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04)
흑백무제 1204화(1204/1255)
1204화. 이복형제 (4)
화아아아아악!!
천위룡의 신법은 대단했다.
당연히 대단해야만 했다. 그는 광혈교의 수장이니까.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대단하다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자유롭구나.’
속도도 속도지만, 진짜 대단한 것은 바로 자유로움이었다.
발끝으로 땅을 한 번 박찰 때마다 족히 이십여 장은 나아가는 듯했다. 이 정도면 반쯤은 하늘을 나는 거라고 해도 무방했다.
물론 속도로는 연호정 역시 천위룡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천위룡만큼의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은 없었다.
가만히 천위룡의 신법을 살피던 연호정은 문득, 그의 신법 역시 사신무나 지옥공을 연상케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뇌기(雷氣)?’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뇌기를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발바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뇌기로 변환되어 두 줄기로 나뉘는데, 땅으로 스며드는 뇌기와 발바닥 전체를 감싸는 뇌기의 성질이 달랐다.
그 반대되는 성질끼리 밀어 내는 힘으로 그는 훨씬 더 자유롭고 편안한 신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뇌기로 저런 것까지 가능하단 말인가.’
모용군이 봤다면 놀라움에 말조차 잃었을 신기(神技)의 경공술이었다. 단순히 검공(劍功)의 파괴력에 집중된 뇌정공과는 활용 범위부터가 다른 신(神)의 공부였다.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르다.
‘단순히 더 강한 위력의 무공을 익힌 게 아니야. 무공 자체의 근본 원리에 대해 고민하고 몸에 붙인 흔적이 역력해.’
그 말인즉, 무공에 대한 깨달음이 지고하다는 뜻이었다. 위력, 속도에 강점이 있는 마공을 받아들인 걸 넘어 순수하게 무(武)를 파고들어 본 장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어떠한 일에 구도자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다 옳게 사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그 자신은 옳게 살았다 한들, 대립하는 자 입장에서는 그저 적일 뿐이다.
그러나 연호정은 명백한 적인 천위룡에게서도 배울 게 있다면 배우려고 했다. 이것은 달리 생각하면 기연이었다. 심지어 황룡신왕공과 같은 근본을 둔 무공에서 시작했으니, 내가 못 하는 것을 상대에게서 배우려는 진지한 태도가 필요했다.
연호정이 힐끔거리는 걸 알면서도 천위룡은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다. 그저 그 엄청난 신법을 편안하게 유지하면서 달릴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극의 경지에서도 드높은 곳에서 거니는 두 초인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순식간에 사천을 넘어 호북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천위룡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상당하군.”
연호정이 천위룡을 바라보았다.
천위룡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림자 진 그의 얼굴은 조금 싸늘해 보였다.
“이렇게까지 잘 따라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대의 실력은 실제 보이는 것보다 더 대단하구나.”
“칭찬 고맙군.”
“봐도 봐도 놀라운 무공이야. 구결은 모르지만, 왠지 쌍룡광세마공보다 더 난해해 보이는데.”
“쌍룡광세마공…… 그게 교주지학인가.”
“그렇다. 인간이 익힐 수 없는 오색지옥공을 개량하여 만든 절세의 마공이지.”
당당하게 절세의 마공이라 말하는데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
실제로 그렇게 여길 만도 했다. 연호정 역시 쌍룡광세마공에 대해 모르지만, 천위룡의 기도나 마기를 보면 연마하는 과정 자체가 황룡신왕공보다는 쉬울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다. 범용성을 늘렸다는 뜻이니까.
‘대신, 황룡과 다르게 무언가를 포기했을 것이다.’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난해한 것에는 난해한 이유가 있는 법, 그것을 익혀 보겠다고 쉽게 개량하는 것은 어떻게 해도 편법이다.
연호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가는 거지? 호북으로 진입했다면 안휘인가? 아니면 호남?”
“그런 지명은 모른다.”
“대단한 수장 납시었군. 전쟁을 일으켰으면서 중원 지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단 말인가.”
“필요한 만큼은 알지.”
