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83)
흑백무제 1285화(1284/1320)
1285화. 전설이 되다 (10)
“기우환!!”
기천웅은 처음부터 기우환을 노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싸움은 자신이 못났기에, 그리고 아들이 못났기에 터진 싸움이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 둘이 이곳에 있으니,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자연스레 싸움도 멈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 따지기 전에, 권력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배신하고 신화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린 아들을 기천웅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퍼퍼퍼펑!
신화령의 염신검이 기천웅을 향해 쏘아졌다.
그래도 한때나마 모시던 교주임이 분명한데 공격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신화령이 강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 명령이 떨어지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게 그들이었다.
기천웅의 푸른 두 눈에 붉은 화염이 깃들었다.
그가 좌에서 우로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콰콰쾅!!
염신검의 합동 검기(劍氣)가 모조리 소멸되어 흩어졌다.
단순한 동작 속에 하늘을 뒤흔드는 깨달음이 함께한다. 비록 상단전의 한계 때문에 시작부터 청린신화공(靑燐神火功)을 개방할 수는 없었지만, 그 역시 천위룡, 사문향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던 삼교의 수좌였다.
기천웅의 발이 신화령 무사 하나의 머리를 밟았다.
우둑.
가벼운 파열음과 함께 무사의 머리가 흉부 안쪽으로 푹 들어가 버렸다.
우둑! 우두둑!
단 세 걸음 만에 오백 인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그 세 번의 걸음에 짓밟힌 무사 모두가 머리통이 박살 나 즉사했다.
파아아아앙!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가는 기천웅.
말 그대로 화천(火天)이다. 진양에게 말했던 불의 성질, 무게 없는 불처럼 날아가는 그에게서는 무한한 자유가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기우환이 탄 가마 앞까지 도달한 순간.
콰아아앙!!
느닷없이 폭음이 터졌다.
폭음의 정체는 바로 가마 앞, 거대한 화포에서 쏘아진 화탄이었다. 가마에 화포까지 달고 온 것, 기천웅 세대에는 없었던 물건이었다.
그 화포에 휩쓸린 신화령 십여 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기우환도, 화포를 쏜 신화령 무사도 아군의 죽음에 개의치 않았다.
상대는 기천웅, 신화교의 모든 무공을 체화한 고수였다. 이 정도 희생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훅!
심지어 그마저도 실패다.
화탄이 날아올 것을 짐작한 건지, 아니면 호신강기가 너무 강해서 소용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기천웅이 조금의 피해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매 여기저기가 다소 그을렸을 뿐, 황금빛 머리카락과 붉게 빛나는 청안은 여전히 아름다운 위엄을 발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가.’
기우환의 얼굴에 비틀린 미소가 드리워졌다.
‘오히려 내가 싸우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우우우우우웅.
단전 깊은 곳에서 푸른 힘이 솟구쳤다.
사지 백해로 뻗어 나가는 무서운 열기, 지금껏 수많은 사람을 불살라 빼앗은 화기가 화정(火精)의 밀도를 엄청나게 올려 주었다.
“당신의 시대는 끝났다!”
기우환의 우장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순간 기천웅의 눈이 흔들렸다. 우장의 장심(掌心)에서 소용돌이치는 푸른 불꽃을 본 것이다.
‘청린신화공!!’
번쩍! 콰앙!
한 줄기 청선(靑線)이 직선으로 뻗어 나가 기천웅의 소매를 뚫고 대지에 꽂혔다.
치이익!
대지를 뚫은 청색 장력은 그대로 땅을 녹여 버렸다.
무서운 화력, 놀라운 장법이었다. 신화교 내에 경천동지할 열양공이 많다지만, 이처럼 지독한 열양공은 없었다.
“네놈이 기어이!”
콰아앙!
가마의 천장과 벽이 모조리 날아갔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불길은 지옥의 겁화처럼 거칠고 파괴적이었다. 세상 어떤 빙공(氷功)으로도 꺼트리지 못할 죽음의 불꽃, 주인마저 태워 버릴 듯 위험하게 넘실거리는 청화(靑火)는 뱀의 혓바닥처럼 주위를 훑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무공을 창안하셨습니다, 아버지. 청린신화공은 본교 무공의 정화와 같아요.”
