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10)
흑백무제 1210화(1210/1255)
1210화. 괴력난신전(怪力亂神戰) (4)
야율대극의 눈이 부릅떠졌다.
후우우우웅!!
뿜어져 나간 군사장(群邪掌)의 장력이 거대한 선기의 폭풍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비록 야율대극 최고의 무공은 아니었지만, 사음교의 기본공을 대성한 이들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 군사장이었다. 말하자면 사음무(邪婬武)의 본격적인 시작이요, 절기라는 뜻이다.
그만한 무공을 극사에 이른 고수가 펼쳤으니 능히 경천동지의 위력을 자아낼 만하다.
한데 그 장력이 손쉽게 무너졌다. 교내 사왕 중 어떤 이도 군사장을 이리 허무하게 흩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지이잉! 지이이잉!
무당의 다섯 진인들의 손에서 기묘한 울림이 퍼져 나왔다.
단순한 검진이 아니었다. 검진이란 곧 검사들이 감당키 힘든 상대를 효율적으로 상대하는 일종의 합격술이다. 이렇게까지 풍성한 진기로 상대의 무공을 분쇄하고, 나아가 압박하기까지 하는 것은 검진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날카롭다.’
그 안에 사이한 공력을 채웠다고는 하나, 상단전이 열려 평범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야율대극의 눈은 무당파의 전대 노고수들이 발산하는 기운에서 지극한 예기(銳氣)를 포착했다.
연신 뿜어져 나오는 우윳빛 정광(正光). 그러나 어디에도 검은 없다. 실체 없는 거검(巨劍)은 다섯 진인들의 머리 위에서 야율대극을 겨누고 있었다.
검진의 한계를 넘어선 기공 진법이다. 또한, 단순한 기공 진법이라고만은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힘이었다.
일 대 오로 싸운다면 결코 질 리가 없다. 오가는 공방 몇 합 만에 하나의 목숨을 끊고, 십여 합에 이를 때쯤 또 하나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무인으로서의 일(一)과 무당산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아 펼쳐지는 고매한 진법으로서의 일(一)이 싸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림과 함께 태산북두를 논한다더니.’
검선 탁무자 이외에는 사람이 없다고 들었다. 그나마 탁무자가 아끼고 아끼는 제자가 있어 훗날 스승 못지않은 괴물이 될 거라는 얘기가 들렸지만, 그 제자 역시 무림맹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했다.
즉, 무당파에는 자신을 막을 자가 없다. 야율대극은 그렇게 생각했다.
틀렸다.
소림과 무당, 북숭과 남존의 자존심이 깃든 두 문파는 다른 구파와는 또 달랐다.
벗겨 내고 또 벗겨 내도 상상을 초월하는 인사들과 무공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중 정점은 바로 칠성군검진으로, 탁무자가 창안한 이 검진은 창시자 스스로 상대하여 무려 삼백여 합을 겨룬 무당 최고의 진법이었다.
검진을 이루는 사람이 둘 빠졌지만, 인원이 줄어도 전개는 가능하다. 하물며 그 빈 자리를 무당산의 선기가 채우고 있으니, 사마외도의 정점이라 불리는 야율대극으로서도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지이이이이잉.
조양진인의 검에서 울려 퍼지던 심상치 않은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한 울림을 발했다.
퍽! 퍽!
야율대극의 머리 양옆에서 작은 폭음이 터졌다.
무당파 선기의 힘을 받은 강력한 진동이 야율대극의 청력을 앗아 가려 했지만, 제 주위에 내공의 방벽을 세운 야율대극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조양진인은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파군시(破軍始)에도 아무 이상이 없다. 선기를 끌어와 힘을 증폭했는데도.’
무당산의 선기가 도와주는 이상, 두 사람이 빠진 공백은 크다고 할 수 없다. 한데도 야율대극은 이 힘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천천히 무너트리려 하였거늘.’
곧장 과격하게 공격하다 보면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한 꺼풀, 한 꺼풀 벗겨 내려 한 것인데.
조양진인의 눈이 가라앉았다.
저 기이한 노마(老魔)를 부활시키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터. 야율대극 역시 섣불리 덤비지 않는 것은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 그리고 지켜야 할 대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양진인의 입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군정(破軍正).”
