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70)
흑백무제 1170화(1170/1200)
1170화. 신(神)과 마(魔), 그리고 악(惡) (2)
마치 거대한 전도(剪刀)처럼 교차되듯 휘둘러진 도검기(刀劍氣)가 영귀수들을 휩쓸었다.
콰르릉!
불꽃을 품은 도기가 천둥소리를 내며 영귀수들의 상반신을 통째로 불태워 버렸고, 심상치 않은 살기에 하단으로 자세를 낮춰 피한 영귀수들은 강량의 겸형검기(鎌形劍氣)에 휩쓸려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강량의 눈이 형형해졌다.
‘됐다!’
교차된 두 고수의 합공.
그 일격에 죽은 영귀수의 숫자만 무려 열다섯이었다.
이것이 바로 기습의 효과다. 하물며 그들 대다수보다 강한 초절정고수 두 명이 작정하고 가한 기습이었다.
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진양은 강량보다 조금 더 긴장해야 했다.
본래라면 스물 이상을 쓸어 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보다 못한 수가 죽었다. 초절정고수의 예측을 벗어날 정도로 적들의 수준이 높다는 뜻이었다.
덩치 큰 영귀수, 영귀수들의 다섯 대장 중 하나인 사필합이 외쳤다.
“숨어라!”
훅!
살아남은 영귀수들이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아무리 진양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안 보이는 건 물론 기척조차도 쑥 가라앉는데, 순간적으로 놈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순간, 강량이 움직였다.
후웅.
전신으로 치닫는 귀왕진기가 삽시간에 그의 몸을 모닥불 앞으로 이동시켰다.
번쩍!
나무 위에서 수십 개의 비도(飛刀)가 날아들었다.
그 형태가 중원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유엽도(柳葉刀)와 유사한 형태지만 더 굴곡지고 비도처럼 작아서, 직선이 아닌 호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강량의 검이 원을 그렸다.
귀화마검식의 귀호륜(鬼呼輪)이었다.
치리리리리링!
풍성한 흑회색 검기가 구름처럼 일어나 비도들을 휩쓸었다.
부수는 것이 아니라 검기의 흐름을 따라 자유자재로 흘려보내는 유검(柔劍)이었다. 날카롭고 공격적인 귀화마검식답지 않은, 강량의 깨달음이 돋보이는 멋진 한 수였다.
퍼퍼퍼퍼펑!
귀호륜이 펼쳐지는 그 순간, 모닥불 주변에서 작은 폭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
강량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잉! 지잉!
어지간한 독은 귀왕진기로 다 흡수해서 이상 없이 풀어 내는 게 가능한 경지다.
하지만 이 독은 뭔가 달랐다. 몸에 닿기도 전에 상단전에서 위험 신호가 감지된다.
극독 중의 극독이다. 한 줌의 호흡으로도 진기 운용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물론 오장육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 같았다.
물론 백전(百戰)을 치른 강량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위험한 환경으로 돌진한 것은 아니었다.
번쩍! 화르르르륵!
커다란 대도가 쾌검술처럼 펼쳐진다.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는 거대한 화기. 예전보다 화기의 범위도, 온도도, 그 안에 실린 발경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발전한 진양의 상천뇌화도(翔天雷火刀)였다.
파바바바바박!
자욱한 연기 곳곳에서 번갯불이 튀다가 증발했다.
화기로 독기를 태우는 걸 넘어, 그 안에 실린 외측 발경으로 강량을 위협하는 일말의 독기나 암기들을 차단한다.
방어의 무공이었다. 행위는 공격이지만, 기공의 운용 능력이 극에 이르러 발경 범위를 지극히 섬세하게 제한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진양이었다. 무극수를 제외, 폭발적인 무공을 이 정도로 섬세하게 조절하는 사람은 중원 천지에도 몇 없을 것이다.
“강량!”
“봤소!”
강량의 귀안(鬼眼)이 흩어지는 영귀수들을 포착했다.
“북쪽으로 이십 명! 혼자서는 힘들 거요!”
귀왕진기는 흑도 무공에서도 정상을 다투는 절학으로, 태생적으로 은신과 환술 등을 꿰뚫어 보는 데에 능했다.
그동안 제대로 쓸 일이 없었지만, 이런 특별한 전투에선 유독 귀왕무의 진가가 드러난다.
파아아아앙!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양이 북쪽으로 돌진했다.
