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38)
흑백무제 1243화(1238/1255)
1243화. 광마대혈전(狂魔大血戰) (7)
“음?”
연위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시오?”
모용군의 질문에도 연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저 먼 동쪽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을 뿐.
모용군은 그런 연위의 모습이 새롭지 않았다.
연위는 한 번씩 이런 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있었다. 그 광대하기 그지없는 상단전 능력이 그에게 무엇을 보여 주는 건지,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술사들처럼 불길하다, 불안하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모용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해해 주게나. 이 사람, 가끔 이렇게 정신을 놓을 때가 있네.”
“별말씀을요.”
보타암을 대표하여 모용군을 만난 사람.
처음 한 번의 만남 후, 수일 만에 다시 자리를 가졌다. 향후 보타암이 어떻게 활동할지를 상세하게 논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 보타암의 대표는, 놀랍게도 연심이었다.
“그때는 말씀 못 드렸지만, 언제고 반드시 연가주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제야 연위가 연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를 말이오?”
“그렇습니다.”
연심이 미소를 지었다.
강건하기 그지없는 기도, 그야말로 일대 종사의 기품을 지닌 보타암의 차기 검후가 거기 있었다.
“연 대수, 아니 이제는 성주님이군요. 저는 연 성주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미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땅 밑을 전전하며 살았겠지요.”
“내 아들놈이 차기 검후에게 그리도 큰 도움을 주었다니, 아비 된 입장에서 영광이라 아니 말할 수 없소.”
“물론 묵룡부주, 아니 흑제성의 태상께 더 많은 것을 배웠지요. 본디 그분과 함께하려 했으나, 세상이 달라졌다며 저를 보타로 보내셨습니다.”
연심이 고개를 숙였다.
“돌고 돌아 결국 이렇게 함께하게 되었으니,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신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나이도 젊은 사람이 수십 년 법력을 쌓은 고승처럼 말한다.
그것이 지금의 연심이었다. 그녀의 무공은 모용군에 필적할 만한 경지에 도달했으며, 그 무공보다도 큰 깨달음이 함께하고 있었다.
“또한 차기 검후는 제가 아닙니다. 정안이라고, 연 성주님과 큰 인연이 있는 보타 천이문의 후계가 있지요. 그 아이의 성취는 저보다 뛰어나답니다.”
“지금의 그대보다 뛰어나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연위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신비 문파 보타암의 잠재력이 구파와 육가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소이다.”
“과찬이십니다. 미망에 빠져 너무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부족함이 많습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법이오.”
“사실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연위가 손을 들었다.
“이제 이런 대화는 그만하도록 합시다. 조만간 부마도위 양 태상도 올 터이니, 그분과의 회포는 그때 풀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연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략에 관해서는 나보다 여기, 모용가주가 훨씬 더 뛰어난 사람이오. 이 사람과 얘기해 보도록 하시오.”
모용군이 힐끔 연위를 바라보았다.
“같이 보자고 하더니만 왜 자리를 물리시오?”
“불길해서.”
“그놈의 불길함, 시도 때도 없구려.”
“먼저 가 보겠소.”
“그러시오. 이따 시간 괜찮으면 간단히 술이나 한잔합시다.”
“시간이 되면 말이오.”
어느새 두 사람은 그런 대화를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 이상 가까워지려 하진 않았지만, 사람 정이라는 게 딱 선을 그어 놓은 만큼만 오가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렇게 연위는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 밖으로 나왔다.
파아아앙!
천종운행비를 펼친 그는 곧장 황궁 동쪽 끝으로 이동했다.
‘이상하다.’
연가신단을 완성한 이후, 제멋대로 날뛰던 예지 능력도 잠잠해졌다.
하지만 근래 이상하게 자꾸만 머리가 아파 왔다. 마치 위험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고 신호를 주는 것만 같았다.
‘이런 적은 많지 않았어. 호정이면 호정, 지평이면 지평. 내가 느끼는 예지에 가까운 감각은 대부분 사람을 향해 있었다.’
