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66)
1166화. 이중 간계(二重奸計) (6)
분양을 통과한 일행은 곧장 평요로 향했다.
산과 들을 가로질러 거의 일직선에 가까운 방향으로 달린 일행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애초에 조심스레 움직일 생각도 없었던지라, 밤이 되기도 전에 평요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달리면서도 연호정은 수많은 정보를 받았다.
[청검 표국 정보원들이 수색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괴인들이 고산으로 이동 중입니다. 관도를 피해서 평요로 향할 거라고 추측됩니다.] [괴인들의 대략적인 숫자가 나왔습니다. 오십에서 칠십 명, 무공 수위는 불명입니다.] [백오십이 넘는 마적 떼 하나가 괴인들을 습격했습니다. 결과는 마적 전멸입니다. 전멸하기까지 반 각이 채 걸리지 않았으며, 실질적으로 마적과 싸운 괴인의 숫자는 열 미만이라고 합니다.] [괴인 전원이 평요 인근에 도달했습니다! 밤중에 고성 성벽을 넘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청검 표국의 정보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평요 동쪽 숲 한곳에서 종남 전용 암어(暗語) 두 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정지.”
평요로 들어간 일행은 주변을 훑었다.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해가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직 유동 인구가 많을 시간이었고,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일행을 힐끔거렸다.
연호정의 무자비한 도끼도 도끼지만 흑혈신마가 워낙 거대했다. 그 커다란 말에 삼십 대 미부가 타고 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하은교의 안색은 유독 창백했다.
“괜찮네. 자네야말로 괜찮은가?”
“예, 저도 괜찮습니다.”
고독이 제거되고 남은 주독이 아직 소멸하는 중이었다. 심신의 피로 역시 극심한 와중에 쉬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무극수도 사람이다. 체외의 자연기가 끊임없이 그녀에게 힘을 주고 있었지만, 심력 소모가 워낙 커서 어지럼증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그녀는 움직일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자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팔다리가 날아가도 이 악물고 움직일 것이다.
“강량, 진양. 두 사람은 평요 내부의 흑도 연락망과 접선하여 영귀수들의 동태를 바로바로 확인토록 해라.”
“알겠습니다.”
즉답한 강량과 달리 진양은 질문을 던졌다.
“그놈들이 현재 평요 밖에서 대기 중이라고 했소?”
“그래.”
“하면 밖에서 잡아야 하지 않겠소? 뭐가 되었든 놈들을 싹 죽일 생각이라면, 굳이 사람 많은 평요 안으로 들일 필요가 없잖소.”
쓸데없는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연호정 역시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싸울 수는 없다. 놈들의 숫자가 오십에서 칠십이라면, 너희 둘로는 부족할 수도 있어.”
진양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연호정의 판단을 의심하진 않았다.
“설령 상대하는 데 문제가 없다손 쳐도, 싸움이 시작되면 놈들 중 일부가 혼란을 틈타 평요 내부로 넘어올 수도 있다. 싸움은 가능해도 놈들이 작정하고 도망치면 너희만으론 막을 수 없지 않겠냐.”
“하긴, 그도 그렇지.”
그때, 하은교가 말했다.
“내가 참전토록 하지.”
연호정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선배님.”
“솔직히 말하겠네. 내 상태는 지금 정상이 아니야. 본래 무공의 절반이나마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음화제무는 특히 상단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무공이었다. 하단전과 중단전이 튼튼해도 상단전이 피폐한 상황이면 제 위력을 내기 힘들 것이다.
즉, 지금 그녀는 무극수로서의 능력을 상실한 셈이었다.
“그래도 음공(音功)의 특성상 일 대 다수 싸움에 능하다네. 대놓고 맞서 싸우긴 어렵겠지만, 고성 너머로 들어오는 놈들을 하나하나 저격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야.”
잠시 고민하던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각 후, 강량과 진양이 영귀수들을 습격하는 걸로 한다. 이후 선배님께서는 사태를 관망하다가 놈들이 고성 안으로 넘어오거나 두 사람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참전해 주십시오.”
“그리하겠네.”
