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29)
흑백무제 1234화(1229/1255)
1234화. 탕마멸사(蕩魔滅邪) (9)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강하다!’
오랜만에 보는 의정군, 그리고 동생.
함께했었지만, 어느새인가 다른 세계에 속한 채 천하를 살아온 그들이었다.
이런 순간에 조우한 옛 수하들의 무공은 천하의 연호정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좌군! 측면으로 밀어붙여라!”
“우군은 정면이다! 치고 빠져!”
“기수는 후방으로 빠져서 좌우 합군의 진세를 조종해라!”
의정군에는 대수가 없다. 대수 역할을 하던 모용우가 소맹주로 발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강하다.
이끄는 자가 없이, 서로가 좌장이 되어 때에 따라 절묘한 부대 운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연호정조차도 눈을 부릅뜨게 되는 광경이었다. 세상에 어떤 조직도 수장 없이는 제 역할을 하기가 힘든 법인데, 의정군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조장들이 돌아가며 수장 역할을 맡고, 말없이 전투에 돌입하면 가장 합리적인 위치에 있는 자가 수장으로서 전군에 명령을 하달한다.
무시무시한 조직력이었다. 위계가 확실한데도 극도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어쩌면 여러 문파 출신의 의정군에 가장 합당한 명령 체계는 바로 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
천하에 다시 없을 명령 체계를 보여 주지만, 기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역시나 의정군의 무력이었다.
콰아앙!
몰아치는 모습이 파도와도 같았다.
마인들의 전진을 절묘하게 피하면서, 가장 약한 측방에서 밀어붙인 후 창격으로 목숨을 날려 버린다.
손속의 잔혹함을 논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조화로운 전투 운용이었다. 비록 상대가 싸움이 아닌 전진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지만, 저와 같은 신기(神技)의 기마술을 펼치기란 누구라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언제 그런 것을 만들었는지, 등 뒤에 널따란 방패를 찬 기마 방패병들이 벼락처럼 하마한 후 돌격해 전방의 마인들을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완력과 내공이 극도로 단련되어 있지 못하면 절대 쓸 수 없는 방어법이다.
일만 대군의 전진을 한 차례 막으면서도, 뒤이어 몰아치는 공격에 대응하며 부드럽게 말에 올랐다.
인마일체의 마술(馬術)을 펼치다가도 필요하면 말을 물리고 내려와 보병전을 벌이고, 안 되겠다 싶으면 기가 막힌 몸놀림으로 다시 말에 올라 사방을 뛰어다닌다.
속도와 파괴력, 모든 것을 갖춘 기마군단으로서 정점에 이른 실력을 보여 주었다. 저토록 복잡한 움직임을 선보이는데도 사망자는커녕 경상을 입은 사람도 없었다.
히히히힝!!
수장 없는 조직 체계, 신기에 달한 기마 전술, 압도적인 무공.
하나같이 놀랍지 않은 것이 없다.
다만 연호정 개인에게 있어 가장 큰 놀라움이라면 역시나 연지평이었다.
퍼어어어억!
연달아 내치는 쌍검술(雙劍術)로 마인들의 목을 날려 버린다.
새하얀 전마(戰馬)와 함께 마상 검술을 펼치는 연지평의 무공은 찬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좌수에 든 연가의 장검에선 철검대연이 올올이 풀려 나왔고, 전장에서나 쓸 법한 우수의 대검에선 파격적인 전투 검술이 튀어나왔다.
두 가지 무공을 동시에 다루면서도 투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원래 하나의 무공인 것처럼 조화롭게 휘두르며 적을 물리치는데, 파괴력 못지않게 방어 또한 완벽하게 펼치고 있었다.
퍼버벅!
다리와 허리 힘만으로 전마를 다룬다.
기마술을 늦게 배웠는데도, 지금에 이르러선 의정군의 어떤 군병보다 능숙한 기마술을 선보였다.
나아가 저 단호함까지.
퍼어어억!
대검으로는 마귀의 머리를 수직으로 갈라 버리고, 연가장검으로는 마인들의 눈과 목젖을 베어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버린다.
추호의 자비도 없는 손속이었다. 두 눈에 드리워진 강인함이 놀라웠다. 순한 천성은 그대로임에도, 전장에서 본인이 맡은 역할은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다.
