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61)
흑백무제 1261화(1256/1266)
1261화. 전면전(全面戰) (5)
“급보입니다! 현재 무림맹 병력이 하북에 도착, 팽가를 위시한 무림 병력과 함께 신화교와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래?”
가득상의 눈이 번뜩였다.
“무림맹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였군. 지원 물자까지 이송한 걸 생각하면 대단한 속도다.”
숱한 전투로 인해 무림맹의 부대 운용 능력도 한층 상승했다. 부대 운용의 핵심은 곧 속도, 싫든 좋든 전쟁으로 인해 무림맹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었다.
“흑제성에서는 따로 연락이 없었나?”
“아직 따로 보고된 바는 없습니다만, 열흘 전쯤 흑제성주가 입성했다고 하니 필시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연 성주.”
가득상은 연호정을 떠올렸다.
중원이 전란에 빠진 이때, 연호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홀로 광혈교의 병력을 막으려 들 정도였다.
천하 어떤 고수도 그렇게까지 무모하게 움직이진 않는다. 이건 무공 이전에 배포의 문제였다.
‘연 성주. 성주는 이제 홑몸이 아니오. 당신이 죽으면 흑제성도 오합지졸이 될 수 있소.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아마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리 불안한 것은, 연호정이 결정적일 때 머리보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전면전이외다. 절대 홀로 나서선 안 될 것이오.’
이내 가득상이 상념에서 깨려는 듯 헛기침을 하며 문서 몇 장을 들췄다.
“여기 있었군.”
“그게 뭡니까?”
“글쎄다.”
눈살을 찌푸리는 가득상의 얼굴에선 묘한 찝찝함이 묻어났다.
“이상할 게 없는데도 자꾸 불길해서 말이지.”
가득상이 들고 있는 문서들에는 강북 무림 너머, 저 멀리 초원과 평야를 아우르는 정보가 기재되어 있었다.
철곤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북부 상인들의 상행로와 표국의 이송로를 기재한 문건 아닙니까?”
“맞아.”
뭔가를 더 물어보려던 철곤개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사천에서의 일 이후, 가득상은 예전보다 한층 더 신중해졌다. 어지간해선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방도들을 움직였는데, 그 촘촘함이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제야말로 개방의 용두방주라 불릴 만한 모습을 보여 주는 그였다. 앉아서 천 리를 보는 정보 조직의 제왕다운 면모였다.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뭣하지만, 지금은 동해에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조심스러운 철곤개의 질문에 가득상은 꽤 단순하게 대답했다.
“벌어질 일은 어차피 벌어져. 이미 무림맹과 황궁은 물론 흑제성도 동해를 주시하고 있을 거다. 강소나 절강의 문제는 우리가 더 신경 쓴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냉혹하게 들리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이미 그쪽 지부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인즉, 방주인 가득상이 직접 관여해 봤자 사태가 더 나아질 것은 없었다.
가만히 문서들을 들여다보던 가득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이상하지 않나?”
“예? 뭐가 말입니까?”
“이 상인들 말이다.”
가득상의 눈이 깊어졌다.
“상인에게 있어 전쟁은 위험하면서도 인생 역전을 꿈꿀 수 있는 최대의 기회야. 전쟁이 터지고 조직 간의 암투가 활발해질수록 상인들의 움직임 역시 더욱 능동적이고 교묘해지기 마련이지.”
“물론 그렇지요.”
“전쟁터에서 상인이 이문을 남기는 방법은 중간에서 물자를 구해 와 파는 것이야. 그게 기본이지. 파는 대상은 당연히 정해진 게 없다. 중원의 상인이라 하여 중원의 승리만을 바라진 않는다는 얘기야.”
“기가 차는 소리입니다만, 사실이기도 하죠.”
“한데 이것 좀 봐라.”
가득상이 문서 하나를 흔들었다.
“현재 북부에서 제법 이름 있는 상회 중 삼 할 이상이 초원을 오가고 있어.”
