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284)
흑백무제 1286화(1285/1320)
1286화. 전설이 되다 (11)
첫 기습을 가하고 북천십이벽을 세운 순간, 연호정은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았다.
‘강하다. 무림맹 병력만으로는 안 되겠어.’
신화령의 열양공은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황룡수기로 구사한 북천십이벽의 방패가 절반 이상 증발해 버렸다. 신화령 중 수백 명이 쏘아 낸 화기이니, 황룡신왕공의 광대한 힘으로도 버티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화기의 밀도와 특성이었다.
‘이놈들이 연마한 열양공은 금제순화공과 비슷하다. 오히려 일체감은 그 이상, 설령 절반이 쓸려 나가도 구사하는 무공의 위력은 여일(如一)할 것이다.’
심지어 서로의 진기를 합치거나 나누기까지 한다. 말 그대로 불, 화염의 특성을 그대로 끌어안은 괴공 중의 괴공이었다.
연호정이 버럭 외쳤다.
“무림맹 병력은 천수기공진(天守氣功陣)으로!”
천수기공진은 단순한 진형으로 감당키 힘든 고수의 기공술을 막아 내는 진법이었다.
진형 자체는 단순했지만, 극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서로 다른 내공심법을 익혔기에 힘의 조율도 섬세해야 했고, 자칫 잘못했다간 서로의 내공이 합쳐지며 내상까지 입을 수 있었다.
즉, 대(對)고수전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위험천만한 기공 진법이었다. 무림맹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훈련시킨 진법이기도 했다.
촤르르륵!
무림맹 병력이 넓게 퍼져 천수기공진을 형성했다.
“공격보다는 수비다! 놈들의 공격을 최대한 막도록 해!”
압도할 수 있었던 건 기마 부대까지다. 신화령의 전력을 본 이상, 섣불리 총공격을 명할 수가 없었다.
치이이이익!
북천십이벽이 완전히 증발한 그 순간.
연호정의 발이 땅을 박찼다.
훅!
황룡보법이 그의 몸을 벼락으로 만들어 주었다.
어느새 남궁승은 적룡 고마한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고, 이화왕 구조와 사화왕 철목후는 이를 갈며 신화령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종리백이 땅을 박차려는 순간이었다.
“기다리십시오!”
연호정이 광룡부를 휘둘렀다.
광룡공 붕산세 일격이 그대로 신화령의 측방을 향해 쏟아졌다.
콰르릉!
파괴력으로는 중원 제일이라 할 수 있는 광룡공이었다.
그 도끼질 한 방에 신화령 다섯 명의 몸뚱이가 산산조각이 났다.
‘다섯이라.’
이들의 실력, 광룡공의 위력을 생각하면 족히 열 명은 죽였어야 했다. 한데도 다섯에 그쳤다.
‘특수한 진법이군.’
신화령의 진법, 신화통령진(神火通靈陣)은 하나가 된 화기로 외부 공격에 철저히 대응하는 신화령의 이대진법 중 하나였다.
적의 공격이 집중된 곳으로 화기를 퍼부으면 막강한 방어력을 형성할 수 있다. 모두가 영이 통하는 것처럼 곳곳의 상황을 발빠르게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다.
단순한 방어진이 아니라 공격진이 될 수도 있는, 신화교에서도 손꼽히는 진법 공부였다.
‘온전히 내가 담당해야겠군.’
연호정은 침착했다.
단순히 신화령만 상대한다면 그래도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철목후를 종리백에게 맡겨도 구조가 남는다.
심지어 구조의 무공은 남궁승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고수와 신화령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것은 연호정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할 수밖에.’
무림맹 병력이 개죽음을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연호정이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콰아앙!
강렬한 진각음과 함께 황룡신왕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화아아아악!
연호정의 의지를 따라 꿈틀거리는 황룡신왕기는 무림맹 병력, 나아가 모든 고수의 사기를 무섭게 끌어올렸다.
“으아압!”
뱃속에서 이글거리는 투지를 일갈로 뱉어 낸 연호정이 광룡공의 일초, 무참(舞斬)을 발했다.
퍼버버벅!
그 무거운 광룡부가 휘어지듯 휘둘러지며 신화령 일곱의 목을 날려 버렸다.
초식의 위력만 보면 붕산세가 강하지만, 무참은 단조로우면서도 섬세함이 살아 있는 초식이었다.
