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84)
흑백무제 1184화(1184/1200)
1184화. 마신(魔神)과 암천(暗天) (3)
십만십방벽이 세워졌는데도 당유광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 갔다.
처음 원통에 들어 있던 침을 다 꽂은 뒤 또다시 원통 하나를 열어 장침을 꺼내는데, 이전 침보다 더 굵고 길었다. 가히 암기로 써도 될 정도였다.
그는 차분하게 십방벽 주변을 거닐며 침을 꽂았다.
엄청난 독기에 호흡을 멈추고 있던 규홍은 문득 당유광을 바라보았다.
‘지금이 기회다.’
규홍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지금도 독에 중독된 것일까? 그건 알 수 없다. 애당초 독에 중독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 알 수 없는 짓을 반복하는 당유광을 해치울 기회가 왔음은 분명했다. 중독이고 뭐고를 떠나,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면 남은 두 사람도 싸워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불충을 용서해 주십시오.’
교주는 이 또한 유희라고 했지만, 모시는 입장에서는 단 한 톨의 위험 요소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저자의 술수가 신체(神體)에 위해를 가할 정도로 악독한 것이라면, 주인을 따르는 종으로서 묵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파아아앙!
규홍이 땅을 박찼다.
십방벽을 돌아 당유광에게 접근하려던 규홍은 순간 속이 메스꺼워지는 걸 느꼈다.
‘지독하구나!’
십방벽의 독벽에서 삼 장 거리나 떨어져 돌아가고 있는데도 독기에 머리가 핑 돌았다.
지독하기로 따지면 마기 역시 독기에 못지않을 텐데도 서슴없이 독력이 침투하고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고 극소량이라 어떻게든 마기로 배출하는 게 가능했지만, 더 가까이 진입하면 혈룡금마공(血龍禁魔功)으로도 중독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거리가 떨어졌는데도 이 정도라면, 독벽에 닿는 순간 내 몸은…….’
치이이익!
쓸데없는 생각을 할 새가 없었다. 더 거리를 벌려 독기를 뽑아낸 그가 다시 멀찍이 돌아 당유광에게로 접근했다.
당유광은 등까지 돌린 채 쪼그려 앉아 침을 꽂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추수하는 농부를 연상케 했다.
규홍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죽어라!’
콰르릉!
내뻗는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권풍이 어느새 거대한 용형(龍形)이 되어 뻗어 나갔다.
혈룡금마공, 혈룡괴마권(血龍壞魔拳)이었다. 광혈교 기공술 중에서 손에 꼽히는 무공으로, 교주지학(敎主之學)을 제외하면 맞상대할 권법이 몇 없다는 초상승의 절학이었다.
하지만.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혈룡의 권경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
규홍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지?’
성마의 눈으로도 혈룡권풍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진기 방벽에 부딪혀 흩어진 것도 아니요, 더 강한 공격으로 박살이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권풍이 사라졌다.
‘어떻게?!’
권풍의 기세를 느꼈을 텐데도 당유광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할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심지어 보란 듯 허리를 두들기며 일어나더니,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가 또 장침을 꽂았다.
부르르.
규홍의 머리카락이 모조리 허공으로 솟구쳤다. 극도로 분노한 것이다.
“이놈!”
콰쾅!
혈룡괴마권이 연달아 세 번이나 펼쳐졌다.
세 마리의 붉은 용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당유광의 등판을 노렸다. 성마에 이른 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펼쳐 낸 권법이었다.
콰르릉! 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붉은 권풍이 사방으로 찢겨 날아갔다.
그 순간, 규홍은 볼 수 있었다. 세 줄기 권풍이 무언가에 녹아서 확 흩어져 버리는 광경을.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다. 하지만 그걸 봤다고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 그놈 참.”
그래도 압력이 상당했는지, 옆으로 기우뚱하는가 싶던 당유광이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그만 좀 해라. 이러다 침 잘못 꽂겠다.”
