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64)
흑백무제 1264화(1259/1266)
1264화. 전면전(全面戰) (8)
“…….”
따로 가득상에게 정보를 받은 제갈문호의 머리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북부라…… 초원이라니.’
그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위협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의 공세는 대단할 게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삼교가 그들을 부리고 있다면 전투 후 민간 지역이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갈문호는 서신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이틀 만에 이 연락이 왔다. 이건 무척이나 중요한 정보인데도 이틀이 걸렸어. 오정신응을 쓰지 않았으니, 흑제성에 이 정보를 가장 빨리 보냈다는 뜻.’
무림맹의 병력 현황, 그리고 흑제성의 상황.
다각도로 고민해 본 제갈문호의 생각이 점차 정리되기 시작했다.
‘가 방주도 북부의 움직임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연 성주라면 곧장 대응했겠지. 즉, 흑제성의 병력 혹은 남부 무림의 병력을 북부로 올려 보낼 것이다. 하지만 총 전력을 퍼부을 수는 없어.’
제갈문호가 지도를 바라보았다.
‘동해…… 폐하 곁에는 권신 노선배님께서 계신다. 최악의 경우 폐하를 피신시키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 그렇다면 흑제성은 최대한의 병력을 동쪽으로 보내고 남은 병력을 북부로 보낼 확률이 높다.’
앉아서 천 리를 본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급하게 되었군.’
제갈문호는 곧장 공공대사를 찾아갔다.
잠시 후.
“……그렇군.”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다는 그 흔한 농담 하나 뱉을 수 없을 만큼 맹주전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우리도 이대로 가만히 두고만 봐서는 안 되지 않겠소?”
“조만간 연 성주에게서도 연락이 올 겁니다. 성주가 북부와 동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는 알 수 없으나, 절반 이상의 병력을 동해로 보낼 것은 자명합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폐하께서 계시니.”
“문제는 무림맹입니다. 아직 병력이 남아 있긴 하나, 사음이 북부에 투입한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칫 모든 병력을 퍼부었다가는 무림맹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공공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
“말씀하십시오, 맹주님.”
“현 시간부로 맹 내 주요 문서를 비롯한 최중요 물품들을 맹 외의 안가들로 옮기도록 하시오.”
“예?!”
제갈문호는 깜짝 놀랐다.
“맹주님, 그 말씀은……?”
“무림맹의 전 병력을 운용할 것이오.”
“맹주님! 안 됩니다!”
“어째서 그렇소?”
제갈문호의 얼굴에 다급함이 일었다.
“무림맹은 백도 정파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무림맹이 자리를 비운다는 것만으로도 백도 무림은 크나큰 타격을……!”
“그러니 그 작업은 최대한 은밀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오. 믿을 만한 사람들을 쓰시길 바라오.”
“그래도 안 됩니다. 무림맹은 천혜의 요새로, 만에 하나 적이 이곳까지 몰려온다 한들 일 할의 병력으로도 막을 수 있습니다!”
“놈들이 무림맹을 지나치면?”
“예?”
“놈들이 무림맹을 지나쳐 주변 일대를 초토화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어쩔 것이오?”
순간 제갈문호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공공대사의 생각은 지나치게 파격적이었다. 아닌 말로, 지금 이 순간부터 무림맹을 해체하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입니다, 맹주님.”
“하면 묻겠소. 최소 병력으로 맹을 지킨다고 하면,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의 수가 얼마나 되오?”
“……최소로 잡는다면, 적어도 이만에서 이만 오천에 이르는 대군을 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림맹 소속 무사의 숫자만 그 정도이니 실로 막강한 전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대사가 고개를 저었다.
“적이 얼마나 남하할지 모르는 판국에 그들을 보낸다면 이길 자신이 있소이까?”
“맹주님. 적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적은 이 상황에서 승패를 확언하는 것은…….”
“군사. 나는 지금 무림맹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오.”
“예?”
“무림맹은 연맹체이나 이미 백도 무림의 구심점이 되었소. 그리고 구심점이란, 건물이 사라지고 그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외다.”
제갈문호의 눈이 흔들렸다.
공공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소. 무림맹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것쯤은. 사령부란 본디 그런 것이지. 하나, 사천과 감숙, 섬서와 산서, 하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무림인이 적과 교전하다가 목숨을 잃었소이다.”
“……맹주님.”
“내 비록 전략에 능하지는 못하나, 이번 공격이 삼교 최후의 공격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소. 아니오?”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령부가 흔들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간 삼교가 저지른 만행과 책략을 보면, 결코 만만한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소. 아닌 말로 연 성주를 비롯한 수많은 열사들이 목숨을 바쳐 막지 않았다면 진즉 중원은 놈들의 세상이 되었을 것이오.”
“…….”
“그런 놈들이 진짜로 목숨을 건 전면전을 벌이려 하고 있소. 수십 년 동안 진행한 책략과 밑 작업을 모두 포기하고서 말이오.”
“맹주님…….”
“그들의 공세는 필시 상상을 초월할 터. 이판사판으로 덤비는 것도 아닐 터이니,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어이 눌러 버리겠다는 의도가 아니겠소이까?”
맞는 말이다.
삼교가 지금껏 세작을 보내고 지역을 황폐화하고 황궁을 쥐고 흔들었던 이유는 최대한 손해 없이 전쟁에서 이기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전쟁의 미학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이긴다 한들 서로가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는다면, 그것이 과연 승리다운 승리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맹주님.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저는 비단 무림맹이 구심점이기에 와해되어선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듣고 있소.”