“신(神)이라는 호칭이 울겠군.”
천위룡의 눈이 싸늘해졌다. 물론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는 확실하다. 곧 대사가 있는 곳이 나온다.”
“뭐?”
연호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호북이다. 설마하니 그 대사라는 인간이 중원 한복판에 있었단 말인가?
“이 근처라고?”
“정확히는.”
천위룡이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켰다.
“저곳에 있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 연호정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안개 가득한 산, 보는 것만으로도 신령스러움이 느껴지는 도교 성지가 거기에 있었다.
“과거에 대사가 말하더군. 저 산의 선기(仙氣)는 자신에게 독이라고. 그러나 독은 곧 약으로도 쓸 수 있는 법, 지금 본인의 몸뚱이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저 선산(仙山)의 기운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지.”
“무당산…….”
연호정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무당산의 누군가가 삼교의 세작이었단 말인가?’
그때였다.
쿠구궁.
무당산이 크게 울부짖었다.
* * *
“음?”
텃밭을 손보던 조양진인(朝陽眞人)이 허리를 폈다.
“……허어.”
무엇을 느꼈음인가?
허리를 두들기며 텃밭에서 나와 봉우리 끝으로 이동한 그가 광활하게 펼쳐진 무당산 자락을 바라보았다.
조양진인이 혀를 찼다.
“끌끌, 몹시 삿된 기운이로다. 선기 가득한 무당산에 이처럼 사이하고 독랄한 기운은 또 처음이구먼.”
산에 큰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는데도 그는 여유로웠다.
연신 허리를 토닥이며 텃밭을 지나 모옥으로 들어간 그가 한 자루 고검(古劍)을 들고 나왔다.
“어디 보자…… 구결이 뭐였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을 뽑은 그가 날 없는 고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마치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이내 피식 웃었다.
“뭐, 아무렴 어떤가. 대충 이것저것 다 해 보면 되겠지.”
우우우웅.
날이 무뎌져 예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검이 천천히 원을 그렸다.
방금까지 아무렇게나 휘둘러지던 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선을 그려 낸다. 단순한 선(線)인데도 보고 있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질 것 같은, 정말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푸스스스.
몇 번이고 원을 그리던 검 끝에서 서서히 뿌연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새하얀 그 기운은 구름이나 안개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기운은 방출이 되자마자 순식간에 허공에 녹아들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우우우우웅!!
저 멀리 어디선가부터 울림 깊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기묘한 진동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겹겹이 쌓여 점차 무당산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후욱!
사방에 가득하던 안개가 서서히 개는 듯했다.
꾸우우우.
낮은 울림과 함께 잠들어 있던 새들이 줄을 지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치 산 자체가 깨어나는 듯했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정령(精靈)이라는 것이 실존한다면, 잠들어 있던 산의 정령이 깨어나고 있는 모양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스럽고도 편안한 울림은 어느새 무당파 본산의 영역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후우.”
한참 동안 태극검(太極劍) 음양발의(陰陽發意)로 내공을 쏟아부은 조양진인이 납검하며 투덜거렸다.
“이제는 이 짓거리도 힘에 부친다니까. 하여간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슬슬 이 자리를 지킬 사질 놈들이 나타나야 할 터인데.”
조양진인이 봉우리를 내려갔다.
굽은 허리를 두들기며 천천히 내려가는데, 놀랍게도 어느 순간 이미 봉우리 밑에 도달해 있었다.
마치 신선의 축지법을 보는 듯했다. 평범하게 걷는 것 같은데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어? 사형, 벌써 오셨소?”
작은 바위 위에 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던 현음진인(玄陰眞人)이 아는 척을 해 왔다.
조양진인이 혀를 찼다.
“이놈아, 그 나이에 무슨 연초냐? 조만간 흙이 될 나이에 조금이라도 몸을 청정케 하려 하지는 않고.”
“이 연초도 다 자연에서 난 산물이오. 어차피 흙이 될 거면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는 게 좋지.”