팔십이 근 광룡부에 섬세함을 담아 기의 흐름을 타고 휘둘러 베니, 오히려 더 많은 적의 목을 칠 수 있었다.
오직 힘으로만 상대하지 않는 것, 적의 대응을 보며 곧장 공격 방식을 선택하는 재능.
무서운 전투 경험과 신에 이른 무력이 합쳐져 사신이 된다.
연호정의 광룡부가 질풍처럼 움직였다.
퍼버버벅! 콰아앙!
무참에 이은 붕산세, 승공세, 광풍섬이 연달아 펼쳐지며 신화령의 일각이 우수수 무너졌다.
삼제를 넘어 이선(二仙), 아니 권신 무허대사와도 일전을 벌일 준비가 된 그였다. 당장 무허대사가 목숨을 버릴 각오로 마성까지 끄집어내지 않는 한, 무허대사 역시 연호정을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당대 천하제일을 논하는 무위라는 뜻이다. 설령 저 신마림의 림주 혁련휘가 온전한 힘으로 부딪쳐 왔대도 지금의 연호정을 꺾을 수는 없었을 터.
승부란 종이 한 장 차이요, 하나의 변수로도 승패가 나뉜다지만 밟아 온 경지의 차이 역시 분명 존재하는바.
이곳 산서로 오며 때 이른 깨달음을 얻은 지금의 연호정은 무(武)의 화신, 실로 천하제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무사로 성장해 있었다.
콰아아앙!
광룡공의 전반 초식만으로도 신화령을 뒤흔들었지만, 신화령의 대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삽시간에 칠십여 명이 죽어 나갔으나 연호정의 내공 소모 역시 상당했다. 게다가 한 번씩 황룡신왕공의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온 화기는 그의 몸 곳곳에 작은 화상을 일으켰다.
심지어 단순한 화상이 아니라 내공 경력이 실린 화상이었다. 일반 화상보다 더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치이익!
황룡신왕기는 사신기를 합친, 한 차원 높은 기질을 지닌 신기(神氣)다.
침투한 화기 따위는 황룡수기로 방출해 버리거나 황룡화기를 이용해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즉, 이 정도 화상은 연호정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상대가 신화령뿐이었다면 그럴 것이다.
쩌어어어엉!!
느닷없이 다가와 내리치는 월극에 실린 힘이 실로 대단했다.
마치 살수가 움직이는 것처럼 은밀한데, 와중에 후려치는 기세는 무지막지하다. 처음 연호정이 광룡부를 던져 신화령을 공격했을 때와 유사한 공격이었다.
“대단하구나!”
이화왕 구조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흑백무제가 젊은 나이에 천하제일을 다투는 무력의 소유자라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러냐.”
연호정이 상반신의 탄력을 이용해 광룡부를 휘둘렀다. 무참이었다.
쩌어어엉!
구조의 몸이 일 장 밖으로 밀려 나갔다.
연호정이 한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상상을 했든 못 했든 내 알 바 아니고, 그냥 죽어 줬으면 좋겠군.”
“그건 안 될 말이지!”
씨익 웃는 구조의 얼굴에 은은한 광기가 어렸다.
진짜로 제정신이 아닌 것은 아니다. 구조는 싸움에 미친 자, 목숨 걸고 상대와 싸우는 것을 평생의 즐거움으로 아는 투사였다.
“이렇게까지 재미난 상대를 두고 죽어 버리면 쓰나!”
“너는 재미있겠지만, 나는 재미없다.”
광룡부와 월극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앙!!
뿜어져 나온 충격파로 인해 신화령 고수 삼십여 명이 비틀거렸다.
그 순간, 철목후가 연호정의 후방에서 접근했다.
구조의 눈이 부릅떠졌다.
“방해하지 마라!”
철목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건 전쟁이다. 무슨 수를 쓰든 이기는 쪽이 정의란 말이다.
그 순간, 연호정의 몸이 회전했다.
부아아아앙!!
폭풍과도 같은 경력을 휘감은 광룡부가 사위에 막강한 경파를 뿜어냈다.
퍼퍼퍼펑!
월극으로 막은 구조가 거리를 벌리고, 철목후 역시 열화신장을 뿜어 광룡부를 막았다.
연호정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아앙!