상단전 공력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의 예지도 뚜렷해졌다.
상단전은 곧 신(神)의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우화등선한 도사들이 상단전에 양신(養神)을 쌓는 것은, 영혼의 힘을 다루는 상단전이야말로 인간의 탈을 벗겨 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기 때문이다.
영력, 신의 힘을 다루는 곳이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와중에 연위의 상단전은 대다수의 무극수들과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여, 무공의 힘을 더하는 방식이 아닌 세계의 이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발달되었다.
연위 스스로도 자신의 상단전이 왜 남들과 다른지는 알지 못했다.
중요한 건, 그의 상단전은 저 혈존대사라 불리는 통천진인의 그것과 비슷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한없이 불길하다. 마치 이곳 황궁…… 아니, 강소성 전체에 먹구름이 낀 기분이야.’
상상치 못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연위는 그렇게 판단했다.
스륵.
황궁 경비병들의 인사를 받으며 성벽 높이 오른 연위가 동쪽 끝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곳에 연가가 있다. 그리고 연가 너머에는 광활하기 그지없는 바다가 있다.
연위가 눈을 감았다.
우우우우웅!
상단전, 연가신단을 움직여 신기(神氣)를 풀어 내기 시작했다.
‘……모르겠군.’
잘 정리된 신기를 한계까지 풀어 냈는데도 불구하고 이 불길함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마치 몸에서 영혼만 빠져나온 듯, 자유롭게 하늘에 떠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그 압도적인 자유로움 이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정말이지 모르겠어. 이렇게나 답답한 느낌은 처음이다. 황궁 전투 때도 이렇게까지 불길하진 않았는데.’
스르륵.
신기를 접고 연가신단을 조였다. 그러자 무한한 자유가 사라지고 오감이 되살아났다.
연위가 눈을 떴을 때였다.
“별로 좋지 않군.”
깜짝 놀란 연위가 옆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곡경이 있었다.
“귀군께서 어찌?!”
“입궁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소.”
연위의 얼굴에 반가움이 깃들었다.
“정말 잘 돌아오셨습니다.”
“내가 돌아온 거야 당연한 일이고, 지금은 내 얘기를 할 게 아니라 연가주의 상태부터 점검해야 할 것 같소만.”
“무슨 말씀이신지…….”
회포를 풀 시간도 아깝다는 듯, 곡경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사공을 연성한 만큼 상단전을 다루는 정종신공의 힘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오. 하지만 사공을 익혔기에 남들보다 많은 것을 보기도 하오.”
“예?”
“극에 이른 사공은 정신과 마음을 오염시키지 않소이다. 상단전과 중단전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흔들리지 않게 관리하는 데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오.”
“아, 그렇습니까.”
사마공을 연마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혼탁해진다. 욕망에 솔직해지는 걸 넘어 주관까지 흔들려 버리는 것은 다 사기와 마기가 인간의 이성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극상승의 사마공은, 어떤 의미론 소림과 무당의 신공 못지않게 시전자의 마음과 정신을 올바르게 지켜 주는 구결의 심오함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래서 알 수 있소.”
곡경의 눈이 깊어졌다.
“연가주, 그런 식으로 신기를 남발하다간 제명에 살지 못할 것이오.”
가만히 곡경을 보던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연가주의 상태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오.”
우우웅.
곡경의 두 눈에 선명한 사기가 어렸다.
정종신공을 익힌 연위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기운이지만, 사기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 그런 불쾌함도 심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극에 이르면 비슷한 영역에서 만나게 되는 법. 진기도 그와 같았다.
“그렇게 상단신기를 한계까지 개방하면 언제고 귀(鬼)가 씔 수 있소이다.”
“귀…….”
“비어 버린 몸뚱이에 귀신이 든다는 것이오. 굳이 귀가 아니더라도, 영육(靈肉)은 본디 하나라 둘로 분리하는 순간 잡스러운 기운이 몸을 잠식하여 육신이 피폐해질 수 있소이다.”
연위의 눈이 흔들렸다.
