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37)
흑백무제 1242화(1237/1255)
1242화. 광마대혈전(狂魔大血戰) (6)
퍼어어어엉!
거치적거리는 마인 두 명을 날려 버린 건흉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칼을 고쳐 잡았다.
범오의 눈이 깊어졌다.
‘죽지 않았구나.’
남은 전오대력으로 반야대능력의 힘을 한껏 모아 내친 일격이었다. 그것도 다른 무공이 아닌 백보신권(百步神拳)이었다.
구대문파 정도의 역사를 지닌 대문파에는 연성이 지극히 어려운, 그러나 연마만 하면 어떤 고수라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필살(必殺)의 기예들이 존재한다.
그중 소림의 백보신권은 전설처럼 회자되는 무적의 권공이었다. 단순 파괴력으로는 고금 제일을 논하는 절대무공으로, 천년 소림 역사에서도 대성한 사람이 다섯을 넘지 못했다.
재능 넘치는 절정고수의 백보신권을 맞으면 초절정고수도 살아남지 못한다.
당연히 초절정고수의 백보신권은 그보다 훨씬 더 막강하여, 무극수라도 정통으로 맞으면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
하물며 상대는 마인이었고 그간의 싸움으로 상당한 내외상까지 입었다. 그런 상황에서 백보신권에 맞았으니, 즉사는 면하더라도 전투 불능이 되어야 정상이었다.
‘한데도 일어났단 말인가.’
건흉이 피를 토하며 외쳤다.
“돌진해라!!”
충혈된 눈, 시퍼렇게 도드라진 핏줄이 얼굴 전체에 가득했다.
내상 때문이 아니었다. 마공이 깨진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몸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 것을 알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아아악!
아우성치는 오만 대군, 거의 모든 마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범오의 눈에 놀라움이 일었다.
‘폭주?!’
그때, 공자 배 장로 중 하나인 공현대사가 외쳤다.
“나한당주는 십팔나한과 함께 물러나시게!”
공현대사와 공무대사가 대력금강장을 난사하며 건흉에게 접근했다.
콰쾅!
건흉의 칼질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두 줄기 대력금강장의 힘을 정면으로 깨부쉈지만, 두 다리가 비틀거리고 상반신이 마구 흔들렸다.
“으아아!!”
“크아아아악!”
지휘관들 덕분에 광기를 보여 주는 와중에도 제법 체계적인 돌진을 하던 마인들이다.
그 마인들이 이제는 진짜 미쳐 버린 것 같았다. 충혈된 눈으로 괴성을 지르더니, 도열조차 무너트리며 마구 달려 나갔다.
콰콰쾅! 퍼펑!
백팔나한진과 십팔나한진을 필두로 마군의 측방을 공격하던 하남 무림 병력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처음 맞닥뜨렸을 때도 이들은 돌진만을 원했다. 싸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무당산의 어느 지점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었다. 한데 막기가 한층 힘들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콰쾅! 퍼어어어엉!
백팔나한진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도제 종리백이 건황을 상대해 준 덕분에 선두 마인들을 막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마인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드니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콰아앙!
손쉽게도 죽는다.
백팔나한진을 구성한 소림 무승들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장중하고 밀도 높은 발경을 지녔다.
한데 그 공격들을 피하지도, 방어하지도 않았다. 치우려는 듯 손을 휘두르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육탄 돌격이었다.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들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침까지 줄줄 흘리며 머리를 들이미는데, 동료들의 박살 난 두개골과 뇌수를 보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 더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싸움이 성립되질 않는다. 오히려 그 죽음의 돌진에 나한들과 소림 무승들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떠올랐다.
‘좋지 않아.’
이 전장에서 공자 배 무승들보다도 더 침착한 것이 범오일 것이다. 가장 침착하고 냉정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야대능력의 지혜로운 내공력이 그의 상단전과 중단전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사람 목숨이 파리처럼 죽어 나가는 전장에서도 그는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살계를 열 각오로 왔지만, 이것은 일방적인 학살이다. 무승들로서는 목숨 건 싸움보다도 훨씬 더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무승만이 아니다.
