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69)
흑백무제 1269화(1264/1266)
1269화. 사신 강림(邪神降臨) (4)
“빌어먹을!”
콰앙!
몸 상태는 여전히 최악이지만 칼질의 파괴력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예리하게 베진 못해도 일격에 기마병 세 기를 부숴 날려 버리는 힘은 가히 역발산기개세라 할 만했다. 오히려 그래서 문제였다. 그 정도 힘을 발산하지 않고선 적을 쉽게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금방이라도 욕설이 튀어나올 것처럼 으르렁대지만, 종리백의 눈은 다급하게 사방을 훑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시오!”
번쩍!
번개처럼 종리백의 앞을 가로막으며 창궁검을 구사하는 남궁승의 얼굴은 냉엄함으로 가득했다.
“일군은 방진을 형성해라! 이군은 측방으로 몰아쳐! 적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
기가 막힌 건 그 많은 수의 적군 하나하나가 죄다 기마병이라는 것이다.
대저 기마병 하나는 보병 열의 전력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수가 많아질수록 전력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일천의 기병이 일만 보병과 전투력이 비슷하다면, 이천의 기병은 이만 보병 이상, 경우에 따라 삼만 보병의 전투력에도 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선 열 배 이하의 전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기마병들의 전력은 무림인으로서도 쉽게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고, 하물며 그 수가 일만을 웃돈다면 그간의 전투로 내공과 체력이 다량 소모된 무림맹 병력으로선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거도를 휘두르는 오구문의 입에서도 스승과 비슷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왜 자꾸 밀어붙여!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상대를 향한 조소라고 보기에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다급했다.
실제로 기마병들은 기괴한 소리를 질러 대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달려들었다. 초원 특유의 기병 전술을 구사하고는 있지만, 무림인들을 상대로는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방과 같았다. 그 짧은 사이 벌써 삼백이 넘는 기마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남궁승이 검을 들며 외쳤다.
“일군 좌익 삼향(三向), 일군 우익 오회(五廻)!”
어느새 기마병들의 전면을 막은 일군의 좌익이 세 갈래로 나뉘며 치고 빠지는 전술을 쓰기 시작했다.
무림인이기에 가능한 전술이다. 보병이지만 강한 내공력과 조직력으로 기마병조차 날려 버리는 그들의 대응은 진형까지 갖춰지며 놀라운 성과를 냈다.
우익 역시 마찬가지. 원진 다섯으로 나뉘다가 삼각뿔을 형성하고, 밀어붙이다가도 흩어지는 그들은 좌익에서 몰아붙이는 기마병들을 넉넉히 받아 주는 주머니가 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기마병들을 한데 묶어 분쇄해 버린다.
섬서 무림 병력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이었다. 남궁승의 지휘도 효과적이었지만, 진짜 대단한 건 무림맹원들의 철저하게 훈련된 움직임이었다.
‘대단한데.’
오구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까지 조직적이었나?’
신화교가 치고 빠지는 전략을 쓰는 통에 무림맹 병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체감하지 못했다. 과거 서장 무림 세력과 싸우러 갈 때도 마냥 뛰어나다고 생각만 했지, 진짜 대단한 건지는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비로소 알겠다. 무림맹원들은 정말 제대로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렇게 체력 소모가 심한 와중에도 이렇게나…… 정말 대단하군.’
그때였다.
“조심해!”
종리백의 외침에 그답지 않은 위기감이 가득했다.
“화탄이다!”
저 멀리서 콩알처럼 작은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기마병들과 무림맹원 병력이 한데 뒤섞인 곳을 향해서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빠졌던 신화교도들이 어느새 앞으로 나서서 또 화탄을 던지고 있었다.
도대체 저 많은 화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얼마나 더 구비하고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번쩍!
남궁승이 하늘을 날았다.
마치 한 마리 창룡이 날아오르는 듯 기가 막힌 신법으로 도약한 그가 무명검을 휘둘렀다.
우우우우우웅!!
무겁고 막강한 제왕검형이 아니었다.
창궁무애진기가 한껏 담긴 그의 검은 마치 무당태극검을 보는 듯 원을 그리며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무섭게 날아오던 화탄들이 회전하다가 저 멀리 기마병 후미를 향해 날아갔다.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셀 수 없는 기마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종리백의 얼굴에 감탄이 일었다.
