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07)
흑백무제 1207화(1207/1255)
1207화. 괴력난신전(怪力亂神戰) (1)
‘상당하군.’
하늘 높이 솟구친 우윳빛 검기들은 이내 하나하나 너비를 넓히더니, 어느새 서로 합쳐져 거대한 지붕을 이루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빛의 지붕이다. 야율대극은 그 아래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력을 느꼈다.
‘무당산에 퍼진 선기(仙氣)가 역사상 최고조에 달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야율대극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노인들. 조양진인을 필두로 현음진인, 운검진인(雲劍眞人), 운흠진인(雲欽眞人), 금토진인(錦土眞人)이 제각기 독특한 자세로 서 있었다.
‘누구 하나 극사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이 정도 압박감이라…….’
산외(山外)에서 만났다면 소림과 함께 정파 제일을 논하는 무당의 무공이라 한들 십 합, 아무리 힘들어도 삼십 합을 넘기기 전에 모두 척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곳이 적들에게 유리한 곳이라는 것이다.
지형도 지형이지만, 안개처럼 퍼진 무당산의 선기를 끌어와 본연의 한계를 부드럽게 초월했다. 게다가 선기란 사마기(邪魔氣)와 천적이라, 야율대극 입장에선 전력을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쉬운 싸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야율대극은 긴장하지 않았다.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신에게 선택받은 사음교 무공의 정점 중 하나였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단 하나의 존재, 신(神)을 제외하면 교내에서 제일을 다투는 강자인 것이다.
그런 강자가 상식 밖의 사태에 직면했다 하여 무턱대고 긴장하진 않는다. 야율대극은 어떤 변수도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싸우는 건 문제가 아니야. 중요한 건 혈존대사가 사백고를 완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아무 피해도 없어야만 한다는 건데.’
야율대극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어.’
주위를 둘러보는 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사백고가 혈존대사의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 혈신지기와 균형을 맞추던 목(木)의 생기(生氣)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미묘한 불균형 속에서 혈존대사가 사백고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사백고를 받아들여도 완전한 부활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겠지.’
야율대극이 한가롭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신비한 지붕을 유지하느라 고생 좀 하겠군. 그래서, 누가 먼저 들어올 것이냐?”
조양진인이 피식 웃었다.
“이놈아, 죽을 날 받아 놓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너처럼 쌩쌩한 녀석과 일대일로 붙는 게 말이 돼? 하물며 너는 사마외도를 걷는 광인이 아니더냐.”
“우화등선이 가능하다는 헛소리로 허송세월하는 너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생을 제대로 살지도 못한 채 신선이 되기를 바라다니, 이렇게까지 정신 나간 놈들이 또 있을까.”
도사에게는 이보다 더 심한 모욕도 찾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일부러 도발한 게 아니라 평소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기에 더욱더 치명적이다.
그러나 전대 칠성신검들은 누구 하나 화를 내지 않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마귀의 길을 걷는 놈의 잡소리에 흔들릴 만큼 그들의 수양은 낮지 않았다.
술병을 들고 있던 운흠진인이 요란하게 트림을 하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은 못 때려잡겠는데, 시작부터 파군(破軍)으로 가야 할 것 같수.”
낫을 든 운검진인이 입맛을 쩍 다셨다.
“파군에서 곧장 무곡(武曲)까지 가야 할 것 같은데? 자칫 잘못하다간 몇 합 나누기도 전에 누구 하나는 죽게 생겼어.”
죽음을 입에 올리는데도 아무도 긴장하지 않는다.
생과 사, 삶과 죽음을 동일시한다. 수양이 깊은 그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로, 느닷없는 재해가 일어나 목숨을 앗아 갈지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존의 개념이었다.
“자, 그럼.”
후우웅.
조양진인의 검에서 은은한 백색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 태극의 백기(白氣)는 검신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리고 회전하는 백기 아래, 어두운 그림자가 백기의 반대편에 위치하며 함께 회전했다.