“말은 좋다. 그럼 속세로 나가서 강도질이나 해 보지 그러냐?”
“우리가 왈패도 아닌데 또 그럴 수는 없지.”
무당파 전대 도사들의 대화라고는 감히 상상키 어려운 대화였다.
한차례 길게 연기를 내뿜은 현음진인이 곰방대를 털며 말했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이오? 무당산에 이 잡스러운 기운을 끌고 온 녀석들이?”
“나도 몰라.”
“사형이 불렀잖소.”
“알았으면 너희를 왜 불렀겠냐? 어떤 녀석들인지 모르니까 이놈 저놈 다 부른 거지.”
“클클, 그 말도 맞소.”
“현양(玄陽)은?”
현음진인이 다시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연기를 길게 빨아들이다가 내뱉는 그의 얼굴에 애잔함이 깃든 미소가 드리워졌다.
“작년에 갔소.”
“그러냐.”
조양진인이 입맛을 다셨다.
“담근 술 내년에 같이 마시기로 했는데, 먼저 가 버렸구먼.”
“사형 말마따나 갈 때가 되었으니까. 사형도 나도 내년을 기약하기 힘든 나이 아니오.”
“그래서 곰방대 물고 사는 거냐?”
“그렇다기보다는 뭐, 이런 것도 있었구나 싶어서.”
조양진인이 혀를 찼다.
“어차피 다 자연에 묻힐 몸들이야. 우리도 금방 하나가 될 터인데, 그 나이 처먹고도 마음을 못 다스리느냐?”
“나야 워낙 공부와 담쌓은 놈이었지 않소? 도동(道童) 때부터 공부했으면 좋았을 걸 싶소.”
“쯧, 바보 같은 놈.”
말은 그렇게 하지만 조양진인 역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몸들이라고는 하나, 함께 무당을 이끌었던 사제들이 먼저들 갔다는 소식엔 마음이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슬픔이 사무치진 않았다. 결국 이놈도 저놈도 다 무당산과 하나가 될 테니까.
나는 곳은 달라도 가는 곳은 다 똑같다. 무서울 것도, 슬플 것도 없었다.
“어디 보자…… 다른 녀석들은 좀 늦을 모양이다. 본산 아해들도 그럴 테고.”
“망할 사질들 같으니라고. 아직도 그렇게 게을러서야.”
“시끄럽고, 먼저 가자.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대사형은 왜 안 오시오? 설마 대사형도 가셨소?”
“가셨지.”
“……정말 가셨소?”
“속세에.”
“아, 진짜. 깜짝 놀랐잖소.”
“이놈아, 대사형이 계셨으면 내가 왜 너희까지 불러? 대사형한테 가서 작살내고 오라고 잔소리했지.”
“클클클.”
“그나저나 검은 어디에 두고 맨몸으로 왔어?”
“잃어버렸는데.”
“야, 이 미친놈아!”
“나야 어차피 옛날부터 뺨따귀를 더 잘 쳤소. 알잖소?”
현음진인이 웃으며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검보다는 차라리 이런 게 더 낫더이다.”
조양진인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여튼, 팔십이 넘었는데도 그렇게 철없는 걸 보면 너도 멀었다. 넉넉히 이십 년은 더 살다 가겠어.”
“지겨워서 그때까지는 못 살지.”
“됐다. 가자.”
“그럽시다.”
그렇게 두 사람이 길을 나섰다.
보란 듯이 하품을 하며 앞서 나가는 조양진인, 그 뒤에서 곰방대를 닦으며 투덜거리는 현음진인의 모습은 마치 뒷산에 놀러 가는 우애 깊은 형제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 뒤로.
어느새인가 하나둘 노인들이 따라붙었다. 술을 병째로 들이켜는 노인도 있었고, 낫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는 노인도 있었다.
하나같이 도사로 보이지 않는 그들은 이미 도사의 경지조차도 벗어난 무당의 숨은 전설로, 무당파의 전 세대를 이끌었던 칠성신검(七星神劍)들이었다.
그들의 수장인 탁무자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풍당당한 전설들의 행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