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73)
흑백무제 1274화(1274/1280)
1274화. 사신 강림(邪神降臨) (9)
남궁승의 눈이 커졌다.
“연 성주!”
폭풍처럼 거세면서도 봄의 바람처럼 따스한 기파에 설마 싶었다.
하지만 이 목소리를 듣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당대 무림 최고의 기린아이자 폭풍의 핵인 흑도 연맹의 젊은 맹주, 연호정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내용은 남궁승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안 돼! 후퇴해야 하네!”
쿠르르릉!!
남은 무림맹 병력은 일천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진형을 형성하고 싸운다면 신화교도들을 상대로도 어떻게든 승부를 낼 수 있을 테지만, 이곳에는 일만에 달하는 기마 부대가 있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도 화살로 요격하면 무림맹 병력의 필패다. 게다가 저쪽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무극의 고수가 무려 셋이나 더 있지 않은가.
“연……!”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황룡신왕공이 완전히 개방되며 전장 전체에 연호정의 기파가 전해졌다.
남궁승의 눈이 흔들렸다.
‘이게 뭐지?’
머리가 꿍, 하고 묵직해지는 기분이었다. 큼직한 바위 하나가 뒷덜미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웠다.
폐장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호흡이 격해지는 듯했다. 심박수가 빠르게 높아지고, 검을 쥔 손에 점점 강한 힘이 서렸다.
우우웅! 우우우웅!
창궁무애신공이 주인의 변화에 화답하며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활화산과도 같은 내공을 끌어올렸다.
전황을 보고 적시 적소에 쓰고자 힘을 아꼈던 남궁승이다. 그 아끼고 아꼈던 모든 힘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개방되고 있었다.
‘이, 이것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현상이었다. 몸이, 내공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데도 동시에 본인은 그것을 바라고 있는 듯했다.
번쩍!
저 멀리서 달려오는 연호정의 황금빛 눈이 남궁승의 눈과 마주쳤다.
순간 남궁승은 등허리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진군…….’
저도 모르게 몸이 돌아갔다.
적을 향해 알아서 검을 겨누게 된다. 당장이라도 남궁가의 비전인 천뢰검(天雷劍)과 천풍검(天風劍), 고독일검(孤獨一劍),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제왕검형(帝王劍形) 등등 모든 절학을 쏟아붓고 싶어진다.
울컥! 울컥!
심장이 쥐어짜지는 듯했다.
실제로 피도 빨리 돌았지만, 그보다는 신중함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있던 무인의 호승심과 열기를 밖으로 밀어 내기 위한 움직임에 가까웠다.
남궁승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하아아압!”
쩌저저저저정!!
강력한 진기를 머금은 그의 음성은 음제 하은교의 음공과 같았다.
소림의 사자후 못지않은 그 함성에는 압도적인 전투 의지가 가득했다. 전장의 장수로서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진 모든 것을 풀어 내려는 전사로서의 함성이었다.
그 뜨거운 감정은 남궁승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더 강한 일도(一刀)로 철목후를 튕겨 낸 종리백은 사자처럼 울부짖었고, 스승이 걱정되어 칼을 휘두른 오구문은 사지 전체로 뻗어 나가는 힘에 온갖 기합을 지르며 신화교도들을 공격했다.
각자가 다른 영역에서 다른 뜻을 품고 다른 전투를 치렀다.
그런 그들이 순식간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적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었다.
후퇴 따위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이곳, 이 잔혹한 전장에서 적을 모조리 섬멸하여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무림맹 병력을 이끌고 돌진하는 연호정이 있었다.
“남궁 노선배과 오구문은 기마 부대 양익을 뚫고 들어가시오!”
한눈에 전황을 파악하는 능력.
황룡신왕공과는 무관한 전략가의 안목이었다. 이제 그는 전쟁에 관해선 천하제일의 안목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명령한 연호정은 그 즉시 종리백의 상태를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그의 의지도.
“종리 노선배! 적의 선봉장을 맡기겠소!”
