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79)
흑백무제 1281화(1280/1280)
1281화. 전설이 되다 (6)
거대하고 시커먼 독벽을 보며, 당상아는 그것이 당가의 비전 독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외물인 독을 중첩해 만든 진이 아니었다. 독인(毒人)의 피와 대지에 박아 넣은 말뚝 같은 진축들, 그리고 시전자의 내공으로 형상화한 인간 독진이었다.
당가 장로들이 세 명 이상 모여도 저 정도 독진을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형성한다 한들 반 각을 채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지리라.
그렇게나 내공 소모가 극심한 진법을 홀로 펼칠 만한 괴물.
그런 괴물은 당가에 딱 둘뿐이었다.
‘아버지, 조부님.’
하지만 조부님께선 저 삼교의 수뇌 중 하나와 싸우시다 장렬하게 전사하셨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가문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녀는 차마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따로 서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함께 뵈러 가자는 그 말.
조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본인이 지켰으니 당가 사람으로서 도리는 다했다. 전시이니만큼 한 명의 고수가 아쉬운바, 자리를 지키고 소임을 다하라는 아버지의 서신.
그야말로 냉정하기 그지없는 내용이었다. 당장 무림맹은 당상아 없이도 충분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슬픔과 분노에 젖었지만, 당상아는 똑똑했다. 아버지가 왜 자신을 가문에 들이지 않으려 하시는지 알고 있었다.
흔들릴까 싶어서였다.
오랜 시간 서로를 멀리했던 가족이 오해를 풀고 가까워졌다. 멀리했던 시간이 긴 만큼, 서로를 향한 애틋함은 홍수처럼 거셌다.
그래서 딸을 무림맹에 둔 것이다. 당가의 가주로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딸을 보면 혹시라도 자신이 무너질까 봐.
그리고 그것은 당상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문으로 돌아가면 냉정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은 혈육이다. 성격은 달라도 근본은 같은 법, 아버지의 마음을 단번에 이해한 것만으로도 당상아는 당가의 피를 이은 후예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짐작은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펼쳤을 거라 예상되는 독진을 보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이렇게 달려온 것을 보면, 아버지의 혜안은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것이었다.
“아버지!”
진 내부에서 흔들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아?!”
쉬이익!
진군하려던 독풍단원 몇 명이 당상아를 향해 장력을 뿌렸다.
순간 당상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감히!”
천하제일독공을 연마한 당가의 후예 앞에서 독장(毒掌)을 쓰다니,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당상아의 좌장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휩쓸듯 휘둘러졌다.
퍼퍼펑!!
다섯 발의 독장이 그대로 분쇄되고, 장력의 바람을 탄 제왕독기(帝王毒氣)가 순식간에 독풍단을 덮쳤다.
“컥!”
“크아아악!”
진정한 독의 바람이다.
그녀의 섬섬옥수에서 뿌려진 독은 당가의 중견 고수들만이 다룰 수 있다는 단혼산(斷魂散)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제왕독기를 섞어 독의 밀도를 세 배 이상 증폭시켰다.
단혼산이지만 단혼산이 아니다. 독력 증폭, 발경 증폭, 중독 속도 증폭의 특성을 지닌 제왕독기는 그대로 독풍단 이십여 명을 바닥에 나뒹굴게 만들었다.
퍽! 퍼버벅!
쓰러진 단원들의 몸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 뚫린 구멍에선 검붉은 핏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단혼산은 신경독의 일종이었지만, 제왕독기가 더해지자 혈액독의 성격까지 띠었다. 거기에 침투경이 실리니, 순식간에 사지로 뻗어 나간 독이 더 나아갈 길이 없어 피부까지 뚫고 나온 것이다.
치이이이익!
제왕단혼산(帝王斷魂散)에 노출된 단원들의 몸이 순식간에 부패되었다. 비명을 지른 순간 이미 죽었던 것이다.
“카앗!”
살아남은 독풍단원들은 저마다 병기를 뽑아 들며 당상아에게 덤벼들었다.
당상아의 눈이 번뜩였다.
‘강해.’
단순히 독을 다루는 자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순식간에 소수 진형을 짜고 접근하는 속도가 일품이었다.
