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71)
흑백무제 1171화(1171/1200)
1171화. 신(神)과 마(魔), 그리고 악(惡) (3)
콰아앙!
대지를 찍는 광룡부에 천지가 뒤집히는 듯했다.
숲에 불이 번지기 시작한다. 황룡화기의 전파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서, 어느새 두 고수의 주변은 온통 화려한 색조로 가득해졌다.
콰릉! 콰르릉!
연신 터져 나오는 충격파에 크고 작은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무슨 수가 있겠지?’
멀리 떨어져 두 고수의 결투를 바라보는 지소현의 얼굴은 다소 창백했다.
화재 사고 시 화상으로 죽는 사람보다 질식으로 죽는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다.
물론 이곳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었다. 나아가 지소현 역시 무종을 넘은 고수라 신체가 이상적으로 발달하여, 평범한 사람보다 월등히 적은 호흡으로도 오랫동안 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불이 번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게다가 이 화기는 평범한 화기가 아니라 무극에 이른 초고수가 내뿜는 고온의 화기였다.
공기를 태우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지소현은 순간적으로 ‘진짜 내 목숨을 앗아 갈 생각인가?’라는 생각마저 했다.
‘그럴 리가 없어.’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소현은 연호정을 증오하지 않았다. 이렇게 직접 자신을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하물며 그는 스승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가 정히 안 되면, 정말 자신이 죽는 게 나았다.
‘해 보고 안 되면 죽는 거다. 게다가 연 성주는 어떻게든 날 살려서 데려가려고 할 거야. 그렇다는 건…….’
지소현의 눈이 번뜩였다.
‘이 화재가 상대를 압박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나의 안전까지도 보장할 수 있다는 뜻.’
강호 경험이 거의 없지만, 무종을 넘어서며 지소현의 타고난 배포와 차분함이 되살아났다.
일말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지소현은 확신했다. 자신이 안전하리라는 걸. 적어도 연호정이 납치범에게 죽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연 성주는 나를 신경 쓰느라 제 실력을 다 낼 수 없을 테니까.’
상황에 휩쓸리는 게 아닌, 상황을 주도하는 자가 되어야만 했다.
‘외기(外氣)를……!’
지소현은 이를 악물고 외기를 끌어들였다.
극소량의 외기가 손바닥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그녀는 양손이 통째로 불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현재 외부에서 가장 강렬한 기운이 화기인데, 자신의 내공심법과 맞질 않아서 입구부터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도 한다. 할 수 있어.’
지소현이 눈을 감았다.
‘음화제무는 깨달음의 신공이야. 어느 하나의 기질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이니만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화기도, 수기도 몸에 담아 둘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지소현이 스스로 자유를 찾기 위해 애를 쓰는 사이.
두 고수의 싸움은 점입가경으로 접어들었다.
콰쾅! 퍼어어엉!
화염과 함께 회전하며 쏘아진 붕산규장이 연호정의 머리를 노렸다.
안 그래도 강한 장력에 화기까지 담겼다. 사방에 불을 붙인 건 연호정이었지만, 통제를 벗어난 화염을 상대도 이용할 수 있다면 그 역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호정은 화기 자체를 걱정하진 않았다.
퍼어엉!
수직으로 찍어 내리는 흑룡부 일격에 붕산규장의 장력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 수면 바로 밑에서 헤엄치는 뱀처럼 은밀하게 접근한 사우가 열황신조의 육사난영(六蛇亂影)을 펼쳤다.
파바바바바박!
비음쌍조가 미친 듯이 움직이며 연호정의 전신을 노렸다.
사정없이 상대를 찢어발기는 난격술이었다. 얼핏 보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하지만, 섬세한 투로와 사나운 경풍이 난무하는 위력적인 초식이었다.
쩌저저정! 티이잉! 서걱!
창대를 짧게 잡은 광룡부를 살짝씩 움직여 비음쌍조를 막아 갔지만, 휘몰아치는 경풍이 너무 날카로워서 결국 어깨를 얕게 베였다.
그 순간, 사우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이 공격에 베인다고?’
찰나지간 본능과 이성이 미친 듯이 갈등을 일으켰다.
그 싸움의 승자는 이성이었다.
‘물러난다.’