‘중검의 대가가 저런 유검(柔劍)을…….’
물극필반이란 말은 무공 경지에서도 그 진리의 기지개를 켜는 법. 경지가 극에 이르면 반대되는 성질에도 통달하게 된다.
남궁승의 검이 그와 같았다. 제왕검형은 참혼교도 못지않은 중검인데도 불구하고 저처럼 부드러운 검결을 구사하는 것이다.
종리백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애초에 저런 식의 운용 자체를 떠올리지 않았다. 참혼교도가 갈 길은 그저 한없는 파괴와 절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궁승이 보여 준 한 수는 놀라움 그 자체였지만,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신화교도들이 좌측 측방에서 본격적으로 공세에 나선 까닭이었다.
콰릉!
소형 화포를 어깨에 메고 쏘아 대는데,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무림맹원들과 기마병들이 화포에 맞아 한데 쓰러졌다. 유탄처럼 폭발하진 않았지만, 사람의 몸뚱이를 깨부수는 위력 앞에선 내공 방패도 무소용이었다.
종리백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저것들이!”
번쩍!
내공을 쥐어짜 횡으로 일도를 휘두르니, 그 먼 거리를 단숨에 지우고 날아간 도풍이 신화교도 다섯의 몸뚱이를 두 동강 냈다.
떨어진 거리가 얼마인데 그와 같은 광경을 만들어 내는가. 남궁승은 위중한 상황에도 폭발적인 도초를 구사하는 종리백의 무리(武理)와 정신력에 존경심이 드는 것을 느꼈다.
콰릉! 콰르릉!
종리백의 일도가 지나간 곳으로 어느새 오구문이 짓쳐 들었다. 사제지간끼리는 말없이도 합이 맞는 법, 순간적으로 당황한 교도들 사이로 파고든 오구문이 무자비한 칼춤을 추었다.
후두두둑!
스승이 평생 쥐고 휘둘렀던 거도 아래 십여 명의 교도들이 목숨을 잃었다.
어깨에 메고 쏘아 낼 정도로 작은 화포들이 땅을 굴렀다. 오구문은 화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떻게 쏘는지도 모르거니와, 알아도 이런 병기를 써서 놈들을 죽이고 싶진 않았다.
적을 섬멸할 수단은 스승에게 받은 무공 하나면 족한 법.
오구문의 참혼교도가 불을 뿜었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
그 넓은 개활지를 넓게 채우며 다가오는 기마병들.
섬서의 싸움과는 전개가 달랐다. 섬서의 기마병들은 자살 돌격에 가까운 수를 썼지만, 이들은 넓게 진형을 형성하며 차근차근 압박해 오고 있었다.
피피피피피핑!!
심지어 화살까지 쏘아 낸다.
일순간 태양조차 가릴 만큼 수많은 화살이 허공을 뒤덮었다.
남궁승이 외쳤다.
“시체로 막아라!”
부우우웅! 퍼퍼퍼펑!
화살이 날아오기도 전에 제왕검기(帝王劍氣)를 쏘아 내 일각을 무너트리니, 파괴된 화살의 잔해가 대공 사격의 열을 차츰차츰 흐트러트린다.
그래도 쏘아 낸 화살이 워낙 많았다. 무림맹 좌익 병사들은 서둘러 기마의 시체 사이로 몸을 숨겼다.
퍼버버버버버벅!!
일류고수라도 그 많은 화살을 다 쳐 내는 건 불가능하다.
죽은 기마나 시체를 방패로 삼지 못한 이들 백여 명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개중에는 치명상을 피한 자들도 있었지만, 맞은 화살이 너무 많아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
남궁승의 두 눈에 분노가 어렸다.
피피피피피피핑!!
또다시 화살 세례가 날아들었다.
중원의 활보다 사정거리가 훨씬 긴 것 같았다. 삽시간에 하늘을 까맣게 지우는 화살들은 마치 거대한 황충 떼를 보는 듯했다.
“피해라!”
더는 막으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정작 피하라고 한 남궁승은 오구문과 함께 정면으로 질주했다.
