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09)
흑백무제 1209화(1209/1255)
1209화. 괴력난신전(怪力亂神戰) (3)
훅!
천위룡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오던 화염과 벼락의 힘이 일순간 사라졌다.
연호정의 눈에서 이채가 발해졌다.
‘포기한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천위룡은 아직 황룡신왕공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간의 공격과 나눈 합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기공을 잠재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탐색이다.’
이해 불가의 상황에서 굳이 통하지도 않는 무공을 남발할 이유는 없다.
연호정은 천위룡이 수많은 절기를 보유했다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재해와도 같은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무학을 분해하고 깨닫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걸 떠나, 상대는 광혈교주였다. 교주지학 하나만 익혀서 인정받았을 리가 없다. 어떤 무공이든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군.”
저벅저벅 외측으로 걸어가며 연호정을 살피는 천위룡의 눈은 가늘게 뜨여 있었다.
“분명 네놈의 경지는 나에 이르지 못했다. 확실하지는 않아도 네 경지에서 보일 수 있는 움직임과 힘은 대충 유추할 수 있어.”
“…….”
“한데도 너는 네 경지에 어울리지 않는 힘을 구사하고 있다. 기량 이상의 무공, 한계를 넘어선 힘은 심신에 지극한 타격을 주는 법. 한데 너에게서는 그런 기색도 보이지 않는구나.”
“내가 원래 좀 튼튼해.”
“그래 보이는군.”
우둑. 우두둑.
천위룡의 두 주먹에서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이미 늙을 대로 늙었지만, 그런 거 자주 하면 더 늙어서 관절염으로 고생할 거다.”
“새겨듣도록 하지.”
농담 같은 말에 이런 식으로 대답해 줄 줄은 몰랐다.
그 순간, 연호정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뻣뻣하고 단단했던 상대에게서 유연함이 발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륵.
천위룡의 걸음이 멈추었다.
연호정 역시 자세를 풀고 광룡부를 내렸다.
“…….”
묘한 적막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쿵! 콰릉!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싸우고 있었다. 충천하는 사마기(邪魔氣), 폭풍처럼 터져 나오는 검기의 향연이 무당산을 신음케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소리와 기파를 읽지 못했다. 아니,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상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파라라라락!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전장에서 거의 육십 장 가까이 떨어진 곳이었다.
“저건……?!”
날아오던 이, 찰극평이 눈을 부릅떴다.
일대가 초토화되어 있었다. 싸움터만 보면 주변이 산인 줄도 모를 만큼 황폐했다.
찰극평의 옆, 기천웅의 눈도 커졌다.
“……광혈교주.”
거대한 흑색 신병을 든 연호정의 존재보다, 넘치는 기파를 갈무리한 상대에게 먼저 눈이 간다.
기파는 사라졌지만 존재감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마치 하늘에서 점지한 지옥의 왕이 현세에 올라온 것 같았다. 대자연의 순후한 기운이 마신 주변에만 다가가지 못한 채 고통스레 꿈틀거리고 있었다.
“광혈교주!?”
찰극평은 깜짝 놀랐다.
“저자가 광혈교주란 말이오?”
“그래.”
기천웅의 눈이 흔들렸다.
“저자가 바로 광혈교주 천위룡일세.”
찰극평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엄청나구나!’
기도를 조절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오직 저자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실로 무시무시한 존재감이었다. 기천웅의 존재감과는 그 성질이 달랐다.
기천웅이 존재만으로 태양과도 같은 위엄을 뽐낸다면, 천위룡은 그를 마주한 모두가 저절로 고개를 조아릴 것만 같을 정도로 어둡고 위압적인 존재감을 자랑했다.
나아가, 실제로 무공 역시 기천웅보다 강한 것 같았다. 아니, 강한 게 확실했다. 그가 기억하는 전성기 시절의 기천웅, 그리고 지금의 기천웅을 다 대입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공공연히 삼교 최강이라는 말이 나돌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어.’
직접 보니 그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았다.
이 정도 거리가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싸운다면 어떻게든 싸우겠지만, 마주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대체 저자는 어떻게……?’
그래서 연호정의 존재가 놀라웠다.
