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34)
흑백무제 1239화(1234/1255)
1239화. 광마대혈전(狂魔大血戰) (3)
의정군은 끈질겼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힘이 나는 듯, 점점 더 정교하고 빨라진 진형으로 마인들의 진격을 봉쇄하고 있었다.
‘좋지 않군.’
의정군의 분투는 연호정이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는 과거 부하들의 실력 향상에 흥분만 하진 않았다.
‘더 격렬해지고 있어.’
의정군의 체력과 전술적 정교함이 상승하는 거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문제는 적의 대응이었다.
의정군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는 것은 곧, 적이 더 강하게 몰아치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실제로 무작정 진군만 하던 마군들의 움직임은 점차 진을 형성하고 적을 분쇄하는 돌격형 진법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
정확한 안목이었다.
실제로 의정군 중 몇몇은 이미 긁힌 상처가 생겼다. 빈말로도 당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상처가 조금씩 깊어질수록 싸움은 격렬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반드시 죽는 자도 나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돼.’
막으러 왔든 섬멸하러 왔든 싸움은 싸움이다.
목숨 걸고 행하는 일이라는 건 똑같다는 말이다. 그런 전투에서 한 명도 죽지 않고 생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내야만 해. 지금의 의정군은 강하다. 단순히 강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야. 이 병력에 이 정도 전술 운용, 그야말로 천재적이다. 용아철기대도 이렇게는 안 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광혈교만 막는다고 끝이 아니란 말이다.
앞으로 의정군은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 낼 집단이다. 여기서 필요 이상의 피해를 입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형님!”
연호정의 외침에 막원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정면을 뚫어 주십시오!”
“오냐!”
막원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연호정이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즉각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파아아앙!
백강비로 마군 정면에 도착한 막원이 일심홍의 창술을 펼쳤다.
콰콰쾅!!
무극수의 공격은 놀라움 그 자체다.
신병이기 백뢰창 한 자루로 펼쳐 내는 무공은 예술과도 같았다. 돌격진을 형성한 첨병 삼십여 명이 무자비한 창술 아래 목숨을 잃었다.
막원은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
파아아악!
치고 들어가 첨병을 무너트린 것이 순간이라면, 빠져나오는 것도 벼락이었다.
막원이 무리해서 천무신병기의 또 다른 비기, 천무병장공(天武兵將功)을 발휘해서 싸운다면 일시적으로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막원은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없는 전력이 되어 버린다. 천무병장공의 힘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만한 힘을 구사한 뒤에는 필연적으로 회복이 필요한 법이었다.
쩌저저정! 퍼버벅!
막원이 빠진 자리를 팽만호와 연지평, 화산의 동호가 채웠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혼원벽력도와 화산 비기 이십사수매화검법, 거기에 연가의 군자팔검세가 비집고 들어가 와해되기 시작한 마군 첨병 부대를 산산이 흩어 내 버렸다.
“송연경!”
세 사람이 빠지자마자 송연경을 위시한 아미의 창술사들이, 그리고 그들과 연수 합격이 가능한 탕마군의 창병들이 무자비하게 짓쳐들어오며 남은 잔당들을 날려 버렸다.
치고 빠지고, 빠지다가 다시 친다.
숨 돌릴 틈이 없는 전장이지만 의정군의 움직임은 지극히 부드럽고 여유가 있었다.
“역시!”
척강이 매서운 강검으로 마인 하나의 목을 날리며 외쳤다.
“대수님이 있으니까 훨씬 낫습니다!”
실제로 연호정이 한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막원을 집어넣고 팽만호와 동호에게 눈짓을 해 공격 시점을 잡아 주었다. 그 자신이 탄 기마의 주인, 연지평에게도 돌격의 때와 후퇴 순간을 정확하게 짚어 주었다.
연호정이 없어도 강하지만, 연호정이 있으면 더 강하다.
목숨으로 얽힌 신뢰 관계였다. 나아가 연호정의 전술안은 천하 최고를 논한다. 특히나 이런 국지적인 전투에서 발휘되는 그의 능력은, 경험 많은 제갈세가의 군사보다도 훨씬 더 뛰어났다.