그 선봉장이란 다름 아닌 철목후다.
종리백이 하얗게 웃으며 패왕도를 쳐들었다.
퍼퍼퍼펑!
지금껏 보여 준 적 없는 사기와 군기(軍氣)를 보여 준다.
함성 속에 진기가 실리고, 진기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적을 향해 엄청난 투지와 살기를 뿜어냈다. 단순한 정신력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기마 부대는 물론 신화교도들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무림맹 좌익은 신화교도들을 향한 종심 공격으로 전환해라! 우익은 남궁 노선배와 오구문의 뒤를 따라 기마 부대를 휩쓸어!”
느닷없이 사기 백배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군기의 폭발. 일반 병사들은 물론 무극수인 남궁승과 종리백까지도 홀린 듯 연호정의 말을 따라 적을 공격했다.
기마 부대의 장수로 보이는 누군가가 그들만의 언어로 화살을 날리라 외쳤다.
연호정의 좌수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티티티팅! 퍼버버버벅!
궁수들이 화살을 쏘아 냄과 동시에 기마 부대 중앙에서 피 보라가 터졌다.
종리백과 철목후의 어깨를 스치고 날아간 백룡부가 삽시간에 기마병 삼십여 기를 초토화시키고 장수의 상체를 박살 내 버린 것이다.
어검의 비술 따위가 아니었다. 그냥 광풍섬의 구결을 따라 발경을 실어 힘으로 던진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부대의 중앙이 확 뚫렸다.
하지만 날아온 화살은 아직도 많았다. 족히 삼백 대의 화살이 무림맹 병력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연호정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감히.”
쾅!
대지를 찍고 날아오른 연호정이 광룡부를 휘둘렀다.
어느새 광룡부는 교룡쇄와 연결되어 허공을 날았다.
부아아아아앙! 치리리리링!
회전 반경이 엄청났다.
그 무거운 광룡부가 원을 그리며 충격파를 일으키니, 곡선을 그리던 화살들이 제멋대로 부딪치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실력 이전에 병기의 쓰임 때문이었다.
교룡쇄처럼 늘어나는 쇠사슬도 없을 것이요, 광룡부 같은 중병을 쓰는 무림인도 흔치 않다. 그 두 가지 병기가 하나 되어 넓은 반경을 휩쓰니, 내공이 담기지 않은 화살 세례 따위는 삽시간에 쓸려 나가는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날아올라 화살 세례를 와해한 연호정은 그대로 신화교도들을 향해 하강했다.
콰아아앙!!
찍어 내리는 붕산세 일격에 신화교 일각이 와르르 무너졌다.
콰쾅! 쾅!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시킨 일격에 품에 지니고 있던 화기 몇 개가 알아서 터졌다.
그 폭발은 순식간에 진형 일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폭발에 당황한 신화교도들이 다시 뒤로 물러났지만, 그것은 오히려 아군에게 기회였다.
한 번 물러난 상대는 두 번도, 세 번도 물러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물러난 상대를 두 번, 세 번도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아군의 공격력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바.
“우아아아아!!”
“죽여라!!”
연호정의 명에 따라 움직이던 좌익군이 광기에 물들어 신화교도들을 덮쳤다.
치리리리링! 퍼버벅!
뜨거운 핏물이 허공을 수놓는다.
압도적인 고수의 출현, 남궁승은 아군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의 힘을 제약했지만 연호정은 정반대의 선택을 내놓았다.
연호정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길 수 있는데도 물러난 것은 적에게 끌려다녔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한 소모전은 신체보다 정신을 지치게 만드는 법, 그러한 정신적 피로가 너희의 전투력을 깎고 전의까지 꺾어 버린 것이다!”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사기가 올라 적을 공격하는 데에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호정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적이 원하던 바였다! 전황을 바꿀 만한 고수가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이 전투는 너희의 것이다! 화기나 기마 부대 따위가 너희를 어찌할 수는 없어! 너흰 이기러 온 것이지 패배를 당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제대로 듣지 못하더라도 그 말에 실린 의지는 모두의 가슴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무림맹 무사들의 얼굴에 서린 광기가 점점 진해졌다. 개중에는 저 기마병들보다도 더 기괴한 함성을 지르는 자들도 있었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토해 내듯 마구 함성을 지르며 공격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광신도를 보는 듯했다.