누구라도 죽어도 상관없다며 돌진하는 사람들을 쳐 죽이면 정신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이건 더 이상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서로의 갈등을 가장 폭력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상대 역시 물러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 줘야만 싸움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원을 지키기 위해 창칼을 든 사람들 입장에서 오히려 죽자고 돌진해 오는 적을 죽이는 건, 싸움이 아니라 무의미한 도살이 되어 버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담스러운 일이다. 한 명을 해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을 만큼의 일대 사건인 것이다.
정종의 내공심법으로 정신을 단련한 수행자들이라도, ‘싸움’이 아닌 ‘학살’은 지독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거부감은 행동에 제약을 일으키고, 심각할 경우 사람을 미치게도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그런 의도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학살이 반복된다면, 설령 이 전쟁에서 승리해도 많은 사람의 정신이 망가지고야 말 것이다.’
퍼퍼퍼펑!
마음의 짐이 쌓이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마인들을 막는 나한과 무승들의 손발이 벌써 어지러워졌다.
모두의 얼굴에 혼란만이 가득했다. 몸에 밴 무도(武道), 본능적으로 마인들을 때려죽이고 있지만 두 눈은 혼탁하여 빛을 잃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범오가 반야대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며 외쳤다.
“무엇이 그리도 혼란스러운가!”
무서운 음성이었다.
인자한 부처의 음성이 아닌 분노한 명왕의 음성이었다.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는 위엄 가득한 사자후(獅子吼)에 소림 무승들은 물론 하남 무림 병력 모두의 귀가 움찔했다.
“적이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살계를 열 각오를 하고 왔다. 이들이 침략자이자 우리 땅에 죽음을 퍼트릴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막지 않으면 패망이요, 허무한 승리라도 그 또한 중원을 위한 영광된 싸움이라 할 것이다.”
화아아악!
범오의 몸에서 황금빛 서광이 일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한 부처의 후광이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랴. 우리 모두 중원의 선인(善人)들을 위해 명왕이 되어 이곳에 왔다. 누군가가 지옥으로 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는 것이 옳다. 너희 하나하나가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던가.”
혼란과 부담으로 얼룩졌던 무승들의 눈에 차츰 냉정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명심하라. 우린 이미 지옥에 한 발을 걸쳤다. 우리가 여기서 저들을 다 죽인다면, 지옥은 오직 우리만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행위가 부담스럽다고 이들을 놓아준다면, 지옥에 가지 않아야 할 사람들도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화아아아악!
나한들의 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솟구쳤다.
범오의 그것보다는 덜 선명하지만, 하나하나 합쳐진 힘은 그 어떤 군기(軍氣)보다도 위엄이 넘쳤다.
“그간 쌓은 수행은 지옥에 가도 흐려지지 않을 터. 정심을 되찾아라. 세존(世尊)께서 굽어살피시지 않아도 이미 너희 안에 부처가 있거늘, 무엇이 두렵다고 그리 흔들리는가.”
범오의 쌍장이 건흉의 가슴에 적중했다.
콰앙!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건흉, 그 와중에도 기어이 칼을 휘둘러 범오의 가슴에 깊은 도상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범오는 흔들리지 않았다.
치이이이익!
도상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꿈틀대며 파고드는 마기를 반야대능력이 배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범오의 안광이 점점 진해졌다.
오히려 마(魔)를 적대하며 반야대능력이 더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상극의 힘을 맞이하며 무공이, 경지가 강제로 발전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저 연호정처럼.
그처럼 파격적인 변화는 없으나 지혜의 신공 반야대능력은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범오를 더 높게, 더 강하게,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망설이지 마라! 철저하게 밀어붙여! 소림의 무공이 어찌하여 천하제일이라 불리는지 너희가 증명하는 것이다!”
“아미타불!”
나한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불호성은 일체의 흔들림이 없었다.
콰앙! 퍼퍼퍼퍼펑!
피 보라가 솟구친다.
