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69)
흑백무제 1169화(1169/1200)
1169화. 신(神)과 마(魔), 그리고 악(惡) (1)
지소현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어어어엉!
폭음과 함께 두 사람 주변의 나무들이 모조리 바깥으로 기울어지는 듯했다.
파괴적인 충격파가 번져 나간 직후 무서운 역장이 일어났다. 바깥으로 퍼져 나갔던 충격파가 순식간에 안쪽으로 빨려 들어오며 두 초고수의 격전을 알렸다.
부우우우웅!!
횡으로 휘둘러진 황금빛 광룡부가 공기를 불태우며 반월의 충격파를 일으켰다.
파도처럼 짓쳐들어오는 유형의 경파였다. 사우는 거리낌 없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사아아악!
뿜어져 나오는 경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약 그 힘을 끝까지 유지했다면, 저 멀리 떨어진 지소현의 몸뚱이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역시.’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눈치가 빨라.’
상황 판단 능력이 좋은 놈이다.
상대 입장에선 차라리 지소현을 죽여 버리는 게 낫다는 것은 인지했지만, 아직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놓고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번 한 수로 그는 확신했을 것이다. 자신이 지소현을 죽이지 않을 것임을. 적어도 싸움 도중에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역시나 무서운 자다.
칠십 나이에도, 오십이 넘은 지금도 기가 막힌 판단력을 보여 준다.
번쩍!
허공에 떠오른 사우가 순간 화살이 쏘아지듯 대각선으로 날아왔다.
연호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교차되는 여섯 개의 칼날이 좌우 사선으로 떨어지자, 은은한 청색의 칼날 그물이 연호정의 온몸을 뒤덮을 것처럼 날아왔다.
사음교의 무공을 자신만의 것으로 재해석해 창안한 사우의 진신절기, 열황신조(裂荒神爪)였다. 사음교에서 가장 유명한 무공인 음황무를 파훼하기 위해 만든, 사우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무공이기도 했다.
횡으로 휘둘러졌던 광룡부가 곧장 종격을 가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연호정이 서너 걸음을 물러났다.
무공 자체의 위력도 상당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날카로움이었다. 밀도 높은 무극수의 경파도 손쉽게 뚫어 버리는 열황신조의 예기는 어떤 도검보다도 날카로웠다.
그리고 하나 더.
쩌저정!
어느새 왼손으로 꺼내 든 흑룡부에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우의 눈이 번뜩였다.
‘어떻게 알았지?’
파박!
바닥에 내려선 그가 우장(右掌)을 뻗었다. 어느새 비음우조(秘陰右爪)는 손목 뒤로 숨겨져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는 기병(奇兵)이었다.
콰릉!
열황신조와 같은 의도로 만들어진 장법, 붕산규장(崩山叫掌)이 펼쳐졌다.
막강하기 그지없는 장력이었다. 그렇게 빨리 펼치는데도 위력은 소림의 장법 절기와 비견될 만하다.
쾅!
연호정의 몸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반투명한 황금빛 방패, 황룡수기(黃龍水氣)로 펼친 북천십이벽의 육각륜(六角輪)이었다.
‘역시.’
이번 장법은 일부러 방어해 보았다. 그 위력이 과거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야. 큰 차이가 없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당시의 붕산규장은 조금 더 자유롭고 부드러웠던 반면, 지금의 붕산규장은 더 빠르고 강건했다.
뭐가 되었든 직격당하면 위험하다. 그것은 어떤 무극수의 무공이라도 마찬가지지만, 붕산규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더 위험했다.
육각륜을 거둔 연호정이 즉시 일 보를 밟았다.
쿵!
산천초목도 두려움에 울부짖을 산중대왕의 일 보였다. 백호공의 백호군림보법이 펼쳐졌다.
터어엉!
진각으로 힘을 받아 전투적으로 돌진한다. 오른손에는 팔십 근이 넘는 거대한 광룡부가, 왼손에는 가볍고 작지만 더 예리한 흑룡부가 들렸다.
마치 크고 작은 두 개의 발톱을 꺼내 들고 달려드는 듯했다.
