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73)
흑백무제 1173화(1173/1200)
1173화. 신(神)과 마(魔), 그리고 악(惡) (5)
“허억! 허억!”
살아남은 영귀수는 기가 막히는 것을 느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이…….”
그 순간, 공간이 요동쳤다.
퍼어억!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그의 머리통이 산산조각이 났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했던 진양은 순간 주춤했다.
“후우.”
고성 성벽 앞에서 숨을 몰아쉬는 하은교의 얼굴은 창백해진 걸 넘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진양이 서둘러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네.”
제자를 구하러 온 길이었다. 상황이 이러해서 전투 보조의 역할을 맡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적을 해치워야 제자에게로 갈 수 있다.
그녀가 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자네는 어떤가?”
“괜찮습니다.”
물론 아주 괜찮지는 않았다.
영귀수들의 살법은 수준이 다른 초절정고수에게도 위협적일 만큼 대단한 데가 있었다. 아닌 말로 진양 역시 강호에서 구를 만큼 굴러 본 고수라서 다행이었지, 경험이 많지 않았다면 팔 하나가 날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을 전투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열양공을 익혔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어지간한 독은 굳이 해독할 필요조차 없었다.
“강 신장 쪽으로 가 보게. 그를 돕고 돌아오면 되네. 나는 일단 몸조리를 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강량이 달려왔다.
“형님!”
“너 이 자식, 벌써 끝났냐?”
진양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비쳤다. 강량의 기도 역시 불안정했지만, 그래도 어디 한구석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강량이 곧장 하은교 곁으로 다가왔다.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하은교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극수가 되어서 후배들에게 걱정이나 끼치다니, 정말이지 이만저만 민폐가 아니었다.
“나는 괜찮네. 다만 일각만 주게.”
“그러시지요.”
마음 같아선 당장 날아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몸으로 연호정의 뒤를 쫓아가 봤자 짐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현실은 현실이다. 하은교는 연호정의 태도에서 배운 바가 있었다.
그렇게 하은교가 운공에 들어가자, 강량 역시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힘들었지?”
“진짜 위험했소. 더럽게 안 싸웠으면 여기가 내 묫자리가 되었을 거요.”
“어떻게 싸웠는지 훤히 보인다, 보여.”
명문이라고는 하지만 강량은 흑도 문파의 적통이었다. 게다가 연호정과 다니며 생사결에서 방법론을 따지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지도 배웠고, 체득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진양은 흑도의 밑바닥에서도 처절하게 구르며 성장한 천재였다. 두 사람 다 품위 따위 벗어던지는 싸움에는 이골이 났다고 할 수 있었다.
“너도 잠시나마 운공해라. 기도가 엄청 불안정하다.”
“괜찮소. 괜히 운공에 들어갔다가 도중에 끊으면 몸이 더 힘들 거요.”
“그래, 그럼 좀 쉬어.”
몇 번이나 호흡을 조절하며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던 강량은 문득 생각난 바가 있어 북쪽을 바라보았다.
“형님 쪽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그 양반이야 뭐 워낙에 걱정이 안 되는 인간 아니냐.”
“평소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지금 연 형님, 여기 하 선배님만큼이나 지친 상태 아니오?”
“그래도 괜찮을 거다.”
진양의 눈이 반짝였다.
“너나 나보다 더 더럽게 싸울 수 있는 양반이 대형이다. 괜히 흑도 무림 총수겠냐?”
* * *
강에 빠지는 순간 지소현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 성주!’
지소현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나 지금 내공 없어요!’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한 줄기 금빛 진기가 지소현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지소현은 깜짝 놀랐다. 여전히 숨을 멈추고 있었지만, 왠지 몸 상태가 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수기(水氣)!’
그녀는 연호정에게서 흘러나온 이 비할 데 없이 성스럽고 밀도 높은 힘이 수기를 기반으로 한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말도 안 돼. 수기로 몸을 보해도 이렇게까지 편할 수는 없는데?’
마치 몸에 공기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내공 없이 맨몸으로도 일각은 넘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연호정은 그녀를 물속에 처박아 두기 위해 황룡수기를 건넨 게 아니었다.
[사람의 육신은 수기(水氣)로 가득 차 있소. 그리고 수기는 화기보다 무겁지만 스며들고 빠져나가는 것이 자유로운 기 중 하나요.]지소현의 귀가 움찔했다. 물속에서 들리는 전음, 진동이 유독 더 강렬해서 머리가 다 울리는 것 같았다.
