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66)
흑백무제 1266화(1261/1266)
1266화. 사신 강림(邪神降臨) (1)
퍼어어억!
소강되었던 전투가 재개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북의 신화교도들을 밀어 내며 산서까지 넘어온 종리백은 제자와 함께 신들린 칼질로 적도들을 격파하고 있었다.
‘힘들군.’
종리백의 눈이 깊어졌다.
‘쉬지도 않고 여기까지…… 어떻게든 축기를 하고는 있지만.’
화아아악!
전방에서 날아온 거대한 화염이 종리백의 시야를 가렸다.
만약 종리백이 연호정이었다면, 신화교가 새로운 무장(武將)들을 뽑았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무공이 예전 무장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것 또한.
번쩍!
소리 없이 내리꽂히는 패왕도 일격에 불꽃이 반으로 갈라졌다.
“크아악!”
불꽃을 가르고도 여력이 남은 도기는 단숨에 사호무장의 오른팔까지 잘라 내 버렸다.
진저리 나는 재생 능력을 지녔지만, 통증까지 무시하진 못한다.
종리백의 발이 무섭게 움직였다.
퍼어억!
삽시간에 머리통을 날린 직후 하늘 높이 뛰어올라 참악(斬岳)의 칼질을 뿌렸다.
콰콰쾅!
그야말로 무신(武神)이 따로 없다.
무극수 하나만으로도 전황이 바뀐다는 말을 종리백은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의 신들린 도법은 지친 와중에도 끝 간 데 모를 위력을 자아냈다.
하지만.
‘칼끝이 무뎌졌다.’
패왕도는 그 크기와 무게만 봐도 사람을 베는 게 아니라 파괴하는 병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패왕도는 날이 잘 선 신병이기라, 종리백 정도의 고수 손에 들리면 어떤 보검 못지않은 예리함을 뽐낸다.
그런데도 사호무장의 목은 거칠게 잘려 나갔다. 마치 둔탁한 도끼로 내려찍은 듯 절단면이 뭉개져 있었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칼끝까지 이어지지 않는 거야. 내가 이럴 때도 다 있군.’
파아아앙!
저 멀리 몇몇 무장들이 합심하여 열화신장을 뿜어냈다.
그 순간, 오구문이 벼락처럼 날아와 뇌락의 도초를 갈겼다.
콰아앙!
사위를 휩쓸듯 날아온 도기가 그 많은 장력을 몽땅 날려 버렸다.
종리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놈이 이렇게 믿음직한 줄도 몰랐고.’
오구문이 외쳤다.
“사부! 괜찮습니까!”
“지금 누구더러 괜찮냐고 묻는 거냐! 어서 옆을 틀어막아!”
쉬이익! 콰앙!
엄청난 속도로 질주한 종리백이 무자비한 강공으로 무장 셋을 날려 버렸다.
날려 버리기만 했을 뿐, 누구 하나 죽이진 못했다. 돌진까지는 좋았는데 도법을 구사하는 순간 흐르는 기가 덜컥 끊어졌기 때문이다.
“후우!”
숨을 몰아쉬면서 애써 기를 끌어모았다. 다행히 무극에 이른 육체는 풍부한 자연기를 담아내기 최적의 그릇이었지만, 그간 소모한 내공이 바다처럼 깊어서 예전과 같은 힘이 나오질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게지.’
남궁승은 병력을 지휘하며 나서야 할 때만 나섰지만, 종리백은 선봉에서 쉴 새도 없이 칼질을 해야 했다.
그것도 무려 나흘을 내리 움직였다. 전투가 잠시 끊어졌을 때는 번을 서거나 제자를 가르쳤으며, 전투가 벌어지면 또 선봉에서 칼을 휘둘렀다.
무극수가 아니라 무극수 할애비가 와도 지쳐서 투덜거릴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제기랄.’
가슴이 욱신거렸다.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노래졌다. 재차 중단전의 내기를 뿜어 화기를 억눌렀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이었다.
‘그나마 건진 건 놈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는 거지.’
그때, 오구문이 종리백에게로 다가왔다.
“사부!”
“이놈아! 그쪽 틀어막으라니까!”
“도망치는데 굳이 따라갈 필요 없잖습니까.”
종리백이 저 멀리 왼쪽을 바라보았다.
오구문의 말이 맞았다. 승냥이처럼 치고 들어왔던 신화교 병력이 어느 틈에 뒤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 정도였나.’
