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76)
흑백무제 1176화(1176/1200)
1176화. 사천대란(四川大亂) (1)
“뭐라고?”
당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정보원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일 차로 북부 전선에서 그들을 맞이하러 간 세 개 문파의 전력이 그대로 증발했습니다. 적의 피해에 관해서는 아직 명확한 정보가 없으나, 거의 피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미친!”
당윤이 이를 악물었다.
함께 전선을 펼쳐야 할 중소 문파의 전력이 세 곳이나 증발했다는 건 결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었다.
‘공(功)을 얻기 위해 먼저 움직인 것이로구나. 이렇게 멍청할 수가.’
병력을 파견한 호검문, 용창가, 향어문 세 곳은 서로를 견제하는 사이였다. 당연히 사이가 좋을 수 없었고, 수십 년 전에는 거의 전쟁을 벌일 정도였다.
그들 세 문파가 먼저 전선에 병력을 투입한 것은, 전쟁을 통해 확고한 공을 세워 경쟁 상대들을 완전히 제압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당연히 그건 멍청한 짓이었다. 상대는 어느 중소 문파에서 파견한 얼치기 병력이 아니라, 중원 전체를 위협하는 삼교의 일파였다.
당가와 청성, 아미도 긴장한 채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판에 중소 문파 세 개 병력으로 어찌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걸 무시하고 돌격했으니 전멸은 필연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 버린 일, 안타까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당윤이 빠르게 물었다.
“적의 전력에 관한 정보도 아직인가?”
병력의 수도 수지만, 그들의 힘으로 어디까지 가능한가가 중요했다. 중소 문파라 해도 역사가 이백 년이 넘는 세 문파의 병력을 몰살시켰으니, 최소한 대문파급의 저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직 모호합니다만, 최소 구파급 대문파 이상의 전력이라고 추정 중입니다.”
“그렇겠지.”
대답은 그리했지만, 당윤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힘을 얼마나 쌓아 두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만한 전력을 꽁꽁 싸매 두고도 지금껏 제대로 통제하고 있었단 말인가?’
종교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오직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광신도라면, 쌓인 힘이 엄청나도 신의 명령 없이는 그 힘을 풀어 낼 생각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설령 종교라 해도 그만한 통제력을 보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삼교라는 난적이 대단하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묘한 보고는 있었습니다.”
“묘한 보고?”
정보원이 품에서 잘 접힌 서신을 꺼내 들었다.
“이것은 직접 보고 판단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되지만, 또한 무시해도 좋을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
당윤은 서둘러 서신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보유한 전력에 비해 공격에 능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음. 타격대보다는 호위 부대에 가까운 전술을 구사. 이쪽의 전략적 오판을 유도하기 위함일 가능성도 있음. 그러나 그 경우, 공방 양면에 출중한 전력이라는 의미이기에 훨씬 더 위험함.
당윤의 눈이 번뜩였다.
‘공격에 능하지 않다?’
이쪽의 전략적 오판을 유도키 위함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애초에 사천을 공격하는 행위 자체가 침공이었다. 숫자가 만 단위에 여러 부대로 쪼개져 있다면 모를까, 일천 병력이라면 무리해서 전술을 바꿔 공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즉,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된 부대라는 뜻인데.
‘그런 부대를 파견했다고? 그것도 고작 일천을?’
많은 수였지만, 사천 전체를 공략하기에는 적은 수다. 최소한 그 열 배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일천의 전력이 대단히 뛰어나다면 사천을 초토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공략, 점령과 초토화는 다른 의미야. 단순 공격만 하고 빠질 생각인가?’
그렇다면 굳이 수비 전술이 더 뛰어난 부대를 파견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청성의 병력은?”
“세 문파의 전멸에 전선을 살짝 뒤로 물리고 있습니다. 강경파가 있어 돌진하자는 얘기도 나온 듯합니다만, 지금은 신중해야 한다는 발언이 우세하여 물러난 것 같습니다.”
“좋은 판단이군.”
“그리고 가주님으로부터 따로 연락이 왔습니다.”
“형님께?”
“그렇습니다. 감숙 남부가 워낙 어지러워, 그것만 도와주고 출발했다고 하셨습니다. 사흘 전에 온 연락이니, 지금쯤 사천 동북부 안쪽으로 들어오셨을 겁니다.”
“좋아.”
당윤이 흉갑(胸鉀)을 두들겼다.
“우리 당가 병력도 지금 즉시 북부로 향한다. 한나절이면 도착할 테니,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경거망동하지 말아 달라는 연락을 보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정보원이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또 다른 정보원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급보입니다!”
당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보원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큰일이 터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아미파가 멸문했습니다!”
“뭐, 뭐라고?!”
느닷없는 보고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아미파 본산이 공격당했습니다! 전선으로 보낸 전력을 제외한 모두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장문인을 위시한 장로들과 제자들까지, 단 하나도 남김 없이 전멸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돼!”
당윤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적병이 그곳으로 향했다는 정보도 없었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멸문을 당할 수 있나? 오정보 아닌가?!”
“둘입니다.”
“뭐?”
정보원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아미 본산을 침공한 사람은 둘이며, 그 두 사람 때문에 멸문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순간, 당윤은 놀라움과 분노보다 엄청난 혼란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던 사천의 위기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다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었다.
* * *
아미의 멸문 소식은 당가에도 빠르게 전해졌다. 당윤이 정보를 받은 그 시각, 당형 역시 정보를 받았다.
“…….”