[수기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시오. 외부 환경은 물론 그대의 육신에도 내 수기가 가득 차 있으니, 수기가 오가는 흐름을 잘 깨친다면 봉쇄된 점혈에 머물고 있는 놈의 진기를 수기처럼 배출할 수도, 빨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오.]지소현의 눈이 부릅떠졌다.
연호정의 전음은 깨달음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무슨 싸움이 벌어지든 스스로에게 집중하시오.]쿠르르릉!
지소현을 멀찍이 밀어 낸 연호정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물속에서 움직이는데도 거의 일류고수의 신법 속도가 나온다. 그 빠른 속도에 물이 사방으로 충격파를 일으켰다.
퍼어엉!
수면에서 폭음이 울렸다.
연호정의 두 눈이 완전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왔군.’
저 멀리 수면을 뚫고 내려온 사우가 보였다.
놀랍게도 사우의 움직임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천하에 산재한 거의 모든 무공을 익힌다는 영귀수였지만, 설마하니 수공(水功)에도 일가견이 있을 줄은 몰랐다.
‘역시 대단해. 하지만…….’
연호정이 광룡부를 위로 던졌다.
쿠르릉! 퍼어어엉!
물거품을 일으키며 쏘아진 광룡부가 수면을 폭발시키며 날아가 지면에 떨어졌다.
‘넌 잘못 들어왔어.’
파아악!
황룡진기가 폭발하며 연호정의 몸이 사우의 근처까지 날아갔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는 새하얀 백룡부가 들려 있었다.
우웅!
사우의 두 눈에서 불그스름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쇄음진기를 극한까지 일으킨 것이다.
쿠르릉!!
날아오는 연호정을 향해 붕산규장을 펼치니, 안 그래도 밀도가 높은 수중의 압력이 확 올라갔다.
그때, 연호정이 좌수를 내밀었다.
황룡수기를 이용한 현무공, 북천십이벽의 와선귀장(渦旋龜掌)이었다.
푸르르르륵!!
비틀리듯 회전하며 전진하는 와선의 장력이 붕산규장의 힘을 손쉽게 흐트러트리며 사우에게로 전진했다.
쿵!
사우의 몸이 회전하며 뒤로 밀려 나갔다.
뛰어난 수공을 익혔더라도 땅 위의 싸움이 익숙한 그였다. 마땅히 지지할 곳이 없는 수중에서 공격을 당하면 대책 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 그건 무극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쿠릉!
연호정이 또 한 번 쏘아지듯 나아갔다.
사아악!
미친 듯이 회전하며 물러나던 사우가 양팔을 휘둘렀다.
순간 여섯 줄기의 광채가 물거품과 함께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 속도가 와선귀장보다 더 빨랐다.
수중에서 펼쳐진 열황신조였다. 상대가 수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자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물속으로 따라 들어온 건, 상대를 죽일 방법이 분명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칼날보다도 더 면적이 좁은 열황신조의 예기.
연호정이 백룡부를 횡으로 휘둘렀다.
사방에서 짓누르는 물이 백룡부를 따라 묵직하게 움직이며 거대한 육각의 방패를 만들었다.
퍼퍼퍼펑!!
육각 방패에 맞은 열황신조의 경력이 폭발을 일으키며 수면을 미친 듯이 뒤흔들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한 반탄력을 생성한 육각의 현무공은 사우의 몸을 더 빠르게 튕겨 냈고,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으로 내장까지 짓눌렀다.
수중에서 펼쳐진 현무공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력을 발했다. 지상에서 펼쳐졌을 땐 수기 특유의 풍성하고 전염성 강한 힘으로 방어에만 치중되었지만, 수기 그 자체로 가득한 수중에선 펼치는 순간 공방 일체가 되어 버린다.
‘빌어먹을!’
수기를 근간으로 한 신공절학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연호정의 현무공은 수공을 익힌 사우로서는 이해 불가의 능력이었다. 아무리 수중이라 한들, 천하에 어떤 수공도 이처럼 무시무시한 장악력을 보여 줄 수는 없다.
‘역시 수중에선 불리하다. 열황신조의 살상력을 믿었건만, 이렇게까지 안 통할 줄은 몰랐어.’
이제는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사우는 물속에서도 지소현의 은밀한 기척을 느꼈다.
‘어떻게든 데려가야겠지만.’