협(俠)과 단호함을 한 손에 거머쥔 이상적인 무인의 모습이었다. 차기 연가의 가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역대 어떤 가주보다도 위대해질 준비가 된 천재의 등장이었다.
퍼버버버버벅!!
신들린 창술로 마귀들을 날려 버린 막원.
그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감탄이 드리워졌다.
“지평, 정말 대단하구나!”
의정군도 알지만, 특히 연지평과는 신마림 작전 때 함께한 몸이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연지평이 얼마나 순하고 올바른 청년인지. 불세출의 재능을 지녔음에도 적의 목숨을 빼앗는 데에 거부감을 지닌, 천성이 선한 녀석이었다.
적이라도 사람이니, 살인 앞에 고뇌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런 고뇌가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 악마여야 마땅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고뇌를 언제, 어떻게 이겨 내느냐다.
청해에서 봤던, 이제 막 각성을 시작했던 연지평은 더 이상 없다.
엄청난 기마술로 화려하게 적들을 물리치는 그의 모습은 대의(大義)를 깨닫고 손속에 주저함이 없어진 대협 그 자체였다.
어떨 때는 의정군과 함께 섞여 적을 치고, 또 어떨 때는 홀로 떨어져 나와 마인들을 베어 넘긴다. 섞이고 떨어지는 흐름마저도 기가 막혔다.
의정군, 그리고 연지평의 분투를 보며 피가 끓어올랐음인가.
막원의 백뢰창이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진동을 발했다.
퍼버버벅! 퍼펑!
막강한 천무신병기를 받아 내치는 백뢰창은 그 이름처럼 벼락과도 같은 위력을 자아냈다.
의정군 좌우군이 한 번씩은 몰아쳐야 없애 버릴 수 있는 수의 마군이 막원의 용수창법 십이초 아래 우수수 지옥으로 떨어진다.
무극수는 괜히 무극수가 아니다. 의정군 군병들의 얼굴에도, 나아가 연지평의 얼굴에도 질린 기색이 떠올랐다.
신화 속 괴력난신을 보는 인간들의 얼굴이 그러할까.
그러나 그들은 아직 진짜 괴물을 보지 못했다.
콰아아앙!!
무지막지한 폭음과 함께 이십여 명의 마인들이 하늘을 날았다.
촤르르르륵!! 퍼버버벅!!
휘두르는 쇠사슬은 쇠바늘이 달린 강철의 채찍과도 같았다.
넓은 범위를 아우르며 마인들을 반으로 갈라 버린다. 황룡신왕공의 힘을 잔뜩 머금은 교룡쇄는 그 자체로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병기가 되었다.
오른손에는 광룡부, 왼손에는 교룡쇄다.
연지평의 쌍검과 달리 어느 하나도 제대로 다루기 힘든 기병들을 양손에 쥐고 휘두르는데, 실로 파멸적인 위력을 자아내고 있었다.
퍼엉! 퍼퍼펑!
팔다리와 살점이 날아갔다. 솟구치는 피 보라가 하늘마저 붉게 물들이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수하들에게 달려가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연호정의 모습은 질주하는 한 마리 용을 보는 듯했다.
“이건 정말이지…….”
퍼어억!
대도로 마귀 하나의 눈가를 찢어 버린 팽만호가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괴물이 다 됐구만!”
원체 우렁찬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가 그의 심정에 동의했다.
삼십 장 밖, 황금빛 기파를 쏟아 내며 적도들을 파죽지세로 격파하는 무(武)의 화신은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해 준 은인이었다.
“엄청난 위력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담담한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여국이었다.
저 멀리서 화려하게 적들을 격파하며 다가오는 연호정.
여국의 눈이 착 가라앉았다.
“진짜 무신(武神)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다. 성주님 역시 마찬가지야. 엄청난 기파지만, 언제까지고 저런 힘을 낼 수는 없어.”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룬 경지와 그간의 경험도 대단했지만, 연호정이 싸우는 모습을 봐 왔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의 연호정은 정상이 아니다. 그들이 오기 전에 얼마나 무지막지한 싸움을 벌였는지 몸 곳곳에 핏물이 묻어 있었다.
적의 피도 많지만, 그 자신의 피도 있다. 마치 짐승의 발톱에 할퀴이기라도 한 듯 어깨와 가슴, 허벅지 부근에 새겨진 상처들이 심상치가 않았다.
