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36)
흑백무제 1241화(1236/1255)
1241화. 광마대혈전(狂魔大血戰) (5)
마군의 악다구니는 상상을 초월했다.
“크아아아아!”
“돌파해라! 무조건 돌파해!”
지휘관들의 외침은 극단적인 다급함을 담고 있었다.
그런 마군을 의정군은 절묘한 움직임으로 유도했다. 빠져나가는 길을 막고, 방진을 구축하면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쪽 길로 유인하면서도 끊임없이 공격하며 적의 수를 차근차근 줄여 나갔다.
“뚫어라! 기마부터 잡아!”
번쩍!
이제는 도검의 발경까지 날아온다.
먼 거리를 격하고 쏘아지는 격공장의 수법이었다. 마인 중에도 고수가 많아서 중장거리를 타격하는 수법에 능통한 이들이 의정군을 공략하고 있었다.
마치 이제야 이지(理智)를 되찾기라도 한 양, 점점 조직화되어 의정군을 몰아치는 부대 운용이 상당했다. 이런 움직임을 펼칠 줄 알면서 왜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기만 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의정군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의정군의 움직임도 더욱 유연해지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오는 병력은 대처가 쉽다고 볼 수 있지만, 병력 차이가 너무 크면 몇몇 전술은 포기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적이 ‘상식’적으로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의정군은 수많은 전략 전술을 몸으로 체득한 실전 부대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순간순간 수장 역할을 바꿔 가며 부대를 이끌기까지 하는, 극도의 자유로움과 능동성을 지닌 부대였다.
그런 부대에게 있어 상대가 전략 전술을 구사한다는 것은 되레 반가운 일이었다. 어떤 형식이든 대응이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군이 조직화되어 진을 형성하고 의정군을 노릴수록.
그럴수록 의정군의 진법은 거의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탄탄한 방어진. 그러면서도 마인들을 철저하게 유인한다. 아직까지 중상자가 한 명밖에 없는, 어디서도 보기 힘든 완성형 기마 부대의 모습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기다!”
“진을 짜서 쓸어 버려! 측방이 약점이야!”
“우리는 후방을 노린다! 철저하게 물고 늘어져라!”
종남파가 후방을, 화산파가 측방을 공격하며 마군의 움직임 전체를 뒤흔들었다.
비록 주요 전력을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잃었다고 하지만 남은 자들의 분투는 대단했다.
와중에 속가 병력만을 추려서 온 것도 정답이었다. 수적 우위를 위해 섬서의 문파들을 죄다 끌고 왔다면 시간도 늦어질뿐더러, 손발을 맞추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한 번의 전쟁으로 두 문파 모두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병력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합이 맞는 사람과 싸우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죽여라!”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돌아가신 어른들과 사형제들의 피 값을 받아 내라!”
도를 공부하는 무림 문파 출신들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언사였다.
살생과 피에 무뎌진 만큼, 청량한 산의 가르침을 잃어버렸다. 대신 잃은 자리에 무시무시한 살검(殺劍)만을 벼려 놓고 적의 섬멸을 위해 목숨조차 걸었다.
이것이 전쟁의 무서움이다. 전쟁은 멀쩡한 사람도 분노와 피에 미친 악귀로 만들 수 있다. 타고난 천성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극단적인 환경은 이렇게도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변화는 내 땅,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몰랐다.
콰앙! 퍼퍼퍼펑!
후방을 갈아 버리는 화산파 장로들의 무공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용자 배 화산 진인들은 섬세하고 다채로운 화산의 검법을 무지막지한 난격술로 적을 베는 흉검(凶劍)으로 제련해 두었다.
단 한 번의 대전투로 그들 모두의 검법 성향이 바뀌었다. 더 잔혹하게, 더 효율적으로 적을 죽인다. 후방을 밀어붙이니 적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종남파도 만만치 않았다.
퍼퍼펑!!