그냥 듣고 흘릴 만한 얘기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물론 연가주의 경지가 지고하고 상단과 중단의 연마가 출중하니 어지간해선 그럴 일이 없을 것이오. 하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잖소.”
“그렇지요.”
연위가 포권을 취했다.
“귀한 말씀, 잘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외다.”
“예?”
곡경이 성벽 위에 양팔을 올렸다.
그간 그도 무척 바빴던 모양인지,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영력의 그릇, 영반(靈盤)인 상단전이 발달할수록 오감보다 육감에 더 의지하게 되는 법이오. 육감이란 정신의 감각이며, 오감으로 잡아낼 수 없는 것을 미지의 힘으로 깨닫는 것을 뜻하오.”
“…….”
“육감이 발달하면 오감은 둔해지오. 오감이 둔해진다는 것은 몸을 버려 두는 것과 같소. 나아가 육감에 능해지면, 몸은 더 이상 활동하지 않고 육감만으로 세상을 보게 되오.”
곡경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잡으려고 드는 것 같았다.
“아시겠소? 신기를 과하게 쓰면 몸이 무너지오. 나빠진다는 게 아니라, 그대의 영력이 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오.”
“……!”
“영육의 분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지 않을 것이오.”
죽음이다.
혼과 백, 영과 육이 분리되면 사람은 죽는다. 지금 곡경은 그렇게 신기를 남발하다간 연위가 죽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연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하면……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곡경이 미소를 지었다.
“그저 몸을 보하시오. 세상에는 연가주 못지않게 상단전을 활발하게 쓰는 사람들이 있소. 쓰는 방향이 다를 뿐이지.”
“아…….”
“거기까지는 나도 깨닫지 못해 모르겠소. 다만, 연가주라면 그 방법을 체득하리라 믿소.”
왜인지 모르게 곡경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더 유연해지고 깊어진 듯했다.
무림맹에 파견을 가서 무언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모양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연위는 곡경의 변화가 보기 좋았다.
“하지만 이번은 뭔가가 다릅니다.”
연위의 얼굴이 다시 심각해졌다.
“이 정도의 불길함은 처음입니다. 마치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불타는 것 같습니다. 민초들의 비명 가득한 울음이 귓가를 어지럽히는 느낌입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곡경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해 줄 말은 있었다.
“광혈교의 병력이 중원 내륙 쪽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들었을 것이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황궁을 보호하는 사람들. 하물며 정파 무림이 그들을 막고 있으니, 우리는 일단 이곳에서 대기하며 황제 폐하를 지킬 뿐이오. 우리의 자리는 이곳에 있단 뜻이오.”
“그렇지요.”
“하지만 연가주는 어떻소?”
“예?”
“광혈교 대병력과의 싸움에, 연가주의 두 자식이 참전했소. 그걸 모르지 않을 터인데.”
순간 연위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렇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한데도 그는 전신을 서서히 죄여 오는 불길함에 자식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식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아는 연가주는 아닌 척하면서도 자식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었소. 한데 지금은 그래 뵈지 않는군.”
“…….”
“이유가 무엇이오?”
“……녀석들은.”
연위가 저 멀리 서북쪽을 바라보았다.
“녀석들은 잘할 겁니다. 저는 진정 제 자식들을 믿고 있습니다.”
“예전이라고 불신했던 건 아니잖소.”
“그렇습니다.”
“하면 지금은 왜 그리 달라졌소?”
곡경의 질문은 불현듯, 연위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상태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 아이들의 전장이 그곳이라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곡경의 눈이 반짝였다.
“하면 그대는?”
“제 전장은…….”
그제야 어지럽기만 하던 머리가 바로잡힌다.
상단전의 육감으로 무언가를 ‘느끼기만’ 했던 그의 머리가, 평소 판관검의 번뜩이는 지혜를 되찾은 것이다.
“제 전장은 이곳에 있습니다.”
“준비합시다.”
곡경이 몸을 돌렸다.
“그대의 전장이 이곳이라면, 우리의 전장도 이곳이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