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54)
흑백무제 1259화(1254/1255)
1259화. 전면전(全面戰) (3)
쉬이익!
화살을 쏘아 내듯 찔러 들어가는 검격은 경쾌하면서도 사나웠다.
일점의 자격(刺擊). 훈련된 검사가 아니더라도 구사할 수 있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신모의 검은 단순함 이상을 보여 주었다.
후우우웅.
뻗어 낸 검 끝으로 바닥에 깔린 낙엽이 올라와 회전했다.
동작은 단순했지만 검결을 따라 구사하는 내공 발경의 수준이 대단했다. 투로를 풀어 내기도 전에 상대를 옭아매는 방식, 어지간한 내공술로는 상상도 못 할 섬세함이었다.
“……나쁘진 않은데.”
검을 회수한 신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좀 아쉽군. 한 계단, 딱 한 계단만 올라가면 또 다른 성취를 이룰 수 있을 듯한데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감이 안 와.”
중얼거리듯 말하는 신모의 모습은 마치 형체가 없는 바람과도 같았다.
과거 연씨 형제들과 후기지수 회합에 들렀을 때와는 눈빛과 몸, 기도까지 전부 달라졌다.
지난 몇 년간 구도자처럼 검에 인생을 묻었던 그였다. 화식(火食)을 멀리하고 벽곡과 맑은 물로만 지탱한 그의 몸은 지독하게 말랐으되, 천지의 기운을 한껏 받아들여 신체 말단부까지 신묘한 진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무종을 넘어선 검법, 초절정의 영역에 도달한 벽산연가 창응대주(蒼鷹隊主)였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딜 가도 부끄럽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겠지.’
신모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주님께서는 잘 계시려나.’
연위에게선 달에 한 번 연락이 왔다.
연가는 규모가 작지만 그만큼 서로 간의 인연이 끈끈했다. 오죽하면 혈육도 아닌 사람들에게 가문의 대소사를 맡길 지경이겠는가.
실제로 창응대주 신모를 비롯, 가내 여러 사람들은 철저히 본인 일에 열중했다. 새로 온 총관부터 기존 검사들과 하인들까지, 모두가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냈다.
충성과 자애로 얽힌 인연.
세가 작은 것은 평생토록 서로를 배신하지 않을 강철 같은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었을까. 지금의 연가는 그 어떤 술수와 지략으로도 깨지지 않을 단단한 바위와 같았다.
‘조만간 들르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군.’
연위를 떠올리자 자연스레 연씨 형제들도 떠올랐다.
‘대공자님, 이공자님.’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저 넓은 세상에 나가 벌써 그와 같은 명성을 얻으셨으니, 가문의 장래가 참으로 밝습니다.’
처음 연호정이 벽산호장이라는 별호로 불렸을 때, 연가 사람들 절반은 환호를 질렀고 절반은 반신반의했다.
이후 최연소로 무극에 오른 것도 모자라 패왕이란 별호가 흑백무제라는 별호로 바뀌었을 때, 연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대공자의 변화를 인정했다.
와중에 연가의 명성 또한 하늘까지 치솟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정작 가문에 남은 무사들은 철저하게 수양을 쌓았다. 대공자인 연호정에 이어 가주인 연위도 무극에 올랐고, 심지어 이공자 연지평 역시 무종을 넘어섰다 하니 자연스레 자부심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커진 자부심은 언제나 자만으로 연결되는 법. 총관부터 전투 부대 수장들은 휘하 검사들을 더욱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덕분에 연가의 전력은 몇 년 만에 크게 성장했다.
하늘을 보며 연가의 혈족들을 떠올리던 신모의 얼굴이 이내 굳어졌다.
“괜찮으려나.”
가문을 정비하는 데에 집중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연가는 육대세가의 일익이었다. 그들 나름대로 정보력이 있었고, 심지어 개방에서도 연가에는 무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덕분에 그들은 당금 중원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강소성에는 전화(戰禍)가 닥치지 않아 평화를 영위했지만, 당장 내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세상일 아니던가.