팽만호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병기가 저래서 요란했지, 본래 형님의 무공은 지독하게 합리적이었어. 저렇게 위력적으로 적을 파괴하는 건 형님과 어울리지 않아. 확실히 무리한 것 같아.”
정답이었다.
신들린 무위를 보여 주고는 있지만, 최고의 몸 상태라도 일만을 넘어 거의 이만에 육박하는 대군을 정면으로 막아 가며 버텼다.
그것만으로도 초인 중의 초인이라 할 만했다. 와중에 막원을 구하기 위해 대군을 수직으로 뚫고 들어갔다가 천화제라는 고수까지 쳐 죽이고 다시 첨단부로 돌아오고 있었다.
상극의 무공을 지녔기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다. 성천의 누구라도, 설령 저 권신이라도 쉽지 않은 일을 서른도 안 된 청년 고수가 해낸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는 법.
“선배님!”
제대로 말을 섞어 본 적도 없는 막원을 향해 송원경이 외쳤다.
“저희가 이놈들의 전진을 교란하겠습니다! 성주님을 도와주세요!”
“알겠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다. 막원은 그저 알겠다고만 했다.
피유우우웅! 퍼어억!
사선으로 던진 백뢰창이 마인 이십여 명을 뚫고 멈추었다.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퍼퍼퍼펑!
몸을 날려 마인들의 머리와 어깨를 밟아 가며 십여 장을 돌진했다. 어느새 허공섭물로 날아온 백뢰창이 막원의 손에 잡혔다.
“연제!”
퍼버벅!
여국과 팽만호의 눈은 정확했다.
건재했다면 벌써 첨단부에 도착했을 연호정이, 십여 장 거리를 남긴 채 적들을 밀쳐 내고만 있을 뿐이었다.
“가세!”
연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거칠어진 호흡을 다잡으며 또 한 번 광룡부를 휘두를 뿐이었다.
퍼버버벅!
선혈이 낭자한 전장이었다.
구함을 받았던 형이, 이번에는 동생을 구하고 돌아온다.
주고받는 도움 속에 더더욱 깊어지는 전우애였다. 목숨을 돌보지 않고 전진한 막원의 몸도 상처로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주님!”
“대수님이다!”
“형님! 형님이다!”
각종 호칭이 난무했다. 적의 전진을 막는 중에도 수많은 군병이 연호정을 향해 뜨거운 함성을 질러 댔다.
기운이 없어도 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질 만한 광경이었다. 연호정이 힘없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망할 놈들, 올 거면 좀 빨리들 와.”
“형님!”
피에 젖은 백색의 전마를 이끌고 돌진한 연지평이 손을 뻗었다. 언제 대검을 등 뒤에 꽂아 넣었는지, 굳은살 잔뜩 박인 손이 실로 믿음직했다.
“여기요!”
촤르르르륵!
교룡쇄를 줄이고, 광룡부를 왼손에 든 연호정이 오른손을 뻗었다.
파악!
혈육의 손은 언제나 따스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연호정을 끌어 올린 연지평이 곧장 전마의 방향을 틀었다.
전마는 용케 광룡부의 무게를 받아 내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연지평의 내공이 전마의 몸체까지 보호하고 있었기에 연호정과 광룡부의 무게를 몽땅 감당해 낸 것이다.
넘쳐흐르는 공력이었다. 과거 아버지의 검극사기(劍極思氣)와 꼭 닮은 힘이 연호정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놈, 이렇게 믿음직스러웠나.’
동생의 등이 이렇게나 넓었나 싶었다. 정말이지,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큰형님도 뒤로 물러나십시오! 힘을 비축해야 합니다!”
우렁찬 연지평의 목소리는 가히 대장군의 그것을 방불케 했다. 무극의 고수라도 절로 따를 수밖에 없는 위엄과 신뢰가 가득했다.
막원이 씨익 웃으며 몸을 날렸다.
“난 원래 동생들 말 잘 듣는다!”
파아악!
그렇게 막원까지 빠진 전장에 수많은 시체를 밟고 전진하는 마군이 있었다. 그리고 전진하는 마군을 막는 의정군이 있었다.
무림맹 최강의 유군 부대.
대삼교전(對三敎戰)의 신화를 만들어 낸 무적의 기마 군단이 최초의 전설을 남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