투쟁으로 얼룩진 삶은 비록 그의 성정을 독하게 변모시키고 살인에 무감한 살귀로 만들었으나, 그만큼 그의 능력을 무섭게 발전시켰다.
당금 천하에서 연호정보다 더 실전 경험이 많은 고수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물며 수천, 수만 병력을 이끌어 본 경험까지 있으니 실로 중원 무림을 대표하는 명장 중의 명장이라 할 만했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그러한 명장이라도 수적 열세를 완벽하게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직도 마군의 숫자는 많았다. 반면 의정군은 오백이 조금 넘는 병력이었다. 막원이라는 막강한 패를 지녔지만, 이 전력만으론 저들을 다 막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악다구니를 지르는 마귀들이 쇠사슬로 둘러싸인 몸으로 마구 달려들었다.
연호정의 눈이 커졌다.
“물러나!”
콰아앙!
“크윽!”
기어이 군병 하나가 기마와 함께 날아가 쓰러졌다.
불길한 마기를 내뿜는 마귀들, 그 숫자가 아직도 많았다. 중간중간 마인들이 끼어들어 마귀들의 움직임을 조정해 주고 있는데, 마치 의정군의 움직임을 조정하는 연호정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듯했다.
우우우웅!!
연호정의 몸에서 황금빛 진기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막강한 기파, 연지평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형님! 몸을 정비하세요!”
“이 정도는 괜찮아.”
번쩍! 퍼억!
쏘아 낸 교룡쇄가 마귀 옆에 붙은 마인 둘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고 돌아왔다.
내공도 얼마 남지 않은 몸에 내상까지 입었다. 그런데도 창졸지간 펼친 무공은 의정군의 어떤 군병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주르륵.
연호정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한 번 무공을 펼친 것만으로도 내부가 진탕이 되고 있었다. 누가 보이지 않는 칼로 내장을 박박 긁는 기분이었다. 연지평을 잡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화아아아악!
하지만 그런 고통 따위야 수도 없이 많이 겪어 보았다.
정신력으로 고통을 억누르고, 상단전의 힘으로 진탕된 내부를 바로잡았다.
퍼퍼퍼펑!
몸을 보하자마자 좌장을 펼쳐 금룡번천장을 구사했다. 접근하던 마귀 셋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죽이진 못했지만 팔다리 하나씩은 부러트렸다.
여국이 외쳤다.
“성주님! 무리하지 마십시오!”
“무리는 너희가 하고 있다. 이런 개만도 못한 망나니들 손에 죽을 만한 운명들이 아니잖아.”
담담하기 그지없는 연호정의 말은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천천히 해. 놈들의 반응이 달라졌다고 해서 너희 또한 그 분위기에 휩쓸릴 필요는 없어. 최대한 놈들을 막되, 못 막아도 어쩔 수 없는 거다. 이런 곳에서 너희의 목숨을 걸지 마라.”
쓰러진 군병을 자신의 말에 태운 팽만호가 버럭 외쳤다.
“형님 말씀이 옳다!”
번쩍!
혼원벽력도에서 철혈적성도로 바뀐다.
벽력도는 힘의 도법인 만큼 내공 소모도 상당했다. 반면 철혈적성도는 초식에 따라 내공 소모량의 편차가 있었다.
적을 죽이지 못해도 차근차근 압박하면 된다. 팽만호는 곧장 연호정의 뜻을 받아들였다.
“차근차근 여유롭게 가자고! 언제까지고 막을 수 있을 거라고는 우리도 생각하지 않았잖아!”
군병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콰쾅! 퍼퍼퍼펑!
전투 양상이 한순간 달라졌다.
의정군이 물러나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만큼 마군들의 전진 속도도 빨라졌다. 이전까지의 전투를 생각하면 거의 두 배 이상의 속도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고 있는 게 좋기야 할 것이다. 현재 호북으로 들어간 전군(前軍)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우리는 몰라.’