거기에 무인 특유의 예기가 상당했다. 북방식 만도를 휘두르는 품새 또한 능히 절정고수라 할 만했다.
당상아의 살기가 거세졌다.
푹! 푹! 푹! 푹! 푹!
엄청난 속도로 그들을 지나친 그녀의 손에는 피 묻은 염왕비가 들려 있었다.
순식간에 목표물을 잃은 독풍단원들은 당황하다가 이내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그들의 명치에는 정확히 두 치 깊이의 작은 자상이 찍혀 있었다.
사비무쌍세의 기본 초식인 자심세(刺心勢) 다섯 발이 섬광처럼 빠르게 펼쳐졌다. 달리 내공 소모랄 것도 없는 행위였지만, 그걸로 고수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잡아라!”
“거리를 벌리고 압박해!”
진군하려던 독풍단이 당상아를 넓게 둘러쌌다.
하지만 당상아는 그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빠르고 은밀하게 이곳까지 다가왔지만, 중간중간 적의 병사들과 교전을 벌였던 그녀였다. 싸우는 게 아니라 돌파하는 게 목적이라 몸 여기저기에 상처까지 입었다.
이제 아버지가 코앞에 계시는데 이런 놈들과 실랑이를 벌일 생각 따윈 없었다.
후우우우웅!
오른손에는 염왕비를, 왼손에는 평범한 비수 네 자루를 쥔 그녀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터져 나왔다.
파바바박!
추혼비접의 술수로 날린 네 자루 비수가 독풍단원 세 사람의 목을 꿰뚫었다. 한 자루는 도격에 맞아 땅으로 떨어졌다.
그때였다.
퍼퍼퍼펑!!
목에 박힌 비수, 땅에 떨어진 비수가 모두 폭발하며 수백 조각의 암기로 화해 흩어졌다.
“크아악!”
“으아아아아!”
제왕독경의 극대발경(極大發勁) 폭룡살(爆龍殺)이다.
폭우이화침만큼의 위력은 없지만, 느닷없이 폭발한다는 점에서 살상력은 충분하다. 거기에 제왕독기까지 담겨 있으니, 비수의 폭발에 휩쓸린 삼십여 명의 단원들은 그대로 온몸이 찢겨 죽었다.
남은 독풍단원들의 얼굴에 충격이 일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영음산의 독공을 연마한 고수들이었다. 단순히 독공만 연마한 게 아니라 각종 독물에도 능통했고, 와중에 도법(刀法)까지 익힌 위험천만한 고수들이었다.
어지간한 문파는 열 명만 보내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이룬 무위 이전에 진법이 대단했고, 진법보다 더 대단한 것이 바로 독공이었다.
그런 그들이 순식간에 육십 명 가까이 즉사했다. 상대가 초절정고수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상대에게 칼질 한번, 하독 한번 해 보지 못했다.
파아아앙!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상아는 묵룡융해진을 향해 달렸다.
‘아버지!’
후우우웅!
군데군데 구멍이 난 독벽이 마구 흔들렸다.
‘엄청난 독기다. 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만해!’
그때였다.
콰앙!
묵룡융해진이 폭음을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푸화아악!
물길이 난 듯 퍼져 나간 묵룡융해독이 독풍단원 사십여 명을 그 자리에서 핏물로 녹여 버렸다.
“피해라!”
“거리를 벌려!”
독풍단원들이 황급히 거리를 벌린 그때, 당상아는 묵룡융해독을 온몸으로 맞았다.
치이이익!
그녀의 전신에서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당상아는 이를 악물었다. 본능적으로 제왕독공을 운용해 묵룡융해독의 침투를 막았다.
‘엄청나구나!’
이 정도 산성독은 처음이었다. 전신을 융통무애하게 흐르는 제왕독기마저 흔들릴 지경, 의복 군데군데가 독기에 녹아 구멍이 났다.
그 순간, 당상아는 보았다.
피를 흘리며 물러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버지!!”
화아아악!
격렬한 감정으로 타오른 제왕독기가 어느새 묵룡융해독을 밀어 내지 않고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무극을 열지는 못했지만 이미 제왕독경이라는 산의 팔 부 능선을 넘어간 그녀였다. 마음만 먹으면 만독(萬毒)을 흡수할 만한 능력이 있다.
