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41)
흑백무제 1246화(1241/1255)
1246화. 붕괴의 시작 (1)
“급보입니다!”
제갈문호의 목소리는 드물게 격양되어 있었다.
“섬서 남부를 휘젓던 광혈교 병력이 흑제성주 연호정과 백병신군 막원 두 고수를 필두로 의정군, 종남과 화산을 중심으로 한 섬서 무림 병력에 의해 섬멸되었습니다!”
공공대사의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또한 호북 무당산으로 접어든 광혈교의 오만 대병력 역시 단 하나도 남김없이 섬멸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대승 중의 대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쟁 중이라 봉공 대다수가 각파로 돌아간 상황이지만, 남은 봉공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승리를 축하했다.
공공대사가 침착하게 물었다.
“아군의 피해는?”
제갈문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의정군엔 소수의 부상자만 있을 뿐 사망자는 없다 합니다. 반면 종남과 화산을 필두로 한 섬서 무림 병력 중엔 삼백의 사상자가 났습니다.”
일만이 훌쩍 넘는 대군을 상대로 사상자가 삼백 밖에 나지 않았다면, 이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무당 인근 전투에서의 사상자는 아직 정확하지 않았습니다만, 약식으로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하남 무림 병력과 무림맹 병력을 합쳐 총 삼천이 넘는 사상자가 났다고 합니다.”
“삼천…….”
공공대사의 얼굴이 흐려졌다.
오만이 넘는 대군과 싸워 삼천의 사상자가 났다면,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대승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대승이라고 마냥 기뻐하기에는 죽은 사람이 많았다. 적의 숫자와 비교하여 대승일 뿐, 삼천이나 삼백이나 적은 숫자가 아닌 것이다.
제갈문호가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이것으로 삼교 중 하나이자 가장 강하다고 예상되던 광혈교가 전멸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일부 병력은 그들 본진에 도사리고 있겠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의 전쟁이 한결 더 쉬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군.”
“지금은 이 승리를 기뻐하시고 차후 남은 이교의 공격을 대비해야 합니다.”
사상자들을 향한 안타까움은 제갈문호도 공공대사 못지않았다. 어떤 의미로는 그가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맹주의 허가가 떨어졌대도 병력을 광혈교로 보낼 생각을 한 것은 그였다. 군사로서 당연한 처사였지만, 결국 자신의 판단 때문에 아군이 죽은 것이니 충격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지금은 수뇌부가 흔들릴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든 악업은 자신이 지고 갈 뿐이다. 제갈문호는 그런 심정으로 군사직을 맡고 있었다.
그런 제갈문호의 마음을, 공공대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전 무림에 이 사실을 공표토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상자들의 이름과 조직에 관한 보고도 빠르게 올리시오. 군사께서는 적들의 차후 움직임에 맞춰 전략을 펼치되, 휘하 군사들에게는 전사자 처리에 만전을 기하라 명하시오.”
“맹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맹주전에서 나온 제갈문호는 곧장 군사부로 향했다.
집무실에 들어선 제갈문호는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사망자는 나올 수밖에 없다. 이건 전쟁이니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이 정도 손해를 입고 수만 대군을 격파했다면.
그나마 죽은 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후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제갈문호는 잠시간 움직이지 않았다.
일각 후.
손으로 얼굴을 비비듯 쓸어내린 제갈문호가 손을 털고 문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바닥에 알 수 없는 물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문서를 정리한 그가 휘하 군사 하나를 불렀다.
“이것을 전 무림의 정보 단체에 전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군사들을 반 시진 뒤까지 회의실로 집합시키도록.”
“예!”
그렇게 군사를 보낸 제갈문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붉은 기가 감도는 두 눈에 한 줄기 걱정이 깃들었다.
“……이것이 전쟁이다. 과연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평소와 달리 깊은 시름과 격정으로 가득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흘러, 저 멀리 남쪽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자식을 향한 걱정이었다.
* * *
“급보입니다.”
소정광의 목소리는 침착한 가운데 묘한 격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대 광혈교전에서 무림 병력이 압승했다는 보고입니다.”
“저, 정말요?”
“그렇습니다. 광혈교가 정상이 아니라는 보고가 있었지만, 뭐가 어떻게 되더라도 압승은 압승인 겁니다.”
“숫자는……?”
“섬서 남부, 그리고 호북 무당산까지 진입한 병력을 합쳐 육만이 훌쩍 넘어갑니다. 그 병력 모두가 몰살당했고, 순수 아군 피해는 총 삼천에서 사천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제갈아연의 눈이 흔들렸다.
육만이 넘는 대병력이라면 그야말로 압도적이라 할 만했다. 평범한 군인이 아니라 그들 하나하나가 내가무공을 익힌 자들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만한 마인 병력을 아군 삼천, 혹은 사천의 희생으로 막았대도 일대 괴사라 할 만하다. 한데 막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몰살을 시켜 버렸다고 했다.
무림 역사에 이와 같은 일방적인 대승이 있었던가.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쌍수를 치켜들어도 모자랄 만큼 기쁜 일이었다.
한데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분명 기분 좋은 소식이지만, 기쁨보다는 서글픔이란 감정이 먼저 밀려들었다.
‘삼천에서 사천…….’
엄청난 수다.
제갈아연은 아찔함을 느꼈다. 중원을 침공한 광혈교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보다 희생자 숫자가 먼저 머리에 박일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았다.
‘아니, 설령 숫자가 적었더라도…….’
한 명이든 삼천 명이든 죽은 건 죽은 것이다.
한 명의 죽음에도 울적할 수밖에 없는 기분을 삼천 배, 혹은 그 이상으로 느낀다는 것이 다른 점이랄까.
