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72)
흑백무제 1172화(1172/1200)
1172화. 신(神)과 마(魔), 그리고 악(惡) (4)
사필합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놈 봐라?’
검사에게 생명과도 같은 검을 던진다.
초고수들의 어검술도 아니고, 그저 비검술(飛劍術)에 불과할 뿐이었다. 물론 그 위력이 보통 대단한 게 아니었지만, 결국 상대는 맨손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사필합은 강량을 더 위험한 사람이라고 인식했다.
‘싸움의 틀이 바뀌었다.’
대륙의 무림인들은 물론 삼교 무사들 대부분도 자신의 병기를 쉽게 내던지지 않는다. 그건 그냥 무사들의 본능이었다.
하지만 영귀수들은 다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팔 하나도 미련 없이 잘라 내는 독종들이었다.
발경으로 대지를 부수고 일부러 숨게 만든 후 비검술로 적 두 명을 해치운 강량의 술수는 전통적인 무사가 아닌 영귀수들의 살법에 가까웠다.
파박!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도 영귀수 하나가 동료를 죽인 철검을 주웠다.
그와 동시에 남은 영귀수들이 재차 장력을 뿜었다.
콰콰쾅!
폭음을 일으키며 솟구친 흙먼지가 강량의 육신을 또 한 번 감추었다.
사필합의 눈이 번뜩였다.
‘다치지 않았군.’
자욱한 흙먼지 속, 희미한 검기들이 바퀴처럼 돌아가는 게 보였다.
‘기지는 좋았어. 하지만 넌 알아야 한다. 그 한 번의 수법으로 우리는 당황하지 않아. 오히려 검을 잃었으니, 이 승부는 끝났다.’
파아아악!
장력 폭발 후 돌진한 사필합이 삽시간에 흙먼지 속으로 뛰어들었다.
곧장 단검을 휘두르려던 사필합은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꼈다.
‘없다?!’
분명 놈의 인기척을 읽었는데도 흙먼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여섯 개의 검기뿐.
검기를 다루는 주인 없이 진기만이 그 자리에 박혀 돌아간다. 이 기술이 어떤 깨달음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는 사필합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번쩍!
여섯 개의 검기가 한순간 사방으로 흩어졌다.
“물러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허공으로 몸을 날리는 사필합.
벼락처럼 움직이던 여섯 개의 검기가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해 사필합에게로 날아갔다.
손을 쓰지 않고 진기를 조절하는 신기(神技)다. 사필합은 상대의 깨달음과 기술에 다급함보다 감탄을 느꼈지만, 동시에 전투가 지극히 위험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퍼퍼퍼펑!
사필합이 몸을 숨긴 나무 몇 그루가 여섯 검기에 갈려 나갔다. 대단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약해졌다.’
회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나아가, 그는 여섯 개의 검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힘을 잃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제는 깨부술 수 있다. 사필합의 단검이 수십 개의 검광을 피워 올렸다.
파바바바바박!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라지는 육검기.
그 순간, 사필합은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단검의 우악스러운 검기에 부서지기 전에 상대가 먼저 진기를 거두어 흩어지게 하였다. 부딪혀 깨져 버리는 순간 주인에게도 충격이 가기 때문이었다.
기공의 완급 조절이 대단히 뛰어났다. 나아가 육검기를 정확한 순간에 제거했다는 건, 상대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단 몇 합만으로 상대의 상태를 모조리 꿰뚫어 보는 눈. 사필합은 무공보다 안목이 더 대단했다.
훅!
넓게 퍼트린 장력으로 흙먼지를 모조리 걷어 낸 사필합의 시야에 수하들이 보였다.
‘어디 갔지?!’
시야는 물론 기감에도 잡히는 게 없었다.
‘기가 막히는군.’
영귀수들은 초일류의 살수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똑같은 은신술을 펼쳤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 놈은 정통 검사다. 은신술을 펼친 게 아니라 기묘한 술수로 우리를 속이고 있을 뿐.’
파아앙!
