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91)
흑백무제 1191화(1191/1200)
1191화. 이전투구(泥田鬪狗) (1)
당관은 가문으로 귀환하자마자 태상가주 당형의 죽음을 알렸다.
당가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크나큰 슬픔에 잠겼다.
하지만 그 슬픔은 잠시일 뿐이었다. 당관이 굳이 적의 존재를 말하지 않아도, 그들 모두가 당형을 죽인 광혈교를 향해 무시무시한 분노를 일으켰다.
그게 당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지인을 잃어도 슬픔보다 분노를 부채질한다. 당가인을 죽인 놈에게 복수하고자 일생을 불태우기 위함이었다.
비록 가문이 전시 체제로 바뀌어 수성전(守城戰)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 사천 전체를 뒤집어엎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 그들은 고요한 살의를 머금었다.
그렇게 폭풍전야의 밤처럼 침묵으로 가득한 당가 내.
당관은 당형의 거처에서 몇 권의 책을 발견했다.
‘이것이구나.’
이 책들은 과거, 방계 출신 당가인들이 이루었던 업적들이 직계 출신 당가인들의 업적으로 바뀐 것을 짚어 낸, 말하자면 역사의 교정서였다.
당형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당관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 일의 허가를 낸 사람도 그였고, 훗날 후계자에게 가문을 맡긴 후 아버지가 못다 이룬 일을 이어 나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토록 열성을 쏟은 것을 보며, 당관은 깨달았다.
이건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었다. 전쟁이 터졌다고 오류 가득한 역사를 잠시 내버려 둔다는 건, 병에 걸린 부모를 두고 돈 벌겠다며 집을 나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려워도 함께 해 나가야 한다. 내실이 잘 잡혀야 외부 일도 잘 풀리는 법이다.
설령 이 때문에 가문이 몰살을 당한다 하더라도, 부끄러운 과거지사를 남기고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당관은 곧바로 사서들과 장로들을 불러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을 것을 명했다.
장로 몇몇은 이 위험천만한 시기에 이런 일에 착수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며, 전후에 처리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을 건넸다.
그러나 당관은 확고했다.
절대권력을 지닌 가주의 명령을 거부하는 자들은 극형에 처해지기 마련이다. 가문을 되찾은 후 한결 부드러워지고 융통성을 겸비하게 된 그였지만, 한번 밀어붙일 때는 과거 당형 못지않게 과감한 면이 있었다.
결국 당가는 전쟁을 준비하면서도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당관이 가문으로 귀환한 당일에 벌인 일이었다.
당관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또 있었다.
당가 외원, 수많은 가원들이 모인 앞에 그가 나타난 이유였다.
“…….”
포박된 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한 청년이 있었다.
그야말로 비참한 꼬락서니였다. 삐쩍 마른 몸에 머리카락은 산발했고 여기저기 때가 묻었는데, 저자의 거지보다도 못한 외양이었다.
장로 대다수는 침통한 기색이었다. 누군가는 차마 청년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외원에 모인 말단 무사들의 얼굴에는 냉정함이 가득했다.
당관은 저들의 표정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안하무인으로 커서 아랫사람들을 어지간히도 괴롭혔다고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가내 여식들을 건드리는 짓은 안 했지만, 가주의 아들이 성격파탄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원들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진즉에 깨닫고 바로잡았으면 좋았을 것을.
의자에 앉은 당관이 담담하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라.”
꿈틀.
익숙한 목소리에 청년의 머리가 천천히 들렸다.
엉킨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청년의 턱은 칼처럼 뾰족했다. 뇌옥에 갇힌 충격과 영양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살이 다 빠져 버린 것이다.
청년, 당양선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아버지.”
“닥치거라.”
당관의 목소리는 그 표정만큼이나 냉엄했다.
“네놈은 죄인이다. 나를 아비라 부를 생각 말아라.”
그야말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싸늘한 눈으로 당양선을 보던 말단 무사들조차 놀라서 당관을 바라보았다.
당관은 시종일관 딱딱한 태도를 유지했다.
“네놈은 나의 핏줄이기 전에 오만방자한 성품과 끝을 모르는 무례함으로 소중한 가원들을 한낱 소모품처럼 여긴 패악을 부린 악인이다.”
“……!!”
“그것도 모자라 중원 무림의 대적이자 본가의 원수이기도 한 삼교의 무공을 배워 가문의 위상을 바닥까지 끌어내린 대역죄인이기도 하다.”
화아아악!
당관의 몸에서 무서운 분노가 치솟았다.
분노는 곧 기파가 되어 그 자리에 모인 모두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즉 사지가 찢겨 죽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의 동생, 당호 역시 너 못지않은 죄를 저질렀기에 내 손으로 직접 죽였다.”
당양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디 네 입으로 말해 보거라. 너는 정녕 네가 죽어 마땅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
“…….”
“말해 보아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당관의 목소리는 외원을 넘어 내원까지 퍼져 나갔다.
떨리는 눈으로 당관을 보던 당양선이 이내 독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제가 지은 죄가 크다는 건 알지만, 죽을죄까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로들 몇몇이 탄식을 토했다.
분노 가득하던 당관의 얼굴이 무색으로 투명해졌다.
“그래?”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 오히려 화를 내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목소리였다.
“저는 그저 최고가 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당가의 무공은 저의 재능으론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더 강해지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너의 마음이 그러하다 하여, 네가 저지른 죄가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하면?”
“기회를 주십시오!”
