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48)
흑백무제 1253화(1248/1255)
1253화. 불괴(不壞)의 땅 (3)
우우우우웅!
조양진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자!”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마(魔)의 화신이 있었다.
보유한 마기의 양은 절정고수 수준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기의 밀도만큼은 어떤 고수보다도 뛰어났다. 당장 저 소교주라 불린 청년보다도 마기의 질이 훨씬 깊었다.
인간이 보유할 수 없는 마기를 몸에 담은 자.
드러나는 신법도 묘했다. 달리는 것 같은데, 달리 보면 부유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일반적인 신법의 움직임과는 뿌리부터 다른 수법이었다.
‘공중부양의 술수다.’
아무리 마기의 질이 높대도 저만한 양으로 공중부양에 가까운 신법을 구사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혈존대사.”
화아아악!
기천웅의 몸에서 막강한 화기가 뿜어져 나왔다.
상단전이 다 낫지 않았지만, 천화경에 달한 고수와의 생사결 한 판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지금 이곳까지 오면서도 원무치상결을 이용, 무너지는 상단전을 최대한 복구했다.
‘혈존대사는 여기서 잡아야 한다.’
신화가 신화로만 남을 수 있도록.
혈교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낼 수 있도록, 광혈과 사음을 지상에서 없애 버릴 수 있도록.
파아아앙!
기천웅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위이이이잉!!
어쩔 수 없이 음공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기천웅은 사정없이 파고드는 극비광소곡의 음파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화아아아악!!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화기가 완벽한 방패를 만들어 주었다.
비록 전성기보다 못한 무력에, 상단전이 무너져 쌓아 온 모든 무공을 구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는 신화교의 수장이었던 남자다.
“우우우우!!”
기천웅의 사자후가 하은교의 감각을 일깨웠다.
‘여기까지군.’
기천웅과 찰극평, 그리고 조양진인의 기도는 진즉에 읽어 냈다.
힘이 넘치는 아군들이 올 때까지, 나아가 목표물이 도달할 때까지 적의 발을 묶어 두는 것이 바로 그녀가 할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화려한 무대 위, 모든 배우가 모였다.
치리리링!!
칠현금에서 순식간에 일곱 가닥의 현을 뽑아낸다.
파아아아앙!!
음공이 멈추자 흑검과 백도, 흑검혈마(黑劍血魔)와 백도괴마(白刀怪魔)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부아아앙!!
기천웅이 혈존대사를 향해 날아가고 흑백 도검의 쌍마가 하은교를 노린다.
번쩍!
어느새 세 사람을 건너뛴 광혈의 소교주, 천화룡은 기천웅과 마찬가지로 혈존대사에게 날아갔으며, 찰극평은 백도괴마의 측방을 향해 움직였다.
누구 하나 시작을 외치지 않아도 알아서 얽혀들어 간다. 초고수들의 격전, 서로의 욕망이 살기로 화하며 경천동지의 싸움을 알렸다.
콰아앙!
첫 시작은 흑검혈마였다.
접근 불가의 음공이 사라지자 흑색의 검무(劍霧)를 진하게 뽑아내며 공격하는데, 숨도 못 쉴 것 같은 마기가 느껴졌다.
휘이잉!!
하은교의 왼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신비로운 백색 수공, 음제의 진신절기인 탄금천녀수(彈琴天女手)의 발현이었다.
콰아앙!
두 고수의 부딪침 직후, 새하얀 백도가 반월을 그렸다.
번쩍!
공간을 잘라 내는 무지막지한 일도였다.
찰극평의 손이 새하얀 도격의 중단을 노리고 날아갔다. 신화교의 무적 절기, 염제수(炎帝手)였다.
쾅!
폭음과 함께 시뻘건 불꽃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비록 연위에게 막히고 연호정에게 무너졌다지만, 그때는 찰극평의 정신이 멀쩡하지 못했을 때였다. 승부에 만약은 없다지만 본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는 교주와 함께하는 자리였다. 마음가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퍼퍼퍼펑!!
흑과 백의 초고수들이 하은교와 찰극평을 상대로 일대 격전을 벌이는 순간.
번쩍!
한 줄기 뇌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기천웅의 등판을 노렸다.
기천웅의 눈이 번뜩였다.
쾅! 파지지지직!
허공을 격하고 대지에 내리꽂힌 뇌전이 사방으로 번갯불을 피워 올렸다.
순식간에 뇌격을 피해 냈음에도 기천웅의 움직임은 느려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빨리 혈존대사를 죽이기 위해 돌진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십여 장 거리를 둔 혈존대사가 양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위이이잉!
