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78)
흑백무제 1279화(1279/1280)
1279화. 전설이 되다 (4)
그때였다.
“뿌려라!”
사왕단주 당패의 명령에 또 다른 폭음이 울려 퍼졌다.
퍼퍼퍼퍼펑!!
철포에는 철포라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날아온 황풍독탄은 섬서 무림인들 머리 위에서 터져 황야의 모래바람과 같은 싯누런 연기를 퍼트렸지만, 그 즉시 쏘아진 당가 측 소형 화포는 검은색 구슬을 토해 냈다.
황풍독탄의 해독약을 한껏 담은 구슬.
콰콰쾅!!
소리는 요란했지만 불꽃도, 철 조각도 없었다.
그만한 파괴력을 감당하기엔 구슬의 재질이 너무나도 약해 보였는데도 정확한 지점에서 터져 사방으로 해독약을 퍼트리고 있었다.
사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아악!”
황풍독탄의 연기를 들이마신 무림인들은 저마다 발광하며 몸부림쳤다.
그중에는 사망자도 있었다. 잠깐 흡입한 것만으로도 수백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를 면치 못한 것이다.
하지만 거의 바로 해독약이 뿌려지자, 몸부림치던 무림인들은 기침만 콜록대며 몸을 떨었다.
순식간에 해독 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이럴 수가!”
황풍단의 단주 항일이 입을 떡 벌렸다.
“설마 해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금사철포 역시 비할 데 없이 빼어난 화기(火器)였지만, 그 철포로 쏘아 낸 황풍독탄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영음산이 수십 년을 개량하고 또 개량한 독탄. 단 한 번이라도 흡입하면 절정고수도 열을 세기 전에 죽을 것이요, 초절정고수라도 일각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독에 내성이 강한 자들에 한해서였다.
그처럼 치명적인 독에 해약이 있었단 말인가?
해약이 있다손 쳐도, 이쪽에서 황풍독탄을 쓸 줄 놈들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당패가 차갑게 웃었다.
“수십 년, 아니 백 년을 공들여 만들었다 해도 우리의 눈과 지식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오직 독과 암기를 위해 수백 년을 살고 죽었어.”
암기 등의 사병기는 물론이거니와 독과 화포까지, 나라에서 금용하는 위험천만한 물건을 수백 년 동안 독심 하나로 개발하고 창조해 냈던 당가다.
황풍독탄이 지극히 위험한 독탄은 맞지만, 그 해약을 만들기 위해 당가도 꽤 오랫동안 고생해야 했지만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 모든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가문, 동시에 이 세상 어떤 이들도 해독할 수 없는 독을 만드는 가문.
그것이 바로 사천당가, 독과 암기의 조종(祖宗)이라 불리는 정파 무림의 이단아였다.
“사왕단은 나락독사진을 유지한 채 전진하라! 적보다는 아군이 먼저다! 움직이지 못하는 중독자들을 산길로 옮겨야 한다!”
“존명!”
싸워서 이기러 왔지만, 칼을 섞는 것만이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아군이 이기기 위해서는 아군의 상태가 좋아야만 했다. 그를 돕는 것 또한 전투에 크게 기여하는 것, 하물며 적이 독탄까지 쓰고 있는 바에야 당가 병력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사진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지만, 당가 병력 뒤에는 사천에서 올라온 수천의 병력이 함께하고 있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 전장의 사기만 날아가면 곧장 뛰어들어 적들을 몰아붙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분한 듯 입술을 깨문 항일이 버럭 외쳤다.
“독탄은 집어넣어라! 마가(魔家)에서 받은 유탄(榴彈)을 장전해!”
불의 마가, 신화교에서 받은 유탄까지 장전되는 금사철포다.
황풍독탄이 날아오면 사상자는 생길지언정 해독할 방법이 있지만, 진짜 화탄을 쏴 대면 당가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당패가 외쳤다.
“독탄이 아닌 화탄이 날아올 수도 있다! 전원 폭심포(爆心袍)를 둘러라!”
파라라라락!
세 명이 한 조로 널찍한 흑색 천을 뒤집어쓴다.
평범한 천 같지만, 불은 물론 폭약 암기도 흠집 하나 안 나고 막아 준다는 당가의 보물 폭심포였다. 사천대란이 끝난 후, 당관과 당형이 가문의 재보를 있는 대로 끌어다 써서 수량을 늘린 보물이었다.
