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88)
흑백무제 1188화(1188/1200)
1188화. 어둠이 지다 (2)
흐릿해진 당형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그라드는 생기를 의지로 붙잡는다. 적의 기세가 재차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 몸이 알아서 내공을 단전으로 모으고 있었다.
“크아아악!”
비명처럼 울부짖은 규홍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증화독으로 격발된 내공은 그 강력한 힘으로 내부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은 제어할 수 없는 화기가 되어 규홍의 전신을 불태워 버렸다.
열양공의 고수라도 전신 피부가 끔찍한 화상을 입었다면 목숨이 위험하다. 심지어 내부 폭발로 장기까지 상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기운을 되찾았다. 의식을 다시 거머쥐고 있었다.
화아아악!
다시 마기가 일어났다.
소량이지만, 밀도는 상당했다. 진정한 무극수의 힘이라 하기에는 손색이 있었지만, 초절정의 기운과는 수준이 다른 힘이었다.
“이럴 수가!”
당유광은 귀신에 홀린 듯한 눈으로 규홍을 바라보았다.
증화독이 발동되었다면 죽음은 필연이다. 내부 장기부터 피부, 혈관, 근육까지 불타 버리는데 어떤 사람이 살 수 있겠는가.
한데 그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마기…….”
당형의 중얼거림을 들은 당유광은 퍼뜩 깨달았다.
‘역천마기의 재생능(再生能)이구나!’
마기는 순천의 신기(神氣)와 반대되는 성질로 불사(不死)를 지향하며, 실제로 선천에서도 궁극에 이르면 끊임없는 생기(生氣) 증식으로 불사에 가까운 육신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건 전설상에서나 회자되는 얘기였다. 실제 마공으로 무극에 이른 고수들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른 재생 능력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미 전신 손상을 입은 상황에서까지 재생하는 경우는 없었다.
신화교의 화정이라면 몰라도, 상대는 광혈교의 사제장이었다.
우우우웅!
규홍의 부활을 목격한 당형은 홀린 듯 내공을 눈과 귀로 쏟아부었다.
힘을 잃어 가는 중이라 한들 무극의 힘으로도 잃은 청력과 흐릿해진 시야가 바로잡히지 않았다.
‘눈은 필요 없다.’
시시각각 기의 밀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걸 둘로 나눠 감각 두 개를 다 살릴 수는 없었다.
당형은 내공으로 경혈을 자극, 잃은 청력을 강제적으로 회복시켰다. 혼신의 힘을 다한 치상결로 인해 찢어진 고막도 재생되었다.
“크아아악!”
규홍의 입에서 또 한 번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조금 전의 비명과 명백히 달랐다. 그것은 포효에 가까웠다. 인간의 성대에서 나올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이놈!”
당유광이 품에서 비수 세 자루를 꺼내 들었다.
“죽어라, 이 지긋지긋한 놈아!”
번쩍!
세 줄기 섬광이 규홍의 이마와 명치, 그리고 단전에 정확히 꽂혔다.
무극에 이르지도 못했고 내공도 거의 다 소모되었지만, 그래도 엄청난 암기술을 뽐낸다. 최소 내공이라도 평생을 쌓아 온 깨달음 덕에 적의 급소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크으으으.”
미간에 칼날 끝만 박힌 비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명치와 단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소 내공이라 하나 급소였고, 던진 사람이 당유광인데도 규홍의 몸을 뚫지 못한 것이다.
‘이럴 수가!’
당유광은 믿을 수 없었다.
‘금강불괴라도 된단 말인가?’
그때였다.
“질리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구나.”
화아아악!
천천히 무릎을 짚고 일어나는 당형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종사의 위엄, 죽음을 받아들인 무사의 혼이다. 점점 줄어드는 내공으로도 믿을 수 없는 힘을 선보인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활이었다. 규홍의 부활이 마기로 인한 것이라면, 당형의 부활은 극도의 분노와 한계를 넘어선 정신력으로 인한 생명의 폭발이었다.
당형이 버럭 외쳤다.
“네놈들은 절대 세상에 나선 안 될 놈들이야!”
짐승처럼 변한 규홍의 모습은 당형에게 끔찍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당호.
