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81)
흑백무제 1283화(1282/1320)
1283화. 전설이 되다 (8)
연호정의 등장으로 사기가 오른 무림맹 병력은 믿을 수 없는 돌파력으로 기마 부대를 물리쳤다.
그뿐만 아니라 측방에서 공격하는 신화교도들까지도 밀려 나갔다. 연호정이 직접 신화교도들을 상대로 도끼를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폭풍과도 같은 북진, 적들을 무차별로 밀어붙이는 무림맹 병력의 사기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하지만 연호정은, 나아가 남궁승은 알고 있었다.
‘진짜는 저곳에 있다.’
저 멀리 전방.
활화산처럼 뜨거운 기파를 발산하는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뿜어져 나오는 내공력이 실로 무시무시했다. 단순히 내공력만 보자면 이곳에 있는 어떤 고수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그와 함께 진군하는 신화교의 부대, 일천의 신화령(神火令)은 신화교가 보유한 최강의 부대였다. 그들 가운데, 단 백 명으로 이루어졌지만 파멸적인 군기를 자랑하는 화룡대(火龍隊)는 교주 직속의 호위였다.
교주와 최정예 부대, 그리고 교주 직속 호위 부대의 등장.
말 그대로 신화교를 대표하는 전력이 모조리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남궁승이 외쳤다.
“연 성주!”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는 연호정이 지금 상황을 누구보다 잘 꿰뚫어 보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길을 여십시오! 기마 부대만 흐트러트린 후 전장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다간 밀려! 저들의 기세가 너무 강하네!”
“그래도 여십시오!”
상식과 동떨어진 강권이다.
하지만 남궁승은 연호정의 말을 따랐다. 이 믿을 수 없는 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아는 연호정은 전쟁의 천재였다. 때때로 지나치게 과격한 군략을 쓰긴 하지만, 그가 그러라고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콰아앙!
천풍검으로 기마병들을 날려 버린 남궁승이 천뢰장(天雷掌)과 천풍장으로 길을 넓혔다.
히히히히힝!!
일만에 달하는 전력이었지만, 그래도 절반이 넘는 사상자가 났다.
이대로 싸워 봤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남궁승을 피해 가며 기어이 무림맹 병력을 공격하는데, 무수한 화살이 하늘을 날고 돌격하는 기마병의 창날이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번쩍!
신화교도들을 몰아치던 오구문이 측방에서 짓쳐 들며 참혼교도를 구사했다.
수수깡처럼 부서지는 창대, 폭풍 같은 도세에 기마들이 다리를 꺾고 쓰러졌다.
신들린 기마술은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자연재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서운 도풍을 일으키는 오구문 앞에서 기마들도 공포에 질렸다.
한곳의 대열이 흐트러지니, 그 공포는 무서운 속도로 전염이 된다.
기수들이 기마를 다독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법. 기마는 기수를 믿지만, 대열이 흐트러지면 혼란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콰아아앙!
그 틈으로 철목후가 날아와 기마병 다섯 기를 날려 버리며 쓰러졌다.
영혼을 불사르는 힘, 노장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 주는 종리백의 공격에 철목후는 번번이 당하고야 말았다.
히히히힝!!
“캬아앗!”
한곳에서 흐트러진 대열은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가 부대 전체에 균열을 일으켰다.
후우웅!
측방에서 후퇴하는 신화교도들을 충분히 밀어 냈다고 생각한 연호정 역시 기마 부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오구문 혼자서도 대열을 흐트러트리고 혼란을 가중시키던 상황에서 연호정까지 작정하고 뛰어들자, 부대의 진형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야 말았다.
“후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인지, 선두의 부대를 이끌던 자가 초원의 언어로 후퇴를 종용했다.
이미 화살도 거의 다 떨어졌고 돌격만으로는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공포를 느꼈다.
느닷없이 불타오르는 적의 사기, 거기에 고대의 신(神)들이 강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서운 능력을 보여 주는 고수들로 인해 기마 부대의 사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여럿이서 달라붙어 상처라도 낼 수 있다면 죽음을 불사하고 돌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개죽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역시.’
연호정의 눈이 번쩍였다.
‘황룡으로 벗겨지는군.’
어느새 기마병, 그리고 기마들의 눈에 서린 사기가 엄청나게 줄어들어 있었다.
황룡신왕공의 힘이었다. 있는 대로 기파를 퍼트려 기마 부대를 밀어붙이니, 파마(破魔)의 공능으로 가득한 황룡신왕기가 저들의 몸에 파고든 사기를 증발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저들도 후퇴하는 것이다. 사기에 중독된 상태였다면 후퇴는커녕 더 거세게 진군했을 것이다.
쾅!
진각을 밟은 연호정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압!!”
황룡신왕기를 한껏 담은 그의 목소리는 전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히히히히힝!!
수천 기마가 앞발을 들고 울음을 토해 냈다.
장판파의 장비는 십만 대군을 고함만으로 물리쳤다고 한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지금의 연호정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로 구현할 만한 힘이 있었다.
사기를 씻어 내는 황룡의 힘, 거기에 무신(武神)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투 능력.
그 살벌한 사자후는 마침내 기적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두두두두두두!
후미의 기마병들까지 하나둘 말을 돌려 후퇴를 감행했다.
오구문은 저도 모르게 입을 뻐끔거렸다.
“후, 후퇴한다?!”
솔직히 내공과 체력이 엄청나게 소모되어서 더 싸운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한데 그런 상황에서 적이 물러나고 있었다. 사자후에 실린 공력이 무시무시하긴 했지만, 그 일갈에 부대 전체가 물러난다는 게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남궁승 역시 재빨리 연호정 옆으로 다가왔다.