“네 이놈! 대체 무슨 술수를 쓴 것이냐!”
“그걸 내가 왜 알려 줘야 하는데?”
“……!!”
“하긴, 알려 줘도 네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만.”
얼굴도 마주하지 않는다. 철저한 무시였다.
규홍이 노성을 터트리며 마구 권풍을 쏟아 냈다. 혈룡괴마권은 물론 관통력 좋은 혈룡삼지(血龍三指)까지 펼쳤다.
하지만 허사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지켜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유광의 몸 반 장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규홍의 공격은 모조리 허사가 되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처음으로 당유광이 고개를 돌려 규홍을 바라보았다.
성마에 이른 규홍조차 흠칫하게 만드는 살기 어린 눈동자.
“우리는 독을 쓰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독을 쓰려면 머리를 쓸 줄 알아야 해. 머리를 쓴다는 건 복잡한 걸 계산한다는 게 아니야.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상하고 대비한다는 뜻이다.”
“……!”
“저 둘이 십방벽 안으로 들어가면 네놈이 나를 노릴 거라는 걸 예상 못 했을까? 이건 뭐 굳이 독인이 아니라도 예상할 수 있지. 하면, 독인인 우리가 아무런 방비도 없이 너 같은 불충한 놈을 내버려 뒀을까?”
당유광이 싸늘하게 웃었다.
“백번 용을 써 봐라. 이 십방벽이 무너지지 않는 한, 네놈은 절대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 * *
‘대단하군.’
콰르릉!!
당형의 권풍과 장력이 십방벽 안에서 날뛰었다.
‘놀라운 무공이야. 단순히 독을 쓸 줄 아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
팔방에서 조여 오는 당형의 다채로운 무공에, 천위룡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 극독을 머금었기에 위험하지 않은 수법이 없었지만, 그 전에 구사하는 무공 자체가 뛰어났다.
정말이지 삼교의 호법 무공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수준이었다. 풀어 내는 진결은 간결하고도 빨랐으며, 타점에서 폭발하는 발경술은 무공의 근본 원리를 뒤틀어서 박자감을 교란하고 폭발 범위를 제멋대로 헝클었다.
어느 순간에, 어디까지 터질지 모르는 발경술은 그 자체로 상대하기가 난감하다. 하물며 상대는 독공의 대가였다.
언제 어디서 독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감. 어디서 얼마만큼의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발경술.
이렇듯, 당가의 무공은 위력 이전에 상대의 심리를 뒤흔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당가의 암기술 역시 마찬가지로, 위라고 생각하면 아래에서 올라오고 좌측이라고 생각하면 뒤에서 휘감아 날아오는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살기를 읽고 반응해도 막기가 어려운 무공들. 심지어 그 무공을 펼치는 사람이 당가 무공의 전능자라는 당형이다.
천하의 광혈교주라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번쩍!
범처럼 사나운 권풍 무공 뒤로 뱀처럼 교활한 암기술도 날아온다.
호선을 그리는 비수, 와류를 탄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모침, 어느 순간 폭우처럼 쏟아지는 강철침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방향에서 위험천만한 암기들이 속출하고 있다.
‘경지의 높낮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군. 이것이 진정한 독과 암기의 위력이다.’
십방벽의 독기는 천위룡의 마공으로도 완전한 방어가 불가능했다. 덕분에 그는 삼 할의 힘을 봉인한 채 대응하고 있었다. 그 삼 할의 마기가 십방벽의 독기를 끊임없이 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즉, 칠 할의 힘으로 싸우는 격이었다. 하지만 그 칠 할의 힘도 제대로 다 풀어 내지 못했다. 작정하고 무공을 구사하려 하면, 그 틈을 타서 암기와 독 섞인 권장이 날아들기 때문이었다.
‘정말 대단해!’
오히려 자신보다 무공이 강한 상대였다면 이렇게까지 감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공이라는 틀 안에 있지만, 평생 보지 못한 온갖 기묘한 술수로 공격해 오는 당형의 존재는 천위룡에게 있어 예술적인 거장(巨匠)과 같았다.