순식간에 수하들 옆으로 다가간 사필합이 사방으로 진기를 퍼트렸다.
‘어디로 숨었느냐.’
퍼퍼퍼펑!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영귀수들이 제각기 독탄을 터트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투의 흐름을 순식간에 읽어 내는 능력. 사필합만큼이나 눈치가 빠른 수하들이었다.
‘대체 어디로 갔느냐고!’
파바바박!
독탄이 터진 즉시 사방으로 무형의 은사(隱絲)를 둘러친다. 섣불리 접근하면 살과 뼈가 찢겨 날아갈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완벽한 방어막을 둘러친 채, 사라져 버린 강량의 공세를 기다렸다.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강량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인기척조차 없었다.
‘이상한걸.’
처음에는 에워싸 공격했던 대상에게 반대로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전문적으로 은신술을 배우지 않더라도 초절정고수 쯤 되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기척을 숨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 암살공을 배운 그들의 눈을 속이지는 못한다. 설령 수하들은 속일 수 있어도, 대장인 자신의 눈은 못 속일 것이다.
‘왜 시선이 느껴지지 않지?’
숱한 생사전을 벌이다 보면 기척이 없어도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물며 이렇게 긴장하며 만반의 준비를 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시선이라고 표현했지만, 기실 그것은 살의(殺意)의 일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마……?’
생각을 거듭하던 사필합은 문득, 저 멀리 고성 쪽으로 감각을 확대했다.
쿠궁. 펑!
절대 들리지 않을 거리지만, 사필합의 엄청난 감각은 떼어 보낸 전력이 한창 싸움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필합의 눈이 커졌다.
‘이놈이?!’
설마 이곳에서 진즉 빠져나가, 저쪽의 싸움에 힘을 보태고 있었단 말인가?
‘빌어먹을!’
쿵!
진각으로 은밀한 진기를 퍼트려 일대를 다시 한번 훑어본 사필합은 결정을 내렸다.
“전원 사망진(死亡陣)을 해체한다! 놈이 고성 쪽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시 뒤따라갈 것이다!”
파바박!
순식간에 무형은사를 회수한 그들이 곧장 고성으로 향했다.
고성에 가까워질수록 폭음이 강렬하게 들렸다. 충격파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실로 살벌한 전투를 벌이는 듯했다.
‘없어도 상관없어. 각개 격파가 가능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만약 정말로 놈이 저 전장으로 향했다면, 최대한 빨리 없애 버리고 총대장님과 합류한다.’
사필합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사망진 개천식(開天式)으로 이동한다. 합류 즉시 그 도객을……!”
그때였다.
찰나지간, 사필합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왜 숫자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지?
그 생각이 든 순간, 사필합은 뒤따르는 수하 중 마지막 줄에서 달려오고 있는 녀석을 보았다.
영귀수 정복으로 얼굴이 가려졌지만, 가슴 부위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날병기에 꿰뚫린 흔적이었다.
사필합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
그 순간, 죽인 영귀수의 피풍의를 뒤집어쓴 채 따라오던 강량이 양팔을 휘둘렀다.
퍼버버버벅!
팔이 곧 검이다. 수검(手劍)으로 화한 두 자루 검이 무시무시한 검기를 뿌리며 순식간에 영귀수 십여 명의 몸뚱이를 절단했다.
그중에는 강량의 검을 들고 달리던 놈도 있었다. 그는 곧장 자신의 검을 회수했다.
“놈이다!”
퍼퍼퍼펑!
죽지 않은 영귀수 몇 명이 강량을 향해 장력을 발사했지만, 이미 그는 낮은 자세로 돌진하며 철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귀수 특유의 살법을 구사하기에는 지나치게 가까웠고, 당연히 피하거나 막을 수도 없었다.
번쩍! 번쩍!
갈고리처럼 휘어진 시커먼 검기에 남은 영귀수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놈!”
기어이 고함을 지른 사필합이 강량을 향해 돌진했다.
쩌어어엉!
