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77)
흑백무제 1278화(1278/1280)
1278화. 전설이 되다 (3)
“이건?!”
선두에서 달려가던 공공대사는 전장 전체가 사기(邪氣)로 가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마기와는 상극인 불가의 신공을 익혔기에 더더욱 놀랐다.
‘마치 불이 난 것만 같다.’
드넓은 산지 전체가 새카만 연기를 피워 올리는 것 같았다.
“맹주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은 함께 진군한 무림맹 병력도 마찬가지였다.
불가 신공을 익히지 않았더라도 전장 경험이 충분한 그들이었다. 투기와 살기 등등 온갖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한 곳이 전장이지만, 이처럼 독한 사기가 가득하다는 것은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파아아앙!
서둘러 전장의 영역으로 들어선 공공대사는 순간 두 눈을 부릅떴다.
“으아아아!!”
“죽여!”
“하하하하!”
“갈기갈기 찢어 버려!”
믿을 수 없는 광기, 소름 끼치는 괴성.
놀랍게도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적이 아니라 무림인들이었다.
공공대사의 눈이 번쩍였다.
‘오염되었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광범위하게 퍼진 사기가 적아를 구분치 않고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두뇌에 침투했다는 걸.
‘어떻게 이럴 수가?!’
상단전인지 중단전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화산의 도가신공을 익힌 도사들까지도 사기에 홀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우우웅!
무상대능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적이 아닌 아군부터 본다. 무상의 심법이 무극에 이른 그의 깨달음을 활짝 열어 주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 눈. 강렬한 안광이 셀 수 없는 사기의 흐름을 잡아냈다.
‘진법이구나.’
공공대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군가가 진법으로 이곳 전체를 사기로 오염시켰다.’
그 밀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소림의 장로들이라 해도 홀리지 않을 거라 자신하기 힘들 정도였다.
공공대사가 외쳤다.
“너희는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 아니, 백 장 뒤로 더 물러나거라!”
“존명!”
설명이 필요치 않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공공대사의 영향력은 무림 정점을 논한다.
순식간에 후방으로 빠지는 무림맹 병력. 움직임이 실로 일사불란했다.
공공대사는 다시 한번 전장을 둘러보았다.
‘이런……!’
그제야 이 말도 안 되는 사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초원의 기마병들! 저들이 사기의 매개체로구나!’
저들의 몸 하나하나에 지독한 사기의 씨앗이 잠들어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저들의 피와 죽음으로 물든 음혼(陰魂)이 이 사기의 밀도를 밑도 끝도 없이 상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음혼이란 분노, 공포,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혼을 말하며, 억울하게 죽거나 이승에 미련이 강하게 남은 사람의 영혼이 음혼으로 화한다.
음혼은 기본적으로 지박(地縛), 이정(移情), 호사(呼死)의 특성을 지닌다. 지박이란 특정한 장소에 붙어 있음을 뜻하고, 이정이란 음혼의 감정을 산 생명에게 옮긴다는 것을 뜻하며, 호사는 생명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 혹은 호흡에 죽음의 기운을 담아내는 것을 뜻한다.
음혼이 있는 장소에 들어서면 사람은 한기를 느끼고, 강한 음혼이 존재하거나 그 수가 많은 곳에 가면 백회(百會)로 음혼이 들어차 기억을 잃거나 음혼이 원하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한다. 그것을 달리 귀신이 들렸다고 말한다.
지금 이 전장은 말 그대로 음혼의 밭과 같았다.
사기로 가득한 음혼은 양기(陽氣) 가득한 생령도 한순간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나마 내공심법을 익힌 무림인들이라 이 정도지, 범부였다면 이미 혼과 육신이 괴리되었을 것이다.
공공대사는 이 전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간파할 수 있었다.
‘초원 부족들에게 사기를 심고 자살 특공을 명령했구나. 섬서 무림 병력이 저들을 죽이면서 사기의 진이 발동한 것이야.’
공공대사의 얼굴에 분노가 어렸다.
칙칙하고 어두운 음혼의 분노가 아닌, 악귀를 앞에 둔 명왕의 분노였다.
‘사람의 목숨을 이렇게까지 무가치하게……!’
쾅!
진각과 함께 산비탈을 타고 질주한 공공대사.
어느 순간 그의 눈에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철포를 든 병력을 이끌고 측방으로 돌아온 칠사왕 항무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공공대사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적을 섬멸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 사진을 깨부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야.’
그가 특별히 더 강해서가 아니었다.
소림의 무상대능력은 모든 사마공의 천적이다. 반야대능력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무상대능력 역시 소림 최고를 논하는 항마신공이었다.
‘문제는 저들을 막을 자가 있냐는 것인데.’
섬서 무림인들은 이제 거의 미쳐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적을 죽이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나마 저희들끼리 칼부림을 벌이지 않아서 다행일까? 하지만 그 끔찍한 일도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맹주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시끄러운 전장을 가로지르며 공공대사의 귀로 파고들었다.
돌아보니, 천효락과 화향을 이끌고 선두 기마 부대의 후미를 돌파하는 막원이 보였다.
“저자는 저희가 막겠습니다!”
대화 없이도 서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공공대사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였다.
콰아앙!
금강부동신법은 무림 정점을 논하는 신법이다. 그 신법이 무상대능력의 힘을 빌려 발휘되니, 주인의 몸을 순식간에 전장 한복판까지 옮겨 주었다.
무림 병력과 기마 부대의 사이.
공공대사가 천근추를 펼쳤다.
콰아아아앙!!
천근이 아니라 수만 근이라도 되는 듯했다.