음과 양, 양과 음의 완벽한 조화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진기를 발출하여 검에 실어 놓는데, 아무런 위압감이 없는데도 순식간에 주변 공기를 장악하고 있었다.
야율대극의 눈이 신중해졌다.
‘이건 예상외인데.’
다른 늙은이들은 거기서 거기다. 강해도 극사에 이르지 못한 이상 한계가 있다.
하지만 검에 태극의 진기를 담아내기 시작한 저 늙은이는 뭔가가 다르다.
‘몸도, 기(氣)도 극사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검은 달라.’
극사에 이르지 못한 진기가 검에 실린 순간, 극사에도 통할 만한 엄청난 밀도의 선기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기공의 깨달음보다 검의 깨달음이 훨씬 높다. 자연스레 검에 진기를 실으니, 그 깨달음의 날개가 펄럭이며 진기의 밀도까지 함께 올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야율대극이라도 한 방 제대로 맞으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는 힘이었다. 만약 조양진인이 무극에 올랐다면, 힘의 차이가 분명해도 상성 때문에 건드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남존무당의 저력이라 이건가.’
검선 탁무자가 없어도 강하다. 일선에서 물러나 오직 무당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숨은 전설다웠다.
조양진인이 차갑게 웃었다.
“칠성군검진(七星君劍陣)을 전개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걸 보니, 아무래도 네놈 뒤에서 달달 떨고 있는 늙은이에게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지?”
“…….”
“뭐, 우리는 이제 준비가 끝났다. 시작해 볼까?”
야율대극이 역시 조양진인과 비슷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쿠구구궁!!
일순 일대의 봉우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운흠진인이 딸꾹질을 했다.
“뭐여, 시벌? 이거 진각이야? 저 어린놈이 저렇게 강했어?”
“그게 아니다, 이 술주정뱅이야.”
기골이 장대한 금토진인이 심각해진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 누가 있다.”
후욱!
지진이 일어남과 동시에 산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막강한 마기가 있었다.
전대 칠성신검들은 물론 영귀사제, 나아가 야율대극조차도 깜짝 놀랄 만큼 압도적인 마기.
조양진인의 눈이 흔들렸다.
“마귀들의 왕이라도 온 모양이군.”
야율대극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유천주……!”
“파군(破軍)!”
그 순간, 조양진인의 외침에 네 명의 칠성신검들이 한 손을 활짝 펴 야율대극을 향해 뻗었다.
무당 최고 검진이자 기공술의 정점에 이른 불세출의 진법, 칠성군검진의 개진이었다.
야율대극이 소리쳤다.
“혈존대사! 서둘러라! 유천주가 왔다!”
파아아앙!
야율대극의 양손에서 뿜어진 회흑색 구름이 검진 한가운데를 향해 쏟아졌다.
콰릉!
* * *
파지지직! 퍽! 퍼버벅!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뇌광이 땅과 나무에 부딪혀 폭발을 일으켰다.
화르르륵! 쿵! 푸스스.
시커먼 화염의 호수가 드리운 초열의 안개는 무당의 신령스러운 나무들을 불태우고 쓰러트리다가 끝내 재로 만들었다.
광혈교의 교주지학, 쌍룡광세마공의 완전 전개다.
‘강하다.’
연호정의 눈에 기광이 떠올랐다.
‘실로 엄청난 힘!’
콰르르릉!!
하늘에서 천둥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에는 벼락을, 다른 한 손에는 지옥의 겁화(劫火)를 두르고 걸어오는 천위룡은 살아 움직이는 자연재해 그 자체였다.
느릿하고도 신중한 걸음걸음에 땅이 지진을 일으켰다. 풍도박혼진 속에서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다스리던 살기와 파괴 욕구를 모조리 쏟아 내는 듯했다.
‘모든 것이 규격 외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내공량에 무시무시한 밀도까지 갖추었다. 무학에 대한 깨달음은 물론, 저만한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도 조심스러움 따위는 요만큼도 없어.’
황룡이 으르렁거렸다.