“현재 청검 표국 정보원들이 지 소저가 남긴 암어를 발견했다고 한다. 영귀수들의 위치를 볼 때, 그들은 혹시 지 소저를 쫓아오는 자들이 있을 경우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게 틀림없어. 말하자면 현재 지 소저는 영귀수들과 함께 있는 게 아니다.”
강량의 얼굴에 걱정이 일었다. 빠르게 말하는 연호정의 얼굴이 하은교 못지않게 창백했기 때문이었다.
연호정이 말을 이었다.
“현재 지 소저 곁에는 가장 강한 고수가 붙어 있을 것이다. 영귀수 중에서도 최고참, 혹은 사왕(邪王)급 고수가 붙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번 싸움은 꽤 힘들어질 거야.”
“…….”
“먼저 싸움을 끝낸 쪽에서 합류토록 한다. 현재 평요 내에 흑도 정보망이 최대로 가동되고 있으니, 거리가 떨어져도 서로를 찾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때였다.
“형님!”
“왜 그러느냐?”
말을 하던 연호정은 순간 인중이 축축해진 걸 느꼈다.
‘이런!’
코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각이 정상이 아니었다. 코피가 나온 즉시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상황을 인지하고 난 다음에야 흐르는 코피를 느낄 수 있었다.
신왕기를 지나치게 많이 쓴 부작용이었다. 신기(神氣)도 정상이 아니었지만, 상단전이 흔들리며 오감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빌어먹을.’
이럴 때는 무조건 쉬는 게 정답이었다. 오랫동안 잠을 자거나 누운 채로 운공하여 심신을 정화해야 상단전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첩첩산중이 따로 없군. 차라리 황궁 전쟁 때가 몸 상태는 더 나았어.’
황룡기가 불안하게 꿈틀댔다. 주인의 몸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광룡은 봉인해야겠군.’
광룡공은 의지로 위력을 조절하는 신묘한 무공이었다. 이렇게 상단전이 피폐해진 상태로는 제대로 된 위력을 낼 수 없다.
그 역시 하은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소매로 코피를 닦아 내고 혈을 점해 출혈을 막은 연호정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지금 바로 움직이자. 나는 정보원을 통해 청검과 접선할 테니, 너희 둘은 지금 즉시 정보를 받아 영귀수들을 찾아라.”
뭐라 말을 하려던 강량은 이내 입을 꾹 다물곤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이 툭 던지듯 말했다.
“죽지 마슈.”
“너나 잘해, 인마.”
연호정이 하은교를 바라보았다.
하은교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연호정의 상태가 자신 못지않게 최악이라는 걸 알고도, 지소현 때문에 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그렇게 저주스러울 수가 없었다.
“선배님.”
“호정.”
“무리하지 마십시오.”
“자네도 조심하게.”
연호정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했지만, 일행에게 티 내지 않았다.
“자, 그럼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일행은 둘로 찢어졌다.
* * *
놀랍게도 정보원과 함께 이동한 곳에는 청검 표국의 국주, 청수검(淸水劍) 위언이 있었다.
“흑제성주를 뵙소. 청검 표국을 맡고 있는 위언이라 하오.”
오십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다부진 몸과 맑은 눈빛을 갖고 있는 검객이었다. 무공과 심신 수양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연호정이라 하오. 만나서 반갑소.”
연배만 따지만 한참 어리지만, 그는 흑도 연맹의 맹주였다. 하대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치였다.
위언이 빠르게 말했다.
“상황이 다급하니 가면서 말합시다.”
“그럽시다.”
파아아악!
정보원을 놔두고 달리기 시작한 두 사람.
둘은 평요 서쪽 성벽 밖에 있는 숲을 끼고 달렸다.
“현재까지 암어는 총 두 개가 발견되었소. 하나라도 더 발견되면 음제의 제자분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텐데, 현재로서는 모호하오.”
“괜찮소.”
대략적인 이동 방향만 잡아도 충분했다. 상단전이 이 모양이라 예전과 같은 감각을 발휘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현재 그의 기감은 초절정고수 이상이었다.
