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86)
흑백무제 1186화(1186/1200)
1186화. 마신(魔神)과 암천(暗天) (5)
우우우웅!!
천위룡을 집어삼킨 반구형 독진의 흑색 표면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쿠궁! 쿠궁!
독진이 한 번씩 크게 출렁거렸지만, 진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날수록 독력을 키워 더더욱 두꺼운 외벽을 형성했다.
풍도박혼진(酆都縛魂陣).
풍도란 북음(北陰)으로 지옥 혹은 저승을 뜻한다. 풀이하자면 상대를 저승으로 보내 혼을 포박하는(縛魂) 진법이 바로 풍도박혼진이었다.
물론 실제로 지옥이나 저승으로 보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번 발동된 진법 안에 갇힌 자는 죽을 때까지 그 안에 갇혀 지내야만 한다.
당연히 내부에서의 파괴는 불가능하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러했다. 내부의 기(氣)를 빨아들여 스스로 힘을 불리는 자생력 있는 진법이기 때문에, 진을 부수려는 행위가 오히려 진법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갇힌 자를 숙주로 삼아 연명하는 진법이기에 숙주가 죽으면 진법도 사라진다. 즉, 한번 갇히면 반드시 죽는 당가 역사상 최악의 대인진법(對人陣法)이라 할 수 있었다.
“교, 교주님?!”
멀리서 박혼진을 보는 규홍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당유광이 거친 숨을 헐떡였다. 당형의 독력을 매개로 만들었지만, 백팔 개의 장침으로 진세를 구축하며 거의 모든 진력을 쏟아부은 당유광 역시 극한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진축(陣軸) 역할을 제대로 했군.”
당형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한 사발의 피를 또 한 번 토해 낼 뿐.
‘지독하구나.’
상당한 내상이었다. 고작 세 방을 허용했지만, 일격 일격이 누구라도 죽일 수 있을 법한 공격이었다.
곧 죽을 목숨이라 하나, 이 정도라도 멀쩡한 것은 천운이었다. 풍도박혼진 하나를 위해 목숨까지 걸었음을 생각하면 남는 장사라 할 수 있었다.
‘십방벽을 내 힘으로만 유지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천위룡은 당형이 끊임없이 십방벽을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내공을 소모한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처음 십만십방벽을 유지한 건 당형의 힘이었지만, 풍도박혼진을 이루기 위한 장침이 다 꽂힌 순간, 십방벽은 지력(地力)과 당유광의 내공으로 유지되었다.
당유광이 거의 모든 내공을 소모하고 지쳐 버린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광혈교주, 당대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를 논하는 마신을 묶어 버린 것은 당형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나 유지되겠소?”
“다 알면서 뭘 물어? 놈이 죽을 때까지지. 평균적인 무극수의 내공량을 생각하면 열흘, 그보다 더 대단하다면 보름 정도는 갇혔다가 죽어 나갈 거다.”
“스무날은 걸리겠군.”
“그 정도였냐?”
“지금의 나보다 더 많은 내공을 갖고 있었소.”
“미친놈이구만.”
질린 듯 내뱉은 말이지만, 그래도 표정은 밝다. 천하를 두려움에 빠트렸던 적의 수장 셋 중 하나를 죽인 셈이니 그 뿌듯함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당형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큰 짐 하나는 내려놓았구나.’
두근!
순간 심장에서 엄청난 고통이 솟구쳤다.
“쿠웨에엑!!”
또다시 피를 토하는 당형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당유광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괜찮냐?”
“안 괜찮소.”
심맥을 잠식한 독은 독정의 독이 아니라 주인을 해하는 독이었다. 한 점(點)으로 물들었던 독은 과다한 내공 소모와 부상으로 인해 심장의 절반을 물들일 정도로 커져 있었다.
재빨리 제왕독공으로 심맥을 다스리던 당형은 순간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위험!”
콰르릉!
혈룡권풍이 대지를 휩쓸며 거대한 고랑을 만들었다.
당유광을 안고 옆으로 몸을 날린 당형이 규홍을 바라보았다.
“이 미친 개새끼들이!!”
화아아악!
규홍의 몸에서 시뻘건 마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교주님을 어떻게 한 것이냐!”
당유광이 이죽거렸다.
“네 무식한 머리로는 이해 못 해. 삼십 년 정도 진법을 공부하고 오면 알려 주마.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진 모르겠지만.”
