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57)
흑백무제 1257화(1252/1266)
1257화. 전면전(全面戰) (1)
“뭐라?!”
공공대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화교의 병력이 하북을 공격했다고!”
“그렇습니다.”
제갈문호의 표정은 침중함으로 굳어져 있었다.
“현재 하북 무림은 초토화가 되었으며, 그들의 군세가 산서까지 넘나들고 있습니다. 추정되는 병력은 이만이 넘는데, 모든 병력을 이끌고 온 듯 그들의 기세가 실로 범상치 않다고 합니다.”
“이런……!”
쾅!
공공대사의 주먹질에 탁자가 부서졌다.
지금껏 보여 준 적 없던 분노였다. 번뇌가 올까 두려워 무극에도 이르지 않으려 했던 그가 이 정도 반응을 보여 준 적은 없었다.
제갈문호가 빠르게 말했다.
“팽가와 개방의 발 빠른 대응으로 인해, 다행히도 섬멸된 문파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생에 끼친 해악은 추산이 불가능할 지경이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팽가의 전 병력이 나섰습니다.”
“해서?”
“팽가 전력의 육 할에 이르는 도객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익!”
우우우웅!
공공대사의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 기운이 명멸했다.
지난 전쟁에서도 죽은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침략은 지난 전쟁과는 그 양상이 달랐다.
하북에는 북경이 있고 북경에는 황궁이 있다. 비록 강소성 남경으로 황궁을 이전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하북의 황궁은 중원 사람들에게 있어 대륙의 상징과도 같았다.
한데 무도한 외적 놈들이 하북 무림을 초토화시키고 민초들까지 억압하고 있으니, 황궁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다.
역사의 보고, 정신의 지주와도 같은 장소가 적의 손에 박살이 났다. 누구라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갈문호는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맹주님, 상황이 급박하다고는 하나 진정하십시오. 맹주님께서 냉정해지지 못하시면 무림맹이 흔들립니다.”
“후우.”
내공을 조절하고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린 공공대사가 이내 눈을 감았다.
“내, 군사께 못난 모습을 보였소이다.”
“아닙니다. 저 역시 놈들이 공격할 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리도 빠를 줄은 몰랐습니다.”
일찍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제갈문호는 개방과 연수하여 하북과 산서 지방에 수많은 문파 병력을 보내기로 확정했다.
한데 그들이 북상하기도 전에 놈들이 남하하며 중원을 공격했다.
이것은 제갈문호의 대처가 늦은 게 아니었다. 적들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빨랐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내 비록 병법에 정통하지는 않았어도, 이쪽 사정을 알지 못하면서 전 병력을 보낸다는 게 얼마나 과격한 판단인지 모르지 않소. 저들에게도 생각이 있다면 그럴 수가 없었을 터인데 어찌!”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제갈문호의 눈이 번뜩였다.
“이 중원 땅에 아직 놈들의 세작이 남아 있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작이 있대도 반응이 지나치게 빠릅니다. 천하제일의 경공술을 익혔대도 대륙과 놈들의 본거지를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 속도는 말이 되질 않습니다.”
“하면 어떻게?!”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실 짚이는 바가 없진 않았다.
‘술법인가.’
과거 제갈문호는 광혈교의 기괴한 움직임을 해석하기 위해 수많은 술법가를 만나 자문을 구했던 적이 있었다.
술법의 세계는 무공의 세계보다 방대했다. 술법을 익힐 수 있는 재목들이 귀할 뿐, 제대로 연마한다면 상상도 못 할 이적(異蹟)을 발휘할 수 있다.
그중 제갈문호가 가장 눈여겨봤던 술법이 바로 통음술(通音術)이라는 것이었다.
영(靈)이 통하는 자들끼리 강력한 술력(術力)을 이용, 먼 거리를 격하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술법이 바로 통음술이었다.
실제로 그러한 정보 체계가 잡혀 있다면, 적들의 움직임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음술과 같은 술수는 무시무시한 술력을 필요로 한다고 들었다. 무인으로 치자면 거의 무극에 이를 만한 고수가 아니고서야 쓰기 힘든 술법이라 하였거늘.’
영통하여 먼 거리에 떨어진 상대의 기분이나 생사를 아는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것은 반선(半仙)의 능력이라 했다. 그 사람의 처지를 아는 것과 대화가 가능한 것은 천지 차이다.
‘절대 흔히 쓸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만약 삼교 놈들이 통음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면, 애초에 이 전쟁은 패배했다. 중원이 진즉 놈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
전쟁에서 속도는 생명과도 같다. 연락이 빠르고 기동성이 좋은 군대는 어떤 전쟁에서도 승기를 잡을 수 있는 법이다.
지금까지의 전쟁은 이쪽의 예측과 적들의 방심,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무리수 때문에 반격이 가능했다.
한데 느닷없이 지금, 놈들이 정예 부대 정도가 아니라 총공격에 가까운 반응을 했다면 통음술이라는 것을 썼을지도 모른다.
‘자주 쓸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안 썼을 리가 없을 터. 진정 통음술이라면, 놈들에게도 부담스러운 공부일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과거, 기우희가 말했던 화화술이라는 술법이 있었다.
성화분이라는 기물과 화로를 이용하여 상대에게 존재를 드러내는 놀라운 술수라 했다. 성화분 자체가 지극히 귀해서 자주 쓸 수 없다고 했지만, 신화교와 사음교가 그러한 술수로 연락을 주고받았다면 작금의 사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과중한 업무 때문이었다는 건 변명에 불과할 뿐이야. 그 부분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거늘.’