이 상태로는 목표물을 잃을 것이다. 그것은 곧 임무에 실패한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임무보다도 더 중요해진 사냥꾼으로서의 자존심도 무너진다. 한번 노린 사냥감을 잡기 위해 몇 달을 인내하는 사냥꾼처럼, 사우 역시 어떻게든 연호정을 잡고 싶었다.
‘별수 없지.’
사우는 판단을 내렸다.
‘장기전으로 가야겠다.’
그의 두 발이 수면을 박찼다.
쿠르르릉!!
혼신의 힘을 다한 신법으로 삽시간에 수면을 뚫는 그였다.
그때였다.
퍼어어어엉!!
엄청난 진동에 또 한 번 수면이 폭발하며, 한 여인이 강물 밖으로 튀어나왔다.
바로 지소현이었다. 연호정의 조언에 따라 수기를 조절한 그녀가, 비로소 사우의 점혈 봉쇄를 푼 것이다.
사우는 깜짝 놀랐다.
“네년이 어떻게?!”
지소현은 대답해 줄 새가 없었다. 상대는 무극수다. 말 한마디 뱉는 그 순간에 기습하여 목숨을 앗아 갈 능력을 지닌 무신이었다.
그녀가 양손을 힘껏 부딪쳤다.
그간의 답답함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생각인지, 음화제무신공의 힘이 극한까지 담긴 일격이었다.
쩌어어어어어엉!!
동심원을 그리며 퍼진 무형의 암공파가 사방팔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음속으로 나아가는 힘에 진기가 담기니 천하의 사우라도 멀쩡할 수가 없다.
“크윽!”
쇄음진기로 몸을 보호했지만, 어느새 그의 몸은 오 장이나 뒤로 물러나 있었다. 제대로 막지 않았다면 단박에 내상을 입었을 만큼 막강한 무공이었다.
‘이런 미친!’
이것이 바로 음공(音功)의 힘이었다. 제때 준비하지 않으면 무극수라도 다칠 수 있는, 어떤 의미로는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무공이었다.
파아아앙!
하지만 하은교 본인이 아닌 바에야 작정하고 힘을 발산하는 사우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벼락처럼 돌진한 사우가 순식간에 지소현의 후방을 점했다. 재차 점혈을 가할 생각인 것이다.
그때였다.
퍼어엉!
수면을 뚫고 쏘아진 교룡쇄가 정확하게 사우의 손을 노렸다.
퍼억!
“크윽!”
순간적으로 손목을 돌려 비음조의 칼날 부분으로 막았지만, 손에서 팔뚝까지 올라온 엄청난 충격에 일시적으로 한 팔이 마비되어 버렸다.
퍼어어엉!
교룡쇄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연호정이 수면을 부수고 튀어나와 혈익휘천을 펼쳤다.
파아아악!
엄청난 열기에 희뿌연 수증기가 올라오고, 수증기를 매단 채 질주하는 연호정 뒤로 새하얀 습기가 요동을 친다.
단숨에 사우의 앞까지 도달한 연호정.
사우의 반응은 눈이 부셨다.
쾅!
그 짧은 순간 무형환사권을 펼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형의 권풍이 연호정의 복부를 후려친 순간, 연호정의 몸이 다시 수면 쪽으로 날아갔다.
촤르르르륵!
“이 새끼가!”
당연히 연호정도 그냥 날아가진 않았다. 황룡목기로 생명을 얻은 듯 한층 질겨진 교룡쇄가 단숨에 사우의 목을 휘감았다.
“컥!”
사우의 몸이 땅을 굴렀다. 단단하게 고정된 교룡쇄가 숨통을 조여 얼굴이 검푸르게 변했다.
풍덩!
다시 강물로 들어간 연호정과 함께 사우의 몸도 수면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철컹! 철컹!
한 손으로 교룡쇄를 뜯어 버리려 했지만, 절정의 쇄음진기로도 수생목(水生木), 수기의 힘을 받아 막강해진 황룡목기로 가득한 교룡쇄를 뜯어낼 수가 없었다.
‘안 돼!’
포기한 채 땅에 비음조를 박았지만, 그 작은 칼날은 그의 몸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
사우의 눈이 점점 뒤로 돌아갔다.
‘안 돼!!’
풍덩!
다시 한번 강물 속으로 사라진 두 명의 무극수.
방금처럼 두 명 모두 멀쩡히 올라오지는 못할 입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