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68)
흑백무제 1268화(1263/1266)
1268화. 사신 강림(邪神降臨) (3)
병력과 함께 출발해서는 늦다.
연호정은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든든했던 친구 광룡부가 함께했으며, 두 다리는 언제나처럼 그의 무거운 숙명을 지탱해 주는 바람이 되었다.
모용세가와 상무 연합의 전력은 물론 흑제성의 전투 부대 세 개가 장강 수로의 쾌속선들과 함께 강을 건너 북상하는 와중.
이미 그는 호북을 넘어 섬서를 향해 방향을 틀고 있었다.
‘지치지 않는다.’
무극에 올라 신체가 완벽해지고 자연기가 끊임없이 신체에 활력을 준다.
이제 막 무극에 올랐을 때도 그는 지칠 줄을 몰랐다. 적과의 싸움에서 크게 다쳤거나 내공 소모가 극심할 때가 아니면,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못 할 속도로 대륙을 종횡하곤 했다.
숱한 전투와 깨달음으로 무공이 발전하여 황룡을 깨닫고, 광혈교주와의 싸움 덕에 한계 이상의 영역으로 올라선 지금.
연호정은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였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경지구나.’
흑암제 시절, 모용군과 당관 셋이서 사문향을 상대로 싸웠을 때.
두 사람이 나가떨어지고 홀로 사문향과 싸우며, 그는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빛의 경지를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바로 황룡을 코앞에 둔 경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황룡과는 달랐을 것이며, 비록 황룡을 깨닫기 전이라지만 당시 그의 무공은 충분히 천하제일을 다툴 만했다.
그때의 자신과 지금을 비교하면, 무극에 이르렀을 때부터 길이 갈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아니, 연가의 오대신공을 연마했을 때부터 큰 차이가 있었다. 지금껏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왔을 뿐.
‘이제는 알아. 나는 달라졌다.’
전생에 사문향을 죽이고 더 큰 깨달음을 얻었을지언정 지금과 같은 강함을 손에 넣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이다.
또 다른 전쟁터로 향하는 지금, 그곳에 일생일대의 난적인 사문향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지금.
바로 지금, 연호정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담백하게 식혀 또 한 번 스스로를 관조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깊어지는구나.’
저 야율대극이란 자와 싸우며 황룡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 한 번의 경험이 곧 재능을 뛰어넘는 무한의 길을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바람이다.’
황룡보법, 황룡신법.
이름이란 곧 무형을 유형으로 만드는 신비를 보여 준다. 그래서 무공이든 초식이든, 나아가 사람이든 명칭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연호정은 스스로가 그러한 경지에서조차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는, 진리라고 생각했던 의념(意念)의 상식을 탈피하고 있었다.
‘사물을 제대로 본다면 의심이 없고, 의심이 없으면 올곧게 믿을 수 있다. 올곧게 믿는다는 것은 제대로 관(觀)한다는 것이며, 제대로 관한다는 것은 곧 나와 사물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다.’
산과 강을 넘고 마을을 뛰어넘으며, 연호정의 깨달음은 깊어져만 갔다.
우우우우웅!
하나로 합쳐졌던 황룡신왕기가 다시 두 개로 분리되었다.
황룡과 신왕으로 분리되었던 기운은 다시 하나로 합쳐지며 믿을 수 없는 일체감을 선사했다.
분리와 합체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유동적인 변화였기에 위험했지만, 연호정은 그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영성을 지닌 진기가 그렇듯, 진기의 흐름을 신공에 맡긴 채로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한참.
휘이이이이잉!!
발을 딛고 세상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그는 높디높은 산꼭대기에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깨달음에 대자연의 기가 수백, 수천 번이나 몸을 보하다가 스러졌다.
왠지 모르게 몽롱한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인지되고 있었다.
연호정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그 당황스러운 마음도 조금씩 유연하게 해체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스승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천지간의 모든 합리를 깨달은 자는 완전하여 이승에 존재할 수 없다. 이승이란 온갖 불합리하고 불완전한 개체들이 쌓이고 쌓여 천리(天理)의 흐름 아래 유지되는 육(肉)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던가? 왜 지금껏 잊고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말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그의 관심이 강함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리라.
강해져서 복수하기 위해, 강해져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강해져서 온전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스승의 말이 이어졌다.
‘사람은 모두가 위대해질 가능성을 타고난다. 그러나, 위대해지지 못한다 하여 그 사람의 인생이 잘못된 것인가? 위대해진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을 기준으로 두는가?’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의 웃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육(肉)을 벗고 온전한 영(靈)이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이라, 합리를 깨달아 육을 벗는 것과 도적의 칼에 맞아 죽어 육을 벗는 것은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깨달으려 한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왜 그렇다고 보느냐?’
이번에도 연호정은 대답했다.
“그 또한 모르겠습니다.”
스승이 답했다.
‘사람도, 짐승도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들로 인해 생(生)이 완성되어 가기 때문이다. 하여, 사람은 살아간다. 개체의 종말이 정해졌다면, 오직 그것만이 중요하다면 모두가 다르게 태어날 이유가 없는바. 다름이란 다름이기에 소중하고, 다변하며, 또한 불변하는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은 도사들이나 할 법한 소리였다.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연호정은 그 말에서 스승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높아지고 깊어져라. 인간의 언어로는 삶을 정의하기 힘들다. 결국 이 사신무도 동란의 시기에 만들어진 수많은 삶의 염원과 같은 것, 역사의 한 장을 손에 넣은 너는 이 무공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하고 이 무공의 의미를 깨우쳐야만 한다.’