혼자서는 힘들 거란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버거울 수는 있어도 이쪽에는 음제 하은교가 있다. 제 위력을 못 살리는 음공이라도 영귀수들을 놓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장이 둘로 나뉘었다. 진양은 북쪽, 강량은 남쪽이다.
안타깝게도 강량의 전장 역시 쉽지는 않았다.
번쩍!
한순간 은신을 풀고 돌진한 사필합이 강량을 기습했다.
피이이잉!
손에 들린 단검을 쏘아 보냄과 동시에 방향을 전환하여 강량의 후방으로 이동한다.
강량이 발작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이런.’
단검을 튕겨 낸 검이 파르르 떨렸다. 검을 쥔 손목에서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역시.’
영귀수 무리 중 초절정고수는 셋이었다. 그중 둘은 진양을 따라갔고, 하나는 이곳에 남았다.
그 하나가 바로 무리의 대장인 사필합이었다.
‘암기술의 대가인가.’
치리링!
튕겨 낸 단검이 나무에 부딪혔다가 호선을 그리며 저 멀리 날아갔다.
사필합이 강량의 머리를 향해 일장을 날렸다.
퍼어어엉!
모닥불과 함께 나무 하나의 밑동이 그대로 분쇄되었다.
우지끈!
쓰러지는 나무 옆으로 몸을 숨긴 강량이 귀영신보를 펼치려는 그때.
‘……!’
하늘과 나무 사이사이에서 번뜩이는 무언가가 잔뜩 날아왔다.
암기였다. 암기는 암기인데, 쇠털처럼 가볍고 작은 암기들이 수도 없이 쏟아졌다.
당가의 폭우이화침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모침(牛毛針)을 직접 뿌리는 암기술에는 능히 비견될 만했다. 하물며 전후좌우는 물론 머리 위까지 뒤덮을 정도로 광범위한 공격이라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몰이꾼이 한 명, 나머지는 사냥꾼의 역할이다.
그 순간, 강량은 이 싸움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삼검(三劍).’
후우욱!
다급하게 끌어올린 귀왕진기가 검과 연동하며 순식간에 강량 주변으로 회전하는 검기 세 개를 형성했다.
푸스스스스! 쩌저저정!
그 많은 세침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삼검기(三劍氣)에 맞아 부스러지거나 튕겨 나갔다.
조금이라도 먼저 없애 버린 암기 구역으로 몸을 날린 강량 뒤로.
파바바바바박!
쏟아지는 세침들이 바닥을 뒤집어 놓았다.
“제법이군.”
어느새 강량 측방으로 접근한 사필합의 손에는 또 단검이 들려 있었다.
처음 던졌던 그 단검이다. 단검이 떨어진 자리로 돌진했더니 강량이 있었던 건지, 사냥감의 유일한 회피 장소를 그곳으로 예측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사필합의 단검이 무섭게 움직였다.
쩌저저저정!
‘빠르다.’
단검술도 검술의 일종이라지만, 사필합의 단검술은 뭔가가 달랐다. 일격의 위력은 검술보다 약하지만, 속도가 훨씬 빠르고 투로가 비정상적이었다.
‘살법!’
무림인의 정통 무공보다는 암살자의 살법에 가까운 공격법.
하지만 또 마냥 살법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일격의 위력이 부족할 뿐, 강량의 귀검을 상대로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강건함을 지녔다.
정통 무공과 암살 무공의 합작이었다. 두 가지 무공을 합쳤음에도 어중간하지 않고, 오히려 양측의 장점을 적절히 살려 상대를 몰아붙이는 살인마의 무공이었다.
쩌저정! 슉! 피이이잉!
몇 번이나 부딪쳐도 별다른 충격은 없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강량의 어깨에 검상을 입히고, 기가 막힌 신법으로 삼 장 거리를 벌려 수하들의 공격 범위까지 만들어 주었다.
파파파팡!
사방에서 쏟아지는 장력이 열 개가 넘어갔다. 제아무리 수준 차이가 있어도 이걸 맨몸으로 받아 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위치 선점도 기가 막혔다. 사필합과 합을 주고받는 그 짧은 시간에 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퇴로를 봉쇄한 것이다.
‘육검!’
후우우우웅!!
강량의 몸 주위를 회전하던 삼검기가 배로 늘어나 육검기(六劍氣)로 발전했다.