검법과 장법이 조화롭게 마인들을 휩쓸고 있었다.
종남의 검법은 빠르고 위력적인 강검이다. 화산만큼은 아니어도 변화가 극심한 검법도 지녔지만, 강력한 내공을 이용해 상대의 모든 부위를 노리는 무공이 특징이었다.
안 그래도 강검 위주의 무공이 더 강해지다 못해 난폭하게 변했다. 휘두르다가 옆 사람이 베여도 그만인 것처럼 우악스러운 검법을 펼친다.
장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공 위주이나 공방이 조화로웠던 무공들이, 오직 공격만을 위한 투로를 보여 주며 마인들의 머리통과 흉골만을 골라서 깨 버리고 있었다.
선산(仙山)의 정기를 버리고 얻은 즉살의 무공이었다. 경지가 상승한 것도 아닌데 이전보다 훨씬 더 위력적인 무공을 구사하고 있었다.
구파 무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정심을 버리고 위력을 손에 넣은 것, 비록 산의 가르침을 저버렸다지만 적에게는 몇 배나 더 부담스러운 전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대단하군.’
종남과 화산 무공의 변화는 연호정조차 놀라게 할 정도였다.
‘구파의 무공이 저렇게까지 변모할 수 있었던 건가.’
같은 무공을 두고도 해석이 다르니 위력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건 당연했다.
하지만 무공 자체의 한계라는 것도 있다. 구파의 무공은 하나같이 신묘하고 뛰어나지만, 오로지 살검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것이 구파 무학의 한계라면 한계였지만, 기실 한계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살심만 가진다면 훌륭한 살법을 구사할 줄도 알았으니까.
저들의 변화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극살, 파괴적인 무공이다. 내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극단적인 무공…….’
연호정이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종남의 젊은 검사와 칼싸움을 벌이는 마인의 무공은 누가 봐도 음험하고 치명적이었다.
한데 종남 검사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밖에 안 되냐는 듯 냉소마저 지은 채로 무식한 강검을 휘두르는데, 그러다가 마인의 주먹에 가슴을 얻어맞기도 했다.
피를 토하면서도 광소를 터트리며 전진한다. 기어이 방어를 뚫고 들어가더니 마인의 목에 검을 박고 그대로 내리그었다.
푸화악!
목젖이 갈라지고 흉골과 복부까지 싹 다 베였다.
열린 배에서 분홍빛 내장 다발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한데도 종남 검사의 눈에는 공포나 안타까움의 감정이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시체를 뻥 걷어차더니, 가슴을 어루만지며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검을 휘둘렀다.
마인보다 더 마인 같은 모습이었다. 종남파의 비기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데, 격검(擊劍) 실력이 엄청났다.
‘마기만 아닐 뿐, 이미 마공이라 불려도 마땅할 만한 무공이다. 저런 무공을 구사하다가는…… 심성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어.’
우연찮은 살인 한 번으로 살인마가 되는 이들이 있다. 구파의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으니 한결 낫기야 하겠지만, 저런 식의 살벌한 무공을 구사하다 보면 언제 마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막을 수가 없다.’
이것이 전쟁이다.
저들이 마인이 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했다. 저들 역시 저들이 선택한 길을 걷는 것이니, 나에게는 막을 명분도 없고 막고 싶지도 않다.’
책임에서 회피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저들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위선이다.
저들은 저들 나름대로 책임을 지고 있었다. 목숨을 넘어 영혼까지 내놓고 싸우고 있었다.
그 결과가 잔혹할지언정 연호정만큼은 숭고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對) 삼교전(三敎戰)의 폐해였다.
“몰아냈다!”
“갈겨라!”
터터터터텅!!
묵비에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일까.
지금껏 꺼내지 않았던 각궁을 들고 화살을 날리는데,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가 실로 대단했다.
퍼버버버벅!
