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67)
흑백무제 1267화(1262/1266)
1267화. 사신 강림(邪神降臨) (2)
푸화악!
일검에 기마의 목과 병사의 몸통이 통째로 잘려 나갔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검첨에 모인 자하신공의 힘이 순식간에 꽃잎처럼 퍼져 나가 돌진하는 기마들의 이마를 뚫고 병사들의 흉골을 깨부쉈다.
섬세하지만 거칠다. 거칠지만 아름답다.
오직 살기만으로 제련된 서악의 검, 교검(巧劍)의 극치라는 화산의 매화검이 이렇게까지 파괴적으로 구현되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두려워할 것 없다! 힘으로 밀어붙여라!”
용선진인의 목소리는 지독한 살기로 가득했다. 검문의 도사가 아니라 사마외도를 따르는 마두의 음성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깃든 위엄만큼은 건재했다. 듣는 이들의 정신을 날 서게 할 화산 장문인의 일갈이었다.
퍼버버벅!
크고 작은 매화검진을 만든 화산파 검사들은 묵묵히 기마병들을 박살 냈다.
권장에 능한 자들의 손에서 터져 나오는 죽엽수(竹葉手),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 삼형권(三形拳)의 경력이 기마들을 날려 버리고,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간 매화의 검기가 기마병들의 목을 쳐 냈다.
용선진인과 달리 그 흔한 기합성 하나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장문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눈 가득 살기를 피워 올리며 적을 도살하는데, 산중 도사가 아닌 잔혹한 전사를 보는 듯했다.
“으아압!”
“키키키!”
기마병들은 기괴한 소리를 냈다.
언어가 다르다지만 이는 분명 그들만의 언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부러 내는 괴성이다. 적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짐승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화산파, 나아가 섬서 무림 병력들은 조금의 두려움도 느끼지 못했다.
기괴하다 한들 하나같이 마기로 제련된 기마를 타고 있던 은호마병보다 덜할 것이요, 거칠기로도 은호마병만 하겠는가.
이미 천고의 기마대와 목숨을 건 혈전을 벌여 본 그들 입장에서, 초원의 기마병들은 다소 위협적이긴 해도 상대하지 못할 만한 난적은 아니었다. 숫자는 은호마병을 넘어선다지만, 돌진력과 무위에 있어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어어엉!
화산파의 도사 두 명이 내지른 장력에 돌진하던 기마가 옆으로 튕겨 나가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순간, 이미 기마병의 목숨은 날아가 있었다. 스치듯 지나가던 검사 하나가 목젖을 갈라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무림인이 무서운 이유였다.
초원의 기마가 중원 대륙의 기마들보다 몸집이 작다지만, 그래도 기마인 이상 그 무게가 상당했다. 그만한 질량을 지닌 짐승이 돌진하며 자아내는 파괴력은 일류 고수라도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내공을 익힌 무림인들이 삼삼오오 합을 맞춰 상대하면 기마대를 너끈히 막아 낼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일류라면 막아 내는 걸 넘어 손쉽게 밀어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화산을 위시한 섬서 무림 병력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무작위로 돌진하는 기마병들을 마음껏 날려 버리고 있었다.
퍼퍼퍼펑! 콰앙!
갈수록 격정적으로 변하는 전투다.
‘이상하군.’
선두에서 장로들과 매화삼재진(梅花三才陣)을 펼치며 기마병들을 학살하던 용선진인은 문득,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놈들, 사기(邪氣)로 물들긴 했지만 사공을 익힌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내공술 자체를 익히지 않았다. 혹독한 초원에서의 전투로 단련된 신체와 기마의 이점 덕분에 상당한 위협은 되지만, 그것만 믿고 무턱대고 돌진하기에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결정적으로…….’
이놈들에게는 딱히 전략이라는 게 없어 보였다.
본디 전쟁이란 큰 그림을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어떻게 갈 것인지를 계획해야 정상이었다.