오구문보다도 먼저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 정도 감각을 지닌 고수라야 무극수라 불릴 수 있다.
한데도 알지 못했다. 진기 소모가 막대해서 기감이 줄고 집중력까지 저하된 탓이었다.
“제가 호법을 설 테니까 어서 운기를 하십시오.”
“이놈아, 너나 해라.”
“고집부리지 말고 제 말 들으십시오. 지금 사부 호흡이 얼마나 거친지 아십니까?”
호흡이 거칠었던가?
스스로에게 집중해 보니, 과연 그러했다. 무극수 정도의 내가고수가 호흡이 흐트러졌다는 건 내공을 있는 대로 쥐어짰다는 방증이었다.
“후우.”
털썩 주저앉은 종리백이 패왕도를 땅에 꽂았다.
“왜 운기 안 하십니까?”
“운기할 시간에 체력 회복부터 하겠다.”
실제로 운기에 집중하면 더 많은 공력을 취할 수 있겠지만, 집중하느라 소모되는 정신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차라리 육체를 푹 쉬게 놔두고 몸이 알아서 축기를 하도록 방관하는 게 나았다. 지친 와중에도 종리백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다.
“빌어먹을 놈들. 잡았다 싶으면 빠지고, 잡았다 싶으면 빠지고 난리를 치네요.”
“그게 전략 전술이라는 거겠지. 기본 전술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런 식으로 싸워 보니 머리로 아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겠다.”
그때, 남궁승이 곁에 다가왔다.
“괜찮으시오?”
“괜찮소.”
“안 괜찮아 보이오만.”
종리백이 투덜거렸다.
“나보다 그쪽 머리통이나 걱정하시오. 상단전은 괜찮은 거요?”
남궁승이 미소를 지었다.
“천만다행으로 다 나았소이다. 자체 회복이 가능한 수준이오.”
“그건 다행이군.”
종리백은 대놓고 철퍼덕 누워 버렸다.
웃으며 종리백을 내려다보던 남궁승이 일순 얼굴을 굳혔다.
“종리 무상.”
“…….”
“당신 혹시?”
“됐소. 괜찮소.”
오구문의 눈이 번뜩였다.
“왜요? 어디 또 다친 데 있으십니까?”
“없다, 이놈아. 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병사들 관리나 해. 언제 또 싸울지 모르니까.”
“…….”
“얼른 안 가? 뒈질래?”
“알겠습니다.”
가기 전, 오구문은 남궁승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상이 있으면 이따 본인에게 알려 달라는 것이다.
오구문이 떠나자마자 남궁승이 종리백의 옆에 앉았다.
“언제였소?”
“…….”
“이보시오, 종리 무상.”
“걱정하지 마시오. 이번 전쟁까지는 날뛸 수 있으니까.”
남궁승의 얼굴이 흐려졌다.
“얼핏 보기에도 위험하오. 자칫 죽을 수도 있소이다.”
종리백이 피식 웃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소. 그런 와중에 갈 때 다 된 늙은이 목숨 하나가 대수겠소.”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남궁승은 그걸 두고 맞다고 말할 수 없었다.
“종리 무상은 절대 이대로 무너져선 안 되오. 당분간 선두는 이 사람이 맡을 터이니, 의선각주에게 가서 치료를 받으시오.”
“…….”
“종리 무상.”
“알잖소? 늦었다는 거.”
남궁승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종리백이 투덜거렸다.
“지독한 놈들. 세상 흉악한 놈들. 내, 이 나이 먹고 그런 흉악한 화탄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소이다. 세상에, 사천당가도 그런 물건은 못 만들어 낼 거요.”
종리백이 말한 물건은 바로 신화교의 백린유탄(白燐榴彈)이었다.
벽력탄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일반 유탄도 엄청난 살상력을 지녔지만, 간간이 섞여 있는 백린유탄은 그 위험도가 차원을 달리했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새하얀 화염을 뿜어내는지 모르겠는데, 그 화염은 물이나 내공으로도 끌 수가 없었다. 오히려 물을 뿌리면 더 크게 일어나 상처 부위를 태워 버렸다.
결국 일부라도 맞으면 그 부위를 절단해야 하는데, 하필 종리백이 맞은 곳은 가슴이었다.
난전 중에 아군을 지키려다가 꽤 크게 당했지만, 대해(大海)와도 같은 공력으로 겨우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무극수의 내공으로도 그 화독(火毒)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차츰차츰 심맥과 폐장 쪽으로 이동하며 내상을 유발하는데, 지독하기가 오뉴월에 서리를 뿌리는 한 많은 여인의 분노를 보는 듯했다.
