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32)
흑백무제 1237화(1232/1255)
1237화. 광마대혈전(狂魔大血戰) (1)
콰앙!
이철경의 권법은 대단했다.
말을 타지 않은 채로 돌진하는데도 철갑을 두른 기마 무리가 그대로 들이받는 것과 같았다. 그의 주먹 일격에 선두에서 달리던 마인 대여섯 명이 피를 토하며 넘어졌다.
위력만 대단한 게 아니었다. 이철경은 측방을 노렸으되, 후방에서 밀려오는 마인들의 돌진 또한 염두에 두었다.
측면 일자가 아닌 사선으로.
소림의 무적 절기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이 달려오던 마인들의 대열을 흐트러트렸다.
“목을 쳐라!”
좌우에서 돌격하는 날카로운 진형이 돌진하는 마인들의 전방 삼천 병력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퍼버버버버벅!
“크아아악!”
“죽여라!”
“지옥으로 보내 버려!”
쏟아진 피와 살점이 폭포 주위의 물안개처럼 퍼져 나간다.
단순한 군대의 부딪침이 아니었다. 비록 마인들이 거품을 문 채 전진만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마공을 익힌 그들의 힘은 범부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와중에 광기에 젖어 무조건적인 돌격만 했기에 질량 대비 속도가 굉장했다.
그런 마인들과 내가기공을 익힌 고수들이 온 힘을 다해 부딪쳤다.
대군의 머리 부분 아래로 엄청난 혼란이 일었다. 홍수로 범람하는 강물 위로 바위들이 떨어지는 격이었다.
‘빌어먹을!’
이철경은 이를 악물었다.
사십도 되지 않은 연배에, 무공과 경험에 있어서는 그만 한 남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소림 속가 최강의 무재라는 그조차도 폭발하듯 날아가는 아군과 적군의 육체를 보며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진짜 전쟁!’
소규모 전투나 문파 대 문파의 전쟁은 많이 봐 왔다. 실제로 어릴 적에 참전도 몇 번 해 봤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규모도 규모지만, 사람 목숨이 말 그대로 파리처럼 사라질 수 있는 곳이었다. 정통 있고 격식 깊은 무공의 향연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애초에 그런 걸 펼칠 틈도 없다.
그저 들이받아서 없애 버리는 것이 전부였다. 시야가 엄청나게 좁았다.
터어어엉!
첫 교전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의 장점은 무재에 머무르지 않았다.
마인 하나의 머리통을 밟고 날아오른 이철경의 눈이 마군 전체를 살폈다.
‘엄청나구나!’
끝도 없이 길게 늘어져 있다. 머리를 떼어 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카락만 뚝 끊어 낸 느낌이었다.
‘오만…… 정말 기가 찰 정도로 많군.’
피피피피핑!!
이철경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 멀리서 수백 개의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다.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화살이 날아온다는 것은 중군 쪽에 이쪽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지휘관이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 전력을 이끄는 최고 통솔자는 한 명, 혹은 두 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중간중간 마인들을 통제하는 장수 겸 지휘관은 수십 명이나 있을 것이다.
‘당해 주지 않는다.’
이철경의 쌍장이 부드럽게 전방으로 향했다.
후우웅! 치리리리리링!!
묵직한 장력에 부딪힌 화살촉들이 소름 끼치는 소음을 만들어 냈다.
마치 뱀의 비늘이 부딪치는 소리 같다고 생각하며, 이철경이 그대로 하강했다.
콰아앙!
내리찍는 장법은 소림의 항마대불장(降魔大佛掌)이었다. 장법 자체의 위력은 칠십이절예 중 낮은 편이지만, 항마력이 막강하여 마인을 상대로는 대력금강장보다도 위력적이라는 무공이었다.
부처의 노기 가득한 일격에 마인 십여 명이 쓰러졌다. 직격당한 마인은 둘밖에 없었지만, 쓰러진 여덟 명의 마인들 또한 머리나 가슴을 움켜쥐고 버둥거렸다.
범천신공의 내력이 항마력으로 이어져 그들의 마기를 들쑤셔 놨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퍽! 퍼버버벅!
적진 한가운데에 들어가서 신들린 듯 권각을 쏟아 냈다.