훅!
우윳빛 선기가 서서히 회전하며 안온했던 검진의 기운을 점차 사납게 만들었다.
쿠르르르릉!!
하늘이 울부짖었다.
회전하던 선기가 어느덧 거대한 선풍(旋風)으로 화했다.
느릿한 움직임이라 생각했는데 언제 그리 변했는지 모르겠다. 뿌연 진기의 회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터져 나올 만큼 장관이었다.
그 순간, 야율대극은 직감했다. 상대가 필살의 의지를 일깨웠다는 걸.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뒤쪽을 신경 쓰지 말고 공세로 나아가야 했다.
쿵!
강력한 진각과 함께 야율대극의 손바닥이 전방으로 향했다.
부드럽게 내치는 동작이었다. 그 흉흉한 기운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동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손바닥에서 뿜어지는 어두운 경력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콰르르릉!!
장심을 통해 쏟아진 발경이 순식간에 거대해지며 암청색 기괴한 장력으로 탈바꿈되었다.
조양진인이 외쳤다.
“나서라!”
파아아악!
운검진인의 움직임은 눈이 부셨다.
퍼어어어엉!
한 자루 녹슨 낫을 휘둘러 암청색 장력을 사선으로 쪼개 버리는데, 그 예기가 실로 대단했다.
야율대극의 눈이 빛났다.
‘또 막을 수 있을까.’
사음교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은 이제 시작이었다.
또 한 번 진각을 밟으며 일 보 전진한 야율대극이 반대편 손을 내밀었다. 이전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진 듯했다.
콰르르릉!!
동작이 빨라진 만큼 터져 나오는 장력의 힘도 더 강해졌다.
후우우우웅!
녹슨 낫에 막강한 기운이 어린다. 운검진인의 낫이 순식간에 사위를 휩쓸었다.
퍼퍼퍼퍼퍼펑!!
그 강한 장력이 수십 번의 낫질에 허물어졌다. 일격으로는 절대 못 막을 힘의 결정체를 벼락처럼 빠른 연환쾌검으로 막아 낸 것이다.
운검진인이 연마한 무당의 절기, 천라검(天羅劍)이었다.
번쩍!
야율대극의 장력을 분쇄한 운검진인이 재차 낫을 휘둘렀다. 또 한 번 천라검을 펼친 것이다.
실로 하늘의 그물이라는 이름답게, 허공을 가득 채운 수십 줄기의 검기가 야율대극의 시야를 뒤덮었다.
‘아름답군.’
정도를 걷든 사도를 걷든,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법.
‘이것이 이 검진의 진짜 힘이구나.’
운검진인의 실력으로는 절대 펼치지 못할 막강한 검망(劍網)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해 준 것은 곧 저 진법이었다.
우우우우웅!
이제는 하늘조차 덮을 듯 넓게 퍼진 채 회전하는 선풍이 더 거대한 지붕을 만들어 냈다.
그 지붕 밑, 회전하며 밀도를 높인 선기가 운검진인에게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사방을 뒤덮어야 할 폭우가 좁은 관을 통과해 운검진인만을 적시는 듯했다.
어느새 땅에 검을 박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조양진인, 술병을 든 채 눈을 감은 운흠진인, 조양진인처럼 나뭇가지를 땅에 박고 그 위에 손을 올린 현음진인, 커다란 양손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시키는 금토진인.
자신까지 네 명의 진기(眞氣)에 더하여, 주(呪)를 외우는 조양진인이 무당산 곳곳에 잠들어 있는 평온한 영혼들을 일깨운다.
그 영혼들은 언제라도 무당을 지키기 위해 승천하지 아니하고 남아 있던 선대 도사들의 넋이라, 그 영기(靈氣)가 하늘의 천기(天氣)와 땅의 선기(仙氣), 그 중심에 흐르는 인간의 진기(眞氣)를 선택받은 자에게로 몰아주고 있었다.
‘강신(降神)!’
어느새 칠성군검진은 야율대극과 영귀사제들 주변으로 거대한 성벽을 세우고 있었다. 검진을 파훼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투기장과 같았다.