‘황궁이 강소성으로 옮겨졌다. 가주님도 황궁에 계시지. 나아가 황궁은 적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반드시 무너트려야 할 핵심 조직 중 하나일 것이다.’
즉, 조만간 강소성에도 큰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
‘혹시 모르니 상시 전투 준비를 하라 일러는 두었지만…….’
이 경지에 오르고 나니,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능력 하나가 자연스레 생겼다.
그건 바로 육감이었다.
‘불온한 공기다. 조만간 무슨 일이 터지긴 할 것 같군.’
그가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강소성의 앞날을 걱정할 때였다.
“신 대주님.”
“오셨는가.”
모습을 드러낸 자는 홍국인(紅菊仁)으로, 흑응대(黑鷹隊)의 대주였다.
이룬 경지는 신모보다 떨어지지만, 나이는 다섯이 더 젊었다. 재능만 보면 신모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바로 그였다.
“무슨 일인가?”
“비천검주(飛天劍主)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신모의 눈이 살짝 커졌다.
“검주에게서?”
비천검사(飛天劍士)들은 연가가 보유한 최강의 검사들로, 그들은 가문의 영역 밖에서 지냈다.
그들이 연마한 비천혈응검(飛天血鷹劍)은 구대문파 최고 비기에 준하는 절학이었고 그들 하나하나가 과거 연가에게 큰 빚을 진 세력에서 차출된, 충성심과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 비천검사들의 우두머리를 비천검주라 칭했으며, 그는 곧 연가 최강의 검사로 통했다.
“동해의 사정이 심상치가 않다고 합니다.”
“동해?”
“그렇습니다. 아시잖습니까? 비천검주가 이능(異能)을 타고났다는 거.”
신모가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비천검주가 이능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이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하지만 무종을 넘어 상단전을 크게 개화하고 난 뒤, 비천검주의 능력이 극단적으로 발달한 상단전의 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홍국인 역시 알고 있는 바일 것이다. 그 역시 무종을 넘었으니까. 그런데도 이능이라 말하는 건, 그만큼 비천검주의 능력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었다.
“동해 북부 쪽에서부터 알 수 없는 사이함을 느꼈다는데, 또 달리 보면 평소의 바다와 다를 게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군.”
“그렇습니다. 비천검주의 육감이 왔다 갔다 하는 거, 저는 본 적이 없어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신모가 툭 던지듯 물었다.
“강 대주는?”
“대원들과 개인 훈련 중입니다.”
비응대주 강윤.
과거 무능력한 조직 운용으로 논란이 되어 옥에 갇혔던 그도, 이제는 한 조직의 수장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뭐가 되었든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겠지. 그래도 비천검주의 말을 허투루 넘겨서도 안 될 테니, 가주님께 따로 연락을 취해야겠군.”
스르릉.
납검한 신모가 땅을 박찼다.
훅!
순식간에 야산을 내려간 그가 연가의 내원으로 향했다.
빠르면서도 지극히 자유롭다. 세상 어디라도 한달음에 날아갈 수 있는 매를 보는 듯했다.
그렇게 홍국인과 함께 내원에 들어선 신모는 곧장 왕전을 찾았다.
가주의 개인 호위이자 호군(護君)이라 불리는 자. 한 번은 무림맹까지 따라갔지만, 다시 돌아와 수련에 힘쓰는 숨겨진 초고수였다.
“어쩐 일이신가, 신 대주.”
“가주님께 연락을 취해야겠습니다.”
신모는 비천검주의 말을 전했다.
왕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어떤 상황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이렇듯, 연가의 무사들은 언제나 차분함을 유지했다. 가주와 공자들이 없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끈끈한 신뢰로 버텨 온 그들은, 실로 강소의 패자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황궁에 계신 가주님께 지급으로 연락을 보냈네. 곧 답신을 주실 걸세.”
“알겠습니다.”
