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08)
흑백무제 1208화(1208/1255)
1208화. 괴력난신전(怪力亂神戰) (2)
‘……!!’
연호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온 세상을 뒤덮을 것처럼 날아오는 묵룡염원(墨龍炎原)의 힘.
화아아악!
전개되는 순간 전신 피부가 모조리 타 버리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내장이 익고 골수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지독한 열기다.
광혈교주 천위룡의 진짜 힘이었다.
여흥에 가까웠던 당형과의 싸움에서 보여 주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번 휘둘러 산을 불사르고, 두 번 휘둘러 하늘조차 불태우는 마신(魔神)의 힘이었다.
연호정이 땅을 박찼다.
콰르르르릉!!
시커먼 불꽃이 파도처럼 치고 들어와 전방 십여 장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엄청난 충격파가 번졌다. 불꽃이 휩쓸고 간 땅은 시커멓게 눌어붙다 못해 불그스름한 액체를 남기기까지 했다.
이런 무공을 직격으로 맞았다가는 그 누구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 대포의 포격을 우습게 만들어 버릴 만한 파괴력에 화산(火山)의 열기까지 담은 불세출의 마공이었다.
어느새 하늘로 날아오른 연호정의 몸이 화살처럼 천위룡을 향해 쏘아졌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것은 연호정이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수직에 이은 대각의 움직임이다. 사람에게 가능한 도약도 아닐뿐더러, 중간에 돌진 방향을 바꾸는 건 물론 속도 역시 벼락을 방불케 했다.
한 줄기 뇌전처럼 꽂히는 연호정을 향해 천위룡의 좌수가 움직였다. 묵룡염원과 공존하는 힘, 쌍룡광세마공의 뇌룡강재(雷龍降災)였다.
번쩍!
벼락이 쏘아졌다.
시야를 하얗게 물들이는 빛의 폭풍이었다. 마기를 근원으로 한다지만 성질과 위력은 실제 벼락과 아무 차이가 없다. 이 또한 직격당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전무할 것이다.
그러한 힘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가운데, 연호정의 대응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탄력적으로 휘둘러지는 광룡부, 황금빛 바람을 담은 무참(舞斬)의 힘이 뇌룡강재의 힘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르릉!
폭음과 함께 벼락이 두 줄기로 쪼개졌다.
천위룡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해할 수 없는 기사(奇事)였다. 제아무리 대단한 내공으로 둘러싸였다 한들, 뇌룡강재는 한낱 ‘물체’에 부딪혀 두 줄기로 쪼개질 만큼 만만한 힘이 아니었다. 오히려 벼락과 동등한 힘이기에 부딪힌 순간 병기부터 주인의 몸까지 전부 관통하여 누빈 후 사라져야 마땅했다.
벼락, 뇌기(雷氣)의 성질조차도 일반 발경술과 마찬가지로 바꿔 버리는 힘이었다. 천위룡이 재해에 가까운 힘을 발산하는 마신이라면, 연호정은 그 재해의 힘을 지옥의 악졸이 짖는 비명으로 만들어 버리는 악신(惡神)이었다.
콰릉!
무참의 투로가 끝나기도 전에 연호정의 좌수가 움직였다.
지금껏 보여 준 적 없는 속도다. 좌수에서 뻗어 나온 널찍한 장력이 천위룡의 전신을 뒤덮으며 하강했다.
날아오른 황룡의 거체에 맞은 모든 것이 분쇄될 것이다. 금룡이무, 금룡번천장(金龍翻天掌)이었다.
천위룡의 우권(右拳)이 올라왔다.
콰아앙!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광룡부가 벼락을 찢었듯, 천위룡의 주먹 역시 금룡번천장의 힘을 찢었다.
아니, 찢었다기보다는 뚫어 버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산처럼 무거운 번천장에 구멍을 내고 올라온 화권(火拳)이 연호정의 명치에 도달했다.
퍼어어억!
명치에 닿기도 전에 회전하여 화염 권풍의 궤도에서 벗어난다. 불꽃의 힘이 스치고 지나간 연호정의 의복 옆구리가 터져 나가며 기묘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파악! 번쩍!