그때, 연호정의 발밑으로 전파된 황룡목기(黃龍木氣)가 사우의 등 뒤에서 폭발했다.
퍼어어어어엉! 화르르르륵!
“큭!”
느닷없이 폭발한 화경(火勁)에 사우는 재빨리 측방으로 몸을 날렸다.
‘기공! 어떻게?!’
워낙 긴박한 순간이라 땅을 통과하여 솟구친 목기의 흐름을 놓친 그였다.
이것이 사신무의 기공법이었다. 사방 천지가 화염으로 가득한 곳에서 원하는 위치로 목기를 보내 폭발시키는 수법은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수법과 유사하면서도 훨씬 섬세한 내공 운용이 필요했다.
목생화(木生火)의 이치로 터트린 폭경(爆勁)이었다. 그 위력은 사우가 충격을 받을 정도로 엄청났다.
번쩍!
사우가 과격하게 좌수를 휘둘렀다.
비스듬하게 호선을 그린 조법 참격, 화염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세 줄기 빛이 연호정을 향해 날아왔다. 열황신조의 용황참(龍恍斬)이었다.
연호정이 흑룡부를 연달아 세 번 휘둘렀다. 광룡부보다 훨씬 더 빠른, 그야말로 벼락과도 같은 속도였다.
쩌저정! 콰아앙!
호조요란(虎爪搖亂)을 연달아 세 번 펼쳐 삽시간에 용황참을 깨부순 연호정이 다시 광룡부를 휘둘렀다. 호왕구벽세, 호미진산의 강력한 일타였다.
쩌어어어어엉!!
사우의 두 발이 땅을 뒤집으며 밀려났다.
처음으로 광룡부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막았다. 비음쌍조의 날 부분을 교차해 막으니, 그의 몸이 한없이 밀려 나갔다.
‘괴력이다!’
이건 병장기의 무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상대의 상식을 벗어난 완력을 칭찬할 것도 아니었다.
이건 철저한 내공 활용의 문제였다. 마치 도끼날에 천근추의 수법을 섞어 놓은 것처럼 일격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사우의 입에서 처음으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압!!”
우렁찬 소리와 함께 극한까지 치솟은 쇄음진기(碎淫眞氣)가 강한 반탄력을 일으켰다.
터어어엉!
그 묵직한 광룡부가 뒤로 확 튕겨 나갔다.
대단한 힘, 놀라운 반탄력이었다. 연호정의 자세가 흐트러진 그 순간을 노리고 돌진하기 시작한 사우의 몸뚱이 역시 놀라운 내구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쿵!
익숙한 진각.
굳이 근접전을 펼치지 않고, 돌진하던 힘을 다 끌어모아 진각을 구사했다.
튕겨 나간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몸이 뒤틀어져서 사우의 공격을 보지 못했지만, 상대가 어떤 수법을 썼는지 곧장 깨달았다.
‘무형환사권.’
우우우우웅!!
엄청난 공명음과 함께 날아오는 권풍.
순간 사우의 눈이 흔들렸다.
‘이럴 수가!’
쏘아진 권풍이 시뻘건 화염을 두른 채 상대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고 기세도 죽인 기공술. 비록 상대가 무시무시한 반사 신경으로 다 피해 냈지만, 이런 상황에서 펼친 권풍까지 피하기란 지난한 일일 것이다.
한데 권풍에 화기가 실려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물론 기세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연호정의 등 뒤로 거대한 성벽이 치솟았다.
황금빛 수기의 성벽, 북천십이벽의 수신대성(水神大城)이었다.
콰아앙! 치이이익!
화기에 물든 권풍은 수신대성에 막혀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그라졌다.
그제야 사우는 깨달았다. 상대가 숲 전체를 불태운 이유를.
‘무형환사권이 막혔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아서 위험한 권법인데, 그 기공에 색과 기척이 생겼다.
하물며 화기로 물들었기 때문에 저 정체불명의 수기공(水氣功) 앞에서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있는 대로 힘을 끌어모아 내쳐도 저 수기 가득한 진기의 방패를 뚫을 자신이 없었다.
‘내 수법 하나를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화기 특유의 가벼움과 전이성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상대는 거기까지 염두에 두고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사우는 상대의 기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있는 지식을 실전에 활용하는 능력도 대단히 뛰어난 게 분명했다.