“그리고…….”
왕전이 저 멀리 동쪽을 바라보았다.
“비천검주에게 전하게. 이만 가문으로 들어오라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가주가 없는 지금, 왕전은 연가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최고 수뇌부 중 하나였다.
“중원의 정세가 심상치 않아. 예전부터 가문에 들일 생각이었는데, 검주가 불길함을 느낄 정도라면 슬슬 하나로 뭉치는 게 좋겠지.”
“그럼, 그리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속에서 연가도 대비를 시작했다.
* * *
“흐음.”
태사의에 앉은 연호정은 뭔가 어색한 듯 이리저리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이내 일어나 버렸다.
“도무지 어색해서 안 되겠군.”
회귀 전 흑제성주 시절에도 태사의에는 잘 앉지 못했다. 성주의 위엄을 알릴 때가 아니고서야 이런 휘황찬란한 의자에 앉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태사의 아래, 창가 앞 다탁에 앉은 그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잘 들어오는 대전은 흑제성이라는 이름과 달리 무척이나 밝았다.
창밖을 보며, 연호정은 생각에 잠겼다.
‘제갈 군사님도, 소정광도 알고 있다면 황궁 측에서도 이미 알고 있겠지. 동해가 위험하다는 걸.’
현재 흑제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내일 당장이라도 출정할 수 있도록 전시 체제로 전환했고, 무사들의 사기를 독려하기 위해 소정광이 직접 조직 순방에 나섰다.
‘하북의 신화교는 무림맹이 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놈들은 우리와 황궁이 담당해야겠지.’
황궁의 전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지만, 적의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 한 흑제성도 전력을 다해 도와야만 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황궁 전력은 황제를 지키고 황궁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어지간하면 나서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할 수 있겠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본가도 나설 수밖에 없겠지.’
지금껏 수많은 문파와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했다.
그 화가 자신의 가문에까지 닥치지 않길 바랐지만, 상황이 이러한 이상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싸울 때는 싸워야 무가(武家)인 법. 연가가 사라지면 강소의 민초들도 불안에 떨 테니, 더더욱 이번 싸움에서 패배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때, 천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이 많아 보이십니다.”
호종대주 한중명의 목소리였다.
연호정이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본가와 황궁 쪽이니까. 게다가 정말로 전투가 벌어지면, 지금껏 변죽만 울리던 사음교가 제대로 된 병력을 투입했다는 뜻이야. 걱정이 아니 될 수가 없지.”
“성주님께서는 잘 헤쳐 나가실 겁니다.”
친하지는 않지만 말수가 적은 남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런 말까지 할 정도면, 정말 어지간히 걱정스러워 보인 모양이었다.
“암무단주는?”
“현재 동쪽의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답니다.”
“그렇군.”
“강서 상무 연합에서도 정보를 보냈다고 들었는데, 그들 역시 이번 전투에 가담할 생각인 듯합니다.”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가 없겠지. 운명이 걸린 전투임과 동시에, 전쟁은 큰 이문이 남는 장사야. 이럴 때 끼어들지 않으면 나중에 큰돈 못 벌지.”
“모용군이라는 자가 예전과 달리 많이 변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변하기야 했지만, 상무 연합은 무림과 상계가 힘을 합친 조직이야. 돈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을걸.”
“그렇군요.”
그때였다.
“암무단주가 입청을 바라옵니다.”
“들어와.”
끼이익!
대전의 문이 열리고 허백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호정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군, 허 단주.”
허백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입성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이제야 인사를 드리는 소신을 벌해 주십시오.”
“서로 바쁜 거 다 아는데 뭔 쓸데없는 소리를. 그래, 정보 취합은 다 끝냈나?”
“그렇습니다.”
고개를 든 허백의 얼굴에 미약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이틀 전, 산동 동쪽에서부터 수많은 군선(軍船)이 남하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역시 그렇군.”
연호정의 얼굴에 살기가 어렸다.
“사문향, 직접 오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