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25)
흑백무제 1230화(1225/1255)
1230화. 탕마멸사(蕩魔滅邪) (5)
막원의 눈이 흔들렸다.
‘뭐야, 저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것은 거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이지가 않다. 일단은 키부터가 비정상적이었다.
키가 칠 척을 넘어 팔 척은 족히 되겠다. 구부정한 자세로 무섭게 달려드는데, 시커먼 중갑을 입었는데도 온몸이 근육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먹물을 뿌린 듯한 검은 철갑으로 전신을 두른 채 달려드는 거인은, 심지어 한 명도 아니었다.
쿠쿠쿠쿠쿵!!
빠른 속도, 놀라운 신법을 익혔다. 그런데도 대지가 진동한다. 중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상(巨象)들이 일제히 돌격하는 것 같았다.
‘엄청나구나!’
무식하기 짝이 없는 돌진이다. 달리는 와중에 손에 든 철봉을 휘두르는데, 그 일격에 맞은 마인들의 몸이 무차별로 터져 나가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런 괴물들이 막원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제길.’
위압적인 모습과 기세에 순간 놀랐지만, 백병신군의 무공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하강하며 막원의 빈틈을 노리고 있는 초고수, 천화제였다.
전장이 아닌 일대일 생사결이었다면 막원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다. 거기에 정체불명의 철갑인들이 달려들고 있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난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번쩍!
난감한 와중에도 막원의 몸은 이미 선택을 내린 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 방향은 바로 달려가는 중군 쪽이었다. 달리 말하면, 연호정이 싸우는 방향으로 향한 것이다.
천화제가 없었다면 연호정과 함께 중군의 앞과 뒤를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노리는 것처럼 막원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파아아아앙!
그에 맞선 천화제의 움직임은 실로 벼락과도 같았다.
단숨에 막원을 앞지르더니 중군 후미에 내려선다.
권장술도 그렇지만, 저 신법은 절로 혀를 내두를 만한 것이었다. 허공을 자유자재로 밟아 가며 움직이는 듯하다. 허공답보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구현했다.
“거치적거리지 마라!”
콰앙!
천화제의 공격은 직선적이었다.
직선적이라서 막기가 더 어려웠다. 피하면 그만일 것 같지만, 발출되는 경력 사방에 적의 회피를 차단하는 막강한 압력이 있어 무조건적인 정면 승부를 강요하고 있었다.
번쩍!
백뢰창이 또 한 번의 변화를 선보였다.
환창술의 극의, 용수창법이 아니었다. 중병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린 무종문의 절학, 일심홍(一心紅)이었다.
퍼어어어엉!!
백뢰창의 창끝에 천무신병기를 잔뜩 집약했지만, 천화제의 구유마권(九幽魔拳)을 막기에는 벅찼다.
막원의 두 발이 대여섯 걸음이나 뒤로 밀려 나갔다. 천무신병기 덕에 내외상은 없었지만, 충격파에 관절이 다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힘에서 밀린다.’
병장기를 쓰지 않았는데도 압도적인 힘을 발산한다.
여유 넘치는 공력, 무섭게 제련된 마공이었다. 이 순간 막원은 자신의 무공이 상대보다 열세에 처해 있음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지!’
쾅!
힘찬 진각으로 투지를 불사른 막원이 재차 백뢰창을 휘둘렀다.
일심홍에서 사자창(獅子槍)으로의 전환이었다. 일심홍이 묵직하고 강력한 일격으로 적을 꿰뚫는다면, 사자창은 장중한 무공이면서도 힘의 수급이 자유로워 연환으로 몰아치는 데에 특화되어 있었다.
쩌저저저저정!!
역시나 막아 낸다.
천화제 역시 막원의 신기(神技)에 놀란 듯 쌍장을 휘둘렀지만, 정작 급한 것은 막원이었다.
어느새 바로 등 뒤까지 접근한 철갑인들 때문이었다.
‘여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창술에도 의미가 있는 것.
오른손에 쥔 백뢰창을 뻗고, 왼손으로 창대 끝을 강하게 후려쳐 일심홍의 비격홍(飛擊紅)을 구사했다.