인외(人外)의 마신과 마주하면서도 허리가 꼿꼿하고 흘러나오는 기파 또한 왕성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기파가 황궁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때도 분명 전력을 다해 싸웠을 것이다. 그것은 확실했다. 일부러 힘을 아낄 만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 잠깐 사이 저 정도로 발전했단 말인가?’
찰극평의 얼굴에 불신이 떠올랐다.
발전 속도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특히 이 경지에 이르면 천운이 따라 주지 않는 이상 단시간에 껑충 뛰어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정도 천운이, 저 젊은 장군에게 찾아왔다는 것인가…….’
그때, 기천웅이 입을 열었다.
“긴장 풀게.”
“……?”
“이미 싸움은 벌어졌네. 연 성주가 굳이 싸움을 벌였단 건 상대와 더 이상 대화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지도 하나뿐이라네.”
“……!”
“언제든 참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찰극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전장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연호정을 보던 천위룡이 담담하게 말했다.
“신화교주에 화왕이라, 준비성이 아주 철저하구나.”
“아까도 말했지만 작전이라는 건 언제든 변경될 수 있는 거니까.”
“열양공의 극치에 이르렀다 한들 쌍룡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너를 죽이면, 저 둘은 아무것도 아니게 돼.”
“쉽지는 않을 거다.”
연호정이 차갑게 웃었다.
“내가 죽으면, 최소한 너 역시 저승에 한 발 걸치게 될 테니까.”
“……시간이 많이 지났군.”
훅!
갈무리되었던 천위룡의 마기가 다시 발산을 시작했다.
쌍룡광세마공의 힘이었다. 하지만 묵룡염원과 뇌룡강재는 피워 올리지 않았다.
순수한 마공의 힘. 신(神)에 이른 기공술을 접어 두고, 지옥의 힘을 인신(人身)에 담아냈다.
파아아아앙!
시작이라는 말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먼저 들어오라는 말도 없었다.
신마광영의 보법으로 접근한 천위룡이 연호정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고개를 틀어 일권을 피해 냈지만,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권풍이 수십 장 밖의 바위와 나무를 박살 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 정도 위력이 나온다.
광룡부가 하단에서 상단으로 치솟았다.
까아아앙!
절대 방어할 수 없는 위치였다. 절대 받아칠 수 없는 위치였다.
차라리 피했다면 이해했을 것을, 천위룡은 너무나도 쉽게 무릎으로 광룡부의 도끼날을 쳐서 측면으로 튕겨 내 버렸다.
어떻게 그런 대응이 가능했는지 알 수 없었다. 연호정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쉬익! 퍼어엉!
단숨에 목을 잡으려고 뻗은 손이 연호정의 좌수 일장에 막혀 튕겨 나갔다.
천위룡의 좌권이 관수(貫手)로 변해 연호정의 가슴을 노렸다.
다른 팔이 자유를 잃고 위로 튕겨 나갔는데도 찌르듯 내지른 관수 공격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부욱!
철판교의 수법으로 피했지만 다소 느렸다. 천위룡의 손끝이 연호정의 앞섶 일부를 찢고 지나갔다.
퍼억!
누우면서 발을 뻗어 천위룡의 복부를 후려쳤다. 회피와 공격이 하나다. 천하의 천위룡도 연호정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아니, 막을 필요가 없었다.
파바박!
정작 발을 휘두른 연호정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갔다. 서둘러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땅에 파고들 뻔했을 정도로 엄청난 반탄력이었다.
그리고 천위룡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번쩍!
신마광영이 아니었다.
무당산으로 오며 펼쳤던 그 기묘한 신법이었다. 한없는 자유로움과 빠른 속도로 신법이라는 무공의 한계를 넘어선 움직임을 보여 준다.
그 즉시, 연호정은 판단했고 행동했다.
쿵! 훅!
광룡부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천종운행비를 시전, 측방으로 빠져 천위룡의 전권에서 벗어난 연호정이 다시 그를 향해 날아갔다.
천위룡의 얼굴에 진심 어린 감탄이 일었다.
‘이런 놈이 있었단 말인가.’
기공을 포기하고 육탄전을 강제, 상대 무공의 모호함을 파헤치려 하였다.
하지만 상대의 무공보다 그 판단력에 더 놀라게 된다. 접근전으로 들어가서 몇 차례 공방을 벌이고는 곧장 도끼를 버렸다.