“일단 문수와 교성 방향으로 잡는 것이 좋겠소.”
“이유가 있소?”
“지소현 소저가 짧은 시간 두 번이나 암어를 남겼다는 건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또 한 번 쉬었다는 뜻이오. 즉, 현재 납치범은…….”
“이동 경로를 재차 파악하고 있군.”
“정확하오. 태극과 진중 방향에는 평요보다 사람이 훨씬 많소. 성도인 산서 태원으로 직행하는 길이기 때문이고, 덕분에 지형도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소.”
“문수와 교성은?”
“그곳 역시 태원으로 이어지는 길이나, 일대의 수로와 산세가 더 험하오. 납치범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곳으로 길을 잡는 것이 이득일 것이오.”
등하불명(燈下不明)의 계책도 써먹을 때가 따로 있는 법이었다.
사람들 속에 자연스레 섞여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납치한 판국이니 절대 선택해선 안 되는 방법이었다. 지소현이 기절해 있다면 의심의 눈을 받을 것이고, 기절하지 않았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납치가 당했음을 알릴 테니까.
아혈을 봉쇄할 수도 있겠지만, 납치범과 피해자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까지 없애긴 힘들 것이다.
결국 그들은 험한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피풍의를 입은 괴인들의 실력이 엄청나다고 들었소. 그들이 현재 위치에 있는 것은 혹시 모르는 추격자들을 끊어 내기 위함일 터, 그렇다면 그들은 무조건 태원으로 향할 것이오.”
“동의하오.”
“교성 인근에는 표국의 정보원들이 깔려 있소. 그곳까지만 안내하고, 혹시 모르니 우리는 다른 길을 확인하겠소.”
“고맙소.”
“별말씀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음제 선배님의 제자요. 세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구해야 하지 않겠소?”
뼛속까지 정파인이다. 연호정은 위언이 마음에 들었다.
파아아앙!
놀랍게도 위언의 신법은 연호정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이 사태에 직접 끼어들었을 것이다. 빠른 신법으로 정보의 공유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순식간에 문수를 넘어갔다.
“조금만 더 가면…….”
그때였다.
“조용.”
연호정이 즉각 신법을 멈추었다.
재빨리 정지한 위언이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입술 위로 검지를 가져다 댄 연호정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철썩!
저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강물 소리였다. 하지만 연호정은 그 도도한 강물 소리조차 지워 내는 기묘한 기세를 느꼈다.
연호정은 고요하게 황룡기를 키웠다.
전신에 황룡기가 꽉 차니, 조금은 흐릿했던 기감이 빠르게 날이 섰다.
‘분명 느꼈는데.’
중원의 무공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기운.
중원 무림의 사파 무공이 아닌, 질이 다른 새외의 사공(邪功)만이 풍길 수 있는 독특한 사기.
‘어디냐.’
광룡부가 은은하게 떨려 왔다.
‘어디냐?!’
그때였다.
번쩍!
한 줄기 미세한 사기가 기감에 잡혔다. 피폐해진 상단전에 자리한 미량의 신기(神氣)까지 퍼부어서 잡아낸 것이다.
‘찾았다!’
훅!
극한으로 펼쳐진 천종운행비가 연호정의 몸을 단숨에 강물 위로 옮겨 놓았다.
저도 모르게 그의 뒤를 따라가려던 위언은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파바바바박!
연호정이 강물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었다.
물 위를 달리는 신기(神技)의 경공술이다. 경공술 최고의 경지 중 하나, 수상비(水上飛)가 발현된 것이다.
팔십 근이 넘는 도끼를 들고도 너무도 자연스레 강물 위를 달리는 연호정.
‘저기인가.’
사기의 근원지를 포착한 연호정이 속도를 높였다.
‘방향은 잡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군.’
그 순간 연호정은 기지를 발휘했다.
화아아악!
황룡기가 악의 가득한 살기를 뿜어냈다.
순간 우측 숲에서 경악에 찬 사기가 솟구쳤다.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저기!’
연호정의 두 발이 불을 뿜었다.
파아아아앙!
동시에 주변 수풀이 일직선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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