기묘한 진동과 함께 무시무시한 마기가 땅 밑으로 스며들었다.
콰드드드드득!!
넓은 대지가 무서운 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땅 밑으로 시뻘건 용암이 파도를 치며 솟구치고 있었다.
기천웅의 눈이 형형해졌다.
‘환술!’
혈교의 제사장이 발휘하는 환술은 오직 하나뿐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혈왕환신술이군.’
사마외도의 환술 중에서 최고 경지에 오른 환술이었다. 그 환영이 어찌나 지독한지, 천화경에 이른 절대고수의 상단전으로도 순간적인 파훼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과연 혈왕환신술의 환상은 무시무시했다. 갈라진 땅과 치솟는 용암이 다 허구라는 걸 아는데도 자꾸만 감각이 교란되고 그것을 진짜로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빌어먹을.’
화르르르륵!!
사방으로 휘두르는 양손에서 금빛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신화교의 금제순화공(金帝順化功)이었다. 섣불리 전력을 내기 힘든 그에게 있어, 금제순화공은 훌륭한 대체 무공이 되어 주었다.
대체라고는 하나 금제순화공 역시 신화교에서 정점을 다투는 무공이었다.
뿜어져 나오는 금빛 화염이 대지를 휩쓰는 마기의 일부를 태워 버렸다.
화아아악!
일렁이는 검은 연기 뒤로 멀쩡한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혈존대사의 마기가 제아무리 지독해도 기천웅 정도의 고수가 발하는 화기까지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양이 충분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력자가 있었다.
“소교주!!”
번쩍! 콰아앙!!
기천웅의 몸이 흔들렸다.
허공을 격하고 쏘아진 흑색의 화염 기공.
‘뜨겁군.’
고열의 화염 장법이었다.
그 안에 깃든 마기의 밀도가 굉장했다. 혈존대사보다는 못할지언정 인간의 몸에 들어찰 수 없는 마기로 가득한 무공이었다.
기천웅이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콰드드득!!
치솟는 용암 사이로 금이 쩍쩍 벌어졌다.
무너진 땅 밑은 시커멓기만 한데, 그 시커먼 허공에 금이 간다. 진각 한 발로 환술 일부를 또 깨 버린 것이다.
혈존대사의 눈이 흔들렸다.
‘역시 신화교주.’
전력이 아니라고는 하나 혈왕환신술을 이리 쉽게 깨 버리다니.
‘마공이 아니기에 환신술의 영향을 그나마 덜 받는 곳이 신화교다. 그중 교주라면, 지금의 환신술로는 상대하기가 힘들어.’
혈존대사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스쳤다.
‘그래, 내 힘만으로는 부족하지.’
콰앙!!
기천웅의 등 뒤에 내려선 천화룡이 양손 가득 뇌전을 피워 올렸다.
파지지지직!!
사방 천지를 누비는 마계의 뇌광이었다. 지옥공을 뜯어고쳐 인간의 몸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낸 광혈교 최강, 최악의 마공 쌍룡광세마공의 뇌룡강재(雷龍降災)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제아무리 기천웅이라도 이 힘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파파팡!
무게 없는 불꽃처럼 빠르게 움직인 기천웅이 천화룡의 측면에서 열화신장 일격을 뿜어냈다.
콰아아앙!! 파지지직!!
일찍이 본 적 없는 충돌이다.
거대한 화염과 눈이 멀 듯한 벼락이 부딪히자, 산산이 분쇄된 화염과 뇌전 조각들이 반경 이십여 장 범위를 휩쓸었다.
기천웅이 버럭 소리쳤다.
“나서지 마라, 소교주!”
“미쳤는가, 기천웅.”
천화룡의 목소리는 나른함과 분노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신화를 배신하고 대륙 놈들에게 들러붙은 것만으로도 열 번은 죽어 마땅한 죄다. 얌전히 물러나도록 해.”
오만함이 절로 느껴지는 말이었다.
나이 차이만 해도 삼십 년이 넘을 터. 그러나 천화룡의 기도는 이미 대종사의 그것이라, 하대를 하는데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기천웅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꼬마 놈이.”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빛살이 되었다.
후욱! 콰아앙!
무지막지한 몸통 박치기였다. 전신에 화기를 가득 채워 돌진하는 것이 전부인데도, 천화룡은 무려 십여 장이나 밀려 나가야만 했다.
화르르륵!
