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63)
흑백무제 1263화(1258/1266)
1263화. 전면전(全面戰) (7)
제갈아연이 물었다.
“어떤 면에서 외통수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알고도 물어보는 것인가?”
“여기 세 사람은 충분한 대화를 나눴습니다만,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오래는 아니어도 상무 연합의 행정을 맡으신 분께서 하는 말이라면, 저희의 판단에도 힘이 실리게 되겠지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은 모용군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초원의 땅은 거칠고 황량하지. 하지만 그런 곳에도 사람은 살아. 그것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많지만 살기는 팍팍하니, 자연스레 인재가 귀해지고 영역 다툼도 심해질 수밖에 없어. 부족들 간의 싸움이 수 대를 이어서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세.”
어디 그런 이유뿐이겠느냐마는, 실제로 초원 부족들 간의 싸움은 지독스럽게도 오래 지속되었다.
“물자도 부족한 만큼, 중원의 상인들과 거래를 하는 것은 당연해. 실제로 초원 부족들과의 상행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네.”
모용군이 지도 위, 초원을 가리켰다.
“북부 상인들은 물론 남부 상인 중에도 초원과 거래를 트는 세력이 있었네. 미쳤다고 중원을 가로질러 거기까지 가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돈을 좇는 상인들에게 이 거리는 답이 안 나올 정도의 먼 거리가 아니야.”
“그래서요?”
“중요한 건, 그 먼 거리에서 초원의 부족들과 거래하는 상인들이 무엇을 내놓는가지.”
소정광의 눈이 깊어졌다.
“무기, 그리고 갑옷.”
“잘 봤네. 그들 부족의 삶은 곧 투쟁이야. 승자는 모든 것을 거머쥐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네.”
모용군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 오랜 역사에서도 상행이 끊긴 사례가 몇 번 있지.”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 통합.”
“대화가 쉬워지는군. 맞네, 부족이 통합되면 그들은 더 이상 무기와 갑옷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네. 통합 이후 몇 년은 여전히 서로를 견제하지.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통치에 치중하기 마련이야. 철제 병기 거래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어.”
소정광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이 이해가 안 됩니다.”
“무엇이 말인가.”
“초원의 부족들은 이곳 중원과는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오히려 영토를 더 넓히기 위해 세력 확장을 꾀한다면 모를까,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세운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과거 초원의 부족들이 통합된 이후, 중원까지 치고 내려온 적이 있었다. 아니, 중원만이 아니라 저 멀리 동국(東國)은 물론 서방까지 원정을 간 일도 있었다.
모용군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 그런 때도 있었지. 하나 삼백 년, 아니 오백여 년 전부터 그들의 쟁투는 초원 안에서만 벌어졌네.”
“이유가 뭡니까?”
“무림.”
모용군이 검지로 중원 전역을 가리켰다.
“흩어졌다가도 하나로 뭉치고, 뭉쳤다가도 산산조각이 나는 무림의 세력들. 뭉쳤을 때는 뭉친 만큼 위험하고, 흩어졌을 때는 황궁에 몸을 의탁해 북부 정벌에 나섰어. 게다가 초원에는 무공을 익힌 자를 찾아보기 힘드네. 그들에게 있어 무림의 존재는 공포 그 자체야.”
“그렇군요.”
“서장 무림에서도 초원 부족들을 통합하여 무공을 전수, 세력을 넓히려는 시도가 있었다네. 그리되면 자연스레 청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초거대 세력이 탄생케 되지.”
“청해 무림이 그것을 좌시하지 않았겠습니다.”
“나아가 중원에서도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어. 그런 역사 때문에 초원의 부족들은 하나로 통합된 이후, 영토 확장보다는 내치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네.”
대를 이어 교육을 받은 것이다. 대륙으로는 진출하지 말라고, 그들은 악마 같은 이들이라고.