‘이거 정말 흥분되는군.’
영귀수들은 지옥 같은 훈련과 헤아릴 수 없는 사선을 돌파한 자들이다. 그렇게 훈련된 영귀수들은 하나같이 포기를 모르는 사냥꾼이 된다.
그리고 그는 영귀수의 총대장이었다. 사음교가 보유한 사냥꾼 중 가장 집요하고 가장 강한 사람이 그였다.
‘이 정도로 어려운 사냥감이 또 있었던가.’
지닌바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잡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맹수.
오히려 사냥꾼의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을 만큼 위험천만한 맹수였지만, 사냥 그 자체에 중독된 사냥꾼에게는 그조차도 흥분 요소가 된다.
‘이놈, 진짜로 잡아 주마.’
죽여야 하는 상대가 사냥해야 할 상대로 변했다.
결과는 변함이 없지만, 사우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철저하게 실력으로 상대를 죽이는 무사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냥감을 잡는 기술자가 된 것이다.
파바바바박!
열황신조의 공력이 사방팔방으로 쏟아졌다.
놀랍게도 그 대상은 연호정이 아닌 불타오르는 나무들이었다.
우르릉! 콰르르르릉!!
수많은 나무가 잘리고 부서져 쓰러졌다. 타오르는 불꽃이 쪼개지고 합쳐지길 반복하며 훅! 하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화염 속으로 몸을 숨긴 사우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붉게 타오르던 연호정의 동공이 시커멓게 변했다.
화아아아악!
전신을 가득 채운 황룡수기가 주변의 화기를 빠르게 잠재우기 시작했다.
파아아앙!
불바다 속을 단숨에 질주하는 연호정.
제아무리 그라도 이렇게 뜨거운 불 속에서 멀쩡할 수는 없었다. 황룡화기를 두른다면 아무 이상이 없겠지만, 그리되면 오히려 숲을 더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황룡수기로 화기를 줄이고 습도를 상승케 한 후, 북천십이벽의 절대적인 방어력으로 몸을 보호한 그는 순식간에 지소현의 앞에 도달했다.
화염 속에서 암살자처럼, 혹은 사냥꾼처럼 기도를 숨기고 있던 사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아차!’
무인이 사냥꾼으로 변한 그 순간.
상대 역시 무인에서 구출대가 되었다.
‘이놈이!’
사우는 재차 깨달았다. 상대가 여러 경우의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무인으로서 싸웠다면, 이 좋은 환경에서 손발을 잘라 가며 압박해 기어이 쓰러트리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사냥꾼으로 돌변하면, 그때부터는 생사결이 뒷전이 된다.
놈은 자신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무공만 아는 게 아니라 심리까지 꿰뚫어 보았다. 그건 그냥 자신에 대해서 다 아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처럼, 맹수를 잡기 위해 상부의 명령마저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사우의 평정심이 무너졌다.
“이놈!!”
콰아아앙!
붕산규장으로 나무와 불꽃을 밀어 낸 사우가 연호정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늦었다.
사우가 제아무리 빨라도 이만치 거리가 벌어져 버린 이상 연호정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연호정은 지소현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지소현의 눈이 커졌다.
“연……!”
파아아아악!
순식간에 지소현을 낚아챈 연호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흑룡부를 날렸다.
불안정한 상단전의 신기를 죄다 끌어모은, 두 번은 쓰기 어려운 광룡공의 광룡섬이었다.
번쩍! 콰아앙!
어검의 비술로 날아간 흑룡부가 비음쌍조에 부딪혀 어딘가로 날아갔다.
울컥!
연호정이 피를 토해 냈다. 하얗게 질린 안색과 충혈된 눈이 보통 심각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괜찮아.’
일대일 승부로 지난 회포를 풀든,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지소현을 구출하든.
어떤 선택이라도 그에게는 나쁠 게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정도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황룡수기로 지소현까지 화기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 준 연호정이 순식간에 숲을 벗어났다.
숲을 벗어난 연호정의 눈에 강물이 보였다.
‘이 차전은 여기다!’
펑!
장력으로 강물을 뒤집은 연호정이 지소현과 함께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