콰앙!
실제로는 기공을 이용해 창 자체를 쏘아 내는 무공이었지만, 백뢰창은 날아가지 않았다.
대신 창끝에 담긴 새하얀 경력이 쏘아졌다. 실제 창을 쏘아 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하고 막강한 힘이었다.
퍼버벅!
천화제의 몸이 중군 마인 이십여 명을 쓰러트리고서야 멈추었다.
난전 중의 격전이었다. 마음이 급한 것은 막원만이 아닌지라, 천화제 역시 평소라면 충분히 피해 낼 수 있는 공격을 그대로 받아 내 버리고야 만 것이다.
번쩍!
막원의 창술이 빛을 발했다.
비격홍의 일격을 쏘아 내자마자 창끝을 잡고 후방으로 휘두르는데, 어느새 창날이 수십 개로 늘어났다.
용수창에서 일심홍으로, 일심홍에서 사자창으로.
사자창에서 일심홍으로, 일심홍에서 다시 용수창으로의 전환이다.
극도로 수준 높은 창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무공 전개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흩어지는 창날이 철갑인들의 머리와 가슴을 두들겼다.
쩌저저저저저정!!
놀라운 재질이었다.
백뢰창은 신마림에서도 손에 꼽히는 신병이기다. 거기에 백병신군이 마음먹고 진기를 쏟아부었는데, 철갑인들이 입은 철갑은 실금 몇 줄 갔을 뿐 멀쩡하기만 했다.
‘그래도 괜찮아.’
딱 한 호흡이다.
철갑인들의 전진을 멈추게 하느라 막원 역시 상당히 무리를 했다. 천화제를 날려 버린 직후이기에 느낄 수 있는 부담이었다.
막원은 그 부담조차도 잊었다.
창대 끝을 쥔 오른손을 뒤로 당기고, 왼손으로 창대 중간을 잡는다.
이후 힘차게 전진하며 용수창법을 전개하니, 그 모습은 전장 속에 꽃피운 한 떨기 붉은 투지의 결정이다.
퍼버버버벅!
“크아아악!”
“으아아!!”
짐승처럼 낮은 목소리로 비명을 지른다.
환영처럼 흩어진 창날이 철갑인들의 안구를 모조리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섬세함의 극치였다. 신체가 받는 부담이 대단할 텐데도 적의 약점만을 노려 창법을 전개한다.
실로 백병신군이라는 별호가 어울리는 무공이었다. 손에 든 것이 창이든 칼이든, 그 무엇이라도 올곧은 기량을 뽐낸다.
하지만.
‘온다!’
쩌어어어어어엉!!
“크윽!”
다급히 몸을 돌려 백뢰창으로 막았지만, 창대를 뚫고 들어온 천화제의 장력이 막원의 몸을 날려 버렸다.
쾅!
철갑인들과 함께 땅을 뒹구는 막원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울컥!
무리한 내공 운용으로 침투경을 막지 못했다. 그 한 수로 막원은 내상을 입었다. 천무신병기의 공능으로도 막지 못할 만큼 천화제의 무공이 대단하기도 했다.
“뭣들 하고 있는 것이야!”
놀라운 것은 천화제가 후속타를 날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마기가 들끓는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천화제의 모습은 일견 다급하게까지 보였다.
“어서 영사가 끊어진 곳으로 전진해라! 단 한 놈이라도 더 살아야 한다!”
막원의 눈이 번뜩였다.
‘한 놈이라도 더 살아야 한다고?’
격전을 치르는 와중에도 이상하게 머리에 남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니…….’
철갑인들이 들이닥치기 전, 놈은 이런 말도 했었다.
‘맞상대하지 말고 어서 움직여라! 정말 다 죽고 싶으냐?!’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전진해야 할 이유가 있고, 서두르지 않는 부하들의 행동에 화가 나서 외친 발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군대는 서두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군대라도 집단을 이룬 이상 개개인의 눈빛이나 감정이 다 달라야 정상인데, 진군하는 마인들에게서는 오로지 하나의 감정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생존 욕구.’
