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96)
흑백무제 1196화(1196/1200)
1196화. 이전투구(泥田鬪狗) (6)
‘저건?!’
장곤의 눈이 흔들렸다.
회전하며 돌진하는 두 개의 검은 바람. 하나는 사람의 몸뚱이만 했고, 다른 하나는 팔 한 짝 길이도 되지 않았다.
‘도끼!’
그 순간, 장곤은 이곳에 연호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후우웅!!
두 곳의 첨병 십여 명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린 광룡부와 흑룡부가 거짓말처럼 연호정에게로 돌아왔다.
번쩍!
연호정의 두 눈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길을 열어라.”
담담한 목소리에 숨 막힐 듯한 위엄이 배어 나온다.
난전이 벌어진 와중에도 모두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용호풍운 두 개의 진이 이 보(二步)씩 움직이며 중앙에 길을 열었다.
“뚫어라!”
붉은 깃발을 든 기수의 사악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그 매서운 명령에 수많은 마인이 앞을 다투며 유일무이한 통로를 향해 밀려들었다.
‘뚫렸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장곤이 서둘러 외쳤다.
“놈들을 막아!”
그 순간, 다시 연호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각자의 위치를 사수하라.”
의지 자체를 조종하는 목소리다.
전장을 지배하는 신(神)의 음성이 따로 없었다. 장곤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연호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과 생각이 다른 그에 대한 의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입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철저하게 막을 쳐라! 그 자리에서 용호신망을 끝까지 유지해!”
번쩍!
이백여 명의 노고수들이 각자의 내공을 모조리 불사르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정!
중앙 돌파를 위해 물밀듯 쏟아지던 마인들이 진법을 지나치며 도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공격들은 살초가 아니었다. 공격당하지 않고 무사히 통로로 빠져나가기 위한 위협용 공격이었다.
‘역시!’
장곤의 얼굴에 다급함이 일었다.
이놈들에게 중요한 것은 적의 섬멸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교주에게 가는 것이 목표였다.
단순한 광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놈들의 돌진과 무공, 눈빛을 본 장곤은 절대 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대체 왜!’
판단을 내렸는데도 몸이 따르지 않는다.
콰르릉!
진세와 진세 사이를 뚫고 나아간 혈황단의 마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앞에.
흑혈신마를 탄 사신무장이 있었다.
연호정의 입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광룡(狂龍).”
번쩍!
황금빛 찬란한 기운으로 물든 광룡부가 횡으로 휘둘러졌다.
그 순간, 전장에 있는 거의 모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후우우우웅!
보이지 않는 거대한 폭풍이 움직이는 듯했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흑혈신마의 목덜미를 지나 휘둘러진 팔십이 근 광룡부 끝에는 가로막는 모든 것을 산산이 부숴 버릴 극한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광룡공(狂龍功)의 일초, 무참(舞斬).
춤을 추듯 꿈틀거리는 황금빛 바람이 용호신망과 풍운천라 사이를 뚫고 달려오는 마인 삼십여 명의 몸을 휩쓸었다.
콰드드드득!
짓눌러 터트려 버리는 무공이다.
좌측으로 쫙 퍼져 나간 골육의 파편들이 핏물을 타고 흘러 십여 장 거리로 흩어졌다. 마치 거인의 손으로 잡아 으깬 듯한 광경이었다.
압도적인 무공, 모든 것을 초월하기 시작하는 무공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황룡신왕공의 위력이었다. 광룡공의 구결 자체는 이전과 다를 게 없지만, 상상의 힘을 내력화하여 진정한 여의(如意)의 무공으로 재탄생한 광룡공은 재해와도 같은 위력을 담고 있었다.
번쩍!
검붉은 피풍의를 두른 기수의 두 눈에 놀라움이 일었다.
기수, 혈황단주(血皇團主)의 입에서 들끓는 마성(魔聲)이 튀어나왔다.