연호정은 또 답했다.
“이제는 압니다.”
스승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곧 삶을 아는 것. 더 이상 정체되지 마라. 멈춰선 안 돼. 깨달은 삶을 몸으로 증명키 위해, 너는 지금 이 순간도 쉬어선 안 된다.’
연호정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이 말이 진정 스승의 말인지, 아니면 자신의 무의식이 지어낸 말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건, 이 말이 지금의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멈추지 말고 달려라. 너의 생을 완성시켜 줄 사람들이 널 기다리고 있다.
번쩍!
연호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광채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용을 보는 듯했으며, 또한 황금빛 거대한 용권풍 같기도 했다.
화아아아악!!
모든 감각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몽롱함은 사라지고,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퍼져 나가는 황금빛 바람은 그의 기감을 한도 끝도 없이 넓혀 불온한 바람을 포착했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산서인가.”
그렇다.
달리고 또 달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깨달음의 늪 속으로 빠져들었던 지난 며칠.
본래라면 섬서를 향해 달렸어야 할 그가, 지금은 산서에 도달해 있었다.
길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무의식이, 황룡신왕공이 더 탐욕스럽고 위험한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주인을 인도한 것이다.
‘사기(邪氣)는 섬서가 더 짙다. 그런데도 난 이곳으로 왔어.’
무의식이 의식으로 전환되며 무한한 힘을 주었다.
확장되는 상단전의 신기(神氣)다. 연호정은 알 수 있었다. 상단전의 영력이 극한까지 발달되면 과거, 저 통천진인처럼 천기를 받아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내가 다룰 수 없는 힘이다. 그래도 괜찮아. 지금 이 힘이 나를 찾아왔다는 건 그럴 만하기 때문이다.’
황룡신왕기가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쳐지고 또 분리되었다.
합체와 분리가 반복될수록 황룡기는 막강해졌고 신왕기는 깊어졌다.
그와 같은 신비의 깨달음이, 잠시나마 자신의 영력을 반선(半仙)의 영역까지 끌어올렸을지도 모른다.
‘사천에서 또 다른 바람이 불고 있다. 당가주님, 그리고 음제 선배겠군. 매캐한 독 향이 아주 짙어. 이미 그 바람은 섬서 한복판에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믿을 수 없는 경지다.
보면 보이는 대로 느껴진다. 이보다 더 먼 지역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만 해도 신선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힘은, 연호정이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하는 순간 천천히 소실되기 시작했다.
섬서에 이는 독 향이, 천상의 음률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눈은 점점 밝아지는데 주변이 어두워지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나 홀로 천하를 구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사천이면 사천, 섬서면 섬서, 산서면 산서, 하북이면 하북.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쌓아 온 수많은 인연이 각지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그들을 믿어야만 했다. 믿으면서도 나아가야만 했다.
지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툭. 파라라라라락!!
가볍게 몸을 날리는 순간 무서운 속도로 하강한다.
연호정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콰아앙!!
힘차게 땅을 박차고 나아가니 어느새 수십 장 밖이다.
전설상의 축지성촌(縮地成寸), 그것도 극에 이른 속도였다. 땅을 접고 이동한다는 진짜 도술(道術)처럼 그의 질주는 인간의 상식, 무림인의 상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불이다.’
연호정의 황금빛 신안(神眼)에 두 줄기 거대한 불꽃이 비쳐 들었다.
‘북쪽, 그리고 서쪽.’
북쪽의 불은 흉포했고 서쪽의 불은 성스러웠다. 그 크기는 엇비슷했다.
‘기천웅 교주.’
그때였다.
화아아아악!
무게 없는 불처럼, 거의 연호정 못지않은 속도로 달려온 기천웅의 얼굴에 격정이 깃들었다.
“익숙한 기운이 사방 천지를 뒤덮는다 싶어 쫓아왔거늘, 역시 자네였나?!”
“오셨소?”
“놀랍군. 수백 리 밖에서도 자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저 멀리 찰극평이 달려오고 있었다. 기천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연호정이 다시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싸움터로 향하도록 합시다. 사기의 밀도는 섬서만 못하지만, 응축된 화력이 버젓이 살아 있소.”
“섬서를 타격하러 온 것이었나?”
“그랬소만, 그쪽으로는 흑제성의 병력만 보내기로 했소. 당가를 위시한 사천 병력과 음제 선배는 물론, 아마도 강량과 진양까지 섬서로 갔을 것이오.”
기천웅의 눈이 흔들렸다.
“그걸 어떻게……?”
“갑시다.”
파파파팡!!
가볍게 발을 구르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또 삼사십 장 밖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천웅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도대체가!?’
마지막에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단순히 신법이 빨라서가 아니라 풍기는 분위기와 뿜어내는 진기의 밀도가 그러했다.
‘한순간 대자연과 완전히 동화되기라도 한 것처럼…….’
순간적으로 분노와 회한마저 잊을 만큼 충격적인 광경.
그러나 기천웅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자네는 일천 교도들과 하북에서 대기하게! 위치는 이전에 말한 그곳이야!”
파아아앙!
대답도 듣지 않고 연호정의 뒤를 따르는 기천웅의 신법 역시 벼락을 방불케 했다.
뒤쫓아 오던 찰극평이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괴물들이 따로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