기우환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런 놀라운 무공을 창안했으면서도 욕심 때문에 자식에게 전수하지 않았지!”
“이놈!”
기천웅의 양손이 전방으로 향했다.
신화교의 절학, 열화신장이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부서진 불꽃들이 사위로 뻗어 나갔다.
놀랍게도 열화신장은 기우환의 손짓 한 번에 산산이 분해되어 흩어졌다. 화력의 차이가 있다 해도 내공력은 기천웅이 우위에 있을 텐데, 그런 힘을 가볍게 분해해 버린 것이다.
기우환이 하얗게 웃으며 가마를 박찼다.
움직였다 싶은 순간, 이미 그는 기천웅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두 사람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과 상반신을 향해 무차별로 휘둘러졌다.
콰콰쾅!!
연신 폭음이 터지며 소멸되지 못한 불꽃들이 천지로 퍼져 나갔다.
불과 불의 싸움, 아버지와 아들의 싸움이었다. 이룬 경지만 본다면 기우환은 기천웅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상단전에 파탄이 난 기천웅은 여전히 전력을 내지 못했다.
거기에 기우환은 청린신화공을 극성으로 구사하고 있었다. 청린신화공은 천하 모든 열양공의 정점, 기천웅이 신화교의 온갖 열양공을 쏟아부어도 청린신화공의 상대가 되긴 힘들었다.
콰아앙!
회전하며 내친 각법 일격에 기천웅의 몸이 저 멀리 날아갔다.
기우환은 그것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이번 일격으로 죽을 만큼 그의 아버지는 만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번쩍!
허공에서의 방향 전환이 자유자재다.
삽시간에 기천웅에게 따라붙으며, 기우환이 외쳤다.
“당신의 욕심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콰앙!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고맙다! 당신의 욕심이 아니었다면 교주 자리를 찬탈하겠단 생각도 못 했겠지!”
콰쾅!
“그러나 당신은 알아야 할 것이다! 당신의 작은 그릇이 본교를 얼마나 망가트렸는지!”
콰콰쾅!!
“우리는 불이야! 본교의 무사들은 투사들이다! 불태워 없애 버려야만 하는 짐승들을 억누르려고 했으니 본교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퍼어어어엉!
청린신화공을 기반으로 내치는 온갖 권장에 기천웅은 연신 뒤로 밀려 나갔다.
어느새 신화령과의 전권에서도 멀어졌다. 그 정도로 기우환의 공격은 파괴적이었고 강력했다.
‘역시 강하구나.’
불은 불을 잡아먹는다.
열양공 역시 그러한 특성을 지녔기에, 더 강한 열양공은 하위의 열양공을 집어삼켜 자신의 화력을 증폭하는 데에 쓸 수 있다.
말하자면 청린신화공은 세상 모든 열양공을 상대하는 데에 특화된 극상승의 무공이었다. 그 특성은 마치 마공과 같아서, 상위의 마공이 하위의 마공을 압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닌 것을.’
천하 열양공의 정점을 노리고 만든 무공이지만, 동시에 청린신화공은 깨달음의 무공이었다.
또한 마공(魔功)이기도 했다.
‘청린신화공의 깨달음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불도 내 것으로 삼아 온전한 하나로 만들고, 화력 자체를 증폭시키는 것이야.’
기천웅의 몸이 흔들렸다.
기우환의 권장을 그냥 막고 흘리기에는 위력이 너무 빼어났다.
‘하지만 불은 양날의 검이라, 적을 해할 수단인 동시에 나를 해하기도 한다. 그것을 구분키 위해 도가심공의 깨달음을 가져와 완성시켰지.’
도가심공의 구결을 따왔는데도 마공이라 불리는 이유.
그것은 안 그래도 극단적인 신화교의 열양공을, 이 이상이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불이 만나면 불이 된다. 불은 언제나 하나야. 그렇기에…… 위험한 것이다.’