물론 흑도 사파의 악한들이나 파문을 당한 무사들이 초원으로 흘러 들어가 무공을 전수한 사례도 존재했다.
하지만 전수된 무공은 한 대를 이어 가지 못했다. 글자부터 생활 방식까지 모든 면에서 달랐기에 무공 전파 자체가 쉽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초원을 향한 진격은 한 세대에도 몇 번씩이나 존재해 왔다.
“어떻게 그들에 대해 그리 잘 아십니까?”
모용군이 피식 웃었다.
“초원은 아니지만, 우리도 저 멀리 요녕에서 들어온 가문이니까.”
대륙의 모용세가가 진정 대륙 밖에서 흘러 들어온 모용씨의 후예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모용세가 측에서 자손들에게 그리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모용군이 과거 초원과 요동 정세에 해박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시오.”
“계속하고 자시고 할 게 더 있겠나. 바깥으로 돌지 않은 초원은 자체적으로 병기를 개발하는 데에 집중하고 강력한 군벌을 만들었어.”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무너졌지.”
“백 년은커녕 이 대(二代)나 가면 다행이었지. 이번에도 같네. 언제 뿔뿔이 흩어질지 몰라.”
모용군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놈들이 철광 따위가 아니라 북부식 건량과 군마 등 생활 물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야.”
“…….”
“비단옷 정도라면, 아니 백번 양보해서 군마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세. 하지만 건량은 필요할 리가 없어. 그렇다고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할 거라고 보기에는 병기 거래가 뚝 끊어졌지.”
쿵!
모용군의 손이 지도를 뒤덮었다.
“전쟁을 위해서도, 통치를 위해서도 필요치 않은 것들을 이렇게 조달받는 이유는 단 하나.”
“…….”
“통합되었음에도 건량 없이는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는 뜻이라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하면 이제 자네가 말해 보게. 통합되어 막강한 세를 구축하게 된 부족 연맹이 어찌하여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게 되었을까?”
그 순간, 모두의 눈이 똑같은 빛을 발했다.
“삼교.”
모용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혈은 이번에 몰살을 당했다지? 신화교는 하북과 산서 지방을 휩쓸고 있어. 그렇다면 남은 것은 사음이야.”
소정광이 조심스레 말했다.
“아직 광혈의 잔존 세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신화교 측 병력이야 기천웅이 있으니 오판할 리가 없다.
하지만 광혈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초원 부족을 쥐고 휘두르는 놈들이 광혈인가, 사음인가 따지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모용군의 얼굴에 실로 오랜만에 살기가 어렸다.
“신화교를 지나치고 또 다른 새외 병력이 치고 내려올 수 있다는 거지.”
정확한 안목이었다.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소. 동해까지는 중원의 거미줄 같은 정보망과 책략가들의 안목으로 유추할 수 있지만, 초원의 부족들을 하인 삼아 남하하는 병력이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요.”
“그렇겠지.”
“진짜 뼈아픈 점은, 이 모든 게 예측의 영역일 뿐 확신할 만한 정보는 아직 부족하다는 거요.”
모용군의 눈이 깊어졌다.
“흑제성은 동해 쪽으로 병력을 집중할 생각이었나?”
“그렇소. 실제로 지금 용아철기대를 강소성으로 보냈소.”
“용아라…… 처음부터 살벌한 패를 보냈군.”
“사음 모두가 동해로 치고 들어온다면 용아만으로도 속수무책이오. 황군과 연가, 강소 무림 문파들이 있다지만 당연히 그들로도 힘들 것이오.”
“흑제성이 갈 수밖에 없지. 이해하네.”
턱을 쓰다듬던 모용군이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자네가 왜 나를 불렀는지 알겠네.”
연호정을 보는 모용군의 눈은 어느새 본래의 침착함을 되찾고 있었다.
“모용가가 나서 줬으면 하는가.”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아가 상무 연합도.”
“지금껏 일궈 놓은 것들이 산산이 무너질 수도 있겠군.”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진짜로 다 무너지겠지.”