말없이 문서를 내려다보던 당형은 천천히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의 표정과 눈빛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무공의 부작용으로 살이 쪽 빠져 왜소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적어도 그 차분함만큼은 어떤 고수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고상해 보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 누구 있느냐?”
“예, 태상가주님.”
“현재 가주가 어디쯤 도달했다고?”
“정확한 장소는 불명이나, 지금쯤 송반 인근에 다다르셨을 거라 추측됩니다.”
“송반…….”
사천의 북쪽이었다. 그 길을 그대로 내려오면 곧장 북부 전선을 통과할 것이다.
당형은 깨끗한 종이에 글을 적었다. 그리 길지 않은 문장이었고, 그 밑에 가주 직인을 삼각 형태로 세 개나 찍었다.
종이를 말린 그가 서신을 접었다.
“이것을 가주에게 지급으로 전하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주가 전선을 통과하기 전에 전달해야 한다.”
“존명!”
그렇게 사람을 보낸 당형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과연 내 말대로 해 줄지.’
지난 세월, 서로를 찾지 않았던 부자지간은 극적인 화해 후 빠르게 가까워졌다. 지난 세월만큼의 정을 몇 개월 만에 수습하려는 듯, 두 사람의 무의식적인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래서 당형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대단한 인재이고, 얼마나 고집이 센 사람인지.
나아가, 그렇게 고집이 센데도 아비 말이라면 어떻게든 들으려고 애쓸 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부디 내 말대로 해 줬으면 좋겠다만.’
그러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 자신이나 아들이나 노력은 할 만큼 했다. 이제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
아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면 하늘이 이 늙은이를 위해 웃어 주는 것이고, 아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하늘은 누구를 위해서도 웃어 주지 않는 것이 된다.
‘어쩔 수 없지.’
집무실을 나선 당형은 곧장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당형의 거처는 여전히 단출했다. 한때 사천의 주인이라 불리었던 암왕의 거처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만큼 간소하게 지어진 곳이었다.
그 자신이 원해서 그리 만들어진 이 처소에는 기실, 사람들이 모르는 기관진식들이 가득했다. 당장 가주인 당관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처소 안으로 들어온 당형은 책장에 꽂힌 책 몇 권을 뽑아 들었다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쿠르릉.
크지 않은 굉음과 함께 방의 중앙 바닥이 네모나게 꺼지며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드러냈다.
당형은 익숙한 듯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생각보다 길었다. 어지간한 건물 삼 층 높이를 내려가는 듯했다.
계단이 끝나자 작은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를 다 지나니, 꽤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다.
“오랜만이군.”
이 광장은 사천당가의 가주만이 아는 당문비처(唐門秘處)였다. 당대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당연히 당형과 당관 둘뿐이었다.
광장 천장에는 야명주들이 박혀 있었고, 습도를 조절하는 각종 제습석도 곳곳에 걸려 있었다.
벽에는 수많은 암기와 독액이 든 독병, 보자기에 잘 싸인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휘황찬란한 신병(神兵)들도 눈에 띄었다.
당문비처는 만에 하나를 위해 만들어진 안가(安家)의 일종으로, 대대로 가주들은 이곳에 당대의 새로운 지식이나 책들, 그리고 새로이 창조된 독과 암기들을 비치해 두었다. 물론 기존의 유명한 독과 암기도 꽤 많이 비치해 두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당형은 곧장 한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흑색 장포와, 얼핏 보면 존재하는지도 모를 것 같은 투명한 옷과 장갑 등등 몸에 걸치는 것들이 있었다.
‘내 대에 이것을 입게 될 줄이야.’
당형이 상의를 벗었다.
마를 대로 말랐지만, 의외로 잔근육은 잘 발달되어 있었다.
그 위로 투명한 내의를 입고 다시 상의를 걸친 후, 커다란 장포도 걸쳤다.
투명한 내의와 장갑은 유리신의(琉璃神衣)와 유리수(琉璃手)라는 기물로, 초절정고수의 검기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다는 물건이었다.
흑색의 장포는 흑마전포(黑魔戰袍)라 불렸다. 수화기(水火氣)의 침습을 철저하게 막아 내며, 특히 마기(魔氣)의 피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전설상의 장포였다.
당형은 흑마전포 안에 각종 독병을 집어넣었다. 대개가 극독이 아닌 약초를 빻은 약액이었고, 몇몇 독액은 독특한 재료로 만든 것일 뿐 극독이라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손바닥보다 작은 구체 여러 개와 철 막대로 보이는 물건 둘, 그리고 우모침이 빽빽하게 꽂힌 작은 보자기를 소매 안에 넣었다.
그걸로 완성이다. 당가무공의 전능자라 불리는 당형의 완전 무장이었다.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광장을 둘러보던 당형이 미소를 지었다.
“한 벌씩 더 있으니, 다 파괴되어도 괜찮겠지.”
그렇게 광장을 둘러보던 당형이 이내 몸을 돌려 복도로 향했다.
그때였다.
‘…….’
가만히 서서 복도를 보던 당형이 다시 광장으로 가서 소검 한 자루를 가져왔다.
독과 암기의 조종이라 불리는 당가도 검술은 배운다. 전문적으로 배우는 건 아니지만, 무림에서 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그들과의 싸움을 대비하여 직접 연마해 보는 것이다.
당형이 쥐고 온 소검은 당관과 당호, 당윤이 차례로 수련했던 소검이었다.
비처에 둘 만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과거 당형이 파기하고 싶지 않아서 비치해 둔 유일한 소검이었다.
소검을 챙긴 당형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쿠구궁!
당문비처가 다시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날.
당형이 가문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