제갈아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전쟁이야. 누가 죽어도 이상할 게 없어. 지금은 차라리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감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 정도 정신력이 없다면 군사 일도 못 해 먹을 것이다.
‘이걸 명확히 해야 해. 전쟁이 지속되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숫자로만 보게 된다. 그게 군사야. 적어도 나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그걸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대단한 것이다. 그러한 사람다운 깨달음을 상실한 군사들이 훗날 어지간한 마인보다도 큰 사고를 치는 것이 현실이었다.
가만히 제갈아연을 바라보던 소정광이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아, 네. 물론이죠.”
“저 역시 군사직을 맡은 이상 제갈 소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아마 무림맹의 총군사님께서도 힘들어하고 계실 겁니다.”
소정광은 눈치가 빨랐다.
“그러나 그분이 노력해 주시지 않았으면 이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겁니다. 다행히 주변에 공공대사님을 비롯한 연륜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 총군사님도 잘 이겨 내실 겁니다.”
제갈아연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강한 분이세요. 저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죠. 분명 잘 이겨 내실 겁니다.”
“지금 중요한 건 승리에 도취되는 것도, 희생자들의 죽음에 마냥 슬퍼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정광이 회의실 탁자에 놓인 지도를 가리켰다.
“광혈교의 병력은 감숙, 섬서를 지나 호북까지 도달했습니다. 남하하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지요.”
“그랬지요.”
“이것은 중원 무림에 있어서 크나큰 위협이었습니다만, 다르게 보면 큰 호재이기도 했습니다. 식사도, 수면도 부족한 상태로 남하하기만 했으니, 섬멸전을 상정했을 때 꽤 손쉽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요.”
“그렇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제갈아연이 지도의 한 부분을 훑어보았다.
“남은 이교 때문이지요.”
“정확하십니다.”
소정광이 손으로 사천을 가리켰다.
“현재 혈존대사라는 모종의 마인이 사천에 들어섰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무림맹 측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삼교의 신비인이지요.”
“그래요. 그 작자를 잡기 위해 호정, 아니 연 성주도 한 번 잡은 광혈교주를 놓아주었어야만 했지요.”
제갈아연의 목소리는 왠지 모를 아련함을 담고 있었다.
소정광은 애써 그녀의 감정을 무시했다.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 혈존대사의 서행(西行)과 광혈교 병력의 남하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리 짰다는 얘긴가요?”
“아닙니다. 애초에 광혈교의 모든 병력이 이런 순간에 남하한다는 걸 혈존대사라는 인물이라고 알 리 없었겠지요. 하지만 광혈교가 준동하여 움직인 순간, 혈존대사는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제갈아연의 눈이 반짝였다.
“천라지망을 펼친 무림맹 병력의 허리를 잘라 버리겠다는 의도였을까요?”
“정확하십니다. 의도치 않게 반으로 갈린 군대는 본래 전력의 십분지 일도 안 되는 전력을 지니게 됩니다. 만약 혈존대사의 생각대로 무림맹 병력이 양단됐다면, 그들을 섬멸하는 데 성공했을지라도 극심한 피해가 났을 겁니다.”
소정광의 손이 섬서로 향했다.
“그때, 저희 성주님께서 나타나 마군의 후미를 떼어 내 버렸지요.”
“그랬지요.”
“백병신군 막원 선배님께서도 참전하셨고 의정군이 뒤이어 도왔다지만, 만약 성주님께서 목숨 걸고 군대를 잘라 버리지 않았다면…… 사상자는 만 단위를 헤아렸을지도 모릅니다.”
제갈아연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언제나 상상도 못 할 곳에서 나타나 대공을 이루는군요.”
“그렇지요. 그래서 저도 성주님을 존경합니다.”
“한데 이게 왜요?”
소정광이 호북성과 하남성 사이를 짚었다.
“전투가 치러진 이곳은 중원 한복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림맹 병력이 집결되었으며, 남쪽에는 우리 흑제성이 있어요.”
“그렇지요.”
“우리가 지금껏 병력을 온존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림맹이 저들을 막지 못할 때 뛰쳐나가 남은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네, 알고 있어요.”
“말하자면 각 지역의 문파 병력을 제외한 무림 최강의 병력들이 중원 내륙 한복판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순간 제갈아연의 눈이 흔들렸다.
“그렇다면……?”
“그렇습니다.”
소정광의 손이 쭉 이어져 올라가 하북과 동쪽을 가리켰다.
“혈존대사는 사천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예측대로라면 멸문한 아미 남쪽으로 내려가 서쪽의 거친 산맥을 타고 오를 겁니다. 당연히 사천 병력도, 무림맹도 저들을 주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이 순간, 하북이나 산동 인근으로 적의 병력이 치고 내려온다면 이는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제갈아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한 지역의 소규모 전투 상황을 그리며 군략을 배웠지만, 확실히 중원 전역으로 영역을 확장하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산동…… 산동은 아마 아닐 겁니다. 굳이 숨어서 침투할 이유가 없어요. 치고 들어온다면 하북이 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지요.”
소정광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
“현재 황궁은 성공적으로 강소성에 안착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늦게라도 적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말씀은……?”
“동쪽.”
소정광의 손이 강소성 옆, 동해(東海)를 가리켰다.
“그간 삼교가 보여 준 철저한 준비성을 생각한다면, 놈들에게 거대 병력을 수송하는 배가 없을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
“만약 이교 중 하나가 북쪽에서 파죽지세로 내려오면, 무림의 중앙 병력이 그들을 막기 위해 치고 올라가겠지요.”
“그 순간에 남은 적이 동쪽에서 배를 타고 이동한다면…….”
“황궁부터 일직선으로 밀릴 겁니다.”
제갈아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소정광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만에 하나를 위해 무림맹과 하북, 그리고 황궁에 이것을 예고해야만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광혈교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