“신화와 사음이 중원과 전면전을 벌인다고는 하나, 전쟁은 단순히 병력과 병력이 부딪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필시 놈들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첩보원을 동원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쪽 병력의 진행로와 병력 운용, 물자 이송, 자금 책정, 상행에 주요 인사 중 누가 죽고 살았는지를 전부 파악하려 들 것입니다.”
“…….”
“무림맹은 중원 한복판에 세워진 연맹체로, 단순히 백도 무림의 구심점인 것을 넘어 흑도 무림과의 연수에 지극히 이상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림맹의 모든 병력이 움직인다는 것은 자멸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실로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공공대사는 미소를 지었다.
“군사의 말씀이 실로 옳소.”
제갈문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족한 군사의 간언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것만은 막지 말아 주시오.”
“예?”
“최소 병력을 제외한 모든 고수를 내가 직접 이끌 것이오.”
“매, 맹주님!”
“내, 말해 둔 바 있을 것이오. 나는 맹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이제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모두에게 보여 줘야 할 때가 아니겠소?”
“어찌, 어찌 이러십니까.”
“생각 없이 그러겠다는 게 아니오. 차기 맹주를 이곳에 두고, 그와 함께 내정과 정보전을 맡아 주시오.”
제갈문호의 눈이 흔들렸다.
“맹주님…….”
“수많은 무림인이 사선에 나가 싸우고 있소. 나도 이제는 참을 수가 없소이다. 내가 지휘하진 못할지언정 무림맹주가 직접 전선에 와서 무인들을 독려하는 것만으로도 아군의 사기는 크게 올라갈 것이오.”
공공대사의 미소는 실로 부처의 그것과도 같았다.
“이름뿐인 맹주라도 맹주는 맹주, 꼭두각시 역할이나마 해야 직성이 풀리겠소.”
“…….”
“이래서 사부님께서는 나를 부족한 놈이라고 말씀하셨던 모양이오. 무극에 오르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소이다. 하지만…….”
공공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다행이라 생각하오. 부족하게도 이 사람을 믿고 따라 주었던 사람들과 함께 윤회의 길에 오를 수 있는 기회이니.”
그제야 제갈문호는 알 수 있었다. 무림맹 해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을 몰아쳤던 공공대사의 의도를.
공공대사는 진짜로 무림맹을 와해시킬 생각이 없었다. 아니, 실제로 그게 좋다면 서슴없이 결단을 내렸겠지만 진짜 의도는 따로 있었다.
맹주의 참전.
그 자신이 더 이상 무림맹에 머무르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싸우러 가기 위한 상황을 유도하고자 그만한 강수를 둔 것이다.
제갈문호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소 짓던 공공대사의 얼굴에 다시 엄기가 어렸다.
“최대한 빨리 출정할 수 있도록 무사들을 준비시켜 주시오. 나아가, 개방의 핵심 인물들 전원을 무림맹으로 파견해 정보전과 세작 색출에 도움을 달라 요청하시오.”
“……알겠습니다.”
“그간 부족한 사람을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소.”
제갈문호가 고개를 숙였다.
이번 전쟁에서 죽지 않더라도, 공공대사는 맹주직을 반납할 것이다.
“맹주님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공공대사가 다시 활짝 웃었다.
“자,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줍시다.”
* * *
“이런 게 왔습니다.”
당관이 하은교에게 개방의 서신을 보여 주었다.
하은교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원의 부족들이 왜……?”
강호 경험은 충만하지만 전쟁에 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는 그녀였다.
당관 역시 남들만큼 빼어난 전략안을 가지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상단전이, 지금껏 숱하게 치렀던 혈전의 경험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혈향을 맡고 있었다.
“아무래도 북쪽에서 또 다른 대군이 내려올 것 같습니다.”
“대군?!”
“아마 흑제성의 병력도 올라올 겁니다. 싸가지 그놈도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북부 일대가 난리 통이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하은교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사음교인가?”
“그럴 확률이 지극히 높습니다.”
“나도 참전하겠네.”
“알겠습니다.”
당관은 그 즉시 동생을 찾았다.
“해독약은 얼마나 만들었느냐?”
“해독약이라면 그…… 사음교 놈들이 쓰는 황풍독탄(荒風毒彈)에 대한 해독약 말입니까?”
“그래.”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사흘 전까지 총 일백 관을 쌓아 두었습니다.”
“무림맹에 보낸 것이 얼마나 되지?”
“시범적으로 열 관을 보냈습니다.”
포대로 총 일백 관이라면 그 양이 실로 대단하지만, 문제는 해독을 위해 얼마나 필요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일백 관에 이르는 해독약 전량을 섬서로 이동시킨다.”
“예?”
“나아가 본가의 극독과 금용암기를 해제토록 한다. 독을 뿌리고 암기를 던질 수 있는 모든 당가인은 내일 즉시 섬서로 향할 것이다.”
“혀, 형님?!”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가문은 네가 맡도록 해라.”
당윤은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다시 전쟁입니까?”
“그래, 북부 쪽에서 전쟁이 터질 모양이다. 산서와 하북은 아닐 테니 섬서나 감숙으로 치고 들어오겠지. 그중에서도 섬서일 확률이 지극히 높다.”
“그럼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보신 연후에…….”
“나는 이번 싸움에서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미 배웠다.”
“…….”
“또한, 사천 문파들에 연락하여 전원 감숙으로 향하라고 연락을 취해라.”
“형님! 그럼 사천이 텅 비게 됩니다!”
“안다.”
저 멀리 북쪽을 보는 당관의 눈이 깊어졌다.
“지금껏 우리 터전을 지키느라 같은 중원 사람들의 희생을 애써 무시해 왔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 없지 않겠느냐?”
“…….”
“걱정하지 마라. 사천은 멀쩡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