강량이 속수무책으로 뒤로 밀려 나갔다.
사필합은 분노한 와중에도 상대의 상태를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었다.
‘내공 소모가 극심하군.’
어떻게 자신들의 눈을 속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검기 여섯 개를 운용한 것만으로도 내공 소모가 엄청났을 것이다. 거기에 기습으로 수하들을 죽이느라 내공 풍부한 검기를 몇 번이나 펼쳤으니 지칠 법도 했다.
사필합의 좌수가 휘둘러졌다.
번쩍!
소매 안에서 날아간 무형의 은사 다발이 강량의 사지를 노렸다.
강량이 소매를 비틀었다.
철검이 작은 원을 그리며 시커먼 검기를 원형으로 뿌렸다.
파바박!
그 많은 은사가 통째로 절단 나서 허공에 흩뿌려졌다.
사필합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은사로 사지를 휘감아 잘라 냈다면 좋았겠지만, 안 그래도 지친 놈이 내공을 더 쓰게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총력을 쏟아부을 때였다. 사필합의 발밑에서 무형의 진기가 동심원을 그렸다.
훅!
소리 없이, 그러나 폭발적으로 날아가 강량의 코앞까지 전진한 사필합이 미친 듯이 단검을 휘둘렀다.
지친 상대로서는 절대 막지 못할 공격이었다. 사필합은 이 부분만큼은 확신했다.
그때, 강량의 좌수가 기묘하게 움직였다.
마치 뼈 없는 뱀처럼 꿈틀거리던 그의 왼팔이 순식간에 사필합의 오른팔을 휘감았다.
촤악!
단검에 베인 팔뚝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창졸지간 오른팔이 봉쇄당한 사필합은 더 이상 단검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
어떤 수법인지 해석할 때가 아니었다. 사필합은 곧장 강량의 복부를 향해 발길질을 가했다.
퍼어억!
강량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순간 사필합은 속으로 욕설을 뱉었다. 강량이 뱉은 피가 눈과 코를 가득 적셨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시야도 봉쇄당했다. 그런 와중에 상대의 검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오른팔이 묶인 상태에서는 절대 막지 못할 쾌검이 펼쳐질 것이다.
사필합의 판단은 냉정하다 못해 냉혹했다.
우둑!
왼손 수도로 오른팔 상박을 내리쳐 통째로 뜯어내 버린 그가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고통은 없었다. 워낙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
사필합은 깨달았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후방이 아닌 측면으로 회피했어야 했다. 하지만 시야가 막히자 몸이 저절로 뒤로 움직였다. 기감으로 주위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주 약간이나마 시간이 필요했기에, 몸이 알아서 뒤로 물러나 버린 것이다.
‘더 물러나야……!’
퍼억!
숨이 턱 막힌다.
미친 듯이 뒤로 물러나던 사필합은 결국 힘을 잃고 쓰러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느새 그의 가슴에는 철검이 박혀 있었다.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한 사필합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저 멀리서 강량이 헐떡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비검술을 날린 그 자세, 그대로였다.
‘그랬군.’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얼굴에 피를 뒤집어쓰자마자 뒤로 물러날 걸 예측했군.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검을 날릴 수는 없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예측 능력이다.
하지만 감탄 뒤로 억울함과 분노도 일었다.
“쿨럭! 우웨에엑!”
몇 번이나 각혈한 사필합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비열한 놈이…… 눈에다가 피를 뿌려?!”
“이기면 장땡이지. 너희도 그렇게 훈련받았잖아?”
물론 그렇다. 하지만 적의 얼굴에 피를 뿌리거나 흙더미를 던지는 등의 치사한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하긴, 지금 와서야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필합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더러운 대륙 놈들.”
“내가 보기엔 너희가 열 배는 더 추잡해. 하지만 뭐…….”
스륵.
철검을 뽑아 든 강량이 피식 웃었다.
“인정한다. 내 방식이 더러웠다는 거. 원래 태생이 그쪽이라, 네놈이 이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