“쏴라!”
퍼퍼퍼퍼펑!!
엄청난 속도로 쏘아진 유탄이 섬서 무림 병력 위, 일 장 높이 인근에서 폭발했다.
사람에게 직접 쏘는 것보다 허공에 쏴서 퍼트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폭약이었다.
퍼버버벅!
“크아아악!”
유탄 조각에 맞은 무림인 이백여 명이 비명을 질렀다.
투두두두두둑!
뱀처럼 부드럽게, 매처럼 빠르게 움직인 사왕단원들이 폭심포를 펼쳐 절반 이상의 유탄 조각을 막아 냈다.
아직 사기가 몰아치는 전장에 들어온 것부터가 목숨을 걸고 하는 짓이다. 그나마 피독단(避毒丹)을 물고 와서 다행이었지만, 피독단은 독기를 중점적으로 몰아내는 효능이 있는 물건일 뿐이었다.
피독, 피화, 피수 등으로 이름 붙여진 물건들은 하나같이 어떠한 외기(外氣)를 막아 낸다는 특성이 있는 만큼 사기도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어느 정도일 뿐이다. 사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전장에 오래 있으면 당가 병력도 광인이 될 수 있다.
“서둘러! 오래 머물러선 안 된다!”
그렇게 병력과 병력이 부딪치며 소강상태였던 전장이 다시 시끄러워질 즈음.
고수들의 싸움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콰앙!
‘강하다.’
대도를 벽공장으로 튕겨 낸 당관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천독수의 투로가 흔들리고 발경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독기를 몰아친 것은 아니더라도 그 위력의 빼어남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데, 단박에 손해를 입은 것이다.
파바방!
추뢰신법은 이제 가히 벼락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을 자아냈다.
붉은 기운을 퍼트리며 명활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당관이 삼양신장을 펼쳤다.
번쩍!
폭음도 없었다.
꿈틀거리는 용처럼 하단에서 상단, 나아가 후방까지 아우르는 큰 칼질에 장력이 분쇄되었다.
‘놀랍도록 정석적이군.’
양손으로 쥔 대도를 휘두르는 명활의 움직임은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내리찍고 올려 친다. 쳐 내고 튕겨 낸다. 찔러 오다가 짓누르고, 밀어 내다 당긴다.
칼의 기본을 철저하게 닦은 무사였다. 무극의 경지에 올랐기에 대단한 게 아니라, 그 경지에 올랐음에도 극한의 기본기를 선보이기에 대단한 것이었다.
“어린애 장난인가.”
번쩍!
횡으로 휘두른 대도 끝에서 물결과도 같은 경파가 몰아쳤다.
당관은 곧장 물러나 참격의 범위에서 벗어났지만, 사라진 경파 뒤로 또 다른 충격파가 다가오는 걸 느끼며 주먹까지 휘둘러야 했다.
콰아앙!
뒤따른 충격파가 실로 거세다.
거세고 무겁고 예리했다. 진기를 한 푼만 덜 담았어도 뼈가 부러졌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명활이 대도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암기와 장법이라? 아주 좋군. 특히 암기술이 빼어나. 한낱 암기술을 그와 같은 경지로 끌어올렸다면, 가히 대종사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
“그렇기에 불순하다. 진정한 무(武)가 아니야.”
너무나도 솔직한 자세, 상체 전반의 허점이 다 드러났다.
그런데도 당관은 그를 쉽사리 공격할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꿈틀거리는 기묘한 사기, 섣불리 쳐들어갔다간 칼의 범위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잔재주로 그와 같은 경지에 올랐으니, 그것만은 칭찬해 주마. 네놈이 칼을 쥐었다면, 진심으로 죽이기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관의 눈에 시린 안광이 어렸다.
“복잡한 것을 잔재주라고 평하는 멍청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지.”
“뭐라?”
“복잡한 걸 이해할 만한 머리가 없으니 단순한 것만 찾는 것이다. 그나마 무골(武骨)이라 거기까지 갔지, 본가에서 태어났으면 직계라도 이류에서 끝났을 게다.”
명활의 얼굴에 살기등등한 미소가 어렸다.
“하기야, 누가 옳은가는 결국 누가 이기는가로 결정 나는 법이지.”