‘내 신법의 속도를 아는 것이다. 거리 차이를 무시하고 휘두를 만큼 연마된 병기술로도 한계가 있다는 걸 즉시 알아차린 거야.’
깨닫는 순간 행동이 이어진다. 두뇌와 신체의 완벽한 일치,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싸움꾼의 모습이었다.
번쩍!
천위룡의 다리가 허공을 지우듯 휘둘러졌다.
길쭉한 다리는 연호정에게 닿지도 않았다. 하지만 연호정은 각법이 휘둘러진 순간 고개를 숙였다.
콰아앙!
발끝에서 쏘아진 경파가 저 너머의 나무 세 그루를 박살 냈다.
접근전으로 박투술을 벌이고 있다고는 하나, 손발에 깃든 힘은 여전히 천하제일을 논한다. 의식하지 않아도 궁극의 발경술이 서려 있어, 거리 조절을 하기가 지극히 어려웠다.
파아아앙!
고개를 숙이며 접근한 연호정의 두 주먹이 금룡진악권의 투로를 밟아 갔다.
단순하고 어렵지 않다. 동작만 보면 일류에 이르지 않아도 막아 낼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천위룡은 그 투로 속에 깃든 발경과 진기 운용을 볼 수 있었다.
동작은 동작일 뿐이다. 진짜 놀라운 것은 그 안에 담긴 힘이었다. 주먹과 함께 뿜어져 나온 무형의 기파가 상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동작을 방해하며 정면 대결을 종용하는데, 그러면서도 정확히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천위룡의 두 주먹이 마주 휘둘러졌다.
콰콰쾅!
주먹과 주먹이 부딪치며 폭음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주먹 대 주먹의 대결은 천위룡의 패배였다. 폭음과 함께 뒷걸음질 치는 천위룡의 기파가 미세하게 출렁거렸다.
하지만 천위룡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눈으로 연호정을, 그리고 그 안에 깃든 힘을 직시할 뿐.
번쩍!
혈익휘천으로 돌진한 연호정이 금룡진악권, 금룡번천장을 연달아 내쳤다.
상대의 급소를 치고 물러나거나, 피하는 상대의 몸을 옭아매 터트리는 이중 발경이었다.
절대적으로 정면 승부를 고집한다. 힘의 차이가 극심한데도 그러했다.
다른 사람이 이랬다면 패기 넘치는 성향을 지녔다고 해석했을 것이다. 지더라도, 죽더라도 당당히 맞서 싸울 모양이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위룡은 접근전이 벌어짐과 동시에 도끼를 포기한 연호정을 보며, 그가 지극히 효율적으로 싸운다는 걸 알았다.
즉, 굳이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것은 그것이 본인에게 이롭기 때문일 터.
천위룡은 어울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퍼퍼펑! 쾅!
주먹과 주먹, 발경과 발경, 신기(神氣)와 마기(魔氣)가 부딪치며 일대에 또 다른 지진을 일으켰다.
초근접 거리에서의 박투술, 그러면서도 상대의 몸통과 얼굴에는 주먹을 꽂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신에 이른 반사 신경과 전투 경험의 소유자인바. 힘 싸움 중에도 치명적인 일격은 모조리 피해 가며 상대를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쿠쿠쿠쿵! 쾅!
연이은 충돌에 산이 무너질 듯 진동했다.
번쩍!
힘 싸움을 이어 가던 천위룡이 일순 뇌룡강재의 힘을 담은 주먹을 연호정의 가슴을 향해 휘둘렀다.
지금껏 선보인 적 없는 속도였다.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그 순간, 연호정의 금룡번천장이 천위룡의 주먹을 향해 뻗어 나갔다.
절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반응한 것이다.
콰아앙!
천위룡이 삼 장 뒤로 물러났다.
화르르륵!
곧장 쫓아가려던 연호정은 순간 밀려드는 무시무시한 열기에 다시 뒤로 물러났다. 황룡신왕공이 무의식적으로 발휘되며 뜨거운 기운을 모조리 식혀 주었다.
“……그랬군.”
천위룡의 눈이 흔들렸다.
“네놈의 그 무공, 쌍룡의 천적(天敵)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