둘째 아들이자 첫째의 가주직을 찬탈하려 한, 사천성에 낙원소를 들이는 걸 찬성하고 마공까지 익혀 결국 타락하게 된 당호의 모습이 규홍에게서 보였다.
당호는 당가인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죽지 못했다. 당형이 아닌 당관의 손에 죽었지만, 짐승이 된 순간 이미 당호라는 인격체는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은 삼교다. 광혈교다.
이놈들로 인해 사천이 병을 앓았고, 둘째 아들이 죽었으며, 가문에는 내분까지 일어나 한 차례 큰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콰르르릉!
당형의 발밑에서 자욱한 독기가 피어올랐다.
폭음을 내며 치솟은 진녹색 독기는 점차 그 색(色)을 잃어 갔다.
하지만 색이 사라졌다고 하여 독기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무색의 독은 그 밀도와 독성을 엄청난 속도로 올려 가며 반경 십여 장을 죽음의 지대로 만들고 있었다.
‘으윽!’
그 독기가 어찌나 강한지 만독(萬毒)에 내성이 있는 당유광조차 십 장 밖으로 피해야만 했다. 단순 내성의 문제가 아닌 독기의 밀도 때문이었다.
퍽! 퍼벅!
시커멓게 눌어붙은 규홍의 몸 곳곳에서 작은 폭발이 일었다.
무색의 독기가 침투한 곳이었다. 밀도 높은 독기의 파괴력을 이기지 못하고 피부와 근육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당형의 얼굴이 귀신처럼 일그러졌다.
말라붙은 피눈물 자국 위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죽어서도 네놈들을 따라 지옥에 갈 것이다! 지옥에서 네놈들을 수만, 수십만 번을 죽여 죄없이 죽어 간 사천인들의 한을 풀어 줄 것이다!”
“크아아앙!!”
재차 포효한 규홍이 당형을 향해 달려들 때.
어느새 흑마전포를 벗어던진 당형은 소검을 쥔 채 규홍의 전면에 도착해 있었다.
퍼어억!
왼손으로 규홍의 얼굴을 움켜쥔 당형이 왼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콰앙!
뒤통수부터 땅에 처박힌다. 규홍의 머리통이 살짝 짜부라졌다.
그러고도 규홍은 죽지 않았다. 하나 남은 팔을 마구잡이로 휘젓는데, 뾰족하게 솟은 손톱이 암왕의 가슴을 헤집었다.
‘그래, 너희 때문이다.’
난자되는 가슴, 근육이 찢어지고 뼈도 긁힌다.
그럼에도 당형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육신의 고통보다 후회로 인한 고통이 천 배, 만 배는 더 컸다.
이 괴물의 손톱은 억울하게 죽은 사천인들의 몸부림과 같았다. 헤집고 또 헤집다가 심장을 찢어 내도 상관없다. 심장이 찢어지기 전까지, 나는 이 마물들을 죽이고 또 죽이리라.
“이노옴!!”
퍽! 퍽! 퍽!
소검에 실린 무형의 독기가 강철보다도 단단해진 규홍의 신체를 두부처럼 부드럽게 가르고 들어갔다.
푹! 퍼억! 퍼버버벅!
역수로 쥔 소검이 규홍의 몸 이곳저곳을 마구 찍어 낸다. 마치 광기에 젖은 살인마가 분풀이라도 하듯, 당형은 괴성을 지르며 규홍의 몸을 파괴했다.
푸화아악!
규홍의 몸 이곳저곳이 터지며 녹아들어 갔다. 하나 남은 팔 역시 소검에 난자당해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으아아아!”
퍼버버버벅!
팔과 가슴, 복부를 사정없이 찌르던 당형이 양손으로 소검을 쥐고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콰앙!
규홍의 이마를 정확하게 꿰뚫은 소검 주위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아아아악!
녹아 버린 규홍의 머리통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다.
당유광의 눈이 몽롱해졌다.
‘저것이구나.’
당가 최악의 극독이자 천하 맹독 중 정점에 이르렀다는 지옥의 독.
바로 당가의 오대극독 중 하나인 무형지독(無形至毒)이다.