규홍의 눈에 핏발이 섰다.
쿠르르릉!
엄청난 진각으로 힘을 모은 규홍이 풍도박혼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놀랍게도 규홍의 몸이 십여 장이나 뒤로 튕겨 나갔다. 풍도박혼진이 혈룡괴마권의 힘을 너무나도 쉽게 물리친 것이다.
‘이럴 수가.’
전력을 다해 내친 일격이었다. 그런데도 부서지기는커녕 실금 하나 가지 않은 것 같았다.
‘정녕 마신께서 저 잡것들에게 당하셨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큰 충격에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지만, 규홍은 끝까지 마신을 믿었다.
언제고 반드시 저 망할 진법을 찢고 나오시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타오르던 흥분도 조금씩 잠잠해졌다. 하지만 분노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감히 신체를 잠시나마 가둬 놓은 미친놈들을, 그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다 죽여 주마!”
콰앙!
혈룡신보(血龍神步)로 날아든 규홍이 당유광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 순간, 당형이 그의 앞을 막았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당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규홍의 얼굴에 조소가 피어올랐다.
“그따위 몸뚱이로 나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그놈 참.”
퍼엉!
규홍의 상반신이 폭음과 함께 뒤틀렸다. 미리 몸을 빼지 않았다면 심맥이 터졌을 것이다.
당형이 씨익 웃었다.
“말이 많도다.”
“이이!”
파바바박!
비록 조금 전까지 굴욕 아닌 굴욕을 당했지만 규홍은 무극수, 사제장에 어울리는 무공의 소유자였다.
사방을 밟아 가며 조여 오는 신형이 마치 진법을 형성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기괴한 보법, 콧날이 시큰거리는 마(魔)의 악취가 그득했다.
그 순간, 당형은 확신했다.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되리라는 걸.
광혈교주를 상대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이 상태로는 이기는 게 불가능한 상대였다.
그러나.
‘이기진 못해도.’
당형은, 나아가 당가 사람은 모두 독의 힘을 믿었다.
파파파팡!
제 상태가 아니라고는 하나, 심맥 이상과 독정의 폭주로 내공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그 힘을 고스란히 담아 내친 이화만독장은 반경 십여 장을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독력을 품고 있었다.
“으아아!!”
규홍의 호신강기(護身罡氣)가 폭발하며 이화만독장의 장력을 튕겨 냈다.
이것이 바로 내공량이 많다고 다 유리한 게 아니라는 증거였다. 양은 많지만 내상으로 내공의 질적 하락을 겪은 지금의 당형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규홍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그를 중독시키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콰앙!
혈룡괴마권의 권풍을 널찍한 장포 소매를 말아 쥔 천독수로 막았다.
규홍의 몸이 주춤했고, 당형 역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이놈!”
규홍의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어렸다. 괴마권의 권풍이 장포에 닿는 순간 물방울 튀기듯 사방으로 흩어지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마기의 침습을 방어하는 흑마전포의 힘이었다. 거기에 천독수의 장력으로 반탄력을 키워 규홍의 힘을 완벽하게 막았다.
“감히!!”
피피피피핑!!
규홍 역시 대단했다. 흑마전포의 비범함을 본 그는 곧장 혈룡삼지를 쏘아 냈다. 마기 침습을 방어한다 해도, 발경으로 날카로워진 지풍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당형의 손가락이 빠르게 튕겨졌다.
퍼퍼퍼퍼퍼펑!
제왕독공으로 펼쳐진 삼양지였다. 혈룡삼지 대부분이 상쇄되었다.
퍽!
놓친 한 줄기 지풍이 당형의 팔뚝 살을 손가락 굵기만큼 파 놓고 지나갔다.
파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접근한 규홍이 혈룡괴마권, 혈룡대마장(血龍大魔掌), 혈룡괴마권의 삼연격을 펼쳤다.
콰르르르릉!!
반경 오 장 너비의 땅이 통째로 박살 났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이화만독장과 독룡광풍조로 그 힘을 받아 낸 당형의 안색은 이제 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보일 정도였다.
규홍은 상대의 힘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직감했다.
‘놈! 죽어라!’
재차 혈룡삼지를 펼치려는 그 순간.
당형의 상반신이 탄력적으로 기울어졌다. 혈룡삼지가 펼쳐지기도 전에 독룡광풍조롤 펼친 것이다.