대각으로 내려오던 연호정이 다시 수직으로 방향을 틀어 착지한 후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마신이 깔아 놓은 마기의 방벽이 돌진만으로 박살 나고 있었다.
천위룡의 얼굴에 미묘한 감탄이 일었다.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다.’
수직 상승, 대각 돌격, 그리고 다시 수직 하강에 이어 정면 돌파다.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이 세상 모든 기운의 축복을 받은 자, 허공에 퍼진 보이지 않는 대자연의 힘이 황룡신왕공과 공명하며 연호정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연호정의 광룡부와 천위룡의 쌍장이 부딪쳤다.
쾅! 콰쾅! 퍼어어어엉!!
압도적인 힘의 향연이었다. 비로소 입문한 황룡신왕공은 생애 최대 난적이자 사냥감을 향해 그간 숨기고 있던 힘을 전부 방출해 냈다.
그에 맞서는 천위룡 역시 화염과 벼락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광룡부가 끌어오는 패력강공을 상쇄했다.
연호정의 무공이 자유 그 자체라면, 천위룡의 무공은 자유라는 개념조차 파괴하는 위엄이었다. 마신과 악신, 자유와 위엄이 서로의 목을 노리며 인세에 허용되지 않은 힘을 숨 쉬듯 자연스레 풀어놓았다.
쾅! 콰릉!
예전에도 그랬지만, 광룡부의 움직임은 실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팔십 근이 넘는 중병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거의 사선에 가까울 정도로 휘어지는 창대 위에 달린 도끼날이 공간과 마력을 찢어 내며 막강한 압력을 일으켰다.
쿠르르릉!!
어느새 두 사람의 싸움터는 초토화가 되었다.
신화 속 괴력난신들이 난동을 부리는 듯하다. 반경 이십여 장의 땅이 뒤집히고, 녹고, 가루가 되었다.
파아아앙!
연호정의 저돌적인 무공에, 놀랍게도 천위룡이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감당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상대의 공격 반경을 벗어나 더 효율적으로 쌍룡의 힘을 난사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대단하다.
마공을 완성한 후, 그 어떤 강자 앞에서도 물러남을 몰랐던 그였다. 묵룡의 화염은 초인조차 접근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고, 뇌룡의 벼락은 무신이라도 지져 버릴 수 있을 만큼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뒷걸음질 한번 쳐 본 적 없는 천위룡으로 하여금 후방으로 물러나 ‘효율’을 생각하게 만든 연호정의 무공은 실로 지고(至高)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스륵.
물러났던 천위룡이 우측으로 움직였다.
한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어느새 십 장 밖이다. 공간을 접는 축지(縮地)의 비술, 쌍룡광세마공과 함께 탄생한 신마광영(神魔光影)의 보법이었다.
천위룡의 오른손이 휘둘러졌다.
묵룡염원, 겁화의 파도였다.
화아아아악!
바닥에 깔려 파도처럼 넘실거리던 이전의 공격과 달랐다. 사선으로 올라가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간 시커먼 화염이 느릿한 비처럼 떨어져 내리며 모든 것을 뒤덮으려 했다. 당연히 묵룡염원 특유의 열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단하군.’
이 정도 열기를 발산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었지만, 더 대단한 건 힘의 크기부터 형태, 공격 반경까지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천위룡의 깨달음이었다.
‘보이는 것만큼 단순한 게 아니야. 이만한 힘을 붙들고 늘리기 위해선 압도적인 내공량에 걸맞은 궁극의 깨달음이 함께해야만 한다.’
무엇이든 극에 이르면 단순해지기 마련이었다. 천위룡의 기공 능력은 그러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연호정은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콰콰콰쾅!!
십여 장 너비의 묵염(墨炎)이 기둥 없이 떨어지는 지붕처럼 전방의 모든 것을 짓눌러 녹여 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에 화염의 강 오 장 너머의 거목들도 불타올랐다. 무당산 전체를 불태워 버릴 것 같은 무공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천위룡은 이 무당산 따위엔 아무도 관심도 없었다.
지금 그의 관심은 오직 연호정, 단 한 명에게 쏠려 있었다.