탐욕스러운 눈으로 사냥감을 노려보다가 사냥감의 기세가 너무 대단해서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화아아악!!
광룡부에 황금빛 기운이 내려앉았다.
바람 같기도, 불꽃 같기도, 벼락 같기도 한 신비로운 기운이었다. 두 가지 힘을 명확하게 나눠 놓은 쌍룡광세마공과 달리, 황룡신왕공은 그 모든 힘의 성질을 조금의 어색함 없이 자연스레 담아내고 있었다.
‘감당할 수 있다.’
퍼엉! 퍼어엉!
멋대로 움직이는 뇌광과 화염은 연호정에게도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극성으로 운용되는 황룡신왕공의 기운이 뇌화력(雷火力)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수월한 방어였다. 그 충격파에 몸이 살짝 흔들렸지만, 신체가 받는 부담은 거의 없었다.
번쩍!
마기 가득한 천위룡의 눈에 놀라움이 담겼다.
“놀라운 힘! 그것이 사색광인이 남긴 신공의 진짜 모습이구나!”
“진짜는 아직 보여 주지도 않았다.”
그 무지막지한 기파를 받아 내면서도 연호정은 여유롭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연재해와 다르지 않은 힘을 대하면서도 두려움이나 과한 긴장은 없었다.
‘역시.’
광혈교의 마인들과 싸웠을 때도 그랬고, 처음 풍도박혼진을 봤을 때도 그랬다.
‘황룡은 그 자체로 천하제일을 논하는 신공이며 광혈의 마공 앞에서는 거의 절대 무적에 가깝다.’
풍도박혼진은 이승과 철저히 단절되는 힘이지만, 황룡에 입문한 연호정의 눈은 그 진법 너머에 존재하는 천위룡의 미세한 마기를 읽어 낼 수 있었다.
그 마기를 포착한 순간, 그는 깨달았다.
천위룡을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설령 이기지 못하더라도 막을 수는 있다는 것을.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겠지만, 상대 역시 죽음에 준하는 피해를 입거나 아주 오랜 시간 본인의 힘을 되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광혈교, 아니 혈교의 무공을 앞에 둔 황룡의 저력이었다.
피로에 젖어 그 이상은 보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 불세출의 직감과 군략으로 연마된 연호정의 무의식은 그때부터 천위룡에 대한 대응책을 본능 수준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역시 광혈의 마기를 읽은 황룡신왕공의 영향 때문이었다. 상극 이전에 연호정과 하나 된 황룡신왕공이라는 무공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장의 무도로 발전해 왔으며, 주인의 힘을 앗아 가면서까지 방심하지 않는 태도로 만반의 준비를 갖춰 왔다.
혈존대사가 있든 없든, 천위룡 같은 자가 세상에 나타나면 어떤 식으로든 무력화시킬 수 있다.
주인의 생명까지 필요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
‘나는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이 아직도 많아. 이제 나는 그것을 안다. 그러나…….’
황룡(黃龍)이 광룡(狂龍)이 되어 신병의 춤사위를 준비시켰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싸우겠다. 언제나처럼.’
연호정이 차갑게 웃었다.
“그렇게 내공만 줄줄 흘리면 힘 안 아까운가? 왜 덤비질 않나?”
“…….”
“신중함도 도가 지나치면 소심함이 되는 거야. 신을 자처하는 놈치고는 조심스러움이 과하구먼.”
천위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이 그림을 그대가 만들었다는 생각에 자꾸만 주춤하게 되는군.”
“보기 좋군. 이제야 좀 솔직해졌나?”
“하지만 그대의 말도 맞다. 신을 자처하는 자가 상식 밖의 사태에 직면했다 하여 추한 모습을 보여 줘서는 안 되는 법이지.”
훅!
천위룡의 마기가 벼락처럼 응축되었다.
“…….”
한순간 세상이 고요해지고, 놀라 흩어졌던 선기가 울부짖으며 산등성이 너머로 도주했다.
잠시 후.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온다!’
시커먼 화염이 산 그림자를 지우며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