공공대사와 제갈문호라면 필경 효과적인 한 수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믿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다르다. 만에 하나 놈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면, 무림은 중원 한복판에 적의 세력을 받아들인 상황이 된다.
와중에 난전이 벌어지면 극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나 혼자서라도 막겠다고 생각했으니 지금 상황은 몹시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끝을 볼 수는 없어. 그 또한 당연하다.’
광룡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역시나 어려운 싸움이었던가.’
그때였다.
‘……?!’
몸 상태는 최악이지만 그의 감각은 죽지 않았다.
연호정이 동쪽을, 막원이 동북쪽을 바라보았다.
“이 기세는……?!”
화아아악!
넘실거리는 군기와 마기 속에서도 두 사람은 산 너머에서 전해지는 기파를 읽을 수 있었다.
막원의 눈이 커졌다.
“저……! 남은 병력이 저토록 많았단 말인가?!”
동북쪽 산맥을 타 넘고 일단의 무리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숫자가 얼추 일천은 넘어가는 것 같았다.
“종남파!”
종남의 검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종남 소속은 아니었다.
종남파와 연계된 속가 문파들의 병력까지, 일천이 넘는 병력이 이곳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동쪽도 마찬가지였다.
“엇?!”
연호정 다음으로 그 기운을 읽은 사람은 윤호와 동호였다.
“자하신공의 기파다!”
“옥함에 육합까지 있어요, 사형!”
우우우우웅!!
종남보다 한층 더 가까운 거리다. 종남보다 먼저 출발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바로 화산파의 검사들이었다. 그들 역시 속가 문파들의 전력까지 끌고 온 것인지, 종남과 마찬가지로 일천이 넘는 무사들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심에는 천효락과 화향이 있었다.
종남과 화산.
섬서 무림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섬서 전투로 피폐해졌으나, 전쟁을 막고자 하는 의지는 이전보다 더 강해진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마군의 전진을 막기 위해, 아니 마군을 섬멸하기 위해 독을 품고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연호정이 외쳤다.
“의정군은 남쪽 협곡으로 다시 놈들을 유인해라!”
화산과 종남의 출현.
적의 후방을 갈아 버릴 분노 가득한 쌍검(雙劍)이 온 산을 뒤덮을 듯한 검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 * *
퍽! 퍼버벅!
신들린 듯 마인들을 격살하는 이철경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는 안 돼.’
적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쳐 죽이고 나오기를 몇 번.
이미 제 손으로 죽인 적의 숫자가 얼마인지도 잊어버렸다. 그저 때에 따라 하남 무림 병력을 지휘하며 적을 막아 가는데, 이제는 머리까지 멍할 지경이었다.
‘이렇게는…… 안 된다.’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했다. 쉬울 리가 없었다. 적의 수가 오만이 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항마법력의 극치라는 소림의 신공이라면 이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적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이철경만이 아니라 이곳에 온 모두가 그리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상극의 힘은 분명 의미가 있었지만,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뒤집을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았다. 무공은 무공일 뿐, 절대적인 병력 차는 어쩔 수가 없었다.
‘심지어 십팔나한과 백팔나한도 선두에서 싸우고 있다. 진즉 적장들을 죽이고 밀어붙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철경은 탄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역시 무리였단 말인가?’
그때였다.
우와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군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하남 무림의 전력이 아니었다. 군기의 성질, 기파의 밀도부터가 달랐다.
깜짝 놀란 이철경이 마인 하나를 죽인 후 그의 등판을 밟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그의 눈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포착하고야 말았다.
저 멀리 북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남하하는 일만의 대군이 있었다.
하남 무림 병력보다 훨씬 더 조직화된 이들이었다. 더하여, 그들 선두에는 누구라도 시선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엄청난 기파의 고수가 있었다.
거대한 칼을 등에 걸고 질주하는 기백 넘치는 노무사.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기파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자의 그것이라.
“도제 선배님!!”
도제 종리백이 제자와 함께, 천라지망을 펼쳤던 무림맹 일만 병력을 데리고 남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