매서운 진기를 퍼트리며 대지에 내려선 공공대사가 곧장 눈을 감고 합장했다.
“옴(唵).”
길게 뽑혀 나오는 단 한 글자의 법음(法音).
극성으로 끌어올린 무상대능력은 공공대사의 법음을 반경 수백 장으로 퍼트렸다.
아우성을 쳐 대던 섬서 무림 병력과 기마병들이 멈칫했다.
다시 눈을 뜬 공공대사, 반개한 두 눈은 무심(無心)했다.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
우우우우웅!
널리 널리 퍼지는 음성.
소림칠십이절예 중 하나이며 불가를 대표하는, 나아가 소림을 대표하는 음공으로 독보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그 무공.
소림사자후(少林獅子吼)가 발휘되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則見如來)…….”
불법에 귀의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금강경(金剛經)의 법문이 흘러나왔다.
무상대능력과 금강경.
하나는 소림 비전 중의 비전이고, 다른 하나는 불문을 넘어 세상 곳곳으로 전파된 진리의 경전이었다.
빼어난 공부도 익히지 않으면 가치를 잃고, 범용한 공부라고 가벼이 여기다간 진리에서 멀어지는 법.
공공대사는 성심을 다해 진기를 끌어올렸고, 그의 의지를 읽은 무상대능력은 깨달음으로 개화하여 항마의 힘을 올렸으며, 금강경은 그 출구가 되어 사기로 가득한 전장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우우우우우우웅!!
울리고 또 울린다.
소리는 곧 진동이라지만, 이것은 단순히 내공 섞인 사자후 때문에 이는 진동이라 할 수 없었다.
이것은 기의 떨림이었고 기지개를 켠 깨달음의 신음이었다. 피와 죽음이 가득한 전장에서도 조금의 긴장 없이 금강경의 법문을 읊는 공공대사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분하고 깊어져만 갔다.
“어? 어?”
“으으으…….”
섬서 무림인들은 바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기괴한 신음을 흘렸다.
히히히힝!!
심상치 않은 항마(降魔)의 힘과 법언에 기마들은 전진을 멈추고 투레질을 반복했다.
기마 위에 탄 병사들의 상태는 그보다 더 심각했다. 하나같이 귀를 막거나 고성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고 가슴을 벅벅 긁는데, 그 힘이 강해서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치이이이이익!
전장에 가득 고인 사기가 몸부림을 치며 희뿌연 연기를 피워 올렸다.
공공대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된다.’
솔직히 모험이었다. 그 시간에 적들을 조금이라도 더 물러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광기에 젖어 적을 토막 내는 아군의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설령 이 싸움에서 이겨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긴 힘들 것 같았다.
죽어도 사람으로서 죽어야지, 이런 식으로 죽어선 안 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인간답게, 사람답게 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다.
공공대사가 어마어마한 진기를 소모하면서 금강경을 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퍼퍼퍼퍼펑!!
자욱하게 올라온 연기가 폭음을 내며 흩어졌다.
사자후로 발해지는 항마의 힘이 사기를 으깨 버리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 만 단위의 사람을 홀려 버린 사기를 공공대사 홀로 무너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르르륵.
공공대사의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무극에 올라 더욱 막강해진 무상대능력, 그 힘을 통제하지 않고 오직 법언에만 실었다.
단전을 쥐어짜 폭발시키는 사자후였기에 신체가 받는 부담이 극심했다. 반의반 각도 읊지 않았지만 벌써 내장이 진탕되고 단전 곳곳이 꿈틀거리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공공대사는 그 고통을 무시했다.
아니, 고통을 느껴서조차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느꼈다는 것은 곧 무심(無心)이 깨졌다는 방증이었다.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형색에 머묾 없이 마음을 먹으라. 소리와 냄새, 맛과 감촉, 마음의 대상에도 머묾 없이 마음을 먹으라.
깨달음의 길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으며 사기에 홀린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마땅히 머묾 없이 마음을 내야 진정 우주가 열리는 법.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가장 빛나며, 가장 빠르고 가장 파괴적인, 그래서 가장 드높은 금강(金剛)의 진언은 사기를 부수고 들어가 번뇌로 가득한 마음의 감옥을 미친 듯이 깨부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아아악!!”
지고한 마음, 지순한 바람으로 뜻을 전하는 항마의 법언에 섬서 무림인 중 절반에 가까운 자들이 머리를 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공공대사의 힘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웅.
반개한 공공대사의 눈에 찬란한 빛이 어렸다.
어느새 그의 등 뒤에 선 음공의 대가가 사방으로 진기를 퍼트리며 금강법언의 전달력을 세 배, 네 배로 끌어 올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다해 간하세요, 맹주. 맹주의 소리는 산도 넘고 강 밑에도 들어갈 것입니다.”
차분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공공대사의 무의식은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음제 선배.’
하은교를 향한 믿음이 자연스레 일어났다.
무상대능력의 밀도는 유지한 채, 극성으로 운용하는 힘만 뺐다.
신체가 받는 부담감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사자후는 더 넓은 영역, 더 깊은 곳까지 퍼지고 있었다.
항마의 근원 공공대사의 목소리를 하은교가 진언의 통로로서 퍼트려 준다.
두 절대고수의 합작에, 전장은 순식간에 소강상태로 빠져들었다. 적아 가릴 것 없이 소리를 지르며 땅을 뒹구는 그들 주위로 회색빛 연기가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가히 신화와 같은 위업을 달성한 그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적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퍼퍼퍼퍼퍼펑!!
법언을 지우는 폭음.
금사철포에 장전된 황풍독탄이 섬서 무림인들의 머리 위로 쏘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