“적이 침공했다고 막으려 들지 마라! 중요한 건 이기는 것이다! 너희가 물러나면 너희 가족이 창칼을 들고 뛰쳐나와야 해! 목숨을 걸었으면 제대로 걸어! 막는 게 아니라 이겨서 잡아먹는 것이다!”
부아앙! 콰앙!
날아간 광룡부가 기마병 일곱 기를 박살 내고 돌아왔다.
“그게 바로 우리의 전쟁이다!”
지키기만 해서는 끝나지 않는다.
싸우고 이긴다. 이겨서 전진한다. 그런 마음으로 싸우지 않으면 내 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
연호정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리고 그 명확한 말은 안 그래도 사기가 충천한 아군 병력의 정신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우린 무조건 이길 것이다!”
“우와아아!!”
불길처럼 거세진 공격에 신화교와 기마 부대는 번번이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사기(士氣)란 전투력의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그러나 사기가 제대로 갖춰진 군대는 본래 역량의 두 배, 세 배의 성과를 내기도 하는 법이었다.
연호정은 그들의 사기를 북돋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장 사기를 올리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후다. 앞으로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싸울지가 중요한 것이다.
외세의 침공이 무서운 진짜 이유.
나는 물론 내 가족들까지 끔찍한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적을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을 잡아먹을 생각으로 싸워야만 한다.
그게 바로 연호정이 생각하는 승자의 마음가짐이었다. 그 정도 마음을 먹지 않으면 이길 싸움도 진다.
쾅!
단숨에 기마 부대 머리 위로 날아간 연호정이 장수로 보이는 자들과 그 일대 호위병들을 박살 냈다.
히히히히힝!!
말들이 울부짖고 병사들은 공포에 젖어 몸을 떨었다.
연호정의 눈이 번뜩였다.
‘사기(邪氣).’
모두의 눈에 사기가 가득했다.
그는 이와 비슷한 술수를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스치듯 사음교도들의 전장을 둘러보았을 때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단순히 사기를 심어 둔 건 아니겠지.’
사기든 마기든 황룡신왕공 앞에서는 무의미할 뿐이었다.
‘뭘 노리고 있든, 여기서 다 박살을 내 주마.’
황룡신왕공.
사신무의 최종 비기이자 진정한 무적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는 깨달음의 무공이다.
황룡신왕공을 개화하기 전에도 연호정은 장수로서 군대를 이끄는 데에 능했다. 그러나 지금, 진정한 황룡을 일깨우고 스스로를 되찾은 그는 사신무장(四神武將)으로서 아군의 사기를 밑도 끝도 없이 끌어올릴 수 있었다.
홀로 무적이 되길 바랐다면 무장이라 불리지 않고 무신(武神)이라 불렸을 터.
아군과 함께할 때야 비로소 사신무장의 장악력은 빛을 발하는 법이었다. 사신무장이 출현한 전장에서 패배 따위 없다는 말은, 바로 이 믿을 수 없는 장악력과 전투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패색이 짖던 전장을 한순간에 압도하며 등장한 연호정.
후퇴하던 아군 병력이 적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화아아악!
더 이상은 두고볼 수 없었던 것인지, 저 멀리 기마 부대 후방에서 거대한 기운들이 꿈틀거렸다.
‘이제 오는가.’
사악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태산처럼 거대한 불꽃을 드리운 자.
반란으로 아비를 내쫓고 새로운 왕이 된 당대 신화교주 기우환의 등장이었다.
그리고 그에 맞서, 연호정의 등 뒤에서도 한 줄기 성스러운 불꽃이 날아오고 있었다.
연호정이 외쳤다.
“우군은 좌측으로 빠져 신화교도들을 공략해라! 전장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