거리를 벌려 선두의 마인들을 쓰러트린다. 도검으로 화살을 튕겨 내는 마인도 있었지만, 어느새 말을 몰아 사선으로 공격하는 연지평의 대검에 의해 목이 날아가 버렸다.
궁수들은 딱 한 번 화살을 날리곤 순식간에 정비 후 도검장창을 들었다. 이 정도면 난사를 해도 괜찮을 텐데, 다시 그대로 돌격하고 있었다.
난전 중이라 아군에게 피해가 갈 것을 염려한 것이다.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닌데 모두가 같은 판단을 내려 각궁을 접고 주병기를 든 채 돌진했다.
‘대단해.’
연호정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렇게까지 전술안이 발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 하나 뒤떨어지지 않고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있어.’
이 정도면 구파급의 대문파를 상대로도 선전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고수진에서 밀리는 만큼 건곤일척의 승부를 낼 수는 없겠지만, 며칠 동안 물고 늘어지는 것 정도는 손쉽게 해낼 것 같았다.
‘이러면 승산이 있다.’
화산파의 저돌적인 후방 교란, 종남파의 무시무시한 측방 돌파.
사상자가 수도 없이 나왔다. 그 많던 마군의 숫자가 벌써 팔천으로 줄어들었다.
‘이 정도라면, 놈들을 섬멸할 수 있어.’
그때였다.
“허억!”
“크아아아악!!”
연호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몇몇 마인을 시작으로 삽시간에 대군 전체로 비명이 퍼져 나간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데, 놀랍게도 코와 입에서 반투명한 연기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기!’
체내의 마기가 솟구친다.
‘방출이 아니다.’
광룡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증발!’
그렇다.
놀랍게도 마인들의 몸에서 마기가 증발하고 있었다.
아직 증상을 겪지 않은 마인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의 상태가 더 나빠 보였다.
극도로 겁에 질려 안색이 창백해진다. 멍하니 서 있다가 칼을 떨어트리는 놈도 있고,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놈, 와중에 광소를 터트리며 종남 검사들을 향해 자살 돌격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뭐, 뭐야?!”
“이놈들이 미쳤나!”
그 사납던 종남과 화산의 검사들도 당황해서 몇 걸음 물러날 정도였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마인도 사람인지라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죽어 나가는 광경은 기괴하기 그지없었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임은 분명했다.
연호정이 소리쳤다.
“총공격이다!”
모두의 정신을 일깨우는 용의 음성이었다.
“놈들은 정상이 아니야! 전술 따위는 필요 없다! 모조리 쓰러트려라!”
“우아아아아!!”
엄청난 기마술로 마군을 유린했던 의정군은 그 즉시 마구잡이로 돌진하며 마인들의 목을 베었다.
종남과 화산 역시 마인들을 공격했다. 오히려 잘됐다는 듯 신명 나게 검을 휘두르는 그들의 살기 앞에 마인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각 후.
마군의 숫자가 사천으로 줄어들었다.
이각 후.
마군의 생존자는 일백이 채 되지 않았다.
도살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살아남은 마인들은 여전히 머리를 움켜쥔 채 비명을 질러 댔는데, 그중 태반이 피부가 쪼그라든 채로 바닥에 쓰러져 버둥거리고 있었다.
제아무리 적이라도 이런 꼴을 보니 연민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연민의 감정보다 증오가 훨씬 더 컸다. 종남과 화산 검사들의 무자비한 칼질 아래, 모든 마인이 목숨을 잃었다.
“믿을 수 없군요. 정말로 놈들을 다 죽였습니다.”
여국의 떨리는 음성이 압권이었다. 일만이 넘는 대군을 한참 적은 전력으로 다 죽인 것이 충격인 모양이었다.
“진짜 놀라운 일은 시작도 되지 않았어.”
연호정이 남쪽을 바라보았다.
“저쪽도 여기와 같은 상황이라면…… 이번 광혈교와의 전쟁, 우리의 압승이나 다름이 없다. 삼교 중 하나가 완전히 무너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