이런 전장에서는 권각보다 병장기술이 더 효과적이다. 당연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철경의 권각은 두툼한 대도나 장창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마인들을 격파해 냈다. 그 자신도 무종을 넘은 고수인 데다가 본산의 인정을 받은 천부의 무재라, 벼락처럼 쏟아 내는 권각이 세밀하기까지 했다.
퍼버버버벅!
눈, 인중, 목, 명치 등을 정신없이 찍어 댄다.
제대로 가격할 때는 풍성한 내력으로 날려 버리고, 힘을 아낄 때는 최소 내력으로 적의 급소만 가격했다.
단 일격만 맞아도 마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즉사를 면해도 전투 불능이다. 이철경의 소림 내공은 본산 장로들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겠지.’
그의 생각은 곧 현실로 이뤄졌다.
등 뒤에서 접근하는 음험한 살기.
광기로 가득한 마인들 사이에서도 유독 날카로운 살기였다. 이철경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고 양팔을 올렸다.
쩌어어어엉! 퍼억!
무지막지한 일격에 날아간 이철경이 마인들을 우르르 쓰러트렸다.
“빌어먹을 놈! 비갑(臂鉀)인가?!”
파아앙!
쓰러진 마인들을 밟고 재차 돌진한 이철경의 양팔에는 붉은색 비갑이 장착되어 있었다.
범천신공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면 전신을 철의 강도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난전에서, 심지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싸움에서 시종일관 극성의 내공을 발휘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만에 하나를 위해 비갑에 각반까지 차고 왔는데, 실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저 언월도 일격에 팔 하나는 잘려 나갔을 것이다.
쾅!
힘찬 진각과 함께 육중한 주먹을 뻗어 낸다.
피하면 그만일 것 같은 정직한 일권이지만, 기습을 가했던 언월도 마인은 쉽게 피할 수가 없었다.
쩌어어어엉!
팔뚝은 그렇지 않더라도 내력이 가득 실린 주먹은 강철 이상의 경도를 보여 준다.
그 묵직한 언월도가 뒤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언월도와 함께 마인의 양팔도 뒤로 확 꺾였다.
마인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이철경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삿된 무공을 익힌 자가 숭산의 무학을 넘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새끼가!”
화아악!
초인적인 힘으로 튕겨 나간 팔을 당겨 와 다시 언월도를 휘둘렀다.
단순하지만 엄청나게 빠르고 강했다. 상극의 힘이고 뭐고, 베이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 순간, 이철경의 몸이 그림자처럼 흩어졌다.
퍼버벅!
무지막지한 일도(一刀)가 허공을 가르고, 그 충격파에 마인들 셋의 몸이 그대로 쪼개졌다.
콰득!
“크윽!”
어느새 측면에서 나타난 이철경이 슬격으로 마인의 팔꿈치를 부쉈다.
마인이 이를 악물고 반대쪽 팔을 휘둘렀지만, 이미 이철경은 삼권(三拳)이나 휘두르고 있었다.
퍼버벅!
세 번의 권격이 마인의 귀와 목, 옆구리에 작렬했다.
피 분수를 쏟으며 쓰러진 마인이 부르르 경련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콰드득!
돌진하는 마인들의 발에 밟힌 그는 시체조차 온전할 수가 없었다.
지휘관이 죽었는데도 그냥 밟고 지나간다. 그의 죽음 따위는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콰앙!
몸통 박치기로 마인들을 밀어 낸 이철경이 또 한 번 사자후를 질렀다.
“잘라 내고 또 잘라 내라!”
본대에서 삼천 병력을 잘라 낸 좌우군이 발 빠르게 물러났다 다시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측면을 노리며 행렬부터 흐트러트린다. 그것이 오천 병력의 노림수였다.
‘역시 많군.’
쌍권과 쌍각으로 마인들을 쳐 죽이는 이철경의 얼굴에 심각함이 떠올랐다.
‘힘들 거라는 건 예상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무지막지한 혈전에 내공보다 마음이 먼저 지칠 것 같다. 이철경은 특유의 강한 신념을 발휘하며 완고하게 적들을 격살했다.
하지만 싸움은 거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의미로는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이 선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콰아앙!