그녀를 공격하던 묵룡융해독이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당상아는 당장이라도 토악질을 하고 싶었다. 체내로 들어온 융해독이 오장육부를 녹여 버리는 것 같았다.
‘버틴다!’
제왕독공은 재능이 없으면 입문조차 못 하는 독공이었다. 입문을 해도 성취를 올리기 위해선 매 순간 죽음을 각오하며 독기를 키워야 했다.
독에 대한 내성만큼이나 고통에 대한 내성도 높은 그녀였다.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 만했다.
쾅! 콰쾅!
도객의 무공은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파괴적이었다.
빠르고 강했다. 그저 그게 전부였다. 한데 도무지 뚫고 들어갈 만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 넘실거리는 지독한 사기(邪氣)는 마치 묵룡융해진처럼 하나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안 돼!’
훅!
단전이 확장되며 내공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묵룡융해독이 제왕독공으로 회귀하며 내공으로 화한 것이다.
당상아는 본능적으로 진각을 밟았다.
콰앙!
순간적인 내공 용량만큼은 무극수에 비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묵룡융해독은 엄청난 독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힘으로 진각을 밟으니 올라오는 지기(地氣)의 양도 상상 초월이다. 당장이라도 온몸의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힘을 감당해 낸 그녀가 좌장을 뻗었다.
쿠르르릉!!
시커먼 먹구름 같은 장력이 명활을 향해 쏟아졌다.
순간 명활의 눈이 흔들렸다.
아직 완전히 섞이지 않은 묵룡융해독, 그 자체의 독력에 발경을 증폭시키는 제왕독기가 더해지니 천하의 명활로서도 받아 내기가 어려웠다.
증폭된 융해독의 힘을 담아 내친 제왕독경상의 비전, 이화만독장(梨花萬毒掌)이었다.
천위룡을 상대로 당형이 구사했던 바로 그 무공이었다. 비록 깨달음이 낮고 힘 조절이 미숙해 만개한 꽃처럼 퍼지진 않았지만, 스치기만 해도 수십 가지 극독에 당해 죽어 나갈 것이다.
거기에 증폭된 묵룡융해독까지.
콰르르릉! 치이이이익!
먹구름이 훑고 지나간 땅과 바위 일부가 그대로 박살 나며 녹아 버렸다. 기어이 명활이 회피를 선택한 것이다.
당가의 위험함을 온몸으로 보여 주는 그녀였다.
비수 하나로 고수를 죽이고, 한 줌 독으로 수백 명을 학살한다. 그 위험천만한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기에 당가인 것이다.
어설픈 독공 몇 수 익힌 독풍단은 그녀에게 있어 식전 운동거리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묵룡융해진의 독력까지 버티는 명활조차 회피라는 선택을 내리게 만들었다.
제왕독공을 버리고 자신만의 무도를 창조한 당관도 대단했지만, 선친이 창조한 무적의 독공 또한 만류귀원신공 못지않은 절학인바.
그 절대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며 극찬한 손녀의 손에서 전설이 된 독공이 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느새 당상아의 측면에서 나타난 명활은 귀찮다는 듯 대도를 휘둘렀다.
당상아의 눈이 흔들렸다. 상대가 측방에서 나타난 것은 알았지만, 이어지는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콰앙!
무지막지한 속도로 날아온 당관이 명활의 대도를 주먹으로 쳐서 날려 버렸다.
하나뿐인 딸의 목숨이 위험한 순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명활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당관을 노려보았다.
화아아악!
당관의 두 눈이 피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극한까지 연마된 상단전, 그 상단전의 한계를 넘어선 살기가 반경 수백 장을 뒤덮고 있었다.
피범벅이 된 주먹을 푼 당관이 당상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상아는 곧장 그 뜻을 깨닫고 염왕비를 건넸다.
염왕비를 역수로 쥔 당관이 으르렁거렸다.
“너, 곱게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말아라.”
“새삼스럽지도 않구나!”
파아아앙!
두 고수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짜로 끝장을 볼 요량인 것이다.
그때였다.
번쩍!
십사왕 혈린이 든 광옥이 완전한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혈린이 외쳤다.
“혈옥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