“전진하라.”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 짓을 그대로 따르는 혈황단원들 역시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로 또다시 혈황단원들이 짓쳐들어왔다. 조금 전보다 더 빨라진 속도다. 한순간에 다 죽어 버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늦어지긴커녕 신법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도무지 사람과 상대하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노구당원들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떠올랐다.
“이 미친 마귀 놈들이!”
“신경 꺼! 휘말리면 우리도 죽는다!”
“막아! 각자 자리를 사수해!”
마치 저자에서 소리를 지르는 거지 떼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단순히 신경질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소리가 비는 구석 없이 연이어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는 기묘한 공능이 있었다.
용호풍운의 타구대진으로 그 힘을 증폭한 개방의 비기, 오정음공(汚精音功)이었다.
연호정의 광룡부가 또 한 번 무참의 도끼질을 풀어 냈다.
콰르르릉!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위력을 축소해 두 번 휘두르니, 빠르게 돌진하는 마인들이 차례대로 지워진다.
반격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나하나가 고수 아닌 자들이 없었지만, 공격을 시도하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금빛 폭풍이 휘몰아치며 목숨을 앗아 갔다.
생사(生死)를 관장하는 신의 바람이었다. 인간의 무력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기공의 극치가 거기에 있었다.
‘엄청나다.’
힐끔 뒤를 보다가 연호정의 무자비한 무공에 갈려 나가는 마인들을 확인한 장곤은 혀를 내둘렀다.
‘이것이 정녕 사람의 무공이란 말인가.’
실제로 무극수를 몇 번 본 적이 있었고, 그들의 무공이 천외천이라는 것도 확인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연호정은 뭔가가 달랐다.
딱히 대단한 초식을 구사하는 것 같지도 않고 놀라운 기공 운용으로 복잡한 발경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강했다. 마치 바람의 신을 몸에 담아 둔 것처럼 마음대로 폭풍을 일으키는데, 그 파괴력이 지금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더 놀라운 것은.
‘저게 끝이 아닐 것이다.’
마인들을 지워 버린 무공은 놀라웠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이 연호정의 진짜 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더 크고 강한 위력의 기공을 발출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은 아니었다. 애초에 저런 기공파 자체가 연호정의 진짜 무공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생각. 당연히 연호정에 관한 그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적들이 끊임없이 돌진하고 있었다.
쩌저저정! 펑! 퍼퍼펑!
방어진을 형성했다고 하여 노구당원들이 노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소리치며 오정음공을 통해 마인들의 마음을 흐트러트리려 했고, 지나치는 놈들 하나하나에게 타구봉과 장력을 휘두르며 전력을 낮추었다.
그런데도 마인들은 이를 악물고 중앙을 돌파했다. 그 맹목적인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졌으며, 오히려 연호정의 손에 죽어 나가는 마인들의 허무한 결말에 노구당원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벌써 얼마나 죽었지? 백오십? 이백?’
황금빛 바람이 몇 번이나 휘몰아쳤는지 모른다. 그 바람에 당한 마인들은 골육이 다 갈려 나가 시체조차 온전히 유지하지 못한 채 삼도천으로 향했다.
‘연 성주의 무공은 확실히 대단하다. 아마도 이런 식의 전개가 지속된다면 분명 적들을 몰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놈들이 제아무리 미쳤대도 이런 식으로 전력을 소비하려 할까?’
그때였다.
훅!
저 멀리서 당당하게 깃발을 들고 있던 혈황단주의 신형이 사라졌다.
장곤의 눈이 흔들렸다.
“조심해라! 적의 수장이……!”
쩌어어어어엉!
무시무시한 공명음에 노구당원 수십 명의 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용호타구대진 위에서 나타난 혈황단주가 거대한 깃발을 휘둘렀고, 그만큼 빠르게 날아온 흑룡부가 깃대를 후려쳐 혈황단주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재빨리 귀를 막은 장곤이 외쳤다.
“당황하지 마라! 우리는 이 위치를 사수한다!”
화아아아악!
흑룡부를 튕겨 낸 혈황단주의 몸에서 폭발하듯 막강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장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럴 수가!’
