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28)
흑백무제 1233화(1228/1255)
1233화. 탕마멸사(蕩魔滅邪) (8)
‘……?!’
천화제를 몰아치면서도 연호정의 기감은 전장 전체를 훑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 친근감의 근원에는 강력한 전우애가 깔려 있었다. 비록 십 년, 이십 년을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회귀 후 최초로 중원을 활보하며 사마외도의 악한들을 때려잡던, 부하이자 제자와 비슷한 이들의 기도가 느껴졌다.
‘멸사군?!’
아니다. 이제는 멸사군이 아니었다.
과거 멸사군이었다가 탕마군과 합쳐져 의정군이라 불리었다.
그 의정군의 대수(大首)는 자신이었고, 이내 모용우에게 직함을 건네주었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가끔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모용우가 이끄는 의정군은 무림맹 최강을 논하는 부대로 성장했으며, 특히 기병 돌격과 적의 교란 등에 있어서는 묵룡부의 용아철기대에 준한다고 하였다.
특히 오백이나 되었던 탕마군과 달리, 소수 정예였던 멸사군의 군병들은 하나하나가 장군감이라 불릴 정도로 병력 운용에 능했고 상황을 판단하는 안목 또한 대단히 뛰어나다고 했다.
한 명, 한 명이 수장의 재목인데도, 나아가 그들 모두가 명문의 자제들인데도 끝까지 의정군 소속의 군병으로 남았더랬다.
그리고 지금.
더 오르기 힘들 만큼 발전한 의정군의 전력은 완연히 꽃을 피워, 움직이는 문파 소리를 들을 정도라고 했다.
‘이것들이.’
생사결을 펼치는 와중임에도 묘하게 웃음이 나왔다.
‘올 거면 진즉 좀 와 줄 것이지!’
유군이란 조직에 속하면서도 자유롭게 전장을 활보하는 이들이다.
저들도 그러했다. 무림맹에서 수련할 때도 있었지만, 어느 지역에 어떤 문파가 사고를 쳤다거나 악인이 출몰했다 하면 거침없이 진격하여 박살을 내고 중원을 떠돌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런 의정군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 수가 오백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한데도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하기 짝이 없었다.
“이놈이!”
콰아앙!
폭음을 내는 두 주먹이 이전과는 또 다른 위력을 발산했다.
산발한 머리카락, 여기저기 뜯겨 나간 의복 안은 온통 핏물로 벌겠다. 연호정의 두 도끼가 쏟아 낸 경력을 피하지 못해 입은 상처였다.
“감히 나를 앞에 두고 웃어?!”
광혈교 역사에 다시 없을 위기를 맞아 전군(全軍)과 함께 남하하는 와중이었다. 당연히 그의 제일 목표는 교주의 영사가 끊어진 지역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당장 물리칠 수 없는 고수가 나타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창을 휘두르던 자는 강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자는 아니었다. 마군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주변 상황에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빈틈을 노리고 날아온 도끼가 목을 날려 버릴 것이다.
지금껏 싸워 온 상대 중 가장 위험한 난적의 출현이었다. 한데 그런 난적이 실실 웃기까지 한다.
도발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울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교단이 무너질 수 있는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서도 천화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토록 위험천만한 상황이기에, 내 의도대로 풀어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답답함이 커서 더 화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죽여 주마!!”
통속적인 외침이었지만 진심은 차고 넘칠 만큼 담겨 있었다.
곧장 마룡보(魔龍步)를 이용, 연호정의 측면까지 붙은 천화제가 혈룡괴마권으로 삼연타를 내질렀다.
후욱!
벼락처럼 빠르다. 첫 번째 주먹이 나아가고 회수되기도 전에 두 번째 주먹이 내지르는 충격파가 먼저 도달할 정도였다.
어지러운 공기가 훅! 하고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규홍의 혈룡괴마권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콰아앙!
사선으로 내리찍은 광룡부 일격이 혈룡괴마권의 삼연타를 모조리 무(無)로 만들어 버렸다.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어떻게 그런 동작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으윽!!”
폭발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천화제가 십여 걸음이나 옆으로 물러났다.