“초원에 있는 여러 부족과 거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몇몇 사례에 그리 적혀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떤 물자를 이송하고 있느냐다.”
“예?”
가득상이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들었다. 철곤개가 들어오기 전, 섬서와 감숙 북쪽에서 활동하는 개방 첩보원들이 전한 서신이었다.
“각종 생필품을 시작으로 말과 북부식 건량을 이송하고 있었어. 그것도 대량으로.”
철곤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이런 상황에서 상인이라는 것들이 초원의 부족들에게 관심을 쓸까? 나 같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데.”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만, 초원의 부족들과 거래하는 상인들은 은근히 많습니다. 그들과 오랜 세월 거래를 해 왔으니, 중원이 이 지경이 되었더라도 신용을 위해서는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것도 봐.”
또 다른 문서가 나왔다. 몇 개의 문서를 놓고 그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는 건 물론, 각기 다른 정보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추론하는 것이 바로 정보 조직 수장의 자질이었다.
그리고 가득상은 개방의 수장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지난 몇 년간 초원 부족들과 거래했던 상회의 물품들을 조사해 봤지.”
“언제하셨습니까, 그거?”
“꽤 됐다. 혹시 몰라서 조사시켜 놨어. 초원의 부족도 외세라면 외세니까.”
“대단하십니다.”
“어쨌든, 참 여러 가지더군. 생필품도 있었고, 특히 비단옷에 환장하더구먼. 그럴 만도 하지. 옷을 모래로 씻는 사람들이니.”
가득상의 눈이 반짝였다.
“그중에서도 유독 많이 거래된 것이 바로 철제 병기야.”
“철제 병기…….”
“북방 만도(彎刀)를 질 좋은 철로 제련해서 가져다 파는 것은 물론 화살촉에 암기까지 거래했더군.”
“당연합니다. 초원에서 부족은 중원의 무림 문파나 마찬가지예요. 무공 수준이야 당연히 차이가 크겠지만, 유목 민족 특성상 부족끼리의 싸움은 하루도 멈출 날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일 년 전부터 병기는 가져다 팔지 않았어.”
“예?”
“이게 초원에도 평화가 찾아왔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상인들이 병기를 팔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일까?”
철곤개의 얼굴이 굳어졌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확 들었다.
“부족들이 통합된 겁니까?”
“일 년 전부터 팔지 않았다는 건, 통합 부족장이 족히 이 년 전에 탄생했다는 뜻과 같다.”
“허어.”
“거기부터가 이상해. 자네도 알잖아, 내가 새외 쪽 정보를 많이 팠다는 거.”
“알지요.”
“한데도 초원의 부족들이 통합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어. 통합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인간들인데 말이야.”
“……!”
“와중에 각종 생필품과 말, 그리고 건량을 사들이고 있지. 이것도 이상해. 초원의 군마(軍馬)는 중원에서 반쯤 영물 취급을 받는 군마를 제외하면 질적인 면에서 우위에 있어. 굳이 중원의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
“이 년, 길게 보면 삼 년 전에 초원의 부족들이 통합되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이건 사실로 보고 넘어가도 좋아.”
가득상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 말과 건량, 생필품 등을 사 재끼고 있을까? 그것도 이렇게나 대량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던 철곤개가 고개를 저었다.
“위화감이 들기는 합니다만, 솔직히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득상 역시 머리로는 철곤개의 말에 동의했다. 당장 전면전이 벌어진 판에 초원의 부족이 통합되었든 아니든 중요치 않다.
눈앞에 벼락이 떨어졌다면 또 다른 벼락이 떨어질 곳에 신경을 쓰는 게 옳을 터. 한데도 그는 초원의 움직임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이럴 때 연 성주가 있었더라면.’
정보 취합 능력에서야 숙련된 개방도들이 더 능할 수 있겠지만, 전시(戰時)에 국면을 바라보는 능력은 온 천하에 연호정을 따라올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가득상이 철곤개에게 명을 내렸다.