육신이 터져 나가는 끔찍한 광경, 살점과 핏물이 공허하기 그지없는 허공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한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반야의 힘이 실린 범오의 사자후는 나한들, 심지어 공자 배 장로들의 마음에도 여유와 강단을 전해 주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구사하는 무공의 성질이 달라졌다.
내치는 주먹에는 더 강력한 발경이 실렸다. 휘두르는 철곤은 훨씬 빠르고 단호해졌다.
온전한 스스로를 되찾은 나한들의 무공, 피와 죽음만이 가득한 곳에서 연꽃과도 같은 소림 무공의 진수가 피어났다.
“크윽!”
범오의 깨달음 가득한 사자후로 선두의 방어가 탄탄해졌지만, 그렇다고 희생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군의 측방을 노리는 하남 무림 병력의 숫자는 끊임없이 줄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돌진하는 마인들이 하남 무림인들의 팔을 뜯고 눈알을 할퀴는 등 미친 듯이 몸부림쳤기 때문이다.
퍼어어엉!
이철경의 권법이 빛을 발했다.
범오의 음성에 범천신공의 힘이 제자리를 되찾았다. 범오처럼 막강한 무력을 선보이지는 못할지라도, 무종을 넘은 그의 권법은 차근차근 마인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있었다.
‘이대로 될까.’
아무리 마음을 다잡았다 해도 수가 너무 많다.
지금까지 방어선이 뚫리지 않은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십팔나한과 백팔나한의 진법이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 한계가 오는 순간, 마인들을 막지 못할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이놈들의 몸에선 마기가 새어 나오고 있다. 기파가 아니라 내공력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야.’
한데도 힘이 더 강해졌다.
원정을 건드린 것도 아니다. 원정을 건드릴 이성조차 남지 않은 마인들이 태반이다.
‘이상해. 상태만 보면 점점 힘이 줄어야 정상인데 어째서……?!’
그 순간, 이철경은 깨달았다.
‘힘이 제멋대로야.’
놈들의 몸에서 마기가 새어 나오고 있다. 이 정도로 마기가 새어 나왔다면 진즉 탈진했어야 정상이었다.
한데도 쓰러지지 않는다.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양은 들쭉날쭉했고, 찰나지간 축기까지 하는 듯 이전보다 더 선명한 마기를 발할 때도 있었다.
‘잘 막고 있다고는 하지만, 놈들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는 점점 무당산에 가까워지고 있다…… 설마 무당산에 가까워질수록 놈들이 힘을 되찾고 있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하지만 드러난 현상이 그렇다. 무당산에 가까워질수록 놈들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힘을 잃었다 되찾기를 반복한다. 그 미친 듯한 마기의 방출 아래 일대 전체가 음기(陰氣)로 가득해졌다.
마치 무당산을, 선기(仙氣) 가득한 산을 오염시키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죽어 가면서 부활한다…… 부활…….’
광신삼교.
그들은 중원을 노렸지만, 각기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나.
‘삼교의 최종 목표는 불로불사라고 하네. 영원을 사는 것, 죽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들었어.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루었다고 했네. 나로서는 그들이 어떻게 그런 것을 이뤘는지 상상하기 어렵군.’
전쟁 직전, 범오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철경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측방에서 빠져라! 모두 나한진 뒤로 물러나라! 선두에서 놈들을 막는다! 그것이 최선이야!”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앞에서 막아야 한다. 나한들의 방어력에 힘을 불어넣고 철저하게 맞상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천재의 재능이 꽃을 피우는 순간이었다. 처음 치르는 대규모 전쟁 속에서, 적의 목적을 읽고 전략을 바꾼 것이다.
뚫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오만 군세를 와해했던 하남 무림 병력이 다시 선두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크나큰 변화를 맞이하는 적과 아군 속에서.
화아아아악!
더 이상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듯, 무당산의 선기가 폭풍이 되어 마군을 휩쓸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마인들을 격살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무당산의 도사들.
최소 인원을 제외한 무당의 모든 병력이 구름을 타듯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