‘이건 대체?!’
투로, 위력, 속도.
다 상대가 위다.
하지만 자신보다 기량이 뛰어나다 한들 못 이길 것도 없다. 원래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문제는 기(氣)였다.
‘어찌하여 자꾸만 위력이……!’
권법, 장법, 각법이 만들어 내는 경력은 고스란히 상대에게 전달이 된다.
하지만 전달되는 즉시 상대의 가벼운 동작에 모조리 파괴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절묘한 수법도 아니었다. 그냥 내공이 한껏 담긴 도끼를 휘두를 뿐이었다.
후우우웅!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공에 잠깐 손도끼를 띄우고, 빈 왼손을 겨누어 강력한 흡인력을 발하는데 몸 전체가 끌려갈 뻔했다.
파바바바박!!
있는 대로 내공을 끌어올려 막았지만, 표면의 마기가 불을 튀기며 벗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천화제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마기가?!’
번쩍!
둥실 떠올랐던 새하얀 손도끼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콰아앙!
마기의 방벽을 손쉽게 파괴하고 날아와 절벽면에 꽂혀 버린다.
‘어떻게 이럴 수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지 않았다면 머리통 반쪽이 날아갔을 것이다.
평소라면 마기로 막아 내거나 투로를 틀어 버렸을 것이다. 못해도 위력과 속도는 줄일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적의 손도끼는 마치 두부를 파고들 듯 마기의 방벽을 그대로 으깨 버리며 날아왔다.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위기감이 아니었다면, 정말 이 순간에 결판이 났을 것이다.
훅!
어떻게든 한 방 먹여 주리라, 돌진하려는 찰나였다.
‘빠르다!’
두 걸음을 밟기도 전에 상대가 코앞까지 다가와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천화제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거대한 도끼가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마치 거대한 산이 통째로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지막지한 압력, 마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반격은커녕 방어도 불가능했다. 살려면 무조건 피해야만 했다.
문제는, 피하기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마기와 상극인 기운이다. 압력부터가 달라. 부딪쳐 충격파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스며들어 해체부터 시작하는 기운이야.’
우측으로 몸을 날리는데, 움직임이 너무나도 느렸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무공을……!’
그 순간, 천화제의 두 눈에 악독한 빛이 떠올랐다.
퍼어어어억!! 콰르릉!!
무자비한 일격에 천화제의 왼팔이 통째로 날아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붕산세의 힘을 담은 경력은 단숨에 바닥을 찍고 저 멀리 절벽까지 타고 올라갔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절벽 한쪽이 반으로 쪼개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위력이었다. 마기의 결을 쪼개며 밀도가 더 올라갔는지, 경파의 범위가 상상을 초월했다.
그때였다.
“이놈!!”
콰앙!
천화제의 권풍이 대지에 엄청난 균열을 일으켰다.
연호정이 아닌 땅이다. 땅을 향해 쏟아 낸 권풍이 사방으로 거대한 실금을 만들어 냈다.
순간적으로 흔들린 땅에 연호정의 자세가 불안정해졌다.
정말 순간에 불과하지만, 찰나의 실수가 곧 패배로 이어지는 것이 무인의 승부라는 것이다.
연호정의 자세와 지형을 보며 순간적으로 땅을 뒤흔드는 수법을 쓴 천화제의 안목은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심지어 팔 하나가 잘려 나가는 순간이었다.
‘죽어라!’
나는 팔 하나지만 너는 목숨이다.
포탄처럼 날아간 천화제의 각법이 단숨에 연호정의 중단을 노렸다. 제아무리 마기와 상극인 무공을 익혔다 해도 직격을 당하면 심장이 파괴될 만큼 엄청난 위력이었다.
환희 가득한 얼굴로 연호정을 노려보던 천화제는,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불안정한 자세, 도끼도 휘두를 수 없다. 한데도 연호정의 눈빛은 차분하기만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이냐?!’
그때였다.
퍼어어어엉!!