“흑제성에 지급으로 연락하면 며칠이나 걸릴까?”
“오정신응(汚精神鷹)이 두 마리 남았습니다. 녀석들을 보내면 이틀이면 당도할 겁니다.”
“좋아. 방금 내가 말한 내용, 빠짐없이 상세하게 적어서 흑제성주 앞으로 보내.”
“알겠습니다.”
“그리고 초원을 다녀온 상회 중에…… 아, 그래. 여기군. 북풍상회(北風商會)의 회주에게 연락해서 내가 한번 보잔다고 전해. 지금 당장.”
철곤개를 보낸 가득상이 한숨을 쉬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있어. 엄청나게 위험한 뭔가가.”
* * *
“성주님을 뵙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보지만 어색함은 하나도 없다.
용아철기단(龍牙鐵騎團)의 단주 황석태는 이전과 또 다른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그때도 선봉에 나서길 주저하지 않는 맹장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군을 통솔하는 대장군과 같은 위엄을 자랑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성주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수련을 열심히 한 모양이군. 보는 내가 다 놀랄 지경이야.”
응축된 기운이 또 한 번 응축되기를 반복하여, 이제는 정말 강철 같은 기파를 발산했다.
그 무력은 이미 오대신장급, 강량이나 진양을 넘어서 묵비에 준할 지경이었다. 부대원들을 훈련하는 것만으로도 바빴을 텐데, 그새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느껴지는 무력이 실로 엄청났다.
“성주님의 신위(神威)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당연히 나보단 아래여야지. 이래 봬도 성주잖아.”
황석태가 미소를 지었다.
반가움을 느끼는 것은 연호정만이 아니었다. 위치가 다르고 무공이 달라졌을 뿐, 황석태는 예전처럼 연호정을 대했다.
“중원에서 여러 싸움을 벌이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철기단을 끌고 가고 싶었습니다.”
“소 신장이 막았지?”
“그렇습니다. 창 부림까지 날 뻔했지요.”
“그래도 흑제성 제일의 군사인데 너무 그러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연호정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훈련 중이었을 텐데 따로 불러서 미안하네. 하지만 슬슬 바빠질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씀은……?”
“황궁, 정확히는 강소성으로 가야겠다.”
황석태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적입니까?”
“그래, 적이다.”
연호정의 안광도 황석태 못지않게 뜨거웠다.
“종남 전쟁 기억하나?”
“물론입니다.”
“그때 명극이라는 놈이 혈랑단이란 혈귀들을 이끌고 종남을 쳤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놈들이야.”
“……!!”
“그놈들이 강소성으로 쳐들어올 거다.”
훅!
황석태의 몸에서 위험천만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표정과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투지가 넘쳐나지만 헛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출격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나도 같이 갈 거야. 전력이 완성되면 내일이라도 출발할 생각이니, 단원들을 하루 동안 푹 쉬게 해 주게.”
황석태의 얼굴에 웃음이 깃들었다.
“오랜만이군요, 함께 나아가는 건.”
“너무 기뻐하지 마. 이번에는 일부가 아니라 총전력일 수도 있으니까.”
“상대가 누구라도, 얼마나 많더라도 저희는 두렵지 않습니다.”
“여전하군.”
그때였다.
“성주님!”
“들어와.”
대전의 문이 열리고 소정광이 뛰어 들어왔다.
“개방에서 급보가 왔습니다.”
연호정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리 주게.”
소정광이 건넨 서신에는 꽤 많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
묵묵히 내용을 확인하던 연호정은 이내 소정광에게 말했다.
“강서 상무 연합, 모용군에게 연락을 취해. 지금 당장 흑제성으로 오라고.”
“혹시 어떤 일 때문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연호정이 서신을 꽉 쥐었다.
“때지도 않은 굴뚝에 연기가 난다면 둘 중 하나지. 아무도 모르게 불을 땠거나 아니면…… 귀신의 소행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