“처음에는 진짜 뒈지는 줄 알았소.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거든. 실제로 좀 끓었으려나?”
“…….”
“그래도 뭐, 아직 잘 살아 있으니까. 적어도 이번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날뛸 수 있을 것이오.”
“의선각주에게 보여나 줍시다. 방도가 있을지도 모르오.”
“방도는 없소. 심장과 폐장을 도려내는 수밖에는. 게다가 각주는 병사들을 돌보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잖소.”
“…….”
“그나마 다행 아니오? 당장은 안 죽으니까.”
기실 남궁승이 보기에도 살아 있는 것이 기적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건, 그의 상단전이 본래대로 돌아와 심안(心眼)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방증이리라.
“한창 바쁜 와중에 제자 놈한테 걱정 끼치기 싫소. 저놈, 나한테 두들겨 맞은 세월이 얼마인데 오죽 심성이 좋으면 아직도 사부를 위하겠소이까.”
“…….”
“절대 말하지 마시오.”
“……그리하리다.”
결국 이 완고한 노고수의 고집을, 남궁승은 꺾을 수가 없었다.
몇 번 숨을 몰아쉬던 종리백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신화교 병력이 저리 많은데 아직 교주 놈은 보이지도 않는구려. 뭐라더라, 화왕? 그런 놈들도 안 보이고.”
그게 제일 기가 막힌 부분이었다.
화왕급 고수가 없는데도 전투가 일방적으로 전개되질 않았다. 신화교의 화기(火器)가 규격 외였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화기가 날아올지 모르니 자연 하북 무림 병력과 무림맹 병력의 움직임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수일이 지나도록 계속된 이유였다.
“어찌 되었든 이만이 넘는 병력 중에 절반은 몰아냈소. 잔당을 소탕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외다.”
“잔당이라…… 잔당은 말 그대로 잔당이지. 저쪽 수뇌부 놈들까지 나와야 할 텐데.”
그때였다.
남궁승이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왜 그러시오?”
“…….”
“이보쇼.”
“기마요.”
“뭐?”
“기마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고 있소.”
종리백이 얼굴을 찡그렸다.
“기마라니? 이놈들, 불장난도 모자라 말까지 타고 다닌단 말이오?”
“신화교가 아니외다. 화기(火氣)는 아니고…….”
우우우우웅!!
창궁무애신공이 전력으로 달아오르며 남궁승의 삼단전을 모두 개방시켰다.
이내 남궁승의 눈이 부릅떠졌다.
“사기(邪氣)?!”
잠시 후.
저 멀리 북쪽의 대지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군대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 * *
푸화아악!
천효락의 대검술은 실로 무지막지했다.
위력은 막원의 백뢰창에 비할 수 없지만, 그의 대검술에는 막원에게서 볼 수 없는 호쾌함이 있었다.
짧지만 난전을 치르며 자연스레 몸에 붙은 독행마검(獨行魔劍)이었다. 신마림 최강의 검법이자 마도 제일의 검법 소리를 듣는 무공으로, 극성으로 연마하면 천하제일을 넘볼 수 있다는 절대무공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공은 대개 내공 소모가 많은 법.
천효락은 절묘한 강약 조절로 적의 기마와 기수를 베어 넘기며 체력과 내공을 극단적으로 아꼈다.
파악! 파악!
화향의 도법도 대단했다. 독행마검만은 못해도 무수한 실전 경험 덕에 적을 해치우는 속도는 천효락보다 더 빨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제기랄! 이게 대체 뭐야!”
푸화아악!
날아올라 기수의 목을 날리고 착지한 화향이 천효락의 등을 지키며 외쳤다.
“주인님! 이놈들, 사음교도가 아닌데요?!”
퍼버버버벅!!
난사하듯 용수창법을 구사한 막원이 외쳤다.
“이놈들에게서 사기가 느껴진다! 사음교 본대 이후에 치고 들어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누가 먼저 왔든 작살내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역시 그렇지요?!”
쾅!
장법으로 기마와 기수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린 막원.
그 믿을 수 없는 괴력 앞에, 사기에 홀린 기마병들의 얼굴에도 질린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막원은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가 보는 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기마병들 사이의 틈이었다.
펄럭!
먼지로 뒤덮인 깃발 하나가 바람을 일으키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깃발에는 황금빛 자수로 음황(陰荒)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사음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