“저들이 물러나는구먼.”
“예.”
“대단하네. 대체 어떻게 한 건가?”
남궁승의 심안에는 보였다. 연호정의 사자후에 실린 공력이 저들의 사기를 한껏 날려 버리는 광경이.
하지만 그걸 보았다고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사자후로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연호정이 오기도 전에 시도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연호정의 눈이 시뻘건 화염을 토해 냈다.
“진짜 적의 등장입니다.”
그때였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후퇴하던 기마 부대 일각이 무너져 내렸다.
일순 치솟은 불길은 순식간에 기마 부대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화염이 강물처럼 범람하는 듯, 부대 곳곳을 휩쓸고 지나가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크아아악!”
“아악!”
비명과 비명이 줄을 잇는다.
가능한 한 대열을 정비해 후퇴하던 기마 부대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화염을 피해 곳곳으로 산개한 것이다.
그 광경에 남궁승은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그래도 후퇴하는 아군을 불살라 버리다니? 소위 독전대(督戰隊)라는 것이 있어 후퇴하는 아군을 베고 돌격을 강제하기도 한다지만, 저들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어, 어째서?!”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함으로는 보이지 않는군요.”
연호정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군이 아니라 짐승을 대하는 듯합니다. 죽어도 상관없는 병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그의 말이 맞았다.
신화령과 두 초고수는 연신 열화의 무공을 구사하며 기마 부대를 공격했다.
하지만 또 쫓아가서 다 죽이진 않는다. 그들이 기마 부대를 죽이는 것은 길이 막히기 때문이었다.
신(神)의 앞길을 방해하는 자들, 신의 자리를 어지럽히는 자들.
그들은 그런 자들에게 엄벌을 내리고 있었다.
화아아악!
사방으로 흩어진 기마 부대는 어느새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그저 저 멀리 북서쪽과 북동쪽에서 울리는 말발굽 소리만이 그들의 존재를 알려 주고 있었다.
콰아앙!
“이익!”
기마 부대와 함께 물러나던 철목후를 끝까지 쫓아가던 종리백은 상대의 강력한 일장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종리 무상! 뒤로 물러나시오!”
“저 자식은 잡아야지!”
그때, 연호정이 외쳤다.
“자리는 곧 만들어질 겁니다! 물러나십시오!”
남궁승의 목소리보다 연호정의 목소리에 먼저 반응한다.
움찔한 종리백은 이내 이를 박박 갈다가 뒤로 물러났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안 좋군.’
종리백의 가슴에 불그스름한 화기가 명멸하고 있었다.
깊이 있는 공력 덕분인지 강한 정신력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화기는 아직까지 심맥을 끊지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 종리백이 죽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연호정 같은 고수는 물론 기우희 같은 의원이라도 절대 고치지 못할 치명상.
‘그래도 안 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종리백의 천명이 끝나는 곳, 그게 이곳이 되리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참아야 할 때는 참아야 한다. 상대와 후회 없이 싸우다 죽는 거라면 괜찮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난전 중에 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부님!”
“쿨럭!”
피를 토하는 종리백의 곁으로 오구문이 황급히 다가왔다. 그제야 스승의 상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안 오구문의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져 있었다.
연호정이 두 사람을 뒤로 물렸다.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십시오. 무상의 전장은 반드시 따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오구문의 눈이 충혈되었다.
“연 성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서 사부님을……!”
“싸울 수 있습니다.”
연호정이 종리백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습니까?”
종리백이 씨익 웃었다.
창백한 안색에 코와 입 주변이 온통 피범벅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생명력이 넘치고 있었다.
“고맙네, 성주. 이 늙은이, 조금만 더 참아 볼 터이니 약속만 잊지 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승의 마음을 읽은 오구문은 이를 악물었다.
후우우우웅.
불어오는 바람이 뜨거웠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이다.
스르르.
일천이 넘는 병력이 도열하며 다가오는데도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마치 불이 땅을 스치고 다가오는 것처럼 보행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 한두 명이 그러는 게 아니라 그들 모두가 그러했다.
그리고 그들 중앙.
거대한 가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삼 층에 가까운 높이를 지닌 거대한 가마였다. 가마 사방에는 계단까지 존재했으며, 길게 늘어진 휘장은 불처럼 붉고 환했다.
“거창하군.”
“그러게 말일세.”
남궁승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하지만…… 강해.”
그것도 믿을 수 없이 강하다.
깨달음 이전에 자연스레 풍겨 나오는 박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무공 수위라는 것이 단순히 내공력의 차이는 아니라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내력이라면 어지간한 격차를 단번에 줄이고도 남을 것이다.
당장 남궁승만 해도 저 가마 안의 고수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막강한 기파였다.
‘어둡다.’
화기가 넘실거린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밀도 높은 화기였다.
하지만 그 화기는 마치 진흙처럼 축축하고 어두운 기질을 가졌다. 화기는 화기이되, 평범한 화기는 아닌 것이다.
화아아아악!
그리고 그런 화기와 너무나도 상반되는 화기가 그들 사이에 나타났다.
성스럽기까지 한 기운, 넘쳐흐르는 화기의 밀도는 가마 안의 고수와 동급이다. 폭발 직전의 화약처럼 위험한 느낌을 물씬 주지만,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진기를 조절하는 대가의 기질이 묻어 나온다.
기천웅의 등장이었다.
스륵.
신화령이 전진을 멈추었다.
기천웅이 연호정과 남궁승을 지나 신화령의 이십 장 앞에 멈춰 섰다.
“왔느냐.”
스르륵.
가마의 휘장이 걷혔다.
그 안에, 천륜을 뒤엎은 한 남자가 느슨하게 앉아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당대 신화교주 기우환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