전략적 목표를 정한 후, 적들을 격파할 전술을 세운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의 기본 골자가 아니던가.
한데 이놈들은 뭔가가 달랐다.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그저 무림인들이 또 하나의 부족인 것처럼.
드넓은 초원에서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소수끼리 뭉쳐 여기저기 휘돌면서 돌진하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북방 초원식 기마 전술이었다.
당연히 무림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힘, 민첩성, 반응 속도, 거리를 무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기술 등등 무림인은 기마병들에게도 공포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퍼어어엉!
매화삼릉검으로 기마 세 기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용선진인은 곧장 광풍쾌검을 구사하며 지척에 다가온 기마병들을 찢어 죽였다.
푸화악!
갈라지는 살점, 뿜어져 나오는 선혈 사이로 저 멀리 먼지구름이 보였다.
‘깃발?!’
기마병들은 끝도 없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섬서 병력은 착실하게 기마병들을 막아 냈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좁은 길목에서 막는 게 아닌 이상 언제고 뚫리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저 기마병들 뒤, 수많은 깃발을 들고 진군하는 또 다른 세력에 있었다.
용선진인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사음교!’
드디어 등장이다.
너무 먼 거리라 당장 붙지는 않겠지만, 싸움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대치하게 될 것이다.
‘설마 기마병들을 보내 힘을 약화시킨 후 본대가 와서 쓸어 버린다는 전략이었던가.’
그런 것치고는 뭔가 엉성하다.
‘진짜로 힘을 약화시킬 목적이었다면 훨씬 더 조직적인 편제로 공격하게 했을 것이다.’
기마병들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돌격하는 데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이건 그냥 무의미한 학살에 불과하지 않은가.’
사아악.
기분 탓일까?
기마병들이 뿜는 사기가 왠지 더 짙어진 듯했다.
그 사기에 반응한 용선진인의 자하신공도, 장로들의 육합신공도, 제자들의 옥함신공, 태청심법도.
나아가 섬서 무림 병력이 제각기 익힌 내공심법 모두가 조금씩 조금씩 정심(正心)을 잃고 어둡게 물들어 가고 있다는 걸, 전투 중인 그들은 알 수 없었다.
* * *
‘이상해.’
콰르르릉!!
백뢰창의 위력은 확실히 화산파 도사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창안 목적 자체가 파괴와 살인에 특화된 독행마검과 열심장은 물론, 화향의 화천도(火天刀) 역시 기마병들을 신들린 듯 파괴하고 있었다.
‘물러나고 있다.’
막원의 시선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음교의 군대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다른 감각은 기마병들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정확히는 피하고 있어.’
막원이 선두에 서서 형성한 삼재진은 절대 뚫리지 않는 금성철벽과도 같았다.
사기에 홀린 기마병의 진군 정도로는 막을 수도, 무너트릴 수도 없다. 당연히 그들로서는 막원의 삼재진을 피해 후방을 노리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문제는 그 판단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비록 무림인만큼은 아니어도 이들 기마병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전투에 지극히 익숙하다는 건 기마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데도 이제야 삼재진을 피해 후방을 노린다?
‘뭔가가 이상해. 이놈들은 하나같이 박자를 놓치고 있어.’
백병신군이 진두지휘하는 삼재진을 피할 박자를 놓치고 기마 수백 기를 잃었다.
이후 후방으로 돌진하여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데, 언뜻 봐도 진형을 형성하지도 않는다.
와중에 사음교의 군대로 보이는 놈들의 진군 속도는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처음 깃발이 보였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쯤 삼백여 장 안쪽까지 들어왔어야 정상인데, 아직도 오 리(五里) 안쪽에서 지나치게 천천히 진군 중이었다.
‘기마병을 후미에 두고 몰아치는 것도 아니요, 이쪽 체력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엉성한 공격이다. 이건 마치…….’
막원의 눈이 흔들렸다.