당양선이 울분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저는 평생 제정신으로 산 적이 없습니다! 미친 자를 벌하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스스로를 정상인이 아니라고 말해 버린다. 장로들은 물론 무사들 역시 아연실색했다.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었다면 어찌 너처럼 살 수 있겠느냐?”
“맞습니다! 저는……!”
“저 삼교도 제정신은 아니다. 서로가 바라보는 가치의 차이를 떠나, 죄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여서라도 이 땅을 빼앗고자 하는 그들을 어찌 제정신이라 하겠느냐? 멀쩡히 잘살고 있던 놈들이 교리에 미쳐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실로 미쳤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
“하면.”
당관의 눈이 번뜩였다.
“그놈들도 미쳤으니 제정신 차리라며 멀쩡히 살려 보내야 마땅할까.”
미쳤다는 변명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도 당양선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당장 그의 손에 작살난 주루가 몇 개인가. 죽은 사람이 몇 명인가.
차라리 실수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협행을 하다가, 아니 오해로 벌어진 일이라도 이렇게 비참하게 벌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삼교의 무공을 익힌 채 품어서는 안 될 생각을 품기도 했다.
“네놈이 스스로 죄를 뉘우쳤다면, 차라리 죽여 달라 했다면 백날 천날 욕하면서도 살렸을 것이다. 너에게 당가인으로서의 긍지가 한 톨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말단으로 보냈을지언정 가주이자 부모로서 너를 포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 아버지!”
“당가의 핏줄을 이었다는 놈이 죽음이 두려워 스스로 금치산자 판정을 내려?”
당관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 천하의 못되어 먹은 놈 같으니라고!”
냉엄함 속에 깃든 분노와 실망, 안타까움과 절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외침이었다.
장로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차마 가주와 당양선을 볼 수가 없었다.
무사들의 얼굴에도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러나 당양선을 볼 때는 여전히 냉정하기만 했다.
그들의 분노는 태상가주를 죽인 적에게 모조리 쏠려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청년을 보면서도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당양선은 이미 살아 있지 않은 자였다.
당관은 무사들의 얼굴에서, 눈빛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잘됐다고 생각했다. 당양선이 정말로 무인다운 결기를 보여 주었다면, 무사들과 함께 생활하게 하여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겪게 했을 것이다. 그로써 현실을 보고 과거의 악행을 뉘우치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해 줄 생각이었다.
한데 이놈은 스스로 기회를 걷어찼다. 당관은 더 이상 당양선을 용서할 수 없었다.
“가문을 위해서가 아니다. 네 오염된 영혼을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하나밖에 없다.”
티잉.
당관이 던진 비수가 당양선의 앞에 떨어졌다.
“자결하라.”
“아버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자존심이라도 보여라. 그리하여 평생을 죄짓고 살았지만, 마지막만큼은 깨끗할 수 있도록 스스로 수의(壽衣)를 짜라.”
돌이킬 수 없는 말이었다. 이제 어떤 말을 해도 살 수 없을 것이다.
당양선의 얼굴에 다시 독기가 일었다.
“아버지도 나 못지않게 악독한 사람이었잖아!”
장로 중 하나가 외쳤다.
“입 닥치지 못할까! 어느 안전이라고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아버지도 그랬잖아! 아버지도 남들 눈에 피눈물 나게 했잖아!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데!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도 죽어야지!”
화아아악!
장로들의 몸에서 엄청난 기파가 쏟아져 나왔다.
당양선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설령 예전과 같은 내공을 지니고 있더라도 장로들의 살기 가득한 기파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투명한 눈으로 당양선을 보던 당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기회를 주었거늘, 그조차도 거부한다면 이제 부자지간으로서의 시간은 끝났다.”
“……!!”
“가주로서 본가에 해악을 끼친 악인을 직접 처단하리라.”
“잠깐! 아버지 잠깐!”
당관이 손을 뻗었다.
티리링!
당양선을 포박했던 쇠사슬이 모조리 부서져 튕겨 나갔다.
우두둑!
“크아아악!”
허공에 떠오른 당양선이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보이지 않는 밧줄이 전신을 조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드러난 팔과 다리에 쑥쑥 들어간 자국이 보였다.
당양선이 신음을 흘렸다.
“사, 살려 줘요.”
당관이 바닥에 놓인 비수를 들었다.
“걱정 마라.”
푹!
심장에 비수가 박힌 당양선의 몸이 부르르 떨리다가 이내 힘을 잃었다.
“널 죽이며 내 반도 죽었다. 가는 길이 외롭진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오직 죽어 가는 당양선의 귀에만 들리는 한마디.
투둑.
비수가 박힌 채 바닥에 널브러진 당양선을 보는 모두의 얼굴에 충격과 씁쓸함이 어렸다.
당관은 끝까지 냉엄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시체를 불태워라. 다시 각자의 위치를 사수하도록.”
“존명!”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혈육이라도 과감하게 처단한 가주를 향한 존경과 안타까움, 그리고 더 강한 충성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홀로 내원으로 걸어온 당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온통 잿빛이었다. 그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얼마나 더 죽어 나가야 본가의 업이 청산되려나.”
차라리 죽는 게 편하다. 남은 사람은,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사람은 이렇게 고통스럽다.
당관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서 있었을까.
“가주님!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냐.”
“흑제성주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원군을 요청하였습니다!”
당관이 다시 눈을 떴다.
허망함으로 가득했던 그의 두 눈이 사천 패자의 안광을 뿜었다.
“사왕단(蛇王團)을 준비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