티티티티팅!!
달려 나가는 두 사람을 향해 화살과 투창이 쏟아졌지만, 좌우를 오가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두 사람의 몸엔 화살 한 대 스치지 않았다.
기마병들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콰르르릉!!
분노한 제왕검에 기마 다섯 기가 육편이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번쩍!
참혼교도 삼격에 기마대 일각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극의 검제 남궁승, 스승의 뒤를 착실하게 따라가는 오구문.
두 고수의 용맹스러운 진격과 공격에 기마대는 삽시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그냥 두고 공세에 집중하기엔 아군의 타격이 너무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분노하여 기마병들을 학살하던 남궁승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파아악!
곧바로 몸을 회전해 수직으로 일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직선으로 날아온 단검엔 무시할 수 없는 내력이 실려 있었다.
일검에 쪼개졌지만, 기마병들의 틈과 틈을 노리고 던진 단검은 정확하게 남궁승을 향해 날아들었다. 암기술의 경지가 하늘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남궁승은 깨달았다.
‘무극!’
중원의 무극, 신화에서는 천화라 한다던가.
펑! 퍼퍼펑!
기마병 중앙을 돌파하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고수가 있었다. 놀랍게도 맨몸으로 기마들을 좌우로 쳐 내는데, 아군인데도 대열을 흩트리면서 직선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남궁승이 외쳤다.
“오구문! 뒤로 피하거라!”
쉬이이익! 콰앙!
힘을 다한 일권에 남궁승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 나갔다.
파바바바박!
밀려 나간 남궁승을 향해 화살 비가 쏟아져 내렸다.
충격이 심해서 순간적인 회피 기동이 불가능했다. 남궁승의 검이 저절로 솟구쳐 유검의 방패를 세웠다.
후우우웅! 티리링!
부드러운 검결 한 번에 쏘아진 화살들이 모두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리고 거대한 불기둥 하나가 날아왔다.
남궁승의 눈이 번뜩였다.
‘화기가 아니다. 열양공!’
불기둥을 쏘아 내는 열양공이다. 그것도 이 정도 밀도라면, 상대 역시 확실한 무극수였다.
쿵!
진각과 함께 전진한 남궁승이 세가 비전 천풍검(天風劍)과 천뢰검(天雷劍)을 연환으로 펼쳐 냈다.
퍼퍼퍼퍼펑! 파아앙!
다섯 번의 연환검으로 장력의 위력을 모두 분쇄하고 흐트러트린다.
피피피핑!
그러거나 말거나 기마병들은 다시 무림맹 병력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쪽에서 무극수가 튀어 나가니 상대 쪽에서도 천화의 고수가 튀어나왔다. 섬서 때와 달리 힘으로 밀고 들어가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공세였다.
남궁승이 외쳤다.
“모두 후퇴해라!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설마하니 무공 한 줌 익히지 않은 기마 군단으로 인해 물러나게 될 줄이야.
이게 전장이었다. 남궁승은 홀로 전황을 바꿀 만한 희대의 고수였지만, 아군이 무의미하게 죽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 정도 총력전에선 무공의 수위보다는 전술과 병기가 승패를 결정하는 법. 심지어 오랜 싸움에 지치기까지 한 무림맹 병력으로선 밀리는 게 당연했다.
‘빌어먹을! 역시 저놈들은!’
지금껏 무극수 하나 튀어나오지 않는 게 의아했는데,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었다.
화아아악!
급박한 상황이라 제구실을 못 하던 심안이 활짝 열리고, 창궁무애진기가 넘실거리며 오감을 넘어선 육감의 뒤를 받쳐 준다.
번쩍!
빛나던 남궁승의 두 눈에 큰 혼란이 깃들었다.
‘이런…….’
심안에 잡히는 천화의 고수들.
그 숫자가 무려 다섯이요, 그중 하나는 놀랍게도…….
‘엄청난 화력! 기의 밀도가 나보다 더 높다!’
그간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던 신화교의 새로운 수장.
불이 불을 잡아먹고 더 크고 거세지는 것처럼,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 스스로 왕좌를 차지한 반역의 화신(火神)이 마침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