땅바닥에서 솟구친 쇠사슬 하나가 천화제가 뻗은 다리 한가운데, 오금을 뚫고 무릎 관절을 깨부수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천화제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쇠사슬을 따라 몸 전체가 딸려 올라간다. 그 순간에, 천화제는 이 쇠사슬이 상대의 소매 안쪽으로 이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마침내 천화제는 깨닫는다.
이 지형, 이 자세.
다음 수를 예측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상대방 역시 이러한 순간을 예상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기병을 이용,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재능은 소교주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촤르르르륵! 퍽! 퍽!
교룡쇄는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대며 천화제의 허벅지와 등, 복부를 뚫고 나와 전신을 휘감았다.
황룡신왕기가 잔뜩 집약된 교룡쇄다. 천화제의 마기는 아무런 힘도 쓸 수가 없었다.
“아주 제법이었다. 무공 간의 상성만 아니었다면 반나절은 족히 싸워야 했을 거야.”
몸속의 마기가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천화제의 눈이 텅 빈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망할 자식. 패자에게 그런 말은 조롱밖에 안 된다.’
연호정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내가 이겼을 거다. 오랜만에 만난 부하들 앞에서 쪽팔리게 깨지는 꼴은 못 보여 주거든.”
부하라니?
그 말에 천화제는 다급함을 느꼈다. 이놈에게 부하들이 있었다고?!
“잘 가라.”
퍼어어어억!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로.
천화제의 머리통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광혈교 서열 사 위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촤르르륵!!
생기가 빠져나간 마인의 육신에서 교룡쇄가 풀려 나왔다.
터어엉!
절벽에 박힌 백룡부가 알아서 날아와 부갑에 들어갔다.
연호정이 땅을 박찼다.
콰앙! 콰아아앙!
치고 들어왔을 때처럼, 역으로 솟구쳐 올라간다.
천화제와의 싸움, 이전에 마군 병력을 막기 위해 쓴 내공으로 인해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단전을 가득 채웠던 내공이 반 이상이나 날아갔다.
그래도 그는 공력이 넘쳐나기라도 하는 듯, 온몸에 내공을 둘러친 채로 돌진했다.
콰콰쾅! 퍼어억!
수직으로 돌파하는 연호정 좌우로 마인들이 마구 튕겨 나갔다. 덕분에 연호정의 얼굴도 점차 창백해졌지만,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측면을 굳혀라!”
엄청나게 커다란 목소리였다. 대군이 전진하는데도 그 목소리부터 들렸다.
넓은 흉통을 꽉 채우는 외침이었다. 그 외침과 함께 우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아앙!
마인 둘이 죽은 채로 하늘을 날았다.
벼락의 힘을 담은 일도(一刀)다. 괴력의 무공이었다.
연호정의 두 눈이 마침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병 군단을 포착했다.
“창병!”
쩌저저저저정!
대열을 열고 닫는 게 완벽했다. 용아철기대라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미파의 복호창(伏虎槍)과 항마창(降魔槍)이 불을 뿜었다.
언제나처럼 죽립을 쓴 채로 창병들을 지휘하는 여인.
‘송연경!’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수련을 쌓았던 것일까.
벽력도를 휘두르며 측면에서 진두지휘를 하는 팽만호의 기파는 실로 무지막지했다.
“저기다! 대수님이다!”
“우아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튀어나오는 군병들 사이.
화산파 비전의 매화검법을 엄청나게 실전적으로 구사하는 윤호와 동호가 있었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던, 그러나 이제는 누구보다 믿음직한 곤륜파의 여국이 도룡검을 휘두르며 마귀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유순한 외모의 어린 청년은 어디로 갔는가. 그 누구보다도 거친 기파를 발산하는 점창의 척강 역시 무자비한 강검으로 마귀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신마림 작전에 함께했으되 무림맹에 남았던 혈육이 보였다.
언제부터 의정군과 함께했는지, 이제는 위엄마저 깃든 두 눈이 강철보다 단단하고 올곧은 정기로 반짝였다.
“지평!”
“형님!”
경갑 갑주를 입은 연지평이 한 손으론 대검(大劍)을, 다른 한 손으로는 연가의 장검을 휘두르며 무지막지한 기세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