놀랐지만, 대응은 신속했다. 규홍은 재빨리 혈룡대마장으로 독룡광풍조의 위력을 상쇄했다.
그때였다.
파인 팔뚝 살에서 떨어진 당형의 피가 규홍의 호신강기를 뚫고 그의 오른손에 닿았다.
치이이익!
“크윽!”
본능적으로 십여 걸음을 물러난 규홍이 오른손에 마기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체내로 침투한 독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폭주한 독정으로 인해 전신의 피가 융해독에 가까울 만큼 강렬해진 당형이었다. 혈룡금마공의 힘으로도 이미 침투한 독을 뽑아내기가 힘들었다.
“이, 이놈이!”
독기는 손목과 팔뚝을 타고 서서히 상완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마기로 막을 수 없다면 죽음은 필연이다. 규홍은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퍼어억!
신속하게 오른쪽 어깨를 수도로 베어 낸 규홍.
좋은 판단이었고, 독한 판단이었다. 당유광은 규홍의 결단력에 혀를 내둘렀다.
당형이 힘없이 웃었다.
“어떠냐? 칠십 년 넘게 야금야금 모아 놓은 내 독기가?”
“이놈!!”
지독한 상실감을 분노로 짓눌렀다. 괴상해진 몸의 균형을 어떻게든 바로잡은 규홍이 독하게 좌장을 뻗어 장력을 뿜었다.
콰앙!
천독수로 막았지만, 막은 팔이 뒤로 휙 하고 꺾였다. 힘의 차이가 명백했다.
‘괜찮아.’
콰릉!
독룡진천보로 접근하여 단혼독검을 휘둘렀다.
규홍의 움직임이 난삽해졌다. 무극수라도 팔 하나를 잃은 몸에 바로 익숙해지진 않았던 것이다.
당형이 몸을 회전하며 팔꿈치를 휘둘렀다.
빠각!
턱을 맞은 규홍이 피를 뿜었다.
퍼어억!
복부에 발길질을 허용한 당형 역시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그 순간, 당형의 왼손에 들린 투명한 초자 병이 깨졌다.
퍼석!
병이 깨지며 그 안의 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규홍은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봐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루였기 때문이다.
콰앙!
혈룡신보로 적정 거리를 유지한 규홍이 멀리서 혈룡권풍을 뿜었다.
쾅! 콰쾅!
상대의 권풍을 파훼하며, 당형은 확신했다.
‘겁에 질렸군.’
가까이 다가가면 핏물을 뒤집어쓴다. 그 하나의 사실이 규홍의 무의식에 제대로 박혔다. 그래서 원거리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독인을 상대로.
당형이 조소를 지으며 소매를 털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붉은 초자병, 푸른 초자병, 금빛의 초자병이 들렸다.
콰드득!
악력으로 깨진 병 안의 가루들이 색색의 향연을 보여 주었다. 제왕독공의 힘을 받아 은하(銀河)처럼 번져 나간 삼색의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규홍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려 할 때였다.
‘……!!’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오금에 힘이 빠져 저도 모르게 풀썩 주저앉은 것은 덤이었다.
울컥 피를 토한 당형이 규홍을 보며 씨익 웃었다.
피로 물든 이빨이 섬뜩함을 불러일으켰다.
“무색산(無色散)을 뿌린 순간, 넌 진 것이다.”
“뭐, 뭐라고?!”
“네 마공은 화기(火氣)를 근본으로 하는군. 청음분(靑陰粉)과 금중분(金中粉)을 건너뛰고 적화분(赤火粉)이 반응했어.”
당형이 손을 들어 올렸다.
“주인과 비슷한 종말이라면, 시종으로서 그리 억울한 죽음은 아닐 것이다.”
과거 당관이 무림맹 근처에 대기하던 신화교의 무장 요뢰를 상대할 때 썼던 그 독.
독은 화기에 약하다는 상식을 무참히 뒤집어 버린 절세의 독이, 제왕독공을 매개로 하여 규홍의 몸에 스며든 적화분으로 전달된다.
생화학 작용으로 인간 본연의 화기를 폭발시키는 극단적인 약품.
“잘 가거라.”
당형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규홍의 몸에 스며든 적화분이 증화독(增火毒)으로 변이되며 그의 전신을 잠식했다.
규홍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 돼!!”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규홍의 전신이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