청린신화공의 화력은 화정이 아니고서야 감당할 수가 없다.
화정은 불의 정화라 인간의 육신 역시 불로 만든다. 화정의 성취가 깊어질수록 회복 능력이 극단적으로 발달하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불은 잘린다고 꺼지지 않으니까.
그러나 화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체를 불사르고 상단전을 무너트린다. 영력(靈力)까지 끌어와 육체를 수복하는 비기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런 화정에 청린신화공을 붙인다?
끝에 도달한 화력은 곧 화정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극에 이른 화정은 인간의 수명을, 상단전을 더더욱 빨리 소모시키는 마물로 변한다.
그래서 청린신화공은 반쪽짜리인 것이다. 화정이 아니면 연마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청린신화공은 마공인 것이다. 화정과 함께 익혀도 파멸이요, 화정 없이 익히면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불과 불이 하나라는 것은 곧 내 몸도 불과 같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은 불이 될 수 없어. 나와 세상을 하나로 보는 도가심공의 구결 덕에 완성될 수 있었던 청린신화공은, 완성되었기에 마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아아악! 콰앙!
기천웅의 입에서 기어이 핏물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핏물은 청린신화기로 인해 곧바로 증발되었다.
“허무하구나!”
우우우우웅!!
쏟아져 나오는 화기, 울려 퍼지는 목소리.
기천웅은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우환의 목소리와 화기에 정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 힘으로 나와 맞서려 했더냐! 고작 이따위 무공으로!”
콰앙!
기천웅이 또 한 번 피를 흘리며 물러났다.
치이이이익!
열화신장으로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이 그 방패를 뚫고 들어온 일격이 가슴에 적중했다.
가슴에서 허연 연기가 치솟았다. 금제순화공의 화력으로도 청린신화공의 경력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만 죽어라!”
기천웅이 기우환을 바라보았다.
오른 주먹에 한가득 화력을 담아 휘두르는 기우환의 얼굴은 환희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기천웅은 볼 수 있었다. 기우환의 눈 속에 깃든 무시무시한 광기를.
‘그래, 그랬구나.’
혹시나 했다. 의심을 넘어 확신에 가까운 마음을 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보니, 이젠 정말 확신해도 좋을 것 같았다.
‘화정의 화기가 두뇌까지 침범했구나.’
화기의 근원은 심장이다.
심장은 곧 생명력의 상징과도 같으며, 화정이 심장에 가까운 부위에 자리하는 것은 본래 그곳이 화기가 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정이 영력을 끌어오는 과정에서 자칫 화기가 역류하여 두뇌로 올라가면 사람은 미치게 된다. 물론 어지간해선 그런 일이 없다.
‘전신으로 화기를 퍼트리는 청린신화공 때문에 화기가 역류한 것이다.’
기천웅의 얼굴에 서글픔이 어렸다.
교주 자리에서 쫓겨날 때까지만 해도 기우환에게서 저런 광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멀쩡한 정신으로 아비를 축출했다는 것이다.
그랬으면 차라리 그 멀쩡한 정신과 눈으로 신화교를 더 위대하게 만들 것이지, 어찌하여 이런 몰골로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일까.
왜 아들은 이렇게까지 변모해 버렸을까.
‘다 내 탓이다.’
기천웅은 눈을 감았다.
‘결국은 다 내 탓이야.’
기우환의 주먹이 기천웅의 가슴을 후려쳤다.
쿵!
그 순간,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던 기우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치이이이익!
기천웅의 가슴에 닿은 주먹,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던 청린신화공이 순식간에 와해되며 기천웅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잊었느냐.”
기천웅의 손이 자연스레 기우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순간 기우환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우두두둑!
“크윽!”
손목이 그대로 부러졌다. 믿을 수 없는 악력이었다.
“청린신화공을 만든 사람은 나다.”
기천웅의 붉은 안광이 점점 파랗게 변했다.
“지류는 결코 본류를 넘볼 수 없는 법이야.”
그의 주먹이 기우환의 가슴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기우환의 몸이 이십여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