푸화아아악!
일대를 뒤덮은 시커먼 화염을 뚫고 올라온 연호정.
천위룡의 눈이 흔들렸다.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상대의 무공에 뭔가 신묘한 힘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특히나 방어와 회피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쌍룡광세마공보다도 더 우위에 있는 듯하여 아예 벗어날 수 없는 범위 공격으로 짓눌러 버린 것이었다.
한데 그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걸 넘어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하지?’
같은 근원에서 출발한 무공이라도 전혀 다르게 발전했다. 무학의 수준이 비슷하다면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그 무학을 익힌 무인의 기량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저 이복형제는 죽어야만 했다. 죽지 않더라도 최소한 전신 화상에 내상까지 겹쳐 공격 자체가 불가능해야 마땅했다.
한데 이게 무엇인가?
어찌하여 저 청년의 몸은 상처 하나 찾아보기 힘든가? 어찌하여 저 청년의 내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막강한 기파를 발산하고 있는가?
어찌하여 저 청년의 기파에, 점점 더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는 것인가.
번쩍!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벼락이었다.
쾅!
빛보다 더 빠른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호정의 주먹질에 벼락이 박살 났다.
‘읽히고 있다?!’
벼락이 쏘아지는 순간 연호정의 주먹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서가 아닌 방어를 위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고 확실했다.
자신의 공격을 상대가 읽어 내고 있는 것이다. 벼락과 불, 불과 벼락 둘 중 어느 것이 먼저 올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조금 전 묵룡염원은 어째서 피하지 않았나?
화염의 파도에 뒤덮이고도 멀쩡한 건 대단한 일이지만, 설마 거기서 멀쩡할 걸 알고 그대로 받아 냈단 말인가?
멀쩡할 걸 알았다 한들 왜 그것을 받아 내는가? 공격을 읽고 있다면 그보다 더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자신을 공격할 수 있었을 텐데?
콰르릉!
묵룡염원의 화력과 뇌룡강재의 뇌력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연호정의 몸이 회전했다.
번쩍!
천위룡의 눈이 커졌다.
쏟아지는 벼락이 연호정의 광룡부를 따라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거대한 도끼를 쥐고 회전하는 악신의 춤이었다. 그 춤에 홀린 벼락이 악신과 함께하다가, 뒤이어 폭사되는 묵룡의 힘에 놀라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묵염이 연호정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와 열기에 연호정 뒤, 십오 장 밖의 나무들이 쓰러지고 박살 났다. 그보다 더 가까이 있던 바위는 녹아서 움푹 파인 채로 굴러가다가 수십 조각으로 부서졌다.
‘제대로 들어갔다.’
이 정도 충격파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목표물이 가격당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런 폭발이 일어날 리 없다.
하지만…… 천위룡은 상대가 죽었다고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너무나도 막강한 묵룡의 힘이 연호정의 기척조차 지우고 있었다. 생기조차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왠지 상대가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천위룡의 직감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푸스스스스.
자욱한 연기가 차가운 바람에 흩어졌다.
그리고.
“……!!”
천위룡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뜨끈하구나.”
왼손을 뻗은 연호정의 자세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저 왼손 손바닥 가운데가 시커멓게 변했을 뿐이었다.
“……묵룡염원을 한 손으로 막았단 말인가?”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뭐 그리 대단한 힘이라고 양손으로 막나. 한 손이면 충분하지.”
“…….”
“그래도 대단하군. 솔직히, 인간이 이런 힘을 다룰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어.”
그러는 네놈 역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말하려던 천위룡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이해 불가의 영역, 마신의 깨달음과 지식으로도 해석할 수 없는 사태였다. 언제든 공격에 반응할 준비를 하면서도 불신으로 얼룩진 천위룡의 얼굴은 혼란 그 자체였다.
“혹시 감자 있나?”
“……?”
“배고픈데, 있으면 좀 구워 먹고 다시 시작할까? 그 불덩이 같은 거, 감자 굽기 좋을 것 같은데.”
“…….”
“없으면 바로 시작하자고. 빨리빨리 끝내고 밥 먹어야겠다.”
천위룡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