하지만 지금의 무형지독은 진짜가 아니다. 너무 지독해서 무극에 이른 자가 아니면 다룰 수조차 없었기에 당형이 독력을 절반 이하로 낮췄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형지독은 당가 최고를 논했다.
‘저것이 본가 최강, 최악의 맹독이라는 무형지독의 진짜 모습이다.’
죽음으로써 최강의 독을 끌어낸다. 최강이기에 최악이며, 최악이기에 최후의 독이다. 가진 모든 독력을 집결한 당형의 독력은 십만십방벽 이상이라 할 만했다.
당형조차도 여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독이 천운으로 완성되었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뱉어 내던 당형이 왈칵 피를 토했다.
이제는 토한 핏덩이가 먹물과도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생의 마지막, 죽음을 뜻하는 무형(無形)의 독으로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하고 사천인들의 한을 풀어낸 당형의 얼굴에 비로소 편안함이 깃들었다.
풀썩.
소검을 쥔 채 옆으로 쓰러진 당형의 눈이 완전한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시력을 상실한 것이다.
“당형!”
빠르게 다가온 당유광이 당형을 살폈다.
어느새 무형지독은 다 사라졌다. 주변 땅이 시커멓게 물들어 죽어 갔지만, 독력 자체는 사라졌다.
내뿜는 것도, 증발하는 것도 순간이다. 그것은 실로 그 이름과 같이 죽음을 닮았다.
생명이 탄생하는 것과 같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과 같이.
“……정말 질긴 목숨 아니오?”
당형이 웃으며 콜록거렸다.
당유광이 재빨리 상의를 벗어 옷자락을 찢어 냈다.
“조금만 기다려라! 제왕독공을 운용해! 목숨줄이 붙어 있는 한 삶을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 널 업고 곧 가문으로 돌아갈 테니, 절대 포기하지 마라!”
“형님.”
“닥쳐라! 나는 아직 너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 행동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다 나은 뒤에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사과해라! 그때까지 넌 죽고 싶어도 못 죽어!”
어느새 당유광의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서둘러 당형을 업고 찢은 옷자락으로 단단하게 고정한 그가 헐떡이며 신법을 펼쳤다.
하지만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내공 소모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절정고수는커녕 이제 갓 신법을 배운 무사 정도의 속도밖에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힘을 끌어모아 달려 나가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수많은 거지가 모여드는 게 보였다. 걱정 어린 얼굴, 놀라운 눈빛 등등 하나같이 짓고 있는 표정들이 달랐다.
당유광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당형부터 고쳐 놓는 게 우선이었다. 심장이 터질지라도 달려야만 했다.
“형님.”
“입 닫아! 내공을 운용해라!”
“……형님.”
“닥치라니까!”
“내가 미안하오.”
당유광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안다! 다 알아! 그러니까 일단 내공부터……!”
쿵!
흐린 시야 때문에 돌부리가 튀어나와 있는 것도 몰랐다. 달리다가 넘어진 당유광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달리려는 순간.
“아버지.”
눈물 가득한 당유광의 눈에 빛이 스며들었다.
어느새 사방에 노구당원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언제 도착했는지 가득상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앙.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당관이 당유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극수인데도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로 달려온 것이다.
찢어질 듯 부릅떠진 눈으로 당유광을 보던 당관이 그의 등에 업힌 당형을 보았다.
“……아버지.”
당형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관이냐.”
“아버지!”
당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게도 말을 안 듣는 자식 놈이로다.”
당유광이 풀썩 무릎을 꿇었다.
당관은 조심스레 그의 등에서 당형을 내렸다.
뜻밖에도 당관의 얼굴은 무덤덤했다. 그러나 당형을 들어 올리는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그래.”
당관이 미소를 지었다.
“암왕이라는 양반이 꼴이 이게 뭡니까?”
“너도 나이 먹어 봐라. 여기 오기 전부터 젓가락 들기도 힘들 정도였다. 나도 제법 오래 살긴 했어.”
“…….”
“그래도 네가 오는 줄 어떻게 알았는지, 한 줄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이승에 머물러 있었다.”
“잘하셨습니다.”
“관아.”
“예.”
당형이 당관의 팔을 움켜잡았다.
“저 말 안 듣는 사촌 형님이 주책 부린 곳으로 다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