파아아앙!
그 자세 그대로 돌진한 명활이 힘차게 대도를 휘둘렀다.
너무나도 솔직한 일도였지만, 당관은 그 일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마치 심해로 들어온 듯 사방에서 느껴지는 압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너는 틀렸어.’
쿠르르릉!
그대로 내리찍는 일도.
뚝 잘린 산 하나가 통째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투로보다는 그 안에 실린 살의와 경력이 훨씬 더 무섭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패력강공의 무공.
‘나 역시 살아남는 자가 곧 정답이라 생각했다. 아니, 본가의 역사가 그러했지.’
당관의 두 손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물결치듯 내려오는 도파(刀波), 그 측면의 맥점을 손끝으로 찌른다.
퍼버버벅!
만류귀원신공으로 보호받는데도 손끝 피부가 터지고 찢어졌다. 실로 엄청난 힘이었다.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해 도파의 힘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당연히 압력도 줄었고, 몸을 묶은 무형의 진기도 느슨해졌다.
당관의 몸이 사선으로 틀어졌다.
콰아앙!
대지를 찍은 일격에 십여 장 밖 기마병 하나가 통째로 갈라지며 죽었다.
무려 열 장 밖의 인간과 가축도 두 쪽을 내는 무공이었다. 파괴력 하나만큼은 연호정의 광룡부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살아남은 것은 그저 살아남은 것일 뿐이다.
살아남아 이겨서 가치를 증명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살아남았다고 다 옳다면 이 세상의 도덕과 윤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번쩍!
당관의 손에서 쏘아진 삼양지가 명활의 눈을 노렸다.
피슉!
고개를 틀어 피했지만, 워낙 지풍이 날카로웠다. 명활의 볼에 한 줄기 상처가 그어졌다.
콰앙!
땅을 찍은 칼을 휘둘러 당관을 후려치는 명활의 움직임은 대단히 역동적이었다.
양손으로 대도의 날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날아간 당관, 몸은 멀쩡했지만 그의 양손은 피로 물들었다.
명활의 눈이 살벌해졌다.
“잘도 막는구나!”
파아아앙!
단순하고 위력적인 무공을 구사하는 자답게 신법 역시 솔직한 직선 위주다.
후두둑.
떨어지는 핏방울이 대지에 잔혹한 흔적을 남겼다.
퍼엉!
찌르고 들어오는 대도를 피해 접근한 당관이 엄청나게 낮은 자세로 그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명활의 눈이 흔들렸다.
뭔가 따끔하다 싶은 순간, 허벅지에 한 줄기 혈선이 그어졌다. 어느새 뽑은 비수로 근육의 결을 따라 베고 지나간 것이다.
“이놈!”
부아아아앙! 콰앙!
회전하는 탄력, 휘둘러 날려 버리는 도풍.
당관의 몸이 급격한 움직임을 발했다.
파파파팡! 콰앙! 콰아앙!
일도, 일도에 무시무시한 힘이 담겼다.
정말이지 받아치는 것은 고사하고 피하는 것조차 만만치가 않았다. 당관은 명활이 구사하는 저 무자비한 무공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파바바박!
순식간에 온몸이 피로 흠뻑 젖었다.
치명상은 하나도 없었지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도풍을 피하려니 상처를 안 입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네놈…….”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일까.
명활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
당관이 차갑게 말했다.
“복잡한 걸 싫어하는 네놈으로선 꿈도 못 꿀 짓을 벌이고 있지.”
“이놈이!”
그때였다.
푸쉬쉬!
명활과 당관을 중심으로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일대의 땅에서 올라오는 독기(毒氣)였다.
독정을 분해해 만류귀원신공의 기반으로 삼았지만, 예전만은 못할지언정 내공에 독력을 쏟아붓는 것은 지금도 가능한 그였다.
그런 그가 피와 함께 바닥 곳곳에 암기를 박아 넣어 만들어 낸 죽음의 진.
출격 전까지 당유광에게 직접 배운 당가 비전 묵룡융해진(墨龍融解陣)이 발동된 것이다.
“힘만 세다고 강한 게 아니야. 머리를 쓸 줄 알아야 진정 강한 것이다.”
당관의 손에 다시 비수 하나가 잡혔다.
비수 끝에 귀신이 들러붙은 듯 검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이제 내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