등 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황금빛 투지를 한순간 밀어젖히는 강렬한 마기.
‘무극?!’
그때, 연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 그 정도로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장곤과 대죽신개는 노구당원들을 독려하면서도 연호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파라라라락!
깃발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킨 혈황단주가 다시 뒤쪽으로 내려섰다. 단숨에 용호타구대진을 뚫고 길을 열려던 행위가 막힌 것이다.
콰르르릉!
광룡부의 바람이 승천하는 힘을 담았다. 중앙 통로로 빠져나오던 마인들 이십여 명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연호정의 두 눈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번쩍! 콰아아앙!
수직으로 휘둘러진 광룡부를 따라 이십여 명의 마인들이 땅에 파묻히고, 그들을 지나친 거대한 금빛 참격이 통로를 향해 달리는 마인 십여 명을 더 깨부쉈다.
쩌어어어어엉!
광룡공, 붕산세의 힘이 더 전진하지 못하고 혈황단주의 깃대에 막혔다.
하지만 새로이 태어난 광룡공의 힘은 역시나 대단했다. 참격은 사라졌지만, 힘의 여파가 혈황단주를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게 했다.
거리를 생각하면 두 사람의 무공 격차는 확실했다. 더 가까이 붙었다면 혈황단주는 다섯 걸음, 열 걸음을 더 물러나야 겨우 붕산세의 힘을 막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야 준비가 끝났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연호정의 말.
장곤과 대죽신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으려 했다. 지금 중요한 건 흔들릴 뻔한 진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천외천의 싸움은 괴물들에게 맡겨 놓으면 그만이다.
말없이 연호정을 노려보는 혈황단주의 핏빛 안광.
푸화아아악!
그사이에 또 마인들이 달려들었고, 연호정의 도끼에 스무 명이 더 죽었다.
말도 안 되는 학살극이었다. 이런 식의 개죽음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화아아아악!
혈황단주의 기파가 더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연호정의 입매가 올라갔다.
“역시.”
누가 원조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기운의 흐름과 사악함의 밀도로 볼 때, 역시나 광혈교가 원조일 것이다.
“너희, 백음귀라는 놈들과 비슷하군.”
백음귀.
하은교와 함께 중원으로 넘어온 그들은 동료가 죽으면 그 기운을 나눠 받아 남은 이들의 내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백 명이 아니라 단 한 명을 위해서 만들어진 마도의 사술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이 혈황단의 진기 흐름이 훨씬 더 복잡하고 자연스러웠다.
즉, 백음귀의 사술은 광혈교에서 난 공부다. 이 혈황단은 하나하나가 그 사술을 연마한 이들인 것이다.
다만 백음귀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제정신이 드는가.”
“……정말 대단하구나.”
혈황단주의 탁한 목소리가 더 맑고 확실해졌다.
마기로 타오르던 두 눈에 이지가 어리기 시작한다. 거대한 몸과 깃대를 든 손에서는 지옥에서나 볼 법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덕분에 위지광, 이놈까지 잘 잡아먹었다.”
목소리는 맑은데 묘하게 여러 사람이 함께 말하는 듯 울린다.
그것이 바로 혈황단주의 진짜 정체였다.
과거 사천당가에서 광혈교의 꼭두각시와 싸우다가 무극의 힘을 되찾았을 때처럼.
바로 그때 연호정의 상대였던 전(前) 육사제장과 같은 비술로 태어난 놈인 것이다.
“넌 몇 번째였냐?”
“나는 전(前) 삼사제장(三司祭長) 동령이다.”
연호정이 비릿하게 웃었다.
“새 옷 갈아입고 정신 차렸으면 냉큼 들어오거라.”
동령의 얼굴에 사이한 미소가 어렸다.
“마음에 드는구나, 이놈!”
파아아아앙!
한순간에 십여 장 거리를 건너뛴 동령이 거대한 깃대를 휘두르고, 연호정의 광룡부가 휘어지듯 움직이며 폭풍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