어느새 비음쌍조 두 자루를 전부 꺼내 쥔 사우가 마주 돌진했다.
쩌저저저저정!!
미친 듯이 몰아치는 공격과 공격.
연호정의 공격은 사신무 특유의 실전성과 경험으로 변칙적이었고, 사우의 공격은 빠르고 날카로운 데에 치중되어 있었다.
허점을 유발하면서 일발의 위력이 강한 건 연호정, 쾌속한 연환기로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는 데에 능한 것은 사우였다.
두 사람의 무공은 그렇게나 달랐지만, 와중에 닮은 구석이 하나 있었다.
바로 기질이었다.
적을 맞이하여 물러서지 않는 기질,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는 필살의 의지가 다른 무림인들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콰앙!
절묘하게 하단에서 올라간 흑룡부 일격이 넘치는 힘을 발산했다.
비음쌍조를 교차하여 막은 사우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공격과 동시에 백호군림보로 돌진하던 연호정은 순간 느껴지는 살기에 상반신을 사선으로 내렸다.
콰아앙!
무형의 권풍이 연호정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후방에 있는 거목 세 그루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연호정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무형환사권(無形喚死拳)!’
아무리 진기가 집약되어도 권경과 권풍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사우의 비기 중 하나였다. 저 권법 하나에 구파 장문인 여섯이 유명을 달리했다.
사우의 눈이 깊어졌다.
훅!
쭉 뻗은 광룡부가 어느새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베지 않고 찌르고 들어온다. 도끼날 부분이 아니라고 가벼이 여겼다간 죽음을 면치 못한다. 직선적인 찌르기에 상상 초월의 공력이 깃들어 있어, 닿는 순간 어떠한 외물이라도 박살이 나고야 말 것이다.
사우가 좌수, 비음좌조를 할퀴듯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그가 미친 듯이 발을 움직이며 뒤로 물러났다.
‘강하다.’
왼팔 관절들이 비명을 질렀다. 열황신조를 펼쳤음에도 일순간 어깻죽지부터 뜯겨 나간 듯한 통증을 느꼈다.
‘무식한 완력이야. 내공량과 육신의 완력은 나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대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물러나자마자 자세를 낮춰 돌진하던 사우가 강한 진각으로 몸을 세운 후 정직하게 우권을 내질렀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공기를 비틀며 쏘아지는 권풍.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둘이다. 동작은 하나였지만, 뿜어져 나온 공력은 중첩되다가 흩어졌다. 그것이 연호정의 두 눈에 톡톡히 보였다.
‘어디냐.’
벼락처럼 쏘아져 거의 코앞까지 도달했는데도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어디냐!’
그 순간, 무형의 권풍 두 개가 좌우로 흩어지다가 그의 양 허벅지 쪽으로 호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훅! 콰아아앙!
혈익휘천으로 물러나니, 갈 길 잃은 두 줄기 권풍이 서로 부딪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땅이 뒤집히고, 반쯤 꺾인 나무 한 그루도 신음하다 끝내 쓰러졌다.
충격파만으로도 이런 위력이 나온다. 무극수라도 한 방에 골로 보내 버릴 수 있는 살벌한 무공이었다.
번쩍!
연달아 혈익휘천을 펼친 연호정이 홍염육살공의 홍화섬(紅禍閃)으로 사우를 공략했다.
사우의 두 손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콰쾅!
폭음과 함께 황금빛 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아래!’
어느새 네발 달린 짐승처럼 자세를 낮춘 사우의 좌권이 연호정의 무릎으로 날아갔다.
근접 거리에서 펼쳐진 공격이었다. 미세하게 닿지 않는다 한들, 발경에 맞으면 관절이 박살 날 것이다.
그런데도 연호정은 상식 밖의 움직임을 펼쳤다.
부웅! 파아아앙!
한 발 뒤로 물러나 철판교의 수법을 펼치니, 어느새 연호정의 턱을 스치고 지나간 권풍이 저 멀리 나뭇가지 수십 개를 가루로 만든 후 하늘로 사라졌다.