생각을 정리한 제갈문호가 빠르게 말했다.
“뭐가 되었든, 지금으로서는 후속 대처에 힘을 쓰고 전쟁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광혈교보다 저들의 전력이 적다는 것이지만, 몇 차례의 큰 싸움으로 중원의 힘도 많이 줄었습니다.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됩니다.”
공공대사의 눈에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한번 산사에서 나온 이들이 어찌 어지러운 정국을 무시하고 숭산으로 돌아가겠소이까. 내, 소림에 일러 북부로 향하라 명할 것이오.”
“소림의 출진은 천군만마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소림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평소라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전시라서 가능한 말이었다.
“팽가주가 하북으로 향했고, 북상시킬 문파들 역시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무당파에도 연락을 취하시오. 이번 싸움은 소림과 무당, 두 문파가 합세하여 적의 기세를 꺾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오.”
구파 중 많은 문파가 삼교에게 당했지만, 건재한 세력도 있다.
그중 소림과 무당은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로서, 전장에 나서면 중원 무림인들의 사기를 하늘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더하여, 종리 무상을 일차로 보낸 연후에 곧장 남궁 무상도 보낼 것이외다.”
현재 남궁승은 섬서 전쟁에서 타격을 입었던 상단전을 복구하는 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상단전 치료가 잘되어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며칠 내로 완치될 수 있을 것이다.
“안 됩니다.”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제갈문호가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종리 무상께서는 만인이 인정하는 천하제일의 도객이시지만, 집단전 등 전쟁 관련 부문에 있어서는 미숙한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성격이 화통하고 뒤가 없는 분이라, 적장과 싸우기 위해 무리해서 돌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광혈교의 병력을 막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광혈교는 막무가내로 쳐서 막을 수 있지만, 신화교 병력은 분명한 조직 체계를 이루고 있다.
“하면 어쩌자는 것이오?”
“처음부터 남궁 무상을 함께 보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남궁 무상께서는 지금…….”
“하여, 의선각주도 함께 보내야 합니다.”
공공대사의 눈이 흔들렸다.
“기 각주를 말이오?”
현재 남궁승의 상단전 치료는 기우희가 전담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전시인 지금 남궁승의 존재는 문파 하나에 필적한다. 그만한 고수는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만 하는바, 모든 업무를 뒤로하고 남궁승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남궁 무상은 세가를 이끌어 본 전력이 있으며 섬서 전쟁에서도 뛰어난 판단력으로 적을 섬멸하였습니다. 한 명의 장수라고 봤을 때, 본 맹에서 남궁 무상만 한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으음.”
잠시 고민한 공공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게 하십시다. 남궁 무상에게는 내가 직접 찾아가 말하겠소.”
“무림맹 병력 일만도 떼어서 보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듣기로 신화교는 열양공에 능한 만큼 화기(火器)를 쓰는 데에도 능숙하다 하였으니, 조금이라도 많은 병력을 투입해야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도록 합시다.”
“아마 흑제성 측에서도 하북의 상황을 읽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본 맹에서 어찌 대응할지는 모를 테니, 지금 당장 흑제성 측으로 연락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맹주전에서 빠져나온 제갈문호는 신법까지 써 가며 군사부로 돌아왔다.
정신없는 상황 속, 제갈문호는 애써 차분해지려 노력했다.
‘중원 무림과 일대 격전을 벌일 생각인 것이다. 움직임이 그러해.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제갈문호가 동쪽을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머나먼 동쪽, 철썩이는 파도와 불어오는 바람으로 숭상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물의 대지.
바다, 동해(東海)였다.
* * *
“…….”
서신을 읽는 당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이것들이 정녕…….”
“무슨 일이신가.”
당관이 기천웅에게 서신을 보여 주었다.
화아아악!
기천웅의 몸에서 무서운 기파가 뿜어져 나왔다.
“신화교가 하북을 점령했다고?!”
“그렇소.”
찰극평의 눈이 깊어졌다.
“이만이 넘는 병력이라면, 소교주가 교의 남은 병력을 모조리 이끌고 온 셈이오.”
“그렇겠지.”
훅.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기파를 수습한 기천웅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먼저 출발하겠네.”
당관은 기천웅을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막을 수도 없었다. 혹시 이 작자들이 신화교에 넘어가 힘을 보태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없진 않았지만, 그마저도 흘려보냈다.
‘싸가지, 네놈이 믿은 사람이니 끝까지 믿어 보겠다.’
기천웅이 빠르게 말했다.
“음제까지는 갈 필요 없을 것일세. 아니, 자네나 음제는 이곳에 있어야만 해. 신화교가 움직였다면 사음교도 움직였을 터, 놈들이 우회하여 감숙과 사천을 칠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시오. 나 역시 확실하지 않은 승부수를 던질 만큼 바보는 아니니까.”
“현재 하북에는 나와 함께 중원에 들어온 일천의 병력이 있다네. 내 명령 없이는 절대 놈들과 싸우지 말라 일러두었으니 남하했을 것이야.”
“무림맹에서도 병력을 보낸다 했으니, 무리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기천웅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무림맹…….’
일부러 찾아가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껄끄러움이 없진 않았다.
무림맹에는 기우희가 있다. 자신의 딸이 있다.
‘어쩌면, 영원토록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기천웅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대접 감사했네.”
“부디 건승을 기원하겠소.”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세.”
그 말을 끝으로 기천웅과 찰극평은 하북을 향해 나아갔다.
운명, 아니 숙명이 만들어 놓은 불의 전장이 그를 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