열여덟 나한 전체가 출렁이는 경파에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오히려 물러난 발에 힘을 싣고 더 강한 힘으로 전진하며 철곤을 휘둘렀다.
쩌저저저저정!!
맞상대하는 대도의 마인, 광혈교의 삼사제장(三司祭長) 건흉은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애송이들이 감히!’
쏟아지는 철곤이 팔뚝보다 더 굵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철곤 하나하나에 강력한 항마법력이 깃들어 있었다. 마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라도 꺼릴 수밖에 없는 힘이었다.
콰앙!
건흉의 도법은 실로 막강했다.
충격파로 죽어 나가는 마인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대도를 휘두르는데, 실로 보기 드문 파괴력을 자아냈다.
상극이라고는 하나, 건흉의 마기는 성마에 달하여 수양 깊은 수행자의 정신마저 한순간에 오염시킬 정도였다. 성마경에 달한 고수 중 유독 독랄한 마기를 지닌 그였다.
한데도 역전이 안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십팔나한진!’
쩌저저저정!
무지막지한 파괴력의 도법을 상대하면서도 조금의 물러남이 없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철곤을 세워 경력을 상쇄하는데,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방어력이었다. 마치 솜뭉치를 때린 것처럼 손맛이 나질 않았다.
쩡!
그중 압권이라면 역시나 이놈이다.
‘빌어먹을!’
종격으로 내리찍고 검법 자격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철곤의 절묘함이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단조로우면서도 잘 짜인 용마십도(龍魔十刀)의 투로를 거침없이 파괴하고 들어온다.
콰앙!
대도를 휘돌리고 좌장을 뻗어 철곤을 튕겨 냈다.
그 순간 열여덟 나한의 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일어나 전면에서 싸우는 철곤의 땡중에게로 스며들었다.
화아아악! 쾅!
건흉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당연하다는 듯, 조금도 버겁지 않다는 듯 여유로운 얼굴로 철곤을 휘두르는데 만근의 힘이 실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건흉으로서는 당연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타고난 재능이 하늘에 닿았대도 운이 없으면 오를 수 없는 것이 성마의 경지다.
성마의 경지에 달한 자는 그 아래에 거하는 자와 천지 차이의 무력을 뽐낸다. 작정하고 싸우면 다섯 합, 아니 세 합 만에 초절정고수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 성마의 고수였다.
혹여 초절정고수 열 명 정도가 천고의 진법을 짜고 덤벼든다면, 그때는 목숨 걸고 한판 붙어 볼 만하다. 성마경에 이른 마인들을 혈신(血神)의 수호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데 이놈들은!’
콰아앙!
압도적인 패력으로 날려 버렸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한데 중년의 땡중은 고작 다섯 걸음을 물러났을 뿐, 어떤 충격도 받지 않은 듯했다.
반야의 힘이었다. 십팔나한진의 힘이었다.
위력을 내려놓는다면 단연 소림 최고의 신공이라 불리는 것이 반야대능력이었다. 당장 무상대능력과의 위력 차이도 크지 않다.
지혜와 깨달음으로 닿은 신공에, 무림 역사상 최강의 대인 진법이라는 십팔나한진의 전오대력(傳悟大力)까지 등에 업었다.
나한당주 범오.
공공대사보다 더 대단한 무재를 타고났음에도 오만함 때문에 발전의 기회를 잃었던 그는, 과거 한 남자와의 무림행 덕분에 대오각성하여 지금의 위치에 오른 나한의 화신과도 같은 남자다.
상대가 성마경의 고수라도 반야의 빛은 꺼지지 않는다. 당장 범오가 아니더라도 십팔나한만으로 건흉과 어느 정도 싸움이 가능할 터.
범오와 십팔나한, 전설이 될 자와 전설을 잇는 자들의 기세는 사제장 서열 삼 위라는 건흉에게조차 공포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이놈들!!”
쩌어엉! 쩌어어엉!
용마십도의 초식들이 하나씩 하나씩 막강하게 풀려 나온다.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음에도 범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평온하고 자연스럽다. 심리전을 상정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의 마음이 그러했다.
‘무념.’
눈을 감고 철곤을 휘돌린 범오가 자연스레 일 보를 밟았다.
뻗어 나가는 좌장, 소림의 대표 절기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이 건흉의 가슴 한복판에 작렬했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