‘그냥 자살 돌격을 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예전이었다면 난전 중이라 여기까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름의 전투 경험에서 냉정함을 얻은 그는, 적의 움직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범하지 않은 경우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적이 엉망이거나, 혹은 적이 의도한 것이거나.’
이 순간, 사음교의 병력 운용이 엉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속 편한 처사다.
‘대체 저들을 죽여서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콰아앙!
완성에 이른 중왕마공의 힘으로 쳐낸 열심장이 순식간에 기마 하나의 몸통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무공의 경지는 막원이 훨씬 높지만, 무학의 잔혹성은 열심장이 더 막강하다. 막원의 고뇌를 단박에 잊게 만들 만큼 잔혹하고도 강렬한 무공이었다.
“선배님, 뭔가 이상합니다.”
“그래, 네 녀석의 무공이 이상하다. 위력이 뭐가 그리 살벌하냐.”
농담처럼 건넨 말이건만, 천효락에게는 농담이 아닌 모양이었다.
“독행마검과 열심장의 위력이 강해졌습니다.”
“좋겠다, 이놈아!”
퍼어억!
백뢰창으로 또 하나의 기마병을 날려 버린 막원이 화향에게로 향하는 궁기병의 화살들을 쳐 냈다.
“그게 아닙니다. 저는 특별히 마공의 출력을 올린 게 아닌데도 위력이 강해지고 있어요.”
“뭐?”
그제야 막원도 천효락의 말에 실린 이상함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아아아악!
화향이 뿜어낸 화천도의 도기가 순식간에 기마 두 기를 찢어 버렸다.
장법과 도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위력은 대동소이했다. 오히려 열심장이 신마림 최고를 논하는 장법임을 생각한다면, 화향의 도법 위력은 이해 불가의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아까부터 느꼈던 건데…….”
번쩍! 번쩍!
가볍게 휘두른 독행마검의 마검기가 또다시 기마병들을 통째로 베고 지나갔다.
확실히 더 강력해진 검격이었다. 무학 자체의 수준을 제외한다면, 초절정고수와 무극수의 경계에 이른 힘이라 봐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일대의 사기가 지나치게 상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기가?!”
“예. 그리고 그 사기가 저희 마공에 스며드는 것 같군요.”
“……?!”
실제로 사기와 마기는 동류에 가깝지만, 마도학(魔道學)에 심취한 사람들은 사기도 결국 마기의 한 분파라고 본다.
즉, 사기는 마기에 종속된다. 극에 이르러 나름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사공이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사공이 마공 앞에 기를 펴지 못하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였다.
그렇다면 일대에 깔린 사기로 인해 두 사람의 무공 위력이 상승하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설마 나도?’
마공의 출력을 상승시킬 정도의 사기라면, 정공(正功)을 익힌 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지만 막원은 자신의 내공과 정신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럴 수도 있다. 상중하, 모든 단전이 완벽하게 호응하면서 철벽의 방어력을 자랑하니 사마외도의 기운은 침범치 못해.’
막원의 눈이 흔들렸다.
‘즉, 이와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들의 몸에는 사기가 침범한다는 뜻인가.’
그가 버럭 외쳤다.
“효락과 화향은 잠시 나를 방어해!”
화아아아악!
천무신병기가 불처럼 넘실거리며 후방으로 기감을 확장시켰다.
순간 막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럴 수가!’
왜 지금껏 알아채지 못했을까?
몸은 멀쩡해도 사방에 사기가 그득하니, 어느새 그에 익숙해져 몰랐던 것일까?
치이이이이익!
사방에서 회색빛 연기가 치솟는 것 같았다. 부서지고 토막 난 기마병들의 시체가 기괴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도검을 휘두르는 섬서 병력의 두 눈은 끔찍한 사기(邪氣)로 물들어 있었다.
막원이 외쳤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그리고 그 순간.
뿌우우우우!!
뿔 나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깃발들이 세찬 굉음을 일으켰다.
사음의 군대가 본격적인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