허리춤에 매단 백룡부가 쾌검처럼 뽑혀 나오며 철목후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그 짧은 순간, 광룡공의 광풍섬이 발휘된 것이다.
번쩍!
그 틈을 노린 구조가 연호정의 머리를 향해 월극을 휘둘렀다.
신화교의 절학 분천마도(焚天魔刀)였다. 도법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무기에 맞게 개량하여 진보시킨 구조의 절기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틈이 보이면 공격한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연호정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광룡부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펑! 쩌어어어엉!
철목후가 백룡부를 튕겨 낸 순간, 구조의 월극은 연호정의 광룡부에 맞아 튕겨 나갔다.
연호정은 머리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월극에서 뿜어져 나온 충격파가 상반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구조의 눈이 흔들렸다.
‘한 손으로 막아?!’
저 무거운 거병을 한 손으로 들어 분천마도를 막았다. 믿을 수 없는 탄탄함이었다.
“흡!”
연호벙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콰앙!
그 자세 그대로 병기에 경력을 전달해 튕겨 낸다.
경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구조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몸 전체가 뒤로 날아가며 상반신에 빈틈이 생겼다. 어떤 상황에서도 빈틈 따위 만들지 않는 구조였건만, 연호정의 발경 폭발은 그런 구조의 빈틈을 손쉽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믿을 수 없구나! 분천마공(焚天魔功)을 연마하기 전이었다면 삼십 합을 넘기기 어려웠을 힘이다!’
새 교주를 모시며 얻은 힘.
우우우우웅!
구조의 몸에서 지독한 마기가 치솟았다.
화기를 기반으로 한 마기였다. 더 위험하고, 더 처절한 힘이다.
연호정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 순간.
파아아앙!
철목후가 연호정을 향해 돌진했다.
‘역시 안 되겠군.’
충분히 다져 놓은 다음 보내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종리백을 필요 이상으로 위험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어쩔 수가 없다.
파아앙!
갈지자를 그리며 움직인 연호정이 양손으로 쥔 광룡부로 철목후의 허리를 노렸다.
황룡보법이 극성으로 펼쳐진 순간이었다. 철목후로서는 막을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는 일격이었다.
콰아아앙!!
붕산세의 힘을 담아 휘둘러진 광룡부가 철목후의 몸을 멀리 날려 버렸다.
철목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열화신장의 공력으로 몸이 양단되는 것을 막았지만, 그 충격파로 내장이 진탕되었다.
그리고 그의 앞.
당장이라도 참전할 듯 대기하고 있던 종리백의 두 눈이 섬광을 뿜었다.
연호정이 외쳤다.
“종리 노선배!!”
“기다렸다!”
종리백이 철목후를 향해 패왕도를 휘둘렀다.
철목후 역시 기겁하며 염왕팔권을 구사했다. 입은 내상을 다스리지도 못한 판국이라 경력이 평소와 같지 않았다.
콰아앙!
두 고수가 정면으로 충돌한 순간, 구조가 연호정의 머리 위로 월극을 내리찍었다.
파팡! 쾅!
연호정이 사라진 자리에 꽂힌 월극이 일대에 지진과도 같은 충격을 일으켰다.
‘정말 빠르군.’
연호정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귀신을 방불케 했다. 무공의 수준 차이를 떠나 이 정도 영역에 거한 고수들의 속도는 큰 차이가 없기 마련인데, 연호정은 달랐다.
콰직! 부우우웅!!
곧바로 월극을 뽑아 횡으로 휘둘러 연호정의 등 뒤를 노린다.
그 순간, 연호정의 좌권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쾅!
구조의 눈이 흔들렸다.
‘주먹으로 튕겨 내?!’
월극의 도끼날을 주먹으로 튕겨 내고도 멀쩡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스스스.
도끼날에 서린 분천마기가 기괴한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그 무공, 신화교의 무공이 아니군.”
말을 하면서도 신화령을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수직으로 휘두른 광룡부에 신화령 둘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연호정의 눈이 깊어졌다.
“사음교의 마공을 가져다 붙였나?”
“네놈이 그것을 어찌 아느냐?!”
“역시 그랬군. 익숙한 냄새가 난다 싶었더니만.”
황룡신왕공이 거칠게 울부짖었다.
연호정의 얼굴에 귀신 같은 살기가 내려앉았다.
“너, 실수한 거야.”