연호정을 주시하던 모용군이 다시 지도로 눈을 돌렸다.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네. 사음교주가 온다면 육로보다는 해로야. 동해로 올 거란 말일세.”
“…….”
“왜? 자네 생각은 다른가?”
“솔직히…… 모르겠소.”
“놀랍군.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연호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처음에는 동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사음교의 돌발적인 행태를 보면 교주가 직접 오기나 할지도 모르겠소이다.”
은호마병은 사음교의 병력이었다. 그것도 무려 일만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그래도 광혈교나 신화교보다는 훨씬 더 병력 관리를 잘하고 있었다. 사음교의 고수들도 꽤 잡았고 부대 몇 곳도 박살을 내 놨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병력이 심하게 줄었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것은 기천웅의 말 때문이기도 했고, 연호정 스스로 겪은 과거 때문이기도 했다.
‘사음교의 병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 머릿수만 보면 다른 두 교를 압도할 지경이야.’
과거, 신화교가 황궁을 손에 넣었고 광혈교가 세작 침투와 지역 황폐화에 앞장을 섰다면, 사음교는 그 병력만으로 강호 무림을 상대했다.
사음교 하나가 강호 무림을 다 휩쓸어 버릴 정도로 막강했다는 것이다. 병력부터 고수진까지, 무림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낼 정도라면 그들의 전력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가질 않는다.
그 전력과 맞서 싸워 기어이 교주까지 죽여 놓은 것이 당시의 연호정과 모용군이었다.
그러나 남은 것은 피와 시체만이 가득한,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무너져 버린 대륙뿐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동해에 사음의 전 병력을 쏟아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놈들에게 그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신화와 초원 부족을 앞세운 놈들이 단순히 동해 하나만 찍고 온다고?’
초원 부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동해만을 확신했을 터.
‘만약 놈들이 북부에 전력을 더 집중해서 내려왔다면, 산서와 하북으로 파견한 무림맹 병력이 모조리 각개 격파될 것이다. 이후 파죽지세로 남하하며 소림을 시작으로 무림맹 본단까지 치고 내려오겠지.’
완전한 힘 싸움이다.
그리고 그 힘 싸움을 벌일 만큼 사음교는 강하다. 지금까지 삼교를 막으며 강호 무림의 전력은 크게 줄어든바, 사음교의 전진을 막을 세력이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고민거리 하나가 늘어났을 뿐인데 고민의 밀도는 네 배로 올라간다.
해상전이라면 끊임없는 병력 소모로 사음교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상과 육로 두 곳으로 병력을 나눈다면, 똘똘 뭉쳤을 때 큰 힘을 발휘하는 중원 병력의 이점이 크게 줄어든다.
‘이 부분은 나도 놓쳤군. 가 방주의 정보가 아니었다면 대륙의 반은 날아갔을 것이다.’
가만히 지도를 바라보던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별로 없소. 지금 당장 움직여야겠지.”
“어찌할 텐가.”
“모용세가와 상무 연합의 병력, 지금 이 시간 부로 섬서 북부에 배치해 주시오. 신화교 병력과의 교전은 최대한 피해야 할 것이오.”
“시간이 빠듯할 텐데.”
“본 성의 장강수로채에서 그대들을 도울 것이오. 혹시 몰라 연락을 취해 놨으니, 최단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오.”
모용군이 피식 웃었다.
“철두철미하군. 내가 허락하지 않았으면 어쩔 생각이었나?”
“두들겨 패서라도 보낼 생각이었소.”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모용은 모용이고 상무는 상무지. 사천에서도 병력을 지원받을 테니 불만은 없네만, 흑제성은 어찌할 것인가?”
“부대 팔 할을 동해로 보낼 것이오.”
연호정이 소정광을 바라보았다.
“남은 이 할 병력은 내가 직접 이끌고 북부로 가겠다.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