연호정의 오른 다리가 호왕살의 초식을, 사우의 오른손이 붕산규장의 힘을 담아 부딪혔다.
콰앙!
또 한 번 터진 충격파에 두 사람이 각자 후방으로 물러났다.
연호정은 여섯 걸음, 사우는 아홉 걸음이었다. 각법과 장법의 힘 차이를 생각하면 거의 박빙에 가까운 실력 차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가만히 연호정을 노려보던 사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너, 이전에 나와 싸운 적이 있느냐?”
“있었지.”
“너 정도 고수와 싸웠다면 분명 내 기억에도 있을 터. 고로 네 말은 거짓이다.”
“믿든 안 믿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저승에서 듣기로 했잖느냐.”
절로 분노가 들끓게 하는 말이었지만, 사우는 화보다 의아함이 앞섰다.
‘어떻게 전환 투로를 다 읽어 냈지?’
진기 밀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렸음에도 기가 유형화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기공술은 은근히 많다. 무형환사권이 특별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와중에 벽공장의 수법으로 쏘아진 경력이 제멋대로 방향을 전환하기 때문이다.
혹 살기를 읽었다 해도, 전환 속도 자체가 빨라서 어지간한 고수는 위기를 느끼자마자 목숨을 잃기 일쑤였다. 설령 죽지 않는다 한들 두세 번 공격을 당하다 보면 몸 어딘가는 부러지거나 뜯겨 날아가는 게 보통이었다.
‘마지막 공격은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전환만 했을 뿐, 공격선은 알아서 그려지도록 놔두었어. 한데도 그걸 피했다.’
이건 단순히 실력의 좋고 나쁨을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무공이 상대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게다가 놈은 엄청난 중병(重兵)인 대부를 휘두르면서도 지극히 실전적인 투로로 병기술을 구사했다. 허점을 만드는 능력은 물론 밀고 들어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 방어해야 할 때와 치열하게 압박해야 할 때를 전부 다 꿰고 있었다.
그야말로 실전의 화신(化神)이다. 사우 역시 싸움 잘하기로는 누구 못지않았지만, 이렇게나 독창적이면서도 효과적인 투로를 구사하는 고수는 처음 보았다.
‘심지어 무형환사권의 권풍 투로까지 다 읽어 내면서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이지.’
사우는 문득 등허리가 시린 것을 느꼈다.
‘강자다. 내공량과 완력은 물론 경험에서도 나를 넘어선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젊은이였다. 어미 배 속에서부터 싸움질을 해 댔어도 이런 변칙성과 감각을 보여 주기란 힘들었다.
‘한데 왜 멈칫하지?’
공수를 나누는 중간, 사우는 상대의 살기가 자신의 빈틈을 강제로 쑤시고 들어오는 걸 느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살기는 곧 의지의 발현이니, 그 즉시 치명적인 공격이 들어왔어야 했다. 한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기로 공격 지점을 속였다고 하기에는 후속타가 정직했다. 답은 하나였다.
“몸이 정상이 아니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호정의 코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사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득의양양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진심 어린 감탄과 살의로 얼룩진 미소였다.
“정상이 아닌 몸으로도 이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놈이구나.”
“내가 좀 대단하긴 해.”
“다른 데도 아니고 상단전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군.”
“티가 많이 나나?”
대놓고 코피를 흘리면서도 여유롭다.
사우는 상대방의 과감한 전투술과 강인한 성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너 같은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구나. 적으로 만난 게 아쉬울 정도야.”
“그건 나와 다르군.”
화르르르륵.
연호정의 몸에서 재차 뿜어져 나오는 황룡화기(黃龍火氣)가 주변 풀과 나무를 불태웠다.
사우의 눈이 깊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김에 손맛은 잘 봤다.”
연호정의 자세가 낮아졌다.
백호 돌진, 호왕구벽세와 백호군림보를 동시에 녹여 낸 자세였다.
“전채 끝, 주요리 시작이다.”
사우의 눈에서 살기가 폭발했다.
“내가 할 말이다.”
번쩍!
그 순간, 흑룡부가 돌풍을 일으키며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