상당한 내공을 소모하는 검기공. 이럴 땐 오히려 호신검기를 내려놓고 변칙적인 움직임과 공세로 장력을 분쇄하는 게 낫지만, 강량은 그런 선택을 내릴 수가 없었다.
퍼퍼퍼펑! 쩌어어엉!
몇 개의 장력은 육검기로 막고, 몇 개의 장력은 직접 쪼개 버렸다.
그 순간, 빈틈을 노린 사필합이 뱀처럼 기묘한 몸놀림으로 접근하여 또 한 번 단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저정!
‘틈을 주지 않는다!’
강량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지금껏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지만, 이런 놈들은 또 처음이었다.
딱히 대단한 진법을 펼친 것도 아닌데 한번 밀리기 시작하니까 한도 끝도 없이 밀려나고 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능력이 무림의 어떤 단체보다도 뛰어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번쩍!
낫처럼 휘어지는 흑색 검기가 영귀수들을 사선으로 쪼개고 들어갔다.
하지만.
쩌어어어어엉!
어느새 이동한 사필합이 단검과 장력으로 검기를 중간부터 봉쇄했다.
검기가 봉쇄되기 직전, 다른 영귀수들이 강량에게로 접근했다.
만약 사필합이 검기를 막지 않았다면 그들 중 절반의 목숨이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서슴없이 몸을 내밀고 돌진한다. 수장인 사필합이 공격을 막아 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위험조차도 무시할 만큼 엄청난 신뢰가 쌓인 결과였다.
‘서로가 마치 기관 장치의 한 부분처럼 반드시 움직여야 할 곳으로 움직이고 있다. 신뢰도 신뢰지만, 소수든 다수든 손발이 척척 맞을 때까지 죽어 나가면서 훈련하지 않았다면 이런 조직력을 보여 줄 수 없다.’
공격자는 여러 명이지만, 강량은 마치 거인 한 명과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쩌어어엉!
위협적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단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 낸 강량이 거리를 벌렸다.
‘그렇다면.’
수준 높은 실력자라도 어떻게든 잡아 죽이기 위해 단련된 진짜 정예다.
초절정고수일지라도 초일류의 무공과 경지로만 밀어붙이다간 몇 수 싸워 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무림인은 그렇게 죽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래, 그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지?’
강량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럼 나도 더럽게 나갈 수밖에 없지.’
독도 암기도 없지만, 진흙탕 싸움은 명문이라도 사파 출신인 강량의 장기였다.
치리리리링!!
몇 개의 비도를 튕겨 낸 강량이 그대로 땅에 검을 찍었다.
벼락처럼 주입되는 귀화마검기(鬼火魔劍氣).
순간 사필합이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강량의 안광이 진해지는 순간.
퍼퍼퍼퍼퍼펑!!
주변 땅이 마구 뒤집혔다.
수십 개의 검기를 일거에 쏟아 내 폭발하는 발경으로 땅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강량의 반경 삼 장 너비가 초토화되었다. 무너지고 부서진 땅 이곳저곳에서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물러나라.”
잠시 호흡을 고르기 위해 써먹은 기공술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내공이 필요한 행위였다.
사필합은 상대에게 뭔가 수가 생겼음을 직감했고, 그래서 일시적인 후퇴를 명령했다. 괜히 휩쓸렸다가 수하 한 명을 잃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자존심도 뭣도 없다. 적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벌인다.
사필합의 그 합리적인 성격은 곧 영귀수들이 얼마나 위험한 조직인지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젊은 검사가, 중원 천하가 칭송하는 실전의 화신이 직접 인정한 몇 안 되는 천재 중 하나라는 걸.
그리고 이 천재 검사가 자신이 신뢰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이곳까지 도달했는지도 몰랐다.
강량의 발이 가볍게 땅을 찍었다.
쾅!
폭음과 함께 수많은 돌멩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강량의 좌수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파파파파파파파팡!!
마치 암기처럼 쏘아진 수십 개의 돌멩이가 전방을 가득 메우며 영귀수들을 향해 날아갔다.
파바박!
사필합과 선임들은 그 자리에서 돌멩이를 튕겨 내거나 피했고, 다른 영귀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나무와 수풀 속으로 숨었다.
바로 그때.
번쩍! 퍼억!
날아간 철검 한 자루가 나무 뒤에 숨은 영귀수 둘을 관통했다.
잘 돌아가던 기관 장치의 부품 두 개가 깨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