치이익!
십방벽에서 뻗어 나오는 아지랑이 같은 독기와 당형의 독기가 만나 천위룡의 소매 끝을 녹였다.
천위룡의 눈이 깊어졌다.
‘얼마 만인가.’
무공을 완성하기 전에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은 적이 거의 없었던 그였다. 특히 환갑이 넘어서는 사제장과의 무공 격차도 극심해져서 누구도 감히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그 위대한 일을 사천 무림의 고수가 해낸 것이다.
‘아쉽구나. 보다 더 옛날에 만났다면 서로의 무(武)를 견주며 며칠이고 술잔을 나눌 만한 고수일진대.’
기술도 대단했지만, 내공 역시 대단했다.
‘이 정도로 거대한 독진을 형성하려면 매 순간 대량의 내공이 소모될 것이다. 즉, 이 작자는 내공이 끊임없이 소모되는 와중에도 이토록 대단한 몸놀림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라 해도 한 가지 무공을 고정해 둔 채 또 다른 무공을 구사하며 상대를 몰아칠 수 있을까?
가능할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유연하게 구사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이런 걸 보면 경지의 차이라는 것도 다 우스운 얘기다.’
천위룡은 자신이 이룬 무공의 경지가 당형보다 우위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순수 무공만 따지자면, 온 천하를 뒤져도 사씨 놈이나 권신 정도가 아니면 자신과 맞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단한 무공을 지닌 사람을 오직 독과 내공량, 그리고 특유의 기술적인 면모로 몰아붙이고 있다.
천위룡은 씁쓸함을 느꼈다.
‘역시 아직 멀었구나. 한 걸음만 올라서면 혈신(血神)의 강림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직은 신이라 불리기 어렵다는 것이지.’
인간의 육신을 뒤집어쓴 이상 한계는 명확하고 상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법.
이래서 싸움은 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지 차이를 무시하고 당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보았을 뿐이다. 진정 죽음의 위기를 느꼈다면 이런 한가한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소매가 타 버린 걸 본 이상 천위룡도 작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쩍!
당형의 손끝에서 시커먼 강철침 다섯 개가 쏘아졌다.
놀랍게도 그건 진짜 강철침이 아니었다. 독정이 형성해 낸, 독으로만 만들어진 강철침이었다.
독기로 외물의 형태를 만들어 암기처럼 쏘아 내는 경지다. 암기로 자신만의 무도를 구축한 당관이라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였다.
퍼석!
당형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껏 방어와 회피로 일관하던 천위룡이 처음으로 손을 휘둘러 암기를 부쉈다.
그것도 제왕독기가 깃든 독정의 암기를.
‘멀쩡할 수 없을 터인데?’
실제로 천위룡의 왼손은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피부에 닿기만 해도 침투하는 극독이었다.
하지만.
치이이이익!
이내 천위룡의 왼손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짧은 순간에 독기가 모조리 배출되었다. 당형의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그대의 무공은 진실로 대단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공이 소모되는 걸 생각하면, 정말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야.”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몸으로 그런 소리를 해 봤자 조금도 기쁘지 않구나.”
“본좌에게 이만한 놀라움을 안겨 준 사람은 달리 없었어.”
순간 천위룡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대는 광혈의 교주지학을 상대할 자격이 충분하다.”
츠츠츠츠.
천위룡의 발밑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연이 아니었다. 마치 지옥의 유황불 끝에서 춤추는 연기 같았다.
“사색광인이 배신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당시 완성했을지도 모를 마공일세.”
화르르르륵!!
천위룡의 오른손에서 시커먼 불꽃이 타올랐다.
파지지지직!!
반면 그의 왼손에선 육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찬란한 전광(電光)이 이글거렸다.
화(火)와 뇌(雷), 뇌와 화.
지옥의 힘을 그대로 끌고 온 혈교의 정통 마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