혈신마의 마체(馬體)에서 강렬한 황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연호정의 황룡기였다.
“대형.”
“그래.”
연호정이 광룡부로 전면에 보이는 작은 언덕을 가리켰다.
“저 너머에 놈들이 있다.”
잊을 수 없는 사기(邪氣)의 폭풍.
음황무에서 갈라져 나온 혈음사기(血飮邪氣)가 한가득 집약되어 있었다. 과거, 음신 야율적을 돕기 위해 온 사음교의 소방이 익혔던 그 무공이었다.
연호정 역시 파훼법을 알고 있는 사음교의 절정무공.
하지만 그는 혈음사기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우우우웅.
신왕기가 매섭게 불타올랐다.
“……하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