첨예하게 날이 선 막원의 감각은 단숨에 마인들의 감정을 읽어 냈다.
‘이놈들은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진군하는 것이야.’
이해할 수 없었다.
살고 싶으면 뿔뿔이 흩어져야 정상이다. 상관에게 잡혀 죽는다? 그런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즉 마인들은, 이 군대는 전진해야만 살 수 있다. 막원은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놈들은……?!’
그때였다.
콰앙!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살았다.
시뻘건 권풍이 단숨에 철갑인 하나의 몸을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천화제가 진짜 실력을 보여 주기 시작한 것이다.
“옆으로 가자, 떨거지. 제대로 상대해 주마.”
천화제의 무공은 바로 혈룡괴마권이었다. 천위룡을 모시고 사천으로 온 규홍의 무공을, 천화제는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었다.
퍼어억!
백뢰창으로 마인 셋을 후려쳐 날려 버린 막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도 제대로 상대하고 있잖나.”
“무인의 긍지도 없는가! 나를 상대하고 싶다면……!”
“네놈을 상대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 이 군대를 상대하고자 하는 거지.”
막원이 씨익 웃었다.
“삼교 놈들 중에 명예를 아는 놈은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너는 긍지를 입에 담는군. 왜? 내가 여기서 설치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이노옴!!”
파아아아앙!
화가 난 듯 돌진하는 천화제.
‘위험!’
이 속도 하나만큼은 정말이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막원은 곧장 백강비를 펼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맞상대해서는 안 된다고 느낀 까닭이다.
그때였다.
‘……!!’
날아오른 막원을 가만히 노려보기만 하는 천화제 주위로 마인들이 개미 떼처럼 전진했다.
저만한 신법의 소유자라면 함께 날아올라 막원을 공격해야만 했다. 허공답보를 귀신처럼 잘 구사하지 않았던가.
‘역시!’
그 모습을 보며, 막원은 또 하나를 깨달았다.
‘연제는 이놈들이 단순히 위험해서 막는 것이 아니다.’
둘 중 하나다.
이놈들이 중원 한복판으로 들어가면 무림이 큰 피해를 보기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놈들을 이곳에 묶어 두는 것이야말로 광혈교 병력을 몰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기회이기에.
‘이놈들은 중원을 타격하러 온 것이 아니야. 살려고 온 것이다.’
막원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그렇구나! 어떤 특정 장소로 이동해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이놈들은 다 죽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막원은 자신의 추리에 확신을 가졌다.
평소라면 그런 허황하기까지 한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을 그다. 그 역시 전장을 겪으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막아야지!’
그때였다.
피유우우웅!!
저 후군 말미에서 수백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라고 말하면서 후미에서는 화살을 날려 댄다. 그 화살로 아군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 텐데도 날렸다.
‘우리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군 몇백 죽는 것보다 진군 자체에 위협을 받는 게 더 큰 손해인 거야.’
벼락과도 같은 판단.
파아아아앙!
막원의 신형이 화살을 피해 땅으로 떨어졌다. 날아오는 화살들을 그대로 중군 후미 마인들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원을 호시탐탐 노리던 괴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번쩍!
벼락처럼 빠르게 돌진한 천화제가 막원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앙!
‘이거 죽겠구만.’
어떻게든 상대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힘의 차이가 상당했다. 와중에 내상까지 입었기에 정면 승부로 이길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쩌저저정! 쩌어어엉!
파괴력보다는 속도다.
더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연환권을 펼치는데, 천하의 막원조차도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제기랄, 이러다가 진짜 죽겠는데.’
반격의 수가 필요하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절대적인 한 수가.
그리고 그 순간, 막원은 하늘이 이어 준 인연이 때로는 자신의 천명조차 바꿔 버릴 만큼 대단한 힘을 선사한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퍼버버버벅!
등 뒤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폭음.
마귀들의 머리통을 직선으로 꿰뚫고 날아온 한 줄기 백광(白光)이 막원의 어깨를 스치고 천화제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한 자루 작은 손도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