천화룡을 날려 버림과 동시에 우장을 휘둘러 혈존대사를 향해 장력을 쏘아 냈다. 공격과 공격 사이의 시간이 그야말로 무(無)에 가까웠다.
철썩! 푸화아아악!
치솟은 용암의 방패가 열화신장을 막아 주었다.
기천웅의 눈이 번뜩였다.
‘막는다고? 이걸?’
환술은 환술일 뿐이다. 내가 그 환술에 완벽히 당하지 않는 한, 환영으로 공격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데도 혈존대사는 열화신장을 막았다. 혈교 무학에 정통한 기천웅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부아아아아앙!!
충격의 연속이었다.
무너진 땅, 철썩이는 용암 위로 이제는 거대한 회오리까지 생겨났다.
콰르르릉!!
수천 개의 돌멩이가 허공에 떠올랐다.
지상에서 솟구치는 회오리와 하늘에서 내려오는 회오리가 합쳐지며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사방 천지를 휘감는 회오리가 순식간에 분열하며 기천웅의 중심을 마구 흔들었다.
천재지변이 따로 없었다. 제아무리 환술이라도 이런 것이 가능하다니, 정녕 믿을 수 없는 술법이었다.
‘저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기천웅은 침착했다.
분노와 살기가 들끓었지만, 오랜 경험으로 인해 지금은 침착해야만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저기에서부터 마기가 움직이고 있다. 역시나 중심은 혈존대사야. 그리고…….’
쉬익! 콰앙!
벼락처럼 날아온 뇌광이 기천웅의 몸을 뒤흔들었다.
촤르르륵!
퍼져 나간 벼락이 용암과 대지에 스며들었다. 스며든 뇌기는 순식간에 마기로 전환되며 혈존대사의 술력을 상승시키고 있었다.
어지간한 마기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혈존대사에게 부족한 것은 고차원적인 마기였고, 천위룡만은 못할지언정 천화룡의 마기 역시 인세에 드문 밀도를 지녔다.
무공과 술법의 합작. 같은 마기를 근원으로 하는 공부이기에 조합이 무척이나 좋다.
‘안 되겠군.’
퍼어어어엉!
환술의 영역에서 벗어난 기천웅.
‘오감을 넘어 육감까지도 혼동시키는 최고의 술법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깨는 게 쉽지 않아.’
와중에 천화룡의 공격까지 막아야만 한다. 일대일 겨룸이라면 무서울 게 없지만, 혈존의 환술까지 감당하려면 상단전의 힘을 과하게 써야 한다.
쓸 때는 쓰더라도 이런 식으로 낭비할 수는 없었다.
물러난 기천웅이 단숨에 흑검혈마를 향해 질주했다.
퍼어어엉!
폭음을 내며 질주하는 화신(火神).
하은교의 탄금천녀수와 탄금지를 튕겨 내던 흑검혈마는, 순간 온몸의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무서운 열기를 느꼈다.
번쩍!!
하은교의 귀를 스치고 쏘아진 화광(火光)이 흑검혈마의 소매를 뚫었다.
치이이익!
뚫린 소매가 순식간에 확! 하고 불타올랐다.
기겁한 흑검혈마가 거리를 벌리며 마기로 화기를 짓눌렀다.
화아악!
소매를 넘어 팔뚝까지 태워 버릴 것 같던 열기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하지만 이미 팔뚝과 손목이 화상으로 붉게 뒤덮였다. 혈왕환신술이나 쌍룡광세마공 정도의 절학이 아닌 이상, 기천웅의 열양공을 감당할 만한 고수는 천하에 드물었다.
“이 배신자 놈이!!”
퍼엉!!
선수 교체다.
단숨에 흑검혈마를 몰아치는 기천웅 뒤로, 어느새 금현을 튕겨 음공 경파를 발하는 하은교가 천화룡의 흉부를 노렸다.
콰앙!
빛이 산란하고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그 순간, 혈존대사의 혈왕환신술이 하은교를 향해 짓쳐 들었다.
“죽어라, 계집.”
하은교가 차갑게 웃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우우우웅!!
허공에 세운 진기의 방패 위로 일곱 개의 금현이 걸렸다.
하은교의 손이 거침없이 금줄을 튕겼다.
쩌저저저저저정!!
혈존대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화제무진기의 힘을 담은 무형의 음파가 환술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이 내게 있어 가장 대적하기 쉬운 자들이 바로 그대와 같은 환술가들이지.”
퍼어어엉!
천화룡의 뇌광을 피해 낸 하은교가 혈존대사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하은교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상대를 잘못 골랐구나, 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