그리고 그 투기장의 대표로 운검진인이 나온 격이었다.
천지인(天地人)의 기운을 받은 운검진인의 기파는 놀랍게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강하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즉, 야율대극은 거부할 틈도 주지 않고 상대를 강제로 투기장에 끌어온 전대 노도사들의 공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압!”
이내 운검진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땅을 박차고 전진하는데 강력한 진각 소리도, 흙이 파헤쳐지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새 야율대극의 전권 안으로 들어섰다. 기척은 있지만 귀신처럼 홀연한 움직임이었다.
뒤이어 운검진인이 휘두르는 녹슨 낫이 무당송문고검(武當松紋古劍)의 환상을 담은 채 천라검의 구결을 토해 냈다.
퍼퍼퍼펑!
야율대극의 쌍장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며 천라검력을 찢어발겼다.
‘강하다!’
반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사음교는 물론 광혈과 신화에도 극사에 오르지 못한 고수를 강제로 강하게 만드는 수법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공능일 뿐, 그 수법을 쓴 이들은 힘을 잃고 폐인이 되거나 잘해도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다. 그러고도 진짜 고수의 힘을 당해 내기는 힘들었다.
‘이놈들은 달라!’
파파파파파.
충격파를 일으키며 휘두르는 주먹에는 무당칠성권(武當七星拳)의 신묘함이 가득했고, 미간과 중단, 그리고 하단전을 부드럽게 쑤시고 들어오는 낫질에는 삼절황검(三絶荒劍)의 고절한 진경이 녹아들어 있었다.
두 가지 무공을 펼치는데도 이음새가 보이질 않았다. 끊이지 않는 도도한 강물을 보는 듯 몰아치는 검권(劍拳)의 기세가 실로 대단했다.
퍼퍼펑! 콰앙!
거칠게 검권을 튕겨 내던 야율대극은 절로 호승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혈존대사가 사백고를 언제 받아들일지도 모르는 상황에 유천주까지 나타났다. 호승심을 불사를 때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네 자루 거검의 힘을 받는 운검진인의 무공은 부드러우면서도 호쾌한 공격을 선보였다. 무(武)에 몸을 담은 자라면 누구라도 어울려 보고 싶어 할 만한 공격들이었다.
‘제대로 나가 주마.’
야율대극은 폭발하는 호승심을 접고, 빠르게 승부를 결정짓기로 했다.
쿠구구궁!!
투기장 주변에 흐르는 무서운 선기 덕에 운신 자체가 불편했지만,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강한 사마기는 일순 야율대극의 몸에 자유를 선사했다.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야율대극의 진짜 무공, 음혼대마력(陰魂大魔力)이 고운 화선지 위에 먹물을 뿌리듯 칠성군검진의 투기장인 파군정(破軍正)을 잠식해 나갔다.
조양진인의 주(呪)가 빨라졌다. 선기 가득한 힘을 밀어 내는 마공의 힘! 무당산의 영험한 기운을 끌어와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아아앙!
음혼대마력의 힘을 실은 일권이 단숨에 운검진인을 휩쓸었다.
패력의 무공, 맞서는 모든 걸 깨부수는 직선적인 권법이었다. 진혼마권(振魂魔拳)이 펼쳐진 것이다.
콰르릉!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날려 버릴 기세다. 운검진인이 다급한 얼굴로 낫과 손을 휘둘렀다. 천라검과 칠성신장(七星神掌)이었다.
쾅! 콰쾅!
천지인의 기운을 받고 있는데도 일권을 막기가 힘들었다.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운검진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훅!
야율대극의 좌수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진혼마권에 이은 사령신장(死靈神掌)이었다. 강신의 수로 깨어난 무당의 영혼들까지 휩쓸어 버릴 양, 뿜어져 나오는 사이한 공력이 폭우처럼 사방을 덮쳤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쾅!!
사령신장의 힘을 모조리 쳐 내며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어느새 운검진인과 위치를 바꾸어 무당의 전설 십단금(十段錦)을 펼친 자.
한 쌍의 육장(肉掌)으로 무당제일권(武當第一拳)